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이야기(1)
나이가 들면서 나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젊었을 때는 그저 비슷비슷하게 보이던 나무들이 하나씩 다르게 보이면서
이름과 생김새를 기억하고 그 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귀담아듣기 시작했다.
전에는 꽃이 핀 것을 보아도 구별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잎이나 몸통만 보고도 알아볼 수 있는 나무가 제법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아파트 정원이나 공원에 있는 나무의 명찰도 전처럼 허투루 보지 않게 되었다.
이처럼 관심을 두고 노력하다 보니, 진달래와 철쭉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던 내가 이제는 작약과 모란,
개나리와 영춘화, 산수유와 생강나무까지 구분할 수 있게 되었으니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한 일이다.
내가 이처럼 나무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나무 박사라 불리는 한 지인 덕분이다.
한 번은 그가 대모산에 있는 나무를 종류별로 60 몇 종까지 세는 동안, 모르는 나무가 별로 없었다고 하여
우리를 놀라게 했다. 그와 함께 등산하면 각종 풀과 나무에 대한 설명을 듣느라 산행이 늦어지곤 한다.
그는 나무의 종류부터 잎과 꽃의 모양, 꽃이 피는 시기, 그 나무에 얽힌 이야기 등을 설명해주는데
우리는 대부분 그날로 잊어버리고 다음에 가면 같은 설명을 다시 듣곤 한다.
칡은 왼쪽으로 감아 올라가고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감아 올라가 서로 엉키는 데서
갈등(葛藤)이라는 말이 나왔다는 것도 그에게서 들었다.
사람들은 왜 나이가 들수록 나무에 관심을 갖게 될까?
그것은 나무가 사람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오로지 베풀기만 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무의 넉넉함, 나무의 푸근함이 지친 우리의 마음을 달래고 영혼을 치유해 준다.
나무는 그늘로 우리에게 휴식을 주고 초록으로 눈을 시원하게 해주며 피톤치드로 우리의 허파를 맑게 씻어준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소홀히 했지만, 머지않아 돌아가게 될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하여
우리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까지 눈여겨보는 것 아니겠는가?
요즘 수목장이 부쩍 늘어나 나무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이양하는 그의 명 수필 <나무>에서 다음과 같이 나무를 찬양하고 있다.
나무는 덕(德)을 가졌다.
나무는 주어진 분수(分數)에 만족할 줄을 안다.
나무로 태어난 것을 탓하지 아니하고,
왜 여기 놓이고 저기 놓이지 않았는가 말하지 아니한다.
등성이에 서면 햇살이 따사로울까, 골짜기에 내려서면 물이 좋을까 하여,
새로운 자리를 엿보는 일도 없다.
물과 흙과 태양의 아들로 물과 흙과 태양이 주는 대로 받고,
후박(厚薄)과 불만족(不滿足)을 말하지 아니한다.
이웃 친구의 처지에 눈떠보는 일도 없다.
소나무는 진달래를 내려다보되 깔보는 일이 없고,
진달래는 소나무를 우러러보되 부러워하는 일이 없다.
소나무는 소나무대로 스스로 족하고, 진달래는 진달래대로 스스로 족하다.
..........(중략).........
나무에 하나 더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천명을 다한 뒤에 하늘 뜻대로 다시 흙과 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가다 장난삼아 칼로 제 이름을 새겨보고
흔히는 자기 소용 닿는대로 가지를 쳐 가고 송두리째 베어가고 한다.
새긴 이름은 도리어 그들의 원대로 키워지고
베어간 재목이 혹 자길 해칠 도끼자루가 되고
톱 손잡이가 된다 하더라도 이렇다 하는 법이 없다.
나무는 훌륭한 견인주의자요, 고독의 철인이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현인이다.
불교의 소위 윤회설이 참말이라면 나는 죽어서 나무가 되고 싶다.
‘무슨 나무가 될까?’
이미 나무를 뜻하였으니 진달래가 될까 소나무가 될까는 가리지 않으련다.
아래의 시도 나무의 고고함과 한결같은 나무의 성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
선조, 인조 때의 학자이자 문신인 신흠(申欽)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확실하지 않다.
桐千年老恒藏曲 오동나무는 천 년을 늙어도 항상 노래를 품고 있고
梅一生寒不賣香 매화는 일생을 춥게 지내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月到千虧餘本質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본질이 그대로이고
柳經百別又新枝 버들가지는 백 번을 잘라내도 새 가지가 다시 난다
나무는 겨울에 잎이 떨어지는지 아닌지에 따라 낙엽수(갈잎나무)와 상록수(늘푸른나무)로 나눈다.
또 소나무, 상수리나무, 전나무처럼 한 개의 줄기가 높게 자라는 교목(喬木, 큰키나무)과 무궁화,
회양목, 진달래처럼 땅 표면부터 줄기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관목(灌木, 떨기나무),
그리고 등나무, 머루, 담쟁이처럼 줄기가 덩굴로 되는 만목(蔓木, 덩굴나무)으로 나누기도 한다.
소나무, 주목, 향나무 등은 잎이 가늘어 침엽수로 불리고 씨앗이 밖으로 노출되어 겉씨식물이라 한다.
반대로 잎이 넓고 그물 모양의 잎맥을 가지고 있어 활엽수로 불리는 감나무, 밤나무, 떡갈나무 등은
씨가 과육에 덮여 있어 속씨식물이라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고유종 약 620종과 변종 약 360종, 총 천여 종의 나무가 있다.
나무의 분류는 주로 과(科)와 속(屬)으로 구분하는데 일반인이 보기로는 잘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회화나무, 아까시나무, 싸리, 박태기나무, 등나무, 칡 등 콩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나무들이
모두 콩과에 속해 있다. 이 나무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그 씨앗이 콩깍지 비슷한 꼬투리 안에 들어있다는 점이다.
이 나무들의 유전자가 얼마나 비슷한지 알 수 없지만, 교목인 회화나무, 아까시나무와 관목인 박태기나무,
싸리나무, 만목인 등나무, 칡은 서로 달라도 너무 다른 느낌이다.
장미과에 장미가 들어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황매화, 조팝나무, 국수나무까지는 뭐 그럴 수 있다고 쳐도
복숭아, 앵두, 배 등 각종 과실수에 벚나무, 팥배나무, 귀룽나무까지 포함된 것은 잘 이해되지 않는다.
굳이 공통점을 찾으라면 화사한 꽃밖에 없을 것이다.
나무는 인간의 탄생과도 연관되어 있다. 나무와 인간은 25퍼센트 정도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다고 한다.
지구상에 인간이 처음 나타났을 때, 이미 약 4억 년 동안 지구에 생존해 왔던 나무가 이 정도의 자국을
인간에게 남겼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도 인간의 출현을 나무와 연관시킨 이야기가 있다.
하늘의 신 우라노스의 성기에서 떨어진 핏방울이, 땅의 여신 가이아로 하여금 복수의 여신 에라뉘스,
거인족 기가스, 사랑의 신 아프로디테 그리고 물푸레나무의 요정인 멜리아들을 낳게 한다.
이 멜리아들이 인간의 탄생을 암시하는데 헤시오도스의 서사시 『일들과 날들』에 보면
청동시대 인간들이 물푸레나무에서 태어나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느 민족보다도 나무에 얽힌 사연이 많다.
담장에 찔레나무를 심으면 호랑이에게 화를 당할 염려가 있고, 복숭아나무는 귀신을 쫓기 때문에,
집안에 심으면 제사에 조상의 영혼을 모시기 힘들고, 정원에 자귀나무를 심으면 부부간의 애정이 두터워지고,
엄나무는 나쁜 귀신을 물리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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