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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시바, 시베리아』는 저자의 시베리아 여행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들려준다. 지은이에게 여행은 ‘타인의 눈으로 보고 타인의 사고로 생각하고 타인의 가슴을 내 가슴에 이식시키거나 타인의 발걸음을 내 발로 옮겨 보는 일’이라는 의미의 ‘일탈’이다. 일상을 벗어나 떠난 시베리아 여행길에서 시선이 닿는 곳마다 보이는 건 시베리아의 일상, 그리고 그 낯선 일상 안에 스며들어 있는 나와 우리의 흔적이다.
들어가며_시베리아를 그리며 이 글을 쓴다
제1부 왜 그리운 것들은 발자국 뒤편을 서성거리는지_이르쿠츠크, 바이칼
제2부 그리울 때 떠나라, 배낭 하나 메고_시베리아 횡단열차 9228킬로미터
제3부 다시 걸을 수 있다면 잠시 쉬어도 좋아_블라디에서 모스크바까지
나가며_소중한 모든 이들에게 드리는 헌사 ‘스파시바’
나는 다시 신이 있다면 지구의 가장 중심부에서 더 낮은 곳을 향해 전진하는 그 무엇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중력에 의해 삶을 보장받고 중력은 모든 만물을 존재하게 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중력의 중심부에서 신의 존재를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을 할 즈음 비행기의 고도가 점점 낮아진다. 비행기 창에 끼인 서리가 시베리아의 추위를 짐작케 한다. 눈 덮인 도시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강물 위로 짙은 안개가 띠를 두르고 굉음을 내며 바퀴를 드러낸 비행기가 그 위를 스쳐 흔들리며 착륙한다.
드디어 도착했다. 시베리아의 중력 이르쿠츠크.
-“너의 삶은 괜찮다. 괜찮은 것이다”(20쪽)
오지 않은 내일을 준비하며 살았다. 어쩌면 좀 더 나은 내일에 대한 욕망, 그러나 나락으로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공포가 내 삶의 근간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오지도 않은 미래를 두려워하는 것이 나의 일상이었다. 한껏 게을러도 좋은 알혼 섬에서의 하루를 보내며 나는 내가 사라는 사회가 빼앗은 자유와 강요된 두려움으로 인해 어쩌면 집채만 하게 큰 개보다 훨씬 더 사나운 존재가 되어 있을 거라 생각한다. 다시 페달을 힘껏 밟고 언덕을 오르니 저녁 햇살을 받은 소나무 한 그루가 길쭉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저기서 잠시 쉬어야겠다. 한 뼘 그늘 아래서 느긋하니 좀 더 유순해져야겠다.
-한 뼘 그늘 아래서 쉬어 간다(57쪽)
우스제르드에서 들은 브리야트 원주민들의 노래와 샤먼의 간절한 기도 속에서 나는 “마지막 나무가 베어져 나가고, 마지막 강의 더럽혀지고, 마지막 물고기가 잡힌 뒤에야 그대들은 깨달으리라. 돈을 먹고 살 수는 없다는 것을”이라고 절규했던 북미 인디언 수콰미시족의 울분을 떠올렸다. “여기 땅 한 평은 얼마나 해? 이 사람들은 저 넓은 땅을 왜 놀리고 있을까?” 분명한 한국말로 무심코 뱉어낸 누군가의 한마디를 듣고 난 다음이었다.
-문명인의 오만을 거두고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70쪽)
“바이칼이다.” 누군가 큰 소리로 외쳤다. 객실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창가로 나와 기찻길 옆 한적한 마을 앞에 펼쳐진 거대한 호수를 바라본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흥분을 진정시키는 이도 있고 자기만의 몸짓으로 눈가를 비비며 새로운 세계를 맞는 이도 있었다. 그럴 만도 하다. 수천만 년. 지구상의 헤아릴 수 없는 생명을 잉태하고 키워온 거대한 자연의 어머니가 아닌가. 절로 탄성도 흐르고 눈물이 맺힌다. 기차가 호수를 휘돌아 갈 때마다 나는 태어나기도 전 어머니의 뱃속이 이럴까 싶게 따뜻해진다. …… 나는 오랜 세월을 굽이돌아 비로소 거기에 도착했다.
-사흘 밤 나흘 낮 설렘으로 기차를 타다(152쪽)
새벽 세 시.
이 원고에 마침표를 찍으면 미리 쌓아둔 짐을 들고 나는 시베리아로 간다.
이지상은 노래하는 사람이다. 음악인으로 살아온 20여 년 동안 그가 다니는 곳은 대개 아픈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낮은 공간이었고, 그가 노래하는 건 사람이었다.
“물은 웅덩이를 비껴가지 않는다(영과후진, 盈科後進)”는 말대로 한 발짝 더 나아가기 위해 눈앞의 물웅덩이를 메꾸는 데 진력을 다한 삶이었다. 우회로 없는 길, 질퍽거리는 웅덩이와 씨름하는 삶을 지탱해주는 건 “적당한 갈망, 지나친 낙관”이라는 표어였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은 이런 삶의 낙관을 지지해주는 일이자, 갈망을 다독여주는 일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지 않아도 좋다. 그저 바이칼의 언덕 위에서 너의 모든 짐을 던져보아라. 호수에 작은 파문이라도 새겨진다면 그것으로 너의 삶은 괜찮다. 괜찮은 것이다.”(18쪽)
2010년 여름부터는 해마다 시베리아로 떠났다. 블라디에서 하바로, 치타에서 이르쿠츠크로, 모스크바에서 노보시비리스크로, 옴스크에서 이르쿠츠크로. 다섯 번의 여정에는 북경에서 몽골로, 울란우데에서 바이칼로 가는 길도 포함되어 있었다.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서가 아니라 버스와 기차를 타고 대륙의 국경을 넘는 경험. 땅끝마을에서 경의선을 거쳐 만주로 가든지 초량에서 동해선을 타고 청진, 함흥을 거쳐 연해주로 가든지, 남도의 작은 마을이 대륙으로 가는 출발점이길 꿈꾸는 지은이에게 시베리아 철도 여행은 한층 더 의미가 깊다.
우리말 발음으로 꼭 욕같이 들리기도 하는 ‘스파시바’는 러시아 말로 ‘고마워요’라는 뜻이다. 가장 많이 써야 할 단어가 욕처럼 들리는 건 재밌는 일이다. 우수리스크 시장에서 만두 파는 아주머니에게 처음 들은 (조금 센 억양의) ‘쓰파씨~바’를 들었을 때 순간 느꼈던 카타르시스를 지은이는 잊지 못한다.
지은이는 이 말 ‘스파시바’를 낙관의 근거가 된 시베리아에 가장 먼저 바친다.
나의 시베리아, 나의 바이칼
지은이에게 여행은 ‘타인의 눈으로 보고 타인의 사고로 생각하고 타인의 가슴을 내 가슴에 이식시키거나 타인의 발걸음을 내 발로 옮겨 보는 일’이라는 의미의 ‘일탈’이다. 일상을 벗어나 떠난 시베리아 여행길에서 시선이 닿는 곳마다 보이는 건 시베리아의 일상, 그리고 그 낯선 일상 안에 스며들어 있는 나와 우리의 흔적이다.
앙가라 강에서는 북극의 예니세이를 사모해 집을 떠나려다 아버지 바이칼 신이 던진 돌에 맞아 절명한 앙가라 공주를 만난다. 전설이 스민 샤먼 바위를 보며 앙가라 공주 같은 발걸음으로 자신에게 와준 아내, 그리고 두 딸에게는 바이칼 신과 꼭 닮은 아버지의 마음을 지닌 자신을 만난다. 나라의 체제를 뒤엎으려던 혁명가 발콘스키의 유배지에선 정약용의 다산 초당을 떠올린다. 각기 다른 세상에서 민초들의 평화와 자유를 꿈꾸다 유형지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두 사람의 이상은 지은이의 발끝에서 조우한다.
즈나멘...스키 사원 입구에서 손을 내밀고 있는 집시들을 보면서 ‘일용할 양식’만을 요구하는 가장 작고 숭고한 기도 앞에 내가 가진 욕망의 크기가 너무 크다는 부끄러움을 고백한다. 한인 최초의 볼셰비키, 일생을 민중을 위해 살다 하바로프스크 아무르 강변의 전설이 된 고려 여인 김알렉산드라를 만나 지쳐 있는 한반도를 고백하고 ‘당신이라면 어쩌시겠소’ 묻는다. 214미터 높이의, 동네 야산보다 낮은 독수리 전망대에 올라서도 보일 것이 다 보인다는 사실 앞에, 에베레스트의 높이는 도달하고자 하는 욕망의 수치일 뿐, 발자국이 찍히는 현실의 삶 앞에선 허구에 불과하다는 걸 확인한다.
우수리스크 우정마을은 스탈린의 소수민족 정책이라는 종이짝 하나를 들이대는 소련군의 총부리에 밀려 영문도 모른 채 강제이주 당한 고려인들, 버려진 짐짝이 되어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시베리아 벌판 6000킬로미터를 가로질러 유배당했던 ‘고통의 선배’들이 다시 아버지의 땅 연해주로 돌아와 살 부비며 산 동네 가운데 하나다. ‘왜 우리의 역사는 같은 민족을 지키지 못하고 이리도 추운 곳에서 고독하게 살게 하는가’ 하는 질문이 나올 법도 한 공간이다.
이르쿠츠크, 겨울의 앙가라 강변, 또 그 강변의 바냐, 바이칼 가는 길의 알혼 언덕, 우스제르드, 리스트뱐카, 하바로스크 등 낯선 타자의 공간에서 더 내밀하게 들여다보이는 나와 우리의 모습들이 책 곳곳에 느릿한 말씨로 스며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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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는 콘서트 : 이지상 “스파시바, 시베리아”>
□ 일시 : 2014년 9월 12일(금), 오후 7시
□ 장소 : 가톨릭청년회관 CY씨어터
□ 출연 : 이지상, 정호승 시인, 더숲트리오(김창남, 김진업, 박경태 교수), 인기가수(손병휘, 이정렬)
□ 장소 : 가톨릭청년회관 CY씨어터
□ 문의 : 문화를생각하는사람들(02-336-5642) 이종수(010-6224-9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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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와 여는 아침/스파시바 시베리아 / Jisang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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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콘서트에 대해 이지상은 비록 작고 소박한 공연이지만 노래와 이야기를 통해 관객들에게 “내 노래의 출발은 인간이고, 지향점과 귀착지 역시 인간”임을 소통하고 확인할 수 있는 진솔한 시간을 공연에서 만들 계획이라고 전했다.
지난 1991년 ‘통일은 됐어’, ‘내가 그대를 처음 만난 날’의 작곡으로 음악활동을 시작한 이지상은 지난 25년 간 민중음악의 지평 속에서 집회의 분노보다는 생활의 다짐을 노래해왔다. 20대부터 전대협 노래단 준비위원회와 서총련 노래단 ‘조국과 청춘’, 사회노래패 '노래마을'과 ‘민족음악인협회’에서 활동했다. 예술을 통한 사회변혁을 꿈꾸었던 시대였다. 그로부터 30여년 가까운 세월동안 음악활동을 하면서 이지상은 그 시절 초심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본격적으로 가수와 작곡가로 활동을 하면서 1998년의 1집 ‘사람이 사는 마을’과 2000년의 2집 ‘내 상한 마음의 무지개’, 2002년의 3집 ‘위로하다. 위로받다’, 2006년의 4집 ‘기억과 상상’, 2015년의 5집 ‘그리움과 연애하다’를 통해 낮게 배인 절절한 음성으로 이 아수라장 같은 사회를 노래해왔다.
기사 읽기 http://www.vop.co.kr/A0000116877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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