‘미안해요’라는 말
사람들은 살면서 크고 작은 실수를 한다. 타인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거나, 금전적으로 피해를 입히거나, 명예를 더럽히거나,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 손해를 준 경우 등 다양하다. 이러한 다양한 상황에 따라 사과의 말은 달라지겠지만 ‘진심’을 담아 사과해야 한다는 사실만큼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미안해요”라는 이 말 한마디 꺼내는 것을 어렵게 여긴다. 한 박사는 “사람이 실수나 잘못을 저지르고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 ‘누군가 알게 되지 않을까’, ‘이로 인해 어떤 피해가 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겪는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실수를 했을 때 변명하고 핑계를 대는 것은 이 때문이다.
또한 직책과 권위가 높을수록, 나이가 많을수록 사과에 인색하다고 한다. 학자들은 “사과하는 동시에 권위를 잃거나 책임감이 더 막중해진다는 기억이 학습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회적 권위를 상실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불필요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는 공포가 사과를 주저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사과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자신을 낮춰야 하기 때문에 자존심 상하는 문제와도 결부된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인간관계 전문가들은 가장 어려운 말이 “미안하다”는 고백의 말이라고 입을 모은다.
진심으로 사과할 때 생기는 변화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은 놀라운 기적을 일으킨다.
독일 총리 빌리 브란트(Willy Brandt)의 사과
1970년 12월 7일 오전 7시, 폴란드 바르샤바에 부슬비가 내렸다. 그 앞에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가 서 있다. 27년 전 나치에 맞서 참살된 바르샤바의 유대인 게토를 방문해 추모하기 위해서다. 잠시 고개를 숙인 브란트가 뒤로 물러섰다. 의례적 추모가 끝났다고 여긴 일부 기자들이 따라 몸을 뒤로 뺐다. 그때 갑자기 빌리 브란트는 추모비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었다.
사실 그는 나치의 점령에 저항하던 레지스탕스(Résistance) 출신으로 사과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는 나라와 국민을 대신해 무릎 꿇고 사과했다. 나치 독일의 잘못을 온몸으로 사죄한 것이다.
브란트의 진심 어린 사과는 놀라운 변화를 일으켰다. 나치 강제수용소 생존자인 유제프 치란키에비치 폴란드 수상은 브란트를 끌어 안고 “용서한다. 그러나 잊지는 않겠다”며 통곡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폴란드는 물론 유대인, 다른 유럽 국가들도 독일 총리의 사과에 감동하여 과거의 독일을 용서했다.
이후 독일의 동방정책은 성공했고 새로운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1971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 브레즈네프는 프랑스 대통령에게 “독일보다는 독일 총리를 더 신뢰한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이러한 신뢰를 기반으로 서독과 소련은 ‘긴장 완화’, ‘무력 위협 포기’, ‘국경선 존중’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 모스크바 조약을 체결했다. 이는 동독과 서독의 긴장 완화의 기초가 되었고 이후 동ㆍ서독은 분단에서 통일로, 유럽은 냉전에서 평화와 협력의 관계로 개선했다. 한 사람의 진정한 사과가 분쟁의 상흔(傷痕)을 화해(和解)의 길로 변환시켰다.
미국 외과의사 다스 굽타(Das Gupta)의 사과
2006년,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병원 종양 외과장인 다스 굽타는 최대 위기를 맞았다. 환자의 아홉 번째 갈비뼈에서 떼어 내야 할 조직을 여덟 번째 갈비뼈에서 떼어 낸 것이다. 어처구니 없는 실수였다. 그동안 쌓아온 40년의 경력이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치명적 사건이었다. 그때 다스 굽타는 환자와 가족에게 “저는 환자분께 큰 해를 끼쳤습니다.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습니다”라며 자신의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넸다.
의사는 환자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다. 의사가 환자에게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시인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은 자신의 실수를 감추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거나 빠져나갈 변명거리를 찾을 것이다. 그러나 굽타 박사는 달랐다.
굽타 박사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은 환자 가족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박사가 모든 점에서 솔직하게 자신의 잘못을 이야기할 때 놀랍게도 모든 분노가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환자 가족은 최소 수억 원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었음에도 굽타 박사를 고소하지 않았다. 오히려 굽타 박사를 위로했다. 이 일은 2008년 뉴욕타임스에 게재되면서 굽타 박사 개인은 물론 병원의 신뢰도까지 높였다. 진심이 깃든 사과 한마디는 이토록 강한 힘이 있다.
하나님의 교회, 미안해요 운동 실천
가정에서든 사회에서든 누군가 상처를 줄 의도가 전혀 없었음에도 상대방이 상처받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고 받는 일은 교회 안에서도 발생한다. 몇 년 전, 인도에 있는 한 하나님의 교회에서 일어난 실화다. 식구의 작은 허물로 인해 상처를 받은 한 성도가 있었다. 마음이 상한 성도는 오랫동안 교회에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교회 사모는 무언가 결심한 듯 상처받은 식구의 집에 방문했다. 퉁명스럽게 맞는 식구에게 사모는 몸을 낮췄다. 그리고 식구의 두 손을 잡고 위로하며 무릎을 꿇었다.
미안해요. 그 아픈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 저를 용서하세요.
사실 사모가 식구에게 상처를 준 건 아니었다. 사모가 사과할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교회 식구를 대신해 무릎 꿇고 진심으로 사과했다. 사모라는 지위나 체면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식구를 하나님의 품으로 다시 인도해 살리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예상치 못한 사모의 사과에 놀란 식구는 사모를 얼싸안고 한참 울었다. 그리고 마음을 추스른 후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넸다.
고마워요. 상처 받은 내 마음을 보듬으러 먼저 찾아와 주셔서요.
식구는 몸을 낮추고 자신의 손을 잡아주는 사모에게서 어머니 하나님의 사랑과 따뜻함이 느껴졌다고 덧붙였다. 지금은 상처를 다 씻고, 오해도 풀었다. 그리고 교회에서 새 언약 진리를 지키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초대교회 예수님께서는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의 비유, 잃어버린 드라크마의 비유를 통해 한 영혼이 얼마나 귀한지 교훈해 주셨다(누가복음 15:3~10). 상처로 인해 잃어버린 식구를 되살린 것은 어떤 물질이나 기술이 아니었다. 진심이 담긴 “미안하다”는 한마디 말이었다. 이처럼 사과는 한 영혼을 살릴 수 있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아픔과 분노를 잠재우고 사랑으로 연합하게 만든다. 이보다 놀라운 일이 또 있을까.
사랑의 진리, 새 계명과 새 언약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 13:34)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20)
요한복음 13장 34절의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과 누가복음 22장 20절의 “이 잔(포도주)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라는 말씀은 최후의 만찬 곧 유월절 만찬 자리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제자 요한과 누가가 각각 『요한복음』과 『누가복음』에 기록한 것이다. 즉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이 ‘새 언약’이라고 선포하신 날도 유월절 성만찬 자리였고,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신 날도 유월절 성만찬 자리였다. 새 계명은 곧 새 언약이라는 뜻이다(출애굽기 34:28, 신명기 4:13).
그렇다면 ‘유월절’과 ‘서로 사랑하는 것’은 어떤 연관이 있을까?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가라사대 ··· 유월절을 예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 ···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포도주)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8~20)
유월절의 떡은 예수님의 살을, 유월절의 포도주는 예수님의 피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유월절을 통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은 제자들은 예수님 안에서 한 몸이 되는 것이다(고린도전서 10:16~17). 세상에 자기 몸을 미워할 사람은 없다. 예수님의 살과 피가 내 안에 흐르고 네 안에 흐르고 있기에 우리가 서로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특별히 주의 깊게 살펴볼 점은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세우시며 이 절기를 당신의 죽으심을 기념할 날로 제정하셨다는 것이다. 우리의 사망죄라는 무거운 죗값을 대속하시려 십자가에 당신의 생명을 초개같이 버리셨다(로마서 5:7~8, 6:23).
국내외 의학박사, 법의학자들은 예수님께서 당하신 십자가의 형벌이 가장 잔인하고 치욕스러우며 극심한 정신적, 신체적 고통이 따른다고 입을 모은다.
인류의 죄 사함을 위해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온 몸으로 감당하신 고난은 단 1초라도 견디기 힘들만큼 처절한 순간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께서는 십자가의 괴로움, 아픔, 모욕, 외로움 등을 참으시며 우리를 살리셨고, 마지막 유언으로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남기셨다.
이처럼 가슴 시리도록 사무친 아버지의 유언을 생각하며,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 성도들은 서로에게 “미안해요”, “고마워요”라는 따뜻한 말하기 운동을 실천하고 있다.
지금, 사과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누구나 실수와 잘못을 저지른다. 그때부터가 중요하다. 여기에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상대와 거리가 멀어질 수도, 가까워질 수도 있다. 이를 결정하는 것은 ‘사과’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누군가에게 했던 말과 행동을 떠올려 보자. 그리고 나로 인해 아파했을 대상이 떠오른다면 용기 있게 다가가 “미안해요”, “그때 제 행동을 후회했어요”, “얼마나 아프셨어요”라고 말하며 따뜻하게 손잡아 주자. 용기 있는 사과 한마디가 켜켜이 쌓인 오해의 벽을 허물고 용서, 화해, 사랑으로 연합하게 만드는 열쇠가 될 것이다.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은 소식은 이것이니, 곧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우리가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이것을 아는 것은 우리가 형제자매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자매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새번역 요한일서 3:11~16)
목숨을 버리시면서 우리에게 일깨워 주신 것, 새 언약이 곧 새 계명이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을 간절히 원하고 원하셨던 아버지, 다음날 십자가의 큰 고통을 감내할 것을 각오하시며 ‘사랑하라’는 유언을 남겨주신 아버지. 아버지의 그 안타깝고도 애달픈 음성을 기억하고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사과할 수 있는 용기, 이는 사랑의 절기인 새 언약 유월절의 도를 실천하는 시작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