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죽음을 각오하고 예루살렘에 올라갔지만, 위기의 연속이다. 공회에서 죽을 위기에 처했다. 그때 바울이 부활의 메시지를 증거했더니 부활을 소망하던 바리새인과 부활을 믿지 않던 사두개인이 갈라지게 되었다.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을 전하면 하나님의 백성인지 아닌지 갈라지게 된다. 그게 구별됨, 거룩이다. 구사일생으로 건진 바 되었지만, 바울은 여전히 자신이 어떤 위험에 처했는지 모른다. 하나님께 믿고 맡기고 가는 것이다.
오늘 본문엔 드라마 같은 일들이 벌어진다. 바울을 죽이려는 40인의 결사대가 조직되었다. 그런데 반대편에 바울을 도우려는 하나님의 손길이 훨씬 더 크다. 세상의 도전이 엄청날지라도 하나님의 방어는 더 크다.
대적 마귀는 집요하고 간교하다. 이들은 바울을 죽이기 전까지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한다. 인간의 힘이 아니다. 배후에 영적인 세력이 있다. 돈이나 명예가 생기는 것도 아닌데 40명이나 모여서 죽이려 한다. 굉장히 집요하다.
또 간교한 것은 1차 공회에서 바울을 놓쳤으니까 한 번 더 공회를 열어 예루살렘으로 내려올 때 급습해서 죽이겠다는 것. 마귀는 언제나 함정을 판다. 덫을 놓고 울무를 놓는다. 마귀가 놓은 덫에 걸리면 움직일수록 더 깊이 들어간다(14, 15).
이 장면은 목숨 건 사람과 목숨 건 사람의 투쟁이다. 바울은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겠다는 것이고 40명은 목숨 걸고 바울을 죽이겠다는 것이다. 우리가 안 되길 바라고 우리가 망하길 바라는 세력이 있다. 그들은 집요하고 교활하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은 더 크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보내셔서 도우신다. 앞서가는 말씀 붙들고 기도하며 따르면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길이 된다.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11) 예루살렘에서 안 죽는다는 것. 반드시 로마까지 갈 것이다. 우리가 모든 과정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다. 과정을 모르지만 우리는 끝을 안다. 로마까지 가는 것을 안다. 끝을 알면 두려운 것이 아니라 기대감과 호기심과 궁금증이 생긴다.
우리는 승리를 확신하지만 어떻게 승리할지 모른다. 이는 맹목이 아니라 하나님이 파이널을 알려 주셨다. 이게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이다. 말씀은 우리에게 끝을 보여 주신다.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시편 107:20) 말씀이 주어지면 우리는 끝을 알기에 흔들리지 않고 가게 된다. 27장에 바울 일행이 유라굴로 광풍을 맞게 되어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276명이 다 살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주셨다(행27:23-25). 과정은 모르지만 한 명도 죽지 않고 안전하게 로마까지 갈 것을 확신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항상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지켜 주신다.
그리고 조카를 통해서 도와주신다. 전혀 생각지 않았던 도움이라는 것이다. 바울의 친인척 가운데 등장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원문에는 누나의 아들인데 40명의 계략을 듣고 와서 모든 음모를 바울과 천부장에게 알려준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백성은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을 통해 건져 주신다. 이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이고 섭리다.
세 번째 하나님의 도와주심이 하이라이트이다. 천 부장이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내일 아침까지 기다리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다. 밤 9시에 군대를 동원해서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 까지 100km를 바울 한 사람을 호송하기 위해서 밤새 이동시킨다. 보병이 200명, 기병이 70명, 창병이 200명. 로마 정예군 470명을 동원한 것이다. 천 부장 자신이 이끌 수 있는 병력이 천명인데, 자신의 병력 50%를 죄수 한 명을 호송하자고 보낸 것이다. 바울을 죽이겠다고 하는 40명은 훈련도 안 된 마음만 뜨거운 사람들이다. 그런데 로마군 470명은 완벽하게 훈련된 정예군이다. 거의 12배의 병력으로 바울을 호위해 주셨다(23, 24).
열왕기하 6장에 아람 군대가 와서 엘리사가 있는 성을 둘러쌌다. 사환이 아침에 깨서 보고 놀라니까 진정하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들보다 훨씬 더 많다고 말한 후 하나님께 기도하여 사환의 눈을 열어 보게 한다. 그랬더니 청년의 눈이 열려 불말과 불병거가 산을 가득 둘러싼 것을 본다. 하나님이 그렇게 일하신다. 이때는 영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불말과 불병거지만 바울은 로마의 군병 470명이 동원되어 그를 이끌어 갔다는 것이다.
우리 인생도 하나님께 맡기고 의지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이끌어 주신다. 어거스틴이 "믿음이란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과거는 하나님의 긍휼에 맡기고, 현재는 하나님의 사랑에 맡기며, 미래는 하나님의 섭리에 맡겨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가장 좋은 것으로 이끌어 주신다. 우리 할 일은 맡기고 가는 것이다. 맡기면 하나님께서 이런 어마어마한 일들을 보여 주신다.
예루살렘은 고산지대이고 안디바드리까지 내려가는 길이 숲길이라 매복해 있는 사람들에게 당하면 속수무책이라 보병과 창을 둔 군사들을 준비한 것이다. 그리고 안디바드리에서 가이사랴까지는 평지라 보병과 장병을 돌려보내고 기병만으로 간 것이다(31, 32). 하나님께선 이렇게 세세한 부분까지 인도하시고 보호해 주신다. 이 일을 위해서 천부장이 총독에게 편지까지 썼다. 내용은 ‘내가 조사해 보니 바울은 무죄다. 무죄 취지로 처리해 달라는 것이다’ 천 부장은 병력도 보내 주고 편지까지 써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해 준 것이다(29, 30). 그렇게 붙들어 주셨다는 것이다.
40명이 죽이려고 설치고 뛰어도 하나님이 행하시니 하나님을 당할 수 없다. 그럼 우리는 두려움이 아닌 담대함을 가지고 힘을 내어 하나님의 마지막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믿고 가면 된다. 오늘 구도는 이원론 구조다. 대적의 규모가 어마어마해도 하나님의 규모는 더 크다. 믿고 맡기라. 기대하고 호기심 가지고 나아가면 엄청난 간증과 기대가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