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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엔드 커스텀PC로 유명한 '프리플로우'의 제품. 수랭 튜브를 제외하면 선이 거의 안 보인다
언제부터인가 PC를 조립할 때 ‘선 정리’는 필수가 되고 있다. 여기에서 ‘선 정리’라 하면 단순히 케이블을 케이스 구석(보통은 비어 있는 HDD 베이)에 쑤셔넣는 것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수준의 선 정리는 이미 10년 전에 했던 것으로, 최근의 선 정리 트렌드는 이보다 진화했다.
선 정리 방법이 진화했다? 과연 어떤 뜻일까? 그리고 요즘의 선 정리는 어떻게 하는 것일까? 예쁘게 튜닝도 하고 말끔하게 선 정리도 하고 싶은데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 할 지, 비용은 어느 정도 들어가는지 막연한 생각이 든다면 이번 기사가 도움이 될 것이다.
선 정리 고수를 만나다
먼저 선 정리 노하우를 전수해줄 고수를 찾았다. 수소문 끝에 찾아낸 업계 고수는 게이밍 PC, 워크스테이션 등 하이엔드 커스텀 조립PC 전문몰인 ‘프리플로우’의 오승재 과장이다. 케이블 타이만으로 모든 선정리를 다 할 수 있다는 그는 기자에게 선 정리를 해야 하는 세 가지 이유를 언급했다.
▲ 오늘의 고수. 프리플로우 오승재 과장
1.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이 있듯이 미관상 좋다는 것
2. 내부 공기 순환을 좋게 해서 온도를 낮추는 효과가 있다는 것
3. 추후 각 부품 유지보수 시 편하다는 것
최근 판매하는 케이스 중 대다수는 옆면이 투명 아크릴이나 강화유리로 되어 있어서 공기 유입 통로가 전면으로 한정되는 경우가 많은데, 내부 선 정리가 안 되어 있으면 공기의 흐름이 원활하지 못해 쿨링이나 부품 수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케이블을 정리해 공기 흐름을 원활하게 해주면 전체적인 온도가 약 1~2도 정도 낮아진다고 한다. 또, 선 정리가 잘 되어 있으면 나중에 부품을 교체하거나 테스트 등으로 탈착할 때 널려 있는 케이블로 인해 방해를 덜 받게 된다. 덤으로 청소할 때도 편할 것이다.
이처럼 좋은 효과가 가득한 선 정리. 하지만, 일반인들이 도전하기에 선 정리는 너무 귀찮고, 의외로 어렵다. 그래서 공개한다! 고수가 전하는 선 정리 노하우! PC 조립 과정을 따라가며 중요한 선 정리 포인트를 알아보자.
선 정리 노하우 1 : 무리하지 말 것
오승재 과장이 전하는 첫 번째 선 정리 노하우는 의외로 '무리하지 말자'다. 너무 예쁘게만 하려다가 오히려 본인도 알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해서 A/S를 받아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것. 더구나 이렇게 선 정리를 무리하게 하다가 도중에 발생한 문제는 거의 대부분 소비자 과실이므로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고.
“각종 케이블을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메인보드 뒤쪽과 케이스 사이로 넣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메인보드의 뒷면은 각종 부품을 납땜하고 잘라낸 뾰족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전원 케이블이 그 뾰족한 부분에 찔리고 훼손되면서 합선의 위험이 있어 추천하지 않습니다."
▲'돼지꼬리' 형태의 S-ATA 케이블은 단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무리하게 케이스 안에 케이블을 우겨 넣기 위해 케이블을 꺾는 행위도 해서는 안 된다. 특히 데이터를 전송하는 S-ATA 케이블이나 전원 케이블은 심하게 꺾을 경우 단선 확률이 높다고 하니 참고하자.
선 정리 노하우 2 : 전원 케이블이 반이다
조립을 하기 위해 전원공급장치, 메인보드 등을 우선 케이스에 장착하고 나면 걱정부터 앞선다. 선 정리를 하긴 해야 하는데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 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28핀과 8핀 전원 케이블은 동맥과 같다. 이것만 정리해도 반은 끝난 것
‘먼저 모든 부품들을 전부 연결하고 마지막에 선 정리를 해야 할까?’, ‘아니면 하나씩 붙여 가면서 선 정리를 하는게 나을까?’ 누구의 조언도 없다면 아마도 이런 고민을 하기 마련. 과연 고수는 어떻게 할까?
“28핀 전원 케이블과 8핀 전원 케이블 먼저 정리하면 됩니다”
28핀과 8핀 전원 케이블은 필수로 연결해야 하는 케이블이면서도 굵기로 따지면 가장 까다로운 케이블이다. 이것들은 선 정리의 뼈대가 되는 것들로써 먼저 정리하지 않으면 나중에 뜻하는 대로 정리가 안 될 수도 있다. 두 종류의 케이블만 정리해도 절반 정도는 끝난 것이라고.
선 정리 노하우 3 : 궁합이 중요하다
▲메인보드와 케이스의 궁합도 무시할 수 없다
선 정리에도 궁합이 있다? 처음에는 궁합이라는 말의 뜻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고수들에 따르면 선 정리 노하우에도 궁합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메인보드와 케이스의 궁합인 것. 메인보드에 자리잡고 있는 각종 커넥터들의 위치와, 각자 독특한 선정리 홀을 가진 케이스가 궁합이 맞아야 선정리가 쉽게 끝날 수 있다.
위 메인보드처럼 HD Audio, USB, 전면 패널 등 커넥터가 메인보드 한쪽 부분에 나란히 정렬되어 있다면 깔끔하게 선정리가 가능하다. 하지만 HD Audio 단자나 USB 확장 단자가 메인보드 곳곳에 떨어져 있다면? 그렇다면 메인보드를 가로지르거나 메인보드 뒷면과 케이스 사이로 선을 집어 넣어 빼야 한다. 이럴 때는 케이스의 선 정리 홀이 메인보드와 잘 맞아야 작업이 편하다.
▲지저분한 선들을 사이드로 숨길 수 있는 공간이 있는 케이스도 있다
그래서 고수는 말한다. 무조건 비싼 메인보드와 케이스가 선 정리의 전부는 아니라고. 메인보드의 각종 커넥터 위치에 최적화된 케이스가 존재하며, 그런 궁합을 잘 맞춰야 최소의 수고로 최대의 효과를 볼 수 있다. 다만, 안타깝게도 각 케이스 제조사에서는 자사의 케이스와 궁합이 잘 맞는 메인보드까지는 공개를 하지 않는다고 하니, 직접 알아보거나 유명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얻는 것을 추천한다.
선 정리 노하우 4. : 고급 선정리 용품이 다 옳은건 아니다
▲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이정도가 최선일 수도 있다
위 예제 사진의 경우 나름대로 선 정리에 노력한 흔적이 보이지만, 튜닝PC처럼 아주 깔끔하진 않다. 그래서 고수에게 더 깨끗하게 정리가 가능한지 물었다. 하지만, 답변은 아쉽게도 '고수가 손을 대더라도 사진에 나온 수준 이상의 선 정리는 어려운 상태'라고 한다.
가장 큰 이유는 예술 같은 선 정리를 할 수 있는 케이스가 아니라는 것. 실제로 위 사진의 케이스는 케이블을 숨길 만한 곳이 케이스 전면의 HDD 베이 외에는 없다. 측면으로 케이블을 넣고 뺄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는 고가의 선정리/튜닝용 슬리빙 케이블을 살 필요조차 없다는 말이다.
▲4만원 대 케이스의 선 정리 공간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투자를 해야 할까? 선 정리 예쁘게 하려고 수 십만 원에 이르는 케이스를 구매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최근 출시하는 케이스들은 3~4만원 대의 일반적인 케이스들도 선 정리를 위한 공간을 알차게 마련하고 있다는 것이다.
▲케이블 타이 하나만 있어도 선정리가 가능한 케이스가 3~4만원 대에 많다
그래서 고수는 선 정리를 위해 고가의 액세서리를 구매하는 것보다, 케이스를 고르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라고 권한다. 케이스가 선 정리에 적합하다면, 케이블타이 하나만으로도 아주 깔끔한 선정리가 가능하다.
“선 정리와 같은 튜닝은 소소한 쿨링 효과를 제외하면 어차피 자기 만족입니다. 따라서 초반부터 큰 비용을 투자할 필요는 없습니다. 처음에는 간단하게 눈에 거슬리는 선만 정리하는 정도로 시작해 볼 것을 추천합니다.”
PC 조립 & 선정리 과정
▶ 무조건 파워서플라이 먼저
▲PC 조립 과정 중 선 정리 작업 부분이 전체의 50%를 차지할 정도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파워서플라이 장착이다. 이 작업은 선 정리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데, 파워서플라이에서 쏟아져 나오는 많은 선들을 이때 케이스 반대쪽 측면의 선 정리 공간으로 빼서 잘 정리해야 이후의 작업이 수월해진다. 만약 자신이 모듈형 파워를 사용한다면, 필요한 케이블 수를 잘 생각해서 미리 체결해둬야 나중에 작업이 꼬이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단, 이때 추후에 추가로 장착할 수 있는 그래픽카드나 저장기기 등을 예상해서 미리 1~2개 정도 여유있게 체결해 두면 좋다.
▶ 케이블 없는 주요 부품은 미리 조립하자
메인보드를 케이스에 장착하기 전에 CPU와 메모리, M.2 SSD 등 별도의 케이블이 체결되지 않는 부품들을 미리 조립해두자. 나중에 각종 케이블이 연결되는 상황에서 부품들을 장착하는 것보다 훨씬 수월하고 시간도 절약된다. 만약 수랭 방식의 시스템이라면 이때 기본 CPU 가이드를 떼어 내고 수랭용 가이드를 장착한다.
▶ 메인보드 장착 및 28핀/8핀 전원 케이블 연결
케이스에 전원 공급장치와 메인보드를 장착한 뒤 가장 먼저 할 일은 28핀 전원 케이블과 8핀 추가 전원 케이블을 메인보드에 연결하는 일이다. 이 케이블들은 면적이 넓기 때문에 아직 공간이 여유로울 때 자리를 잡고 정리해야 이후의 작업이 수월해진다.
메인보드에 전원 케이블을 모두 연결했다면 다음 작업은 케이스 전면/상단 패널로 연결할 각종 케이블을 정리하는 작업이다. 전면이나 상단에서 치렁치렁하게 내려오기 때문에 메인보드 뒤쪽(케이스 측면)으로 넘겨서 눈에 보이지 않게 정리한다.
케이블들은 전부 메인보드 뒷면쪽 공간으로 넘기며 앞에서 볼 때 불필요한 케이블이 보이지 않도록 한다.
▶ 메인보드 전원 케이블 정리 (메인보드 뒤쪽 선 정리 공간)
이제 선 정리 공간에 잔뜩 널려 있는 선을 정리할 차례. 여기서도 메인보드 전원 케이블을 가장 먼저 정리한다. 가장 두꺼운 케이블이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케이블(28핀과 8핀)을 잘 정리해서 고정하고 나면 나머지는 처리하기 한결 쉬워진다.
▶ 전체를 생각하고 디테일은 나중에 챙긴다
처음부터 모든 케이블을 예쁘게 다 정리할 필요는 없다. 주요 케이블들은 대충 케이블 타이로 묶어 놓고 위치를 잡아둔다. 그리고 나머지 전원 케이블들을 크게크게 그룹으로 묶어서 정리한다. 이때 데이터 케이블 등은 너무 무리해서 꺾지 말자.
또 한 가지! 추후에 추가 장치를 위한 전원 케이블(예: S-ATA 전원케이블)은 따로 한 두개 정도 빼 놓는 것도 잊지 않는다. 케이블 하나 빼기 위해 전체를 다 뜯어야 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다.
▶ 케이블타이 하나만 있으면 끝!
▲케이블타이 하나만으로 모든 작업을 끝낸다, 디테일한 부분들의 처리법을 참고하자
▲완성된 시스템의 메인보드 뒷면. 큰 케이블들을 어떻게 정리하는지 참고하자
▲완성된 시스템의 모습
이후에는 그래픽카드, SDD, 쿨러 등에 자잘한 케이블을 연결한 뒤 세부적인 부분을 깔끔하게 잡아주면 된다. 위에서 언급된 기초공사 단계에 비하면 마무리 작업은 간단한 산보 수준. 케이블 타이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하나의 PC가 깔끔하게 정리될 수 있다. 보다 쉬운 작업을 위해 벨크로 타입의 케이블타이를 이용해도 되며, 선 정리를 위해서 별도 제작된 매직케이블, 케이블 벨트 등을 이용하면 더 보기 좋게 정리할 수 있다. 선 정리,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바로 도전해보자. 당신의 본체에 '보는 재미'를 더해줄 것이다.
기획, 편집 / 다나와 송기윤(iamsong@danawa.com)
글, 사진 / 테크니컬라이터 유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