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이른바 김문기 후손들이라 자처하는 경주김 씨 문중 후손들이 이 게시판 24번 단종실록 해석과 관련하여 시비를 걸어왔습니다.
그 비판의 근거는 세종 87권 21년 (1439년 己未 명나라 正統 4년)10月 14日 (己丑) 3번 째 기사
初 同知敦寧府使權聃先妻朴習女 習被誅 國家使離婚 改娶工曹判書鄭淵之女 猶潛通朴氏 生女
처음에 동지돈녕부사 권 담의 선처는 박습의 딸이었다. 박습이 참형을 당하자 국가가 권 담에게 박습의 딸과 강제로 이혼을 시켰다. 팔자를 고쳐 공조판서 정연의 딸에게 새 장가를 들 게 했다. 권담은 오히려 전처 박 씨하고 몰래 정을 통하여 딸을 낳았다.
이하 생략,
경주 김씨 김문기 후손들이 이 기록을 가지고 단종실록 아래의 기록과 그 해석을 잘 못하여 정사를 왜곡시켰다고 시비를 걸고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육신 후손들이 어찌 감히 실록의 기록을 왜곡시킬 수 있으리오?
위의 세종실록 기록을 보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 내용입니다
박습이 죽을죄를 저질러 참형을 당했으므로 마침 박습의 딸이 권담의 처로 있었기 때문에 박습의 딸은 중죄인의 딸이라 하여 국가에서 강제로 이 두 사람을 이혼을 시키고 권담으로 하여금 공조판서 정연의 딸에게 새 장가를 들 게 했습니다. 조선시대는 고려시대처럼 남녀의 윤리강령이 문란한 시대가 아닙니다. 더욱이나 조선의 세종시대는 삼강오륜(三綱五倫을 강령으로 삼는 유교국가 (儒敎國家)의 통치철학이 자리 잡아 가고 있던 때였습니다.
권담은 이미 국가에 의하여 박습의 딸하고 강제로 이혼을 당했고 또. 정연의 딸에게 새 장가를 들어 새로운 아내가 있는 지아비로 감히 국명을 어기면서까지 새로 맞이한 아내를 놔두고 전처 박 씨를 몰래 찾아가 간통을 저지른다는 것이 선뜻 이해가 안 되고 더욱이 몰래 간통을 저질러 딸을 낳았다는 것 자체가 상식에 크게 반하는 것입니다.
필자는 단종실록 바로 아래에 있는 기록을 정확하게 번역하여 김문기가 권담의 전처 박씨를 찾아가 몰래 간통하여 박씨 배에다 임신시킨 사실을 밝혀 놓았습니다.
김문기가 방랑기가 있어서 행동에 조심성이 없는 까닭으로 자기 아들에게 권담의 딸에게 장가를 들게 했는데 이 권담의 딸이 다름 아닌 김문기 자신이 권담의 전처 박씨를 찾아가서 몰래 간통하여 낳은 딸이었던 것입니다.
사관이 부득이하여 세종실록에다 간 「猶潛通朴氏生女」 라고 써 놨지만 이후 14년 뒤엔 단종실록에다 간 김문기 이름을 당당히 밝히고 김문기가 방랑기가 있어서 자기 아들에게 권담의 딸에게 장가보내면서 권 담의 딸이 김문기 자신이 권담의 전처 박씨를 몰래 찾아가서 간통하여 낳은 것임을 이렇게 「金文起放浪不謹, 以其子. 娶權聃之女, 乃聃, 潛通于前妻朴氏所生也」 라고 밝혀 기록해 놓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사관이 김문기가 제 자식과 제 딸을 결혼시키는 것을 보고 사람의 자식으로서는 차마 할 짓이 아니라 하여 그 막된 행위를 이와 같이 실록에 옮겨 실었던 것입니다.
이런 이유가 아니면 뜬금없는 김문기가 이 실록에 들어 올 이유는 추호도 없기 때문입니다.
위의 세종실록은 상식에 반하는 기록이고 아래의 단종실록은 그 실상을 정확하게 적시하여 쓴 기록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 아래에 있으니 독자께선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경주 김 씨 김문기후손 여러분!
당신들의 선조 김문기는 분명 천하의 오색잡놈입니다 위 실록에서 보았다시피 권담이 국가에 의해 강제로 이혼을 당하는 틈을 타 김문기가 박습의 딸을 찾아가 몰래 간통했다는 것이 이렇게 생생하게 기록에 의하여 전해지고 있지 않습니까? 천하의 오색잡놈을 선조로 둔 것을 이 게시판을 빌어 독자 여러분과 함께 경하하고 축하드립니다.
독자 여러분!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 생겼습니다.
김녕김 씨 충의공파도 김문기가 자기들 파조라고 하면서 이들은 김문기가 천하의 오색잡놈이라는 말에 대해선 오불관언이고 반면 김문기가 삼중신이고 사육신이 아니라고 하면 이들은 기를 쓰고 결사 항전을 합니다.
반면,
경주김 씨의 김문기 후손들은 김문기가 삼중신이고 사육신이 아니라고 하는 말에 대해선 태연자약하고 반대로 김문기가 천하의 오색잡놈이라고 하면 보셨다시피 기를 쓰고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두 문 중이 김문기를 자기네 선조라고 우겨대면서 역사를 보는 관점이 이와 같이 판이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단종 7권 1년 (1453 계유/ 명 경태(景泰) 4년) 9월 27일 (경진)1번째기사
金文起放浪不謹, 以其子. 娶權聃之女, 乃聃, 潛通于前妻朴氏所生也
『김문기가 방랑기가 있어서 행동에 조심성이 없었다. (김문기가) 자기 아들로써 권담의 딸에게 장가를 들게 했는데
(이 권담의 딸이란 것이) (김문기가) 이에 권담의 전처 박 씨에게 몰래 가서 간통하여 낳은 (김문기 자신의) 딸인 것이다』
* 이 실록의 국역(國譯) 과 관련하여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실록을 약 4,50년 전에 국역을 했는데 나는 감히 이 부분의 27자 국역이 잘못 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이 국역은 이렇게 되어 있다.
「김문기가 호방하고 삼가지 아니하여 그 아들이 권담의 딸에게 장가들었는데 바로 권 담이 전처 박 씨와 몰래 통하여 나은 것이다」
이 국역은 앞뒤의 문맥이 전혀 맞지가 않는다. 이 국역대로 분석하면 권담이 전처 박씨를 쫓아 냈는지 이혼을 했는지는 알수 없지만 하여튼 전처 박씨에게 가서 간통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글머리에 김문기가 호방하고 삼가지 아니한 것과
권담이 전처 박씨와 몰래 통하여 딸을 낳은 것과
어떤 상관 관련이 있는지 말뜻이 서로 연결이 안 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 국역의 해석이 말머리와 말꼬리의 문맥이 서로 따로 놀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이 해석을 미루어 보면 이 국역은 실록의 원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한자의 훈(訓)만을 따라 대강 국역을 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래서 이와 같은 실수의 국역이 나온 것이다.
여기서 「몰래 정을 통하다」라는 잠통(潛通)이란 말은 통상적으로 부인이 있는 남자가 남의 부인하고 정을 통할 때 쓰이는 용어이다 그러니까 권담이 자기 전처하고 정을 통한 것을 놓고 잠통이란 용어는 이 경우엔 맞지가 않는 것이다.
이 실록의 잠통(潛通)이란 말은 실록의 원문이 제시하는 바와 같이 김문기가 방랑기가 있어서 행동에 조심성이 없는 까닭으로 (金文起放浪不謹) 이에 권담의 (乃聃) 전처 박씨에게 가서 몰래 정을 통하여 씨를 뿌린 것이 딸이 생긴 것이다,(潛通于前妻朴氏所生也)라는 말로 쓰인 용어임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러므로 김문기가 권담의 전처 박씨를 찾아가서 몰래 정을 통했는데 이때 박씨의 배에서 김문기의 딸이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이 태아가 커서 박씨의 소생(所生)이 되었는데 이 여아를 권담의 전처가 낳았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권담의 딸이라 한 것이다.
* 이 이야기는 사관이 김문기의 일거수일투족의 모든 언행을 지켜보고 이를 왕조실록에 옮겨 실어 후대 사람에게 큰 경계를 주려 했음이 여실이 드러나 있다.
김문기는 자신의 이런 역천패륜의 행동이 왕조실록에까지 실리는 줄은 물론, 꿈에서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550여년이 흐른 오늘 날 김문기 후손들은 이런 낯 뜨거운 부끄러운 선조를 가지고 가려진 死六臣이니, 正史의 原 死六臣이니, 사육신의 영도자니, 사육신의 주모자니하며 그의 후손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막강권력으로 1977.9.22.국사편찬위원회로 하여금 김문기를 가려진 사육신이란 해괴망측한 논리로 사육신으로 둔갑시켰다.
그리고 이런 김문기를 김재규의 권력으로 노량진 사육신묘에다 가짜 묘를 써 놨는데 死六臣이 이 김문기 같이 제가 낳은 아들과 딸을 결혼을 시켜 역천패륜을 저지르고. 또 딸의 시어머니하고 간통을 저질러 사람들의 구설수에 오른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 이런 일을 일러 天道는 무심하지 않다고 하는 걸까?』
20012년 5월 19일
사육신 수호회장 성원규 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