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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태초경(太初經) 1)
27. Agganna Sutta
해제
이 경의 이름인 악간냐(agganna) 는 '태초(太初)'라는 뜻이다. 경의 제목과 같이 이 경은 태초에 이 세상이 이루어지는 일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장아함경(長阿含經)> 에는 <소연경(小緣經)>으로 번역되어 있다.
기독교에서는 태초(太初)에 조물주가 천지를 창조했다고 이야기하는데, 붓다는 이 경에서 중생들의 업(業)에 따라 세계가 형성되고 변화한다고 이야기한다. 붓다 당시의 인도에서는 범천(梵天)이 세계를 창조했다고 믿었다. 그리고 차별적인 신분제도인 사성(四姓) 카스트 제도는 범천이 세계를 창조할 때 만들어진 사회적 구조라고 믿었다. 그러나 붓다는 이러한 당시의 종교적 신념을 사회의 변천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비판한다. 인간은 본래 평등하며, 단지 업(業)의 차이에 의해 사회적으로 신분의 차이가 나타났을 뿐이라는 것이다.
본래 평등하고 행복한 사회가 인간들의 탐욕과 게으름에 의해 타락해 가면서 차별된 사회계층이 형성되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이 경은 불교의 사회철학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왕은 사람들이 선출한 사람이라는 말씀을 통해 불교가 오늘날의 민주주의 사상과 일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 디가니까의(Digha-Nikaya)의 제27경이며, <장아함경(長阿含經)>의 5번째 경인 <소연경(小緣經)>에 상응하는 경
이와 같이 나는 들었습니다.
[1] 한때 세존께서는 싸왓티의 뿝바라마(Pubbarama)2) 미가라마뚜빠싸다(Migaramatupasada)3) 에 머무시었습니다. 그때 와쎗타(Vasattha)와 바라드와자(Bharadvaja) 는 비구가 되기 위해 비구들 속에서 별주(別住)하고 있었습니다.4) 어느 날 세존께서 해질 무렵에 연좌(宴坐)5) 에서 일어나 강당을 내려와서 강당의 그늘이 진 마당에서 거니셨습니다.
[2] 와쎗타는 세존께서 해질 무렵에 연좌(宴坐)에서 일어나 강당을 내려와서 강당의 그늘이 진 마당을 거니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보고 바라드와자를 불러서 말했습니다.
"바라드와자 존자여, 세존꼐서 해질 무렵에 연좌에서 일어나 강당을 내려와서 강당의 그늘이 진 마당을 거닐고 계십니다. 바라드와자 존자여, 우리 함께 갑시다. 세존에게 갑시다. 분명히 세존으로부터 직접 설법(說法)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합시다. 존자여!"
바라드와자는 와쎗타에게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와쎗타와 바라드와자는 세존에게 가서 세존에게 예배한 다음, 거니시는 세존을 따라 거닐었습니다.
[3] 그러자 세존께서 와쎗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와쎗타여, 그대들은 바라문 가문의 바라문 출신으로서 바라문 집안에서 집을 떠나 출가하였다. 와쎗타여, 바라문들이 그대들을 욕하거나 비난하지는 않던가?"
"분명히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어! 바라문들은 자신들을 위한 험담을 모조리 사용하여 욕하고 비난합니다."
"와쎗타여, 어떤 이야기로 바라문들은 자신들을 위한 험담을 모조리 사용하여 그대들을 욕하고 비난하는가?"
"세존이시어, 바라문들은 '바라문들은 최상의 계급이고, 다른 사람들은 저열하다. 바라문들은 청정한 계급이고, 다른 사람은 더럽다. 바라문들은 정화되지만 바라문이 아닌 자들은 그러지 못한다. 바라문들은 범천의 입에서 태어난 적자(嫡子)인 아들로서, 범천에서 생긴, 범천이 만든, 범천의 후계자다. 그런데 너희들은 최상의 계급을 버리고, 저열한 계급인, 범천의 발에서 태어난, 더럽고 천한, 삭발(削髮)한 사문(沙門)을 따르고 있다. 저희들이 최상의 계급을 버리고, 저열한 계급인, 범천의 발에서 태어난, 더럽고 천한, 삭발한 사문(沙門)을 따르는 것은 무익하고 적절치 않다.'라고 말했습니다. 세존이시어, 바라문들은 이와 같이 자신들을 위한 험담을 모조리 사용하여 욕하고 비난합니다."
[4] 와쎗타여, 바라문들은 분명히 태초(太初)를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대들이게 '바라문들은 최상의 계급이고, 다른 사람들은 저열하다. 바라문들은 청정한 계급이고, 다른 사람들은 더럽다. 바라문들은 정화되지만 바라문이 아닌 자들은 그러지 못한다. 바라문들은 범천의 입에서 태어난 적자(嫡子)인 아들로서, 범천에서 생긴, 범천이 만든, 범천의 후계자다.'라고 말한 것이다. 와쎗타여, 바라문 계급의 바라문 여인들로서 월경중인 여인이나, 임산부나, 산모나, 젖을 먹이는 여인들은 없던가? 그 바라문들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궁에서 태어났으면서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 바라문들은 실로 중상(中傷)을 하고 있고, 거짓말을 하고 있고, 아무런 공덕도 짓지 못하고 있다.
[5] 와쎗타여, 이 세상에는 크샤트리아(Khattiya), 바라문(Brahamana), 바이샤(Vessa), 수드라(Sudd)6) 등 네 가지 계급이 있다. 와쎗타여, 크샤트리아 가운데는 살생하고, 도둑질하고, 사음(邪淫)하고, 거짓말하고, 이간질하고, 욕설하고, 쓸데없는 잡담하고, 탐내고, 성내고, 사견(邪見)을 가진 자가 있다. 와쎗타여, 이와 같이 어떤 크샤트리아들에게서는 현자들이 꾸짖는, 착하지 않아서 착하지 않다고 일컬어지고, 허물이 있어서 허물이 있다고 일컬어지고, 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해서는 안 된다고 일컬어지고, 성스럽지 못해서 성스럽지 못하다고 일컬어지는, 사악해서 불행한 과보가 있는 법들을 볼 수 있다. 와쎗타여, 바라문, 바이샤, 수드라도 마찬가지다.
[6] 와쎗타여, 크샤트리아 가운데는 살생을 삼가고, 도둑질을 삼가고, 사음(邪淫)을 삼가고, 거짓말을 삼가고, 이간질을 삼가고, 욕설을 삼가고, 쓸데없는 잡담을 삼가고, 탐내지 않고, 성내지 않고, 정견(正見)을 가진 이가 있다. 와쎗타여, 이와 같이 어떤 크샤트리아들에게서는 현자들이 찬탄하는, 착해서 착하다고 일컬어지고, 허물이 없어서 허물이 없다고 일컬어지고, 해야 하기 때문에 해야 한다고 일컬어지고, 성스러워서 성스럽다고 일컬어지는, 착해서 행복한 과보가 있는 법들을 볼 수 있다. 와쎗타여, 바라문, 바이샤, 수드라도 마찬가지다.
[7] 와쎗타여, 이들 네 가지 계급에는 이와 같이 현자들이 꾸짖는 사악한 법과 현자들이 찬탄하는 착한 법이 함께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바라문들이 '바라문들은 최상의 계급이고, 다른 사람들은 저열하다. 바라문들은 청정한 계급이고, 다른 사람들은 더럽다. 바라문들은 정화되지만 바라문이 아닌 자들은 그러지 못한다. 바라문들은 범천의 입에서 태어난 적자(嫡子)인 아들로서, 범천에서 생긴, 범천이 만든, 범천의 후계자다.'라고 말한 것을 현자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와쎗타여, 이들 네 가지 계급 가운데는 비구로서 번뇌를 멸진하고, 수행을 완성하고,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짐을 내려놓고, 자신의 목적에 도달하여, 존재의 결박(有結)7)을 끊고, 바른 지혜를 갖추어 해탈한 아라한(阿羅漢)이 있다. 그 사람을 최상이라고 칭하는 것은 행실(法)8)에 의해서이지, 행실이 아닌 다른 것(非法)에 의해서가 아니다. 와쎗타여, 현세에서나 내세에서나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행실(法)이다.
[8] 와쎗타여, 이런 까닭에 현세에서나 내세에서나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행실(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와쎗타여, 빠쎄나디 꼬쌀라(Pasenadi-Kosala) 왕은 '사문 고따마는 최상의 싸꺄(Sakya) 족 출가자다.' 라고 알고 있다. 와쎗타여, 그러나 싸꺄족 사람들은 빠쎄나디 꼬쌀라 왕의 지배를 받고 있다. 와쎗타여, 싸꺄족 사람들은 빠쎄나디 꼬쌀라 왕에게 겸손하게 일어나서 예배하고, 합장하고 공경한다. 와쎗타여, 싸꺄족 사람들이 빠쎄나디 꼬쌀라 왕에게 겸손하게 일어나서 예배하고, 합장하고 공경하듯이, 빠쎄나디 꼬쌀라 왕은 "사문 고따마께서는 훌륭한 가문 태생이 아니신가요? 저는 보잘 것 없는 가문 태생입니다. 사문 고따마께서는 위력이 있고, 저는 힘이 없습니다. 사문 고따마께서는 용모가 빼어나시고, 저는 볼품없습니다. 사문 고따마께서는 큰 권위가 있고, 저는 무력합니다."라고 여래에게 겸손하게 일어나서 예배하고, 합장하고, 공경한다. 이와 같이 그 행실(法)을 공경하고, 존중하고, 존경하고, 숭상하고, 숭배하고 있는 빠쎄나디 꼬쌀라 왕은 여래에게 겸손하게 일어나서 예배하고, 합장하고, 공경한다. 와쎗타여, 이런 까닭에 현세에서나 내세에서나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행실(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9] 와쎗타여, 그대들은 태생이 다르고, 성이 다르고, 혈통이 다른, 다양한 가문에서 집을 버리고 출가했다. "그대들은 누구인가?"라고 물으면 그대들은 "우리는 사문(沙門)으로서 싸꺄(Sakya;釋迦)의 아들이다."9)라고 선언하라. 와쎗타여, 여래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게 자리 잡고, 뿌리내리고, 확립된 사람은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천신(天神)이든 마라든 범천(梵天)이든, 세간의 어느 누구도 제압하지 못한다. 이런 사람은 "나는 세존의 입에서 태어난 아들로서, 진리(法)에 의해 태어나, 진리에 의해 만들어지고, 진리를 상속한 적자(嫡子)다"라고 말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와쎗타여, 세존에게는 진리의 몸(法身)10)이라는 이름도 있고, 범천의 몸(梵身)11)이라는 이름도 있고, 진리의 존재12)라는 이름도 있고, 범천의 존재13)라는 이름도 있기 때문이다.
[10] 와쎗타여, 오랜 시간이 지나, 언젠가 이 세계가 괴멸하는 때가 있다. 세계가 괴멸할 때, 대부분의 중생들은 아밧싸라(Abbassara;光音天)에 태어나게 된다. 그들은 그곳에서 의성신(意成身)으로, 기쁨을 음식삼아, 스스로 빛을 내면서, 허공을 날아다니며, 청정한 상태로 오랫동안 긴 시간을 머문다. 와쎗타여, 오랜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이 세계가 다시 생성되는 때가 있다. 세계가 다시 생성될 때, 대부분 중생들은 아밧싸라의 몸을 상실하고 이 세상에 온다. 그들은 의성신(意成身)으로, 기쁨을 음식삼아, 스스로 빛을 내면서, 허공을 날아다니며, 청정한 상태로 오랫동안 긴 시간을 머문다.
[11] 와쎗타여, 그때는 온 세상이 물로 되어 있었으며14), 칠흑같이 어두웠다. 태양과 달도 보이지 않고, 별과 별빛도 보이지 않았으며, 낮과 밤의 구별도 없었고, 달과 계절과 해의 구별도 없었고, 남녀의 구별도 없었다. 중생(衆生)15)들은 오직 중생들이라고 불렸다. 와쎗타여,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나, 언젠가 그 중생들에게 맛있는 땅16)이 물 위에 나타났다. 그것은 마치 뜨거운 유미(乳糜)죽이 식으면서 표면에 생기는 것처럼 나타났다. 그것은 색과 맛과 향을 갖추고 있는데, 버터나 연유 같은 색을 지니고 있고, 순수한 꿀처럼 달콤했다.
[12] 와쎗타여, 그런데 탐욕이 생긴 어떤 중생이 "잠깐! 이게 어떻게 된 것이지?"라고 하면서 맛있는 땅을 손가락으로 맛보았다. 손가락으로 맛을 본 맛있는 땅이 그를 사로잡아서 그에게 갈애(渴愛)가 생겼다. 와쎗타여, 다른 중생들도 그 중생이 하는 것을 보고 본받아서 맛있는 땅을 손가락으로 맛보았다. 손가락으로 맛을 본 맛있는 땅이 그들은 사로잡아서 그들에게도 갈애(渴愛)가 생겼다. 와쎗타여, 그래서 그 중생들은 맛있는 땅을 손으로 뜯어먹기 시작했다. 와쎗타여, 중생들이 맛있는 땅을 손으로 뜯어먹었기 때문에, 그 중생들에게서 자신으로부터 나던 빛이 사라졌다. 자신으로부터 나던 빛이 사라지자 태양과 달이 나타났다. 태양과 달이 나타나자 별과 별빛이 나타났다. 별과 별빛이 나타나자 낮과 밤의 구별이 생겼다. 낮과 밤이 구별되자 달의 구별의 생겼다. 달이 구별되자 계절과 해의 구별이 생겼다. 와쎗타여, 이런 식으로 이 세계는 다시 생성되었다.
[13] 와쎗타여, 그 중생들은 맛있는 땅을 음식으로 먹으며 오랫동안 긴 시간을 머물렀다. 그 중생들이 오랫동안 긴 시간을 머무는 가운데, 맛있는 땅을 음식으로 먹으면 먹은 만큼 그들의 몸은 굳어졌고, 피부색은 퇴색했다. 그리하여 어떤 중생들은 아름답게 되고, 어떤 중생들은 추하게 되었다. 그러자 아름다운 중생들은 "우리는 이렇게 아름다운데 너희들은 이렇게 추하다."라고 생각하여 추한 중생들을 경멸했다. 용모에 대한 자부심으로 인해 교만이 생기자 맛있는 땅이 사라졌다. 맛있는 땅이 사라지자 그들은 모여서 "아! 그 맛, 아! 그 맛."하면서 슬퍼했다. 그래서 지금도 사람들은 무언가 맛있는 것을 먹고서는, "아! 그 맛. 아! 그 맛."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실로 그들은 옛날 태고적(太古的)의 관습을 반복하고 있지만, 그 의미는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14] 와쎗타여, 그 중생들에게 맛있는 땅이 사라지자, 땅에서 나오는 떡17)이 나타났다. 그것은 마치 뱀이나 버섯처럼 (땅 속에서) 나타났다. 그것은 색과 맛과 향을 갖추고 있었는데, 버터나 연유 같은 색을 지니고 있었고, 순수한 꿀처럼 달콤했다. 와쎗타여, 그리하여 그 중생들은 땅에서 나오는 떡을 먹기 시작했다. 그 중생들은 땅에서 나오는 떡을 음식으로 먹으며 오랫동안 긴 시간을 머물렀다. 와쎗타여, 그 중생들이 오랫동안 긴 시간을 머무눈 가운데, 땅에서 나오는 떡을 음식으로 먹으면 먹은 만큼 그들의 몸은 훨씬 더 굳어졌고, 피부색은 퇴색했다. 그리하여 어떤 중생들은 아름답게 되고, 어떤 중생들은 추하게 되었다. 그러자 아름다운 중생들은 "우리는 이렇게 아름다운데 너희들은 이렇게 추하다."라고 생각하여 추한 중생들을 경멸했다. 용모에 대한 자부심으로 인해 교만이 생기자 땅에서 나오는 떡이 사라졌다. 땅에서 나오는 떡이 사라지자 바달라따(badalata)18)가 나타났다. 그것은 마치 넝쿨풀처럼 나타났다. 그것은 색과 맛과 향을 갖추고 있었는데, 버터나 연유 같은 색을 지니고 있었고, 순수한 꿀처럼 달콤했다.
[15] 와쎗타여, 그 중생들을 바달라따를 먹기 시작했다. 그 중생들은 마달라따를 음식으로 먹으며 오랫동안 긴 시간을 머물렀다. 와쎗타여, 그 중생들이 오랫동안 긴 시간을 머무는 가운데, 바달라따를 음식으로 먹으면 먹은 만큼 그들의 몸은 더욱 굳어졌고, 피부색은 퇴색했다. 그리하여 어떤 중생들은 아름답게 되고, 어떤 중생들은 추하게 되었다. 그러자 아름다운 중생들은 "우리는 이렇게 아름다운데 너희들은 이렇게 추하다."라고 생각하여 추한 중생들을 경멸했다. 용모에 대한 자부심으로 인해 교만이 생기자 바달라따가 사라졌다. 바달라따가 사라지자 그들은 모여서 "아! 이거 참. 아! 이거 참, 우리의 바달라따."하면서 슬퍼했다. 그래서 지금도 사람들은 무언가 괴로운 일을 당하면, "아! 이거 참. 아! 이거 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실로 그들은 옛날 태고적의 관습을 반복하고 있지만, 그 의미는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16] 와쎗타여, 그 중생들에게 바달라따가 사라지자 겨도 없고 껍질도 없는, 향기 좋은 백미가 열리며, 경작하지 않아도 익는 쌀이 나타났다. 그들이 저녁에 저녁 식사를 위해 수확하면, 그 쌀은 아침에 다시 자라나서 익고, 아침에 아침 식사를 위해 수확하면 저녁에 다시 자라나 익으면서 끊임없이 열렸다. 와쎗타여, 그리하여 그 중생들은 경작하지 않아도 익는 쌀을 음식으로 먹으며 오랫동안 긴 시간을 머물렀다. 와쎗타여, 그 중생들이 오랫동안 긴 시간을 머무는 가운데, 경작하지 않아도 익는 쌀을 음식으로 먹으면 먹은 만큼 그들의 몸은 더욱 굳어졌고, 피부색은 퇴색했다. 여자에게는 여자의 특징이, 남자에게는 남자의 특징이 나타났으며, 여자는 남자에게, 남자는 여자에게 지나치게 관심을 가졌다. 상호간에 지나치게 관심을 갖자 애정이 생겨서 몸이 달아올랐다. 그들은 몸이 달아올라서 음행(淫行)을 저질렀다. 와쎗타여, 그 당시 중생들은 음행을 저지르는 자들을 보고서, "사라져라! 더러운 것. 사라져라! 더러운 것. 어떻게 중생이란 자가 중생에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단 말이냐?"라고 소리 지르면서, 어떤 자들은 흙을 집어 던지고, 어떤 자들은 재를 집어 던지고, 어떤 자들은 쇠똥을 집어던졌다. 그래서 지금도 어떤 지방에서는 사람들이 신부를 데려와서 어떤 자들은 흙을 집어 던지고, 어떤 자들은 재를 집어 던지고, 어떤 자들은 쇠똥을 집어던진다. 실로 그들은 옛날 태고적의 관습을 반복하고 있지만, 그 의미는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17] 와쎗타여, 그 당시에는 못된 행실(非法)19)로 여겨지던 것이 지금은 옳은 행실(法)20)로 여겨지고 있다. 와쎗타여, 그 당시에는 음행을 저지른 자들은 한 달이나 두 달 동안 마을이나 도시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와쎗타여, 그 중생들은 죄를 지었을 때 심한 비난을 받았기 때문에, 그 못된 행실(非法)을 감추기 위해서 집을 짓기 시작했다.
와쎗타여, 그런데 천성이 게으른 어떤 중생이 "잠깐! 내가 왜 저녁에는 저녁 식사를 위해서, 아침에는 아침 식사를 위해서 쌀을 수확하는 수고를 해야 하지? 나는 아침, 저녁거리로 쌀을 한꺼번에 수확하면 어떨까?"라고 생각했다. 와쎗타여, 그래서 그 중생은 아침, 저녁거리로 쌀을 한꺼번에 수확했다. 와쎗타여, 그런데 다른 중생이 그 중생에게 가서 "여보시오, 우리 쌀을 수확하러 갑시다."라고 말하자, "여보시오, 나는 충분하고. 나는 아침, 저녁거리로 쌀을 한꺼번에 수확했소."라고 이야기했다. 와쎗타여, 그러자 그 중생은 "여보시오, 그렇게 하면 좋겠군요."라고 하면서 그 중생을 본받아서 한꺼번에 이틀분의 쌀을 수확했다. 와쎗타여, 그런데 다른 중생이 그 중생에게 가서 "여보시오, 우리 쌀을 수확하러 갑시다."라고 말하자, "여보시오, 나는 충분하오. 나는 이틀분의 쌀을 한꺼번에 수확했소."라고 이야기했다. 와쎗타여, 그러자 그 중생은 "여보시오, 그렇게 하면 좋겠군요."라고 하면서 그 중생을 본받아서 한꺼번에 나흘분의 쌀을 수확했다. 와쎗타여, 그런데 다른 중생이 그 중생에게 가서 "여보시오, 우리 쌀을 수확하러 갑시다."라고 말하자, "여보시오, 나는 충분하오. 나는 나흘분의 쌀을 한꺼번에 수확했소."라고 이야기했다. 와쎗타여, 그러자 그 중생은 "여보시오, 그렇게 하면 좋겠군요."라고 하면서 그 중생을 본받아서 한꺼번에 여드레분의 쌀을 수확했다. 와쎗타여, 그 중생들은 쌀을 저장해두고 먹기 시작했다. 그러자 백미(白米)를 겨가 둘러싸고, 왕겨가 둘러쌌으며, 벼는 베어내면 다시 자라나지 않고 단절되어 그루터기가 남았다.
[18] 와셋타여, 그러자 그 중생들은 모여서 슬퍼하면서 말했다.
"벗이여, 중생들에게 참으로 사악한 행실(法)들이 생겼다. 우리는 예전에 마음으로 이루어졌으며, 기쁨을 음식삼아, 스스로 빛을 내면서, 허공을 날아다니며, 청정한 상태로 오랫동안 긴 시간을 머물렀다. 그런 우리에게 오랜 시간이 지나자 언제부턴가 물위에 맛있는 땅이 나타났다. 그것은 색과 향과 맛을 갖추었다. 우리는 그 맛있는 땅을 손으로 뜯어서 먹기 시작했다. 그러자 스스로 나던 빛이 사라졌다. 스스로 나던 빛이 사라지자 태양과 달이 나타났다. 태양과 달이 나타나자 별과 별빛이 나타났다. 별과 별빛이 나타나자 낮과 밤의 구별이 생겼다. 낮과 밤이 구별되자 달의 구별이 생겼다. 달이 구별되자 계절과 해의 구별이 생겼다. 우리는 맛있는 땅을 음식으로 먹으며 오랫동안 긴 시간을 머물렀다. 으런 우리에게 실로 사악하고 못된 법이 생기자 맛있는 땅이 사라졌다. 맛있는 땅이 사라지자 땅에서 나오는 떡이 나타났다. 그것은 색과 향과 맛을 갖추었다. 우리는 그 맛있는 땅에서 나오는 떡을 먹기 시작했다. 우리는 땅에서 나오는 떡을 음식으로 먹으며 오랫동안 긴 시간을 머물렀다. 그런 우리에게 실로 사악하고 못된 행실(法)이 생기자 땅에서 나오는 떡이 사라졌다. 땅에서 나오는 떡이 사라지자 바달라따가 나타났다. 그것은 색과 향과 맛을 갖추었다. 우리는 그 바달라따를 먹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 바달라따를 음식으로 먹으며 오랫동안 긴 시간을 머물렀다. 그런 우리에게 실로 사악하고 못된 행실(法)이 생기자 바달라따가 사라졌다. 바달라따가 사라지자 겨도 없고 껍질도 없는, 향기 좋은 백미가 열리며, 경작하지 않아도 익는 쌀이 나타났다. 저녁에 저녁 식사를 위해 수확하면, 그 쌀은 아침에 다시 자라나서 익고, 아침에 아침 식사를 위해 수확하면 저녁에 다시 자라나 익으면서 끊임없이 열렸다. 우리는 경작하지 않아도 익는 쌀을 음식으로 먹으며 오랫동안 긴 시간을 머물렀다. 그런 우리에게 실로 사악하고 못된 행실(法)이 생기자 백미(白米)를 겨가 둘러싸고, 왕겨가 둘러쌌으며, 벼는 베어내면 다시 자라나지 않고 단절되어 그루터기가 남았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논의 경계를 구분하여 쌀을 분배하는 것이 어떨까?"
와쎗타여, 그래서 그 중생들은 논의 경계를 구분하여 쌀을 분배했다.
[19]와쎗타여, 그런데 어떤 중생이 탐욕이 생겨서 자신의 몫은 아껴두고, 다른 중생의 몫을 훔쳐서 먹었다. 그들은 이 중생을 붙잡아서, "중생아, 실로 너는 자신의 몫은 아껴두고, 다른 사람의 몫을 훔쳐 먹은 사악한 일을 저질렀다. 중생아,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말라!"고 말했다.
이 중생은 "존자여, 알겠습니다."라고 그 중생들에게 대답했다.
와쎗타여, 그러나 이 중생은 두 번, 세 번 거듭하여 자신의 몫은 아껴두고, 다른 중생의 몫을 훔쳐서 먹었다. 그들은 이 중생을 붙잡아서, "중생아, 실로 너는 자신의 몫은 아껴두고, 다른 사람의 몫을 훔쳐 먹는 사악한 일을 저질렀다. 중생아,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말라!"고 말하면서, 어떤 중생들은 손으로 때렸고, 어떤 중생들은 훍덩어리로 때리고, 어떤 중생들은 매로 때렸다. 와쎗타여, 이때에 비로소 도둑질이 나타나고, 질책이 나타나고, 거짓말이 나타나고, 매질이 나타났다.
[20] 와쎗타여, 그러자 그 중생들은 모여서 슬퍼하면서 말했다.
"벗이여, 중생들에게 참으로 사악한 행실(法)들이 생겼다. 앞으로는 도둑질이 나타날 것이고, 질책이 나타날 것이고, 거짓말이 나타날 것이고, 매질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한 중생을 선출하여, 그로 하여금 마땅히 꾸짖어야 할 자는 꾸짖고, 마땅히 책망해야 할 자는 책망하고, 마땅히 내쫓아야 할 자는 내쫓도록 하는 것이 어떨까? 그리고 우리는 그에게 그 대가로 쌀을 주도록 하자."
와쎗타여, 그리하여 그 중생들은 그들 가운데서 가장 잘 생기고, 보기 좋고, 매력 있고, 큰 힘이 있는 중생을 찾아가서 말했다.
"여보시오! 중생이여, 마땅히 꾸짖어야 할 자는 꾸짖고, 마땅히 책망해야 할 자는 책망하고, 마땅히 내쫓아야 할 자는 내쫓아 주시고. 그러면 우리는 그대에게 그 대가를 쌀을 주도록 하겠소."
그는 그 중생들에게 "벗이여, 그렇게 합시다."라고 승낙한 후에 마땅히 꾸짖어야 할 자는 꾸짖고, 마땅히 책망해야 할 자는 책망하고, 마땅히 내쫓아야 할 자는 내쫓았다. 그리고 그들은 그에게 그 대가로 쌀을 주었다.
[21] 와쎗타여, '대중(大衆)이 선출한 자' 21)라고 해서 마하 싸마따(Maha-sammata)라고 하였나니, 마히 싸마따라는 말이 맨 처음 생겼다.
와쎗타여, '국토의 주인' 22)이라고 해서 크샤트리아라고 하였나니, 크샤트리아라는 말이 두 번째로 생겼다.
와쎗타여, '행실(法)로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한다' 23)고 해서 라자(Raja)라고 하였나니, 라자라는 말이 세 번째로 생겼다.
와쎗타여, 오래된 태곳적 이야기에 의하면, 크샤트리아 계급은 이렇게 해서 생겼다. 그들은 다른 바 없는 똑같은 중생들로부터 생긴 것이지, 특별한 것으로부터 생긴 것이 아니며, 행실(法)에 의한 것이지, 행실 아닌 어떤 것(非法)에 의한 것이 아니다.24) 와쎗타여, 그러므로 현세에서나 내세에서나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행실(法)이다.
[22] 와쎗타여, 그런데 어떤 중생들은 '벗이여, 중생들에게 참으로 사악한 행실(法)들이 생겼다. 앞으로는 도둑질이 나타날 것이고, 질책이 나타날 것이고, 거짓말이 나타날 것이고, 매질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차라리 사악하고 못된 행실(法)을 멀리하는 것이 어떨까?'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사악하고 못된 행실(法)을 멀리했다. 와쎗타여, '사악하고 못된 행실(法)을 멀리 한다25).'고 해서 바라문( Brahmana)이라고 하였나니, 바라문이라는 말이 맨 처음 생겼다. 그들은 숲속에 나뭇잎 오두막을 짓고, 나뭇잎 오두막에서 명상하면서, 절구질하거나 불을 지피지 않고, 저녁에는 저녁식사를 위하여, 아침에는 아침식사를 위하여 마을이나 시장이나 도읍(都邑)에 들어가서 음식을 구했다. 그들은 음식을 얻은 후에는 다시 숲속의 나뭇잎 오두막에서 명상했다.
이들을 보고 사람들이 말했다.
"벗이여, 이 중생들은 숲속에 나뭇잎 오두막을 짓고, 나뭇잎 오두막에서 명성하면서, 절구질하거나 불을 지피지 않고, 저녁에는 저녁식사를 위하여, 아침에는 아침식사를 위하여 마을이나 시장이나 도읍(都邑)에 들어가서 음식을 구한다. 그들은 음식을 얻은 후에는 다시 숲속의 나뭇잎 오두막에서 명상한다."
와쎗타여, '명상한다.'26)고 해서 자야까(Jhayaka) 27)라고 하였나니 자야까라는 말이 두 번째로 생겼다.
[23] 와쎗타여, 그 중생들 가운데 어떤 중생들은 숲속의 나뭇잎 오두막에서 명상을 하지 못하고, 마을 근처나 시장 근처에 들어가서 경전(慶典)을 만들어서 먹고 살았다.
이들을 보고 사람들이 말했다.
"벗이여, 이 중생들은 숲속의 나뭇잎 오두막에서 명상을 하지 못하고, 마을 근처나 시장 근처에 들어가서 경전(慶典))을 만들어서 먹고산다. 이들은 이제는 명상하지 않는다."
와쎗타여, '이제는 명상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자야까( Ajhayaka)28) 라고 하였나니 아자야까라는 말이 세 번째로 생겼다.
와쎗타여, 이들은 그때에는 천하게 여겨졌는데, 오늘날은 최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와쎗타여, 오래된 태곳적 이야기에 의하면, 바라문(Brahmana) 계급은 이렇게 해서 생겼다. 그들은 다를 바 없는 똑같은 중생들로부터 생긴 것이지, 특별한 것으로부터 생긴 것이 아니며, 행실(法)에 의한 것이지, 행실이 아닌 어떤 것(非(法)에 의한 것이 아니다. 와쎗타여, 그러므로 현세에서나 내세에서나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행실(法)이다.
[24] 와쎗타여, 그 중생들 가운데 어떤 중생들은 결혼하여 여러 가지 직업에 종사했다. 와쎗타여, '결혼하여 여러 가지 직업에 종사한다.'29) 고 해서 바이샤(Vessa)라고 하였나니, 바이샤라는 말이 생긴 것이다. 와쎗타여, 오래된 태곳적 이야기에 의하면, 바이샤 계급은 이렇게 해서 생겼다. 그들은 다를 바 없는 똑같은 중생들로부터 생긴 것이지, 특별한 것으로부터 생긴 것이 아니며, 행실(法)에 의한 것이지, 행실 아닌 어떤 것(非(法)에 의한 것이 아니다. 와쎗타여, 그러므로 현세에서나 내세에서나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행실(法)이다.
[25] 와쎗타여, 그 중생들 가운데 나머지 중생들은 사냥질을 했다. 와쎗타여, '사냥질은 천한 일이다.'고 해서 수드라(Sudda)라고 하였나니, 수드라라는 말이 생긴 것이다. 와쎗타여, 오래된 태곳적 이야기에 의하면, 수드라 계급은 이렇게 해서 생겼다. 그들은 다를 바 없는 똑같은 중생들로부터 생긴 것이지, 특별한 것으로부터 생긴 것이 아니며, 행실(法)에 의한 것이지, 행실 아닌 어떤 것(非(法)에 의한 것이 아니다. 와쎗타여, 그러므로 현세에서나 내세에서나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행실(法)이다.
[26] 와쎗타여, 그러다가 어느 때가 되자 크야트리아가 자신의 신분을 비판하고, "나는 사문(沙門)30)이 되겠다."고 집을 떠나 출가하였다. 바라문도 자신의 신분을 비판하고, "나는 사문이 되겠다."고 집을 떠나 출가하였다. 바이샤도 자신의 신분을 비판하고, "나는 사문이 되겠다."고 집을 떠나 출가하였다. 수드라도 자신의 신분을 비판하고, "나는 사문이 되겠다."고 집을 떠나 출가하였다. 와쎗타여, 이들 네 가지 계급으로부터 사문 계급이 출현하였다. 그들은 다를 바 없는 똑같은 중생들로부터 생긴 것이지, 특별한 것으로부터 생긴 것이 아니며, 행실(法)에 의한 것이지, 행실 아닌 어떤 것(非(法)에 의한 것이 아니다. 와쎗타여, 그러므로 현세에서나 내세에서나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행실(法)이다.
[27] 와쎗타여, 크샤트리아도 사견(邪見)을 지니고 몸으로 악행을 저지르고, 말로 악행을 저지르고, 마음으로 악행을 저지르면, 사견을 지니고 지은 업으로 인해서 몸이 무너져 죽은 후에 험난하고 고통스러운 지옥과 같은 악취(惡趣)에 태어난다. 바라문도, 바이샤도, 수드라도 마찬가지다.
[28] 와쎗타여, 크샤트리아도 정견(正見)을 지니고 몸으로 선행을 행하고, 말로 선행을 행하고, 마음으로 선행을 행하면, 정견(正見)을 지니고 지은 업으로 인해서 몸이 무너져 죽은 후에 천상(天上) 세계와 같은 선취(善趣)에 태어난다. 바라문도, 바이샤도, 수드라도 마찬가지다.
[29] 와쎗타여, 크샤트리아도 정견과 사견을 지니고 몸으로 선행과 악행을 행하고, 말과 마음으로 선행과 악행을 행하며, 정견과 사견을 지니고 지은 업으로 인해서 몸이 무너저 죽은 후에는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 바라문도, 바이샤도, 수드라도 마찬가지다.
[30] 와쎗타여, 크샤트리아도 몸을 제어하고, 말을 제어하고, 마음을 제어하여, 일곱 가지 깨달음을 돕는 수행법(七覺支)31)을 닦은 뒤에는 지금 여기에서 반열반(般涅槃)에 들게 된다. 바라문도, 바이샤도, 수드라도 마찬가지다.
[31] 와쎗타여, 이들 네 가지 계급 가운데 비구로서 번뇌를 멸진하고,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짐을 내려놓고, 자신의 목적에 도달하여, 존재의 결박(有結)을 끊고, 바른 지혜를 갖추어 해탈한 아라한(阿羅漢)이 있다. 그 사람을 최상이라고 칭하는 것은 행실(法)에 의해서이지, 행실이 아닌 다른 것(非法)에 의해서가 아니다. 와쎗타여, 현세에서나 내세에서나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행실(法)이다.
[32] 와쎗타여, 싸낭 꾸마라(Sanam-Kumara) 범천(梵天)은 이런 게송을 읊었다.
가문에 의지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는 크샤트리아가 최상이지만,
천신과 인간 가운데서는 지혜와 실천을 구족한 분(明行足)이 최상이다.
와쎗타여, 나는 싸낭 꾸마라((Sanam-Kumara) 범천(梵天)은 게송을 잘 읊었지 잘못 읊은 것이 아니며, 잘 이야기한 것이지 잘못 이야기한 것이 아니며, 의미 있는 게송이지 무의미한 게송이 아니라고 인정한다. 와쎗타여, 나도 이렇게 말한다.
가문에 의지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는 크샤트리아가 최상이지만,
천신과 인간 가운데서는 지혜와 실천을 구족한 분(明行足)이 최상이다.
세존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와쎗타와 바라드와자는 세존의 말씀을 듣고 환희에 차서 기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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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귀한 말씀 생활을 통해 잘 실천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