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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살도(菩薩道) >
초기불교에는 석가모니 부처님 전생만 보살이라고 했다.
즉, 연등부처님으로부터 수기를 받은 부처님은 성불(成佛)이 확정되고
이런 수행자는 수기를 받지 않은 사람과 구별해야 하므로
여기에 보살(菩薩)이라는 말이 만들어진 것 같다.
이처럼 보살이란 처음에는 부처님이 성불하시기 이전의 상태를 이르는 용어였다.
따라서 부파불교에서는 보살이란 번뇌 망념에 의한 업(業)에서 인과(因果)를 단절한 성인으로 정의하고
<본생담(本生譚-Jataka)>에 나오는 석가보살(釋迦菩薩) 이외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승불교의 흥기와 더불어 처음의 용례와는 관계없이 보리심(菩提心)을 일으켜
중생을 이익 되게 하며 바라밀행(波羅蜜行)을 닦아서 성불을 기약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보살이라 하게 됐다.
즉, 누구나 보살도(菩薩道)를 수행하면 성불할 수 있다는 새로운 보살사상이
대승불교의 가장 중요한 이념의 하나로 대두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보살이라는 말과 개념은 초기불교에서 부파불교로 이행할 당시
즉, 연대로 말하면 대략 BC 2세기 경 이후에 등장한 것 같다.
역사 속에 인간으로 사셨던 부처님이 대승불교에서는 신격화 되고
그 신격화 된 나머지 인간이 도저히 다가갈 수 없는 저 위대한 분이 돼버렸다.
그래서 그 중간자 역할을 할 분이 필요했는데, 이 분들이 바로 보살들이다.
부처님은 윤회를 끊었기 때문에 이 세상에 나올 수 없다.
그러나 보살들은 일부러 자기의 원력에 따라 윤회의 세상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언제든 원력에 따라 중생세계에서 만날 수 있다는 논리이다.
그래서 적극적인 민중의 지지를 받게 된 것이다.
이는 힌두교에서 비슈누신이나 시바신을 믿고 있었을 당시
초기불교에서는 신을 인정하지 않았으나 대승불교에 와서 민중을 포섭하기 위해
힌두교 신들의 모습을 차용해 여러 보살들을 등장시킨 것이다.
어떻든 대승불교에서 보살의 시설은 불교 확장을 위한 획기적인 계기가 됐다.
대승경전에서 설하는 보살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성불의 서원을 세우고 자리도(自利道)를 구하는 보살이다.
이들을 자리적(自利的) 수행에 의한 성불을 목적으로 하는 구도보살(求道菩薩)이다.
둘째로는 대승화신보살(大乘化身菩薩)이라고 하는
관음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미륵보살과 같은 과거에 이미 성불한 대보살이 있다.
이러한 보살들은 중생구제의 서원을 세우고 일부러 열반에 들지 않고
세상에 출현하며 성도(成道)와 전법륜(轉法輪)의 상(相)을 나투어 중생을 구제한다.
또한 이들은 성불의 수기를 초월해 순수 이타적 보살행(菩薩行)만을 행한다.
그러므로 이들을 이성(已成)의 불(佛) 혹은 오도보살(悟道菩薩)로서
이타적 중생구제보살이라고 한다. 대승보살이란 바로 이들을 말한다.
이와 같은 보살의 관념은 부파불교시대의 출가승단과는 다른
불탑신앙의 보살집단(보살가나)에서 나타난 것으로 간주된다.
가나(Gana)란 승가(僧家)와 동일한 의미로, 곧 보살가나는 보살중(菩薩衆), 보살집단을 가리켰다.
이들은 정신적으로는 보리(菩提)를 구하고, 행(行)으로는 중생을 구제하는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의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보살행을 전개한 무리들이다.
부파불교에서의 출가자들은 소극적 자기수행만으로 전념함으로써 대중적 지지를 잃어가고,
부처님 진리가 일반대중들과의 괴리감으로 나타남으로써
민중의 편에 서려는 뜻있는 분들의 각성으로 민중과 함께 바라밀을 실천하려는
대중 불교운동이 일어남은 그 시대의 부름이었다.
그리하여 이들은 민중과 함께 하며 대중 불교의 세력을 키워갔다.
그리고 부파불교의 번쇄한 이론중심 아미달마불교에 반기든 민중들 역시
그들의 구심점으로서 보살가나(보살단)를 지지했다. 이렇게 해서 대승불교,
그리고 ‘보살’이 탄생한 것이다.
이들 보살집단을 재래의 출가자 중심의 교단인 승가(僧伽)에 대해서,
대승보살들의 공동수행집단, 혹은 대승교단의 보살가나라고 했다.
이들은 부파교단과는 전혀 다른 교단이었다.
이들은 민중 속으로 파고들어 민중과 하나 되는 길을 택해 보살행을 실천함으로써
민중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게 됐다.
그리하여 그들은 ‘보리살타(菩提薩陀, Bodhi-sattva)’라는
새로운 인간상을 형성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 보리살타(보디사트바)는
불교의 새로운, 그리고 위대하고도 가장 이상적인 인간상이 됐다.
이 보살이라는 인간상은 다른 종교에서는 그 비슷한 것도 찾아볼 수 없다.
나아가서, 새로이 등장한 대승보살은 수기가 없이도 성불할 수 있는 보살이었다.
즉, 일반범부인 대승수행자도 보살로서 수기 없이 언젠가는 성불할 수 있다는 자부심의 보살이었다.
이들 수기를 받지 않은 범부보살은 자기 스스로가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대승사상인 불성사상과 여래장사상으로도 이어지면서 대중을 이끌어 온
많은 출가보살, 재가보살의 힘이 되고 사상의 근저가 됐다.
그리하여 보살은 삶이 고통이라는 사실[一切皆苦]을 잘 통찰하고 있지만
자신의 해탈을 서두르지 않는다. 많은 중생들의 고통을 껴안고 그들과 함께 더불어 해탈의 세계로,
깨달음의 세계로 가고자 했다. 따라서 보살정신의 가장 큰 특징은 중생과 함께 하려는 희생정신이었다.
대승불교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수행자의 모습은 보살이다.
보살은 모든 존재가 공(空)으로서 실체가 없다는 공의 진리와 이 공이 무(無)가 아닌
불공(不空)이라는 중도(中道)의 진리를 잘 알기 때문에 열반에 집착하지 않고
생사의 세계에 나서 두루 중생을 구하려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반야바라밀의 실천 역시 오직 자리(自利)만을 구하지 않고
이타(利他)에 전력하는 입장이었으며, 성불도 도모하지 않는 끊임없는 수행이기 때문에
이러한 수행으로 나아가는 데에는 대단한 결의가 필요했다.
보살의 이런 굳은 결의를 홍서(弘誓)라 하고,
이러한 대개(大蓋-대 원칙)을 세워 실천함으로써 민중의 지지를 받게 됐다.
대승보살, 즉 일반 재가불자로서 보리심을 발한 자는 이상과 같은 힘든 수행을 해야 하는데,
이는 마치 자리(自利)에만 급급한 부파불교에 대한 대승불교의 자각을 분명히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며,
그 만큼 재가불자들의 심경은 대단한 결의로 무장돼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이러한 사상을 표명하는 수단으로서 새로운 경전 ― 대승경전과 논서 들을 편찬해갔다.
『평범한 사람들의 눈빛은 거짓말을 못한다. 다큐 영화 ‘오 마이 파파’에 등장하는
모든 이의 눈빛에서 ‘행복’과 ‘감사’가 넘친다. 영화는 ‘부산 송도의 성자’로 불리는
미국 출신 알로이시오(한국명 소재건, 1930~1992) 신부의 삶과 업적을
1시간 37분에 걸쳐 차분하게 보여준다.
중년 이상 부산 사람들에겐 ‘소 신부님’으로 잘 알려진 알로이시오(Aloysius) 신부는
‘가난한 아이들의 아버지’였다. 그는 메리놀대학과 벨기에 루뱅대에서 공부한 후
1957년 사제 서품을 받고, 그해 자원해서 부산으로 왔다.
당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장 가난한 이웃을 찾아든 것.
1957년은 6.25가 끝난 지 4년, 아직 전쟁 복구가 이루어지지 못했던 시기,
피난민 판자촌이 즐비하던 송도성당 주임을 자원한 그는 마리아수녀회를 창립하고,
거리에 버려진 아이들을 거두기 시작했다. 기숙사와 학교를 갖춘 ‘소년의 집’을 열게 된 것도,
아이들이 다른 학교와 축구 시합을 벌일 때 꼭 함께 뛴 것도 아이들 기를 살려주기 위해서였다.
‘고아 새끼’라고 무시당하던 아이들이 소 신부가 함께 뛰면 기가 살아난 것,
시설을 당시로는 최고로 지었다.
돈 걱정은 소 신부 혼자의 몫이었다. 매일 미국의 후원자들에게 편지를 쓰고,
동네 주부들이 부업으로 만든 수놓은 손수건을 동봉했다.
후원자들이 보내오는 후원금은 평균 1인당 1달러, 5달러 이상은 ‘고액후원자’였다.
소 신부는 후원금을 은행에 넣는 일 없이 바로 펑펑 썼다.
“가난한 이 가운데 가장 가난한 아이들에게 최고의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철학에 따른 것.
정작 그는 지독히 가난하게 살았다. 수단(무릎까지 내려오는 사제복),
양복 각각 한 벌로 평생 살았고, 구두도 수시로 꿰매 신었다.
한 수녀는 말한다. “차라리 애덕(愛德)은 쉬워요.
그런데 스스로 가난하게 사는 것은 진짜 어려운 일이에요.…”
다큐 곳곳에 등장하는 소 신부의 어록은 그의 영성(靈性)이 어디를 지향하는지 잘 보여준다.
“기도를 하다가도 아이들이 찾으면 기도를 멈추고 아이에게 가세요.
그 아이 안에 살아있는 예수님을 보세요.”
(수녀들에게)“내 희망은 보통 가정의 아버지와 같습니다.
보통 아버지는 자식이 건강하고 교육 잘 받고 잘 취직해서 사는 것 아니겠어요?”
한 수녀는 “조금만 더”를 되새기고 있다. “신부님은 항상 ‘조금만 더’를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가볍게 들리지만 실천은 어려워요. ‘조금만 더 참고, 더 친절하고, 더 이해하는 것…”
1992년 한참 나이(60대 초반)에 루게릭병을 얻어 선종(善終)한 그는
2015년 교황청으로부터 복자(福者)의 전단계인 가경자(加敬者)로 선포됐다.』
- 2016, 11, 4일자 조선일보 김한수 기자
이 글을 읽다가 보면, 불자라는 게 부끄럽고, 다른 한편으로는 바로 보살상을 보는 것 같다.
비록 천주교 신부이지만 ‘알로이시오’라는 이름 대신
보살을 대입시켜도 정말 훌륭한 보살상이라 생각된다.
아마 한국불교 종단에 이런 스님 10명만 계셔도 한국불교는 빛을 발하리라.
초기불교가 어떻고, 대승불교가 어떻다는 이야기를 백년 해봐야
이런 신부님 앞에 서면 그게 다 부질없는 이야기, 헛 껍데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불립문자(不立文字)라 했고, 막존지해(莫存知解)라 했다.
알음알이로 왈가왈부하기보다 이웃 사랑 조금 더 베푸는 일이 더 부처님 곁에 다가서는 보살의 길이다.
부처님이 선정의 최고단계인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까지 오르셨으나
마음의 어둠을 완전히 벗어버리는 해탈을 얻지 못한 이유도
바로 이와 같이 인과의 실천을 통해 업(業)을 지우려 하지 않고
기존의 전통에 얽매여 다만 선정(禪定)으로 모든 업을 지우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부처님은 “나의 깨달음은 선정과 고행으로 온 것이 아니라
수많은 생을 통해 쌓은 공덕이 세상을 덮을 정도가 돼 그 선근(善根)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이 땅에 와서 해탈을 얻은 것이니 모든 제자들은 부지런히 법을 배우고
실천과 노력을 해 깨달음에 이르라“고 하신 것이다. 즉, 대승보살의 뜻을 살리라는 말씀이다.
인간은 실천을 통해 자신을 닦아야지
현실과 유리된 명상이나 선정을 통해서는 결코 자신을 닦을 수 없다.
세상의 모든 일은 공덕을 짓는 활동을 통해 변화하며
자기가 짓는 공덕(원인)에 따라 좋아지기도 나빠지기도 하는 것이다.
이것이 원인과 결과가 한 치의 어김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인과법인 것이다.
앉아서 하는 선정이나 명상 호흡 같은 것은 원인을 짓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근본을 좋게 만드는데 기여하지 못한다.
오늘날 수행자들은 바로 여기에 걸려 한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선정과 명상은 인생을 닦는 것이 아니며 단순히 마음을 보는 기술에 불과하다.
사람은 삶을 통해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배우고 욕망과 습을 버리며
시련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맑고 강한 정신을 얻을 때 진정한 수행을 하게 되는 것이지
선정을 한다거나 명상을 하거나 소리나 빛에 집중하거나 기를 돌려서는
결코 자신의 정신을 닦을 수가 없다. 바로 이것이 보살 정신이다.
아무리 이 우주와 자신의 실체가 공함을 생각으로 깨친다 하더라도
자신 속에 숙생의 업을 통해 깊이 똬리를 틀고 있는 업이
계속 스멀스멀 피어오르는데 이를 지울 길이 없는 것이다.
그 방법은 오직 바른 이치를 배워 실천하는 길 밖에 없다.
땅으로 넘어진 자는 땅을 짚고 일어서야 하는 것이다.
세상의 진리인 인과법과 생생한 마음을 버리고 공을 받아들였으니
머리는 텅 비고 눈은 흐려 세상이 흘러가는 이치가 하나도 보이지 않을 것이며,
세상의 인연에서 멀어져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발을 딛고 사는 현실이며 세상이 흘러가는 사실적인 이치이니
사실이 아닌 것에 집착하면 삶이 허황하게 되며,
세상이 흘러가는 이치를 어기면 삶이 불행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보살행은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을 실천하는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 현실을 극복하며 사는 진지한 삶을 통해
정각을 얻은 자의 해탈지심은 마음속에 쌓여있는 모든 업의 뿌리를 뽑아내어
다시 헝클어질 먼지 자체를 지워버린 상태이기 때문에
아무리 흔들려도 더 이상 흐려질 것이 없으며
행주좌와 어묵동정(行住坐臥 語默動靜)간에 항상 진여가 빛나는 세상을 만드는 것,
이것이 보살사상이고 보살정신이며 보살행이다.
[출처] 블로그 아미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