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요약] 2026.5.24(주일)사도행전 26:8~23 “눈먼 인생을 찾아오시는 하나님”
사람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길은 열심히 가고 있는데 방향은 틀릴 수 있습니다. 속도는 빠른데 목적지는 잘못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바울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누구보다 열심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성경도 잘 알았고, 기도도 했습니다. 율법도 지켰고, 일반인들의 부활도 믿었습니다. 그리고 메시아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부활의 예수님을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하면서도 하나님의 아들을 핍박했고, 진리를 지킨다고 생각하면서도 교회를 무너뜨리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영적인 눈멂’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 있어도 눈멀 수 있습니다. 직분이 있어도 눈멀 수 있습니다. 봉사는 하는데 예수님보다 자기 의가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정말 예수님을 보고 있는가?” “너의 열심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적인 눈을 다시 열어주시기를 축복합니다.
1. 하나님은 눈먼 인생을 먼저 찾아오십니다(8~15절).
바울은 다메섹으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갑니다(12절). 이렇게 하면서도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 편에 서 있다고 생각했고, 하나님의 진리를 지키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예수님을 대적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9~11절을 보면 바울은 청중들 앞에서 자신의 과거를 숨기지 않습니다. 성도들을 감옥에 가두고, 죽이는 일에 찬성하고, 회당마다 다니며 핍박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그 모든 일을 “하나님을 위한 일”(9절)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위험한 눈멂’입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눈멂보다 더 무서운 것은 “내가 옳다고 확신하는 눈멂”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바리새인들을 향해 “눈먼 인도자”(blind guides,마23:1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알았지만 예수를 몰랐습니다. 메시아를 기다렸지만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바울 역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종교적인 열심은 있었지만 방향을 잃은 눈먼 인생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교회를 오래 다녔다고 눈뜬 인생입니까?” “직분이 있다고 눈뜬 인생입니까?” “봉사 많이 한다고 눈뜬 인생입니까?” 예수님이 보이지 않으면 눈먼 것입니다. 예수님보다 자기 의가 더 커지면 눈먼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바울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바울이 주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주님이 바울을 찾아오셨습니다. 다메섹 길 위에서 갑자기 “하늘의 빛”(13절)이 임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14절) 하나님은 그런 바울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눈먼 바울을 찾아오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붙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붙드신 것입니다.
적용) 나는 지금 예수님보다 내 열심과 자기 의를 더 붙들고 있지는 않은가요?
2. 하나님은 눈먼 자의 눈을 열어 빛으로 인도하십니다(16~18절).
주님은 바울을 부르신 후 그냥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눈을 열어주셨습니다.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18절) 복음은 단순히 사람을 조금 착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방향 자체를 바꾸는 능력입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죄에서 은혜로, 자기 의에서 십자가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인생 전체를 옮겨놓는 사건입니다. 그의 세계관이 바뀌었습니다. 성경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율법만 보였는데 이제는 예수님이 보였습니다. 전에는 자기 의만 보였는데 이제는 십자가의 은혜가 보였습니다. 신앙생활은 하는데 사랑이 없다면, 봉사는 하는데 은혜가 없다면, 직분은 있는데 겸손이 없다면, 우리는 다시 눈을 열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언제든지 ‘자기 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하나님은 눈먼 자의 눈을 열어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눈을 열어 내가 누구인지 다시 보게 하겠다.”
적용) 내 안에 주님께서 다시 밝혀주셔야 할 영적인 흐려짐은 무엇입니까?
3. 하나님은 눈뜬 사람을 세상으로 보내십니다(19~23절).
하나님은 바울의 눈만 열어주시고 끝내지 않으셨습니다. 그를 다시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16절) 하나님은 바울을 구원하신 후 증인으로 세우셨습니다. 바울은 달라졌습니다. 예수를 핍박하던 입으로 예수를 증언하기 시작합니다. 교회를 무너뜨리던 사람이 교회를 세우는 사람이 됩니다. 눈뜬 사람은 이전처럼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본 사람은 결국 그 은혜를 전하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난 가운데서도 멈추지 않습니다. 감옥에 갇혀도, 재판을 받아도,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그는 복음을 전합니다. 19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거스르지 아니하고” 이 말은 “나는 더 이상 내 생각대로 살 수 없었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성도는 단순히 교회 다니는 사람이 아니고, 보냄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가정으로 보내시고 일터로 보내시고, 세상 속으로 보내십니다. 왜 보내십니까? 아직도 ‘눈먼 인생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적용) 나는 복음을 전하는 증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결 론
하나님은 오늘도 눈먼 인생을 찾아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주님께서 눈먼 우리를 찾아오셔서 영적인 눈을 열어주시고, 복음의 증인으로 세워 보내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