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준비하여 수년째 봄부터 가을까지 매월 보름달이 뜨는 몇 날 밤에 이어져 오고 있는 ‘창덕궁 달빛기행’
밤 창덕궁을 거닐어 보았고 늘 국악공연을 즐기는 관계로 별 의미를 두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냥 한번 체험 해보자 하고 다녀온 오늘밤 행복의 여운을 혼자서 간직하기 아까워 긴 후기를 써본다.
궁궐은 왕의 집이자 일터이다. 조선 500년 역사에서 왕이 주로 머무는 궁궐인 법궁(法宮)으로 경복궁보다 더 오랜 세월 약 270년을 지켜낸 창덕궁(昌德宮)에 어둠이 깔리고 보름달이 뜬 2013년 3월 26일 밤, 지금이 조선시대 이었다면 창덕궁 정문 돈화문(敦化門)은 절대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저녁 7시 돈화문 중문이 열리고 금천교를 지나 진선문(進善門)을 넘고 어도를 따라 인정문(仁政門)을 넘자, 조정 좌우에 문반과 무반으로 나뉘어 각각 12개씩 서있는 품계석 밑 작은 장식 불빛들이 아직은 차갑게 느껴지는 맑고 고운 달빛과 어우러져 쏟아내는 정막의 아름다움은 숨을 멈추게 하였다.
어둠속 조정(朝廷) 끝 인정전은 조명 빛 속에 활짝 핀 한 송이 커다란 연꽃처럼 우아하게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고, 열려있는 중앙 꽃 창살 문 안쪽, 어탑 위 어좌와 일월오악병의 아름다움은 나의 발걸음을 재촉하며 어서 오라 손짓 하고 있었다.
인정전 월대(月臺)에 올라 달빛에 잠긴 추녀마루 끝을 바라보며 취해 헛발 딛고 넘어질 뻔하다, 회랑을 가로질러 선정문(宣政門) 앞뜰 계단을 통해 희정당(熙政堂) 어차길 앞에 섰다. 휘영청 달빛 그림자는 22세 꽃다운 나이에 요절한 효명세자의 향수(鄕愁)가 되어 서러움을 내 가슴속 깊이 밀어 넣었다.
성정각(誠正閣) 언덕을 넘어 낙선재(樂善齋) 안마당을 들어서니, 죽 늘어선 서편 행랑의 각기 다른 꽃 창살들이 불빛을 받아 뽐내는 아름다움으로 눈을 시리게 하였다. 낙선재 오른편을 돌아 후원에서 바라보는 침소(寢所)의 둥근 월문(月門)은 한옥의 신비로움을 더 하였고. 아직 철이 일러 단 한 송이 꽃도 없는 화계(花階)이었지만 온갖 꽃이 만개하여 꽃향기로 온몸을 감싸는 것 같았다.
화계 꽃담 옆 좁은 계단을 밟고 정규 관람객 미공개지인 육각형 정자 상랑정(上涼亭)에 다가서자, 은은하게 퍼져 나오는 불빛에 드러내 보이는 매혹적인 자태가 달밤을 유혹하고, 나뭇가지에 걸린 머리 위 커다란 보름달은 잠시 숨을 고르며 창덕궁 후원 부용지(芙蓉池)로 가는 만월문(滿月門) 길을 가르쳐 주었다.
양쪽 돌담 따라 걸려 있는 청사초롱은 어두운 밤길에서 고개를 들어 총총히 떠있는 별을 세게 하고, 이어지는 숲길에서 손에 들린 청사초롱의 흔들거림은 어린 시절 밤 마실 돌며 놀던 고향마을 추억을 끄집어 내 주었다.
잔바람 살랑거림도 없는 부용지에 비추는 부용정(芙蓉亭)과 규장각(奎章閣) 주합루(宙合樓)의 황홀한 아름다운을 한 폭 그림에 담아 표현 할 수 없음이 안타까웠고, 영화당(暎花堂) 마루 고운 자태 여인이 뜯는 거문고 음률은 임 그리워 가슴 아린 애잔함이 봄밤 허공을 나르며 춤을 추었다.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불로문(不老門) 청사초롱은 애련지(愛蓮池)의 사연을 알고가라 청하는 것 같았고 연경당(演慶당) 안채 마당에서 나누어 준 따뜻한 한방차와 예쁜 복주머니에 담긴 떡과 한과는 초봄 꽃샘추위시샘을 잠재우며 사랑채에서 펼쳐질 국악공연 관람을 기대하게 하였다.
대청마루 향악정재 반주 속에 오색장식 부용관을 머리에 쓰고 노랑 앵삼을 입고 손목에 낀 7색 환삼을 살포시 들었다 뿌리며 색시걸음으로 앞뒤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 우아하고 단정한 독무 춘앵무(春鶯舞)가 혼을 낚아 내더니, 명주실 위를 활대로 밀어내는 아쟁산조의 한 서린 청량한 울음이 고고한 달빛 아래 묻힌 연경당 사랑채를 뒤덮어 몽환(夢幻)속으로 빠뜨려 버렸다.
유난히도 많은 연인들을 달빛마당 나무 장의자에 앉혀 놓고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판소리 춘향가 눈 대목 사랑가로 가슴을 따뜻하게 녹여주고, 거문고, 가야금, 아쟁, 해금, 대금, 소금, 장구, 피리, 퍼커션, 합주, ‘플라이 투 더 스카이(Fly to the Sky)’ 밝고 경쾌한 현대적 음률에 가까운 국악을 들려주어 젊은이들의 아쉬움도 채워 주었다.
그냥 일어서 돌아가기가 아쉬워 청한 앙코르 곡 ‘아리랑 환상곡’을 더해 창덕궁 야간관람에 국악공연관람까지 어느 것 하나 부족함 없이 가슴에 가득 담아본 기쁨이었다.
조선 궁궐 창덕궁을 달빛 따라 거닐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조선 왕의 풍류를 그려 보았던 오늘 밤의 행복은 오래오래 나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이며 만나는 사람 사람마다 자랑하고 있을 것이다.
첫댓글 좋습니다.
특권이내요...노력하는자의...달 빛 내려앉는 비원을 걷고 싶다는 꿈...언젠가 되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