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멀리 가운데는 남설악 가리봉, 그 왼쪽으로는 주걱봉, 삼형제봉이다. 그 앞은 가칠봉(加漆峰, 1165.0m)
달콤하고 푸르며 고요한 아침이다. 아름답고 아름다운 아침.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많은 말을 한 것만 같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나는 모른다. 모든 것
이 너무도 아름답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오직 순수한 아름다움 그 자체로 거기에 있기 때문
이다.
―― 로베르트 발저(Robert Walser, 1875~1956), 『산책자』에서
▶ 산행일시 : 2017년 9월 2일(토), 맑음
▶ 참석인원 : 14명
▶ 산행거리 : 도상 15.7km(실거리 19.4km)
▶ 산행시간 : 13시간 43분
▶ 교 통 편 : 두메 님 24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가급적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0 : 22 - 동서울터미널 출발
02 : 32 - 양양군 서면 갈천리 연내골, 해피하우스펜션, 계속 취침
04 : 05 - 산행시작
04 : 37 - 555m봉, 첫 휴식
06 : 16 - 백두대간 주릉 △968.3m봉, 아침식사
06 : 52 - 1,000m봉 오르기 전 ┫자 왼쪽 지능선 진입
08 : 06 - 아침가리골 계류
08 : 32 - 임도 따르다 계류 건넘
09 : 48 - △1,037.8m봉
10 : 15 - 1,071.2m봉, ┫자 왼쪽 지능선 진입
11 : 18 ~ 12 : 03 - 아침가리골 계류, 점심
13 : 25 - 944.5m봉
14 : 10 - 1,025.1m봉
15 : 10 - 백두대간 주릉 1,095m봉
15 : 54 - 갈전곡봉(葛田谷峰, 1,196.3m)
17 : 48 - 양양군 서면 갈천리 시선골 두루박, 산행종료
18 : 30 ~ 20 : 40 - 양양(목욕), 설악항(저녁)
23 : 00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 산행지도, 도상거리 15.7km, 실거리 19.4km이다, 봉봉 오르내리는 굴곡이 매우 심함을
짐작할 수 있다
2. 마침내 백두대간 갈전곡봉 정상에서, 모두 지친 표정이다
3. 백두대간 약수봉, 그 오른쪽 뒤는 응복산
3-1. 멀리 가운데는 설악산 귀때기청봉, 그 앞 오른쪽은 점봉산
4. 능이(能栮). 독특한 향기가 난다고 하여 향버섯이라고도 한다. 예로부터 민간이나 한방에
서 고기 먹고 체한 데 이 버섯을 달인 물을 소화제로 이용하였다.
▶ 백두대간 △968.3m봉
한밤중에야 서울양양고속도로의 덕 좀 보았다. 동서울터미널에서 들머리인 양양 연내골까
지 160km. 가평휴게소 들르고도 2시간 10분 걸렸다. 쾌속으로 달리던 버스가 갑자기 달리
기를 멈추고 시동을 끄자 무슨 일인가 잠결에 눈이 떠지고 시간을 확인하였다. 02시 32분.
다 왔구나. 한참을 더 자겠구나. 안도하여 자세 고치고도로 얼른 눈 감는다.
03시 40분. 기상. 밖이 훤한 건 달빛인가? 보름 사흘 남겨둔 열이틀 달은 진작 졌고, 가로등
불빛이다. 차내 불 밝히자 동네 개들이 재빨리 알아보고 궐기하듯 짖어대는 통에 외진 곳으
로 이동하여 산행준비 한다. 연내골(煙--) 마을은 골이 좁아서 연기가 늘 끼어있다 하여 그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 도로 옆 산기슭 해피하우스펜션은 유럽의 저택 혹은 기숙사 건물
모양이다.
해피하우스펜션 왼쪽 산기슭을 더듬어 오른다. 첫발자국부터 되게 가파르다. 양팔 벌려 잡목
숲 헤치며 기껏 올랐더니 잘난 임도가 지나간다. 맥이 풀리는 건 잠깐이었다. 임도는 곧바로
끊기고 오지산행이 시작된다. 우리 초등학교 시절에는 운동장 가장자리에 ‘늑목(肋木, wall
bar)’이라는 운동기구가 있었다. 수직 오르막. 그렇게 오른다. 그 시절이 생각난다.
바위 슬랩과 맞닥뜨린다. 선두인 신가이버 님은 이까짓 것 하며 직등한다. 옛날의 신가이버
님이 아니다. 예전에는 나의 위안이었는데 이제는 겁이 되고 말았다. 지난봄에 안나푸르나를
갔다 오고 나서 사람이 달라졌다. 그 뒤를 쫓던 상고대 님은 방향 틀어 왼쪽 사면을 트래버스
한다. 뒤따른다. 여기도 만만하지 않다. 여차하면 추락하더라도 내 걸릴만한 나무를 보아가
며 게걸음하다 기어오른다.
긴 한 피치 오르막이었다. 555m봉. 휴식한다. 날벌레들 몰려들어 헤드램프 끈다. 칠흑 같은
어둠이다. 문득 하늘을 우러르자 무수한 별들이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열렸다. 탄성을 합창한
다. 백수 정완영(白水 鄭椀永, 1919~2016) 선생은 이러한 광경을 확실히 보았었다. 선생의
「귀뚜리 울음소리」라는 동시를 보면 그렇다.
귀뚜리 울음소리에 또랑또랑 별이 뜨고
귀뚜리 울음소리에 대롱대롱 이슬 맺고
오소소 꽃씨는 추워서 씨방 속에 숨습니다
잡목 숲과 씨름을 계속한다. 외길. 선두는 멀리 갔다. 늘 그렇듯 혼자 가는 산행이다. 헤드램
프 불빛에 비추이는 나뭇잎 이슬이 만발한 백화로 보인다. 심심찮게 바윗길이 나온다. 그 너
머 블라인드 코너를 염려하여 가급적 직등을 삼간다. 뒤돌아보면 나뭇가지 사이로 동녘은 붉
다 못해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위태하다. 급하다. 조망이 트일 봉우리에 오르자 하고 냅다 줄
달음한다. 일출과 경주한다.
내가 지고 말았다. 해는 암산 오른쪽 어깨 너머로 눈부시게 솟았다. 가파른 오르막 숲속에서
목도하였다. 숨 가쁘게 애만 썼다. 황금색으로 점점 도색하는 백두대간 동쪽 사면이 더 볼만
하다. 가파름이 한층 수그러들고 산죽 숲이 나오고 갈전곡봉 넘어오는 백두대간 길과 만난
다. 비로소 시위 떠난 화살처럼 지난다.
△968.3m봉. 백두대간 주릉에 오른다. 너른 쉼터다. 아침요기 한다. 구룡령에서 오르는 백두
대간 종주팀과 만난다. 그들은 03시에 산행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들이 못내 부럽다. 그들
은 조침령까지 이렇듯 탄탄한 대로를 전후좌우 조망을 한껏 즐기며 유유히 갈 것이다.
5. 암산(岩山, 1152.9m)
6. 암산(岩山, 1152.9m)
7. 오른쪽 멀리는 정족산(鼎足山, 869.1m)
8. 백두대간(구룡령~조침령 구간) 동쪽 지능선들
8-1. 이른 아침의 백두대간 약수산
9. 눈빛승마(--升麻, Cimicifuga davurica), 미나리아재비과 여러해살이풀
10. 아침가리골, 물이 아주 맑다
11. 아침가리골 임도 다리, 계류 옆으로 임도가 나 있는데 차량통행은 어렵다. 다리가 큰물에
밀려나기도 했다.
12. 마타리(Patrinia scabiosaefolia), 마타리과 여러해살이풀
▶ 아침가리골
숙명처럼 길 없는 우리 길을 갈 터이다. 길게 내렸다가 계단 길을 오른다. 아쉬워 등로 비켜
잡목 숲 헤치고 정족산과 그 연릉을 들여다본다. 이 앞 1,000m봉에서 왼쪽 지능선을 내릴 것
이라 미리 사면을 더덕대형 펼쳐 돌아간다. 아무런 소득 없이 능선에 붙고 쭉쭉 내린다. 이러
는 중에도 모닥불 님의 눈은 밝았다. 대뜸 소나무 아래에서 막 솟아오르는 송이버섯을 찾아
낸다.
마태복음 오병이어(五餠二魚)에 버금가는 오지복음 일송이(一松栮)다. 14명이 골고루 향긋
한 송이 맛을 보았다. 맛으로는 배가 불렀다. 미리 얘기하자면 오늘 산행 중 여러 가지 버섯
을 보았다. 표고버섯, 능이, 노루궁뎅이버섯, 느타리버섯, 싸리버섯 등등. 흔히 1능이 2표고
3송이 (4노루궁뎅이) 라고 하는데, 누가 뭐래도 으뜸은 송이다.
모닥불 님이 송이를 본 탓으로 내 눈이 사팔뜨기 되기 직전이다. 나라고 송이를 찾지 못하랴,
가는 걸음에 소나무마다 그 밑을 샅샅이 훑어본다. 줄곧 내리막은 임도에 이르고 아침가리골
이다. 조경동(朝耕洞) 마을은 700m 아래에 있다. 계류는 옥수로 흐른다. 임도 다리에 모여
휴식한다. 해피~ 님이 오지 않았으나 덕산 명주인 탁주는 보내왔다. 이제야 탁주를 흘리지
않고 따는 법을 터득하였다. 찬 상태에서 병마개를 열어 가스를 배출한 다음 다시 병마개를
잠그면 되었다. 계류 바라보는 것이 한 안주다.
임도 따라 아침가리골을 거슬러 오르다 △1,037.8m봉을 겨냥한다. 그 동릉을 오른다. 계류
건너고 너덜지대 지나 잡목 숲 헤치고 도드라진 능선을 꼭 붙잡는다. 새벽일의 재판이다. 비
지땀 나게 하는 수직으로 가파른 사면이다. 가도 가도 하늘 가린 울창한 숲속은 햇볕조차 들
지 않는다. 앵글 들이댈 일이 없으니 목에 맨 카메라가 여느 때보다 더 무겁다.
대간거사 님도 어느덧 타락하였다. 능이를 알아보고 발견하다니. 나는 사진이나 찍자하고 달
려가서 대간거사 님이 가리키는 능이를 이낀 돌인 줄로 알았다. 그런 기대로 오르막 좌우사
면을 예의 살피며 간다. 등로에 버려진 초코파이 빈 봉지가 인적이라 반갑다. △1,037.8m봉.
숲속 헤쳐 판독한 삼각점은 ‘현리 429, 2005 복구’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가칠봉, 설악산 서
북주릉, 그 앞 가리봉, 점봉산이 보인다.
잡목 숲속 쉴 곳이 마땅하지 않아 1,071.2m봉까지 내쳐간다. 길이 워낙 험하여 당초 계획했
던 1,241.1m봉 오르는 둥그런 코스의 산행은 아무래도 무리다. 하는 수 없이 우그러뜨린다.
1,071.2m봉에서 그 동릉을 내리기로 한다. 그래도 빠듯하다. 방금 전의 그 고약한 오르막을
내리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아전인수적인 생각이 든다. 오를 때는 여기로 내려가기 않기 잘
했다 하고, 내려갈 때는 여기로 올라오지 않기 참 잘했다고 말이다.
우르르 쏟아져 내려 아침가리골 계류다. 징검다리로 건너고 임도 가까운 계류 가에서 점심밥
먹는다. 능이는 라면 끓이는 데 조금만 넣어도 맛이 아주 좋다. 더구나 심심산중이다. 그 뒷
맛이 남아 식후 무한마담의 커피 맛이 덜 하다. 다시 백두대간을 오른다. 잡석 우글거리는 수
직사면이다. 열심히 발놀림하였으나 제자리걸음하기 여러 번이다. 어렵게 한 걸음을 오른다.
13. 아침가리골, 계류가 저래 보여도 깊어 징검다리로 곡예하듯 건넌다
14. 멀리 왼쪽은 귀때기청봉, 그 앞 오른쪽은 점봉산, 맨 오른쪽 멀리는 대청봉
15. 노루궁뎅이버섯
16. 싸리버섯
17. 싸리버섯
18. 정족산
19. 멀리는 남설악 삼형제봉, 주걱봉, 가리봉
20. 참당귀(-當歸, Angelica gigas), 산형과의 두해살이풀 또는 세해살이풀
참당귀라는 이름은 당귀라는 약재명에서 따온 것으로 ‘그중에서 가장 으뜸’이라는 뜻이다.
그 밖에 문귀, 건귀 등의 생약명이 있다. 참당귀는 혈액순환을 좋게 하고 간기능 보호 ․ 기관
지천식 ․ 부인병 등 여러 증상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자로 당귀(當歸)라는 이
름은 ‘당연히 돌아온다’, 나아가 ‘젊음을 되돌려 놓는다’는 의미로 지어졌다는 말이 있다. 참
당귀의 속명 안젤리카(Angelica)는 ‘천사’라는 뜻이다. 이 속에 해당되는 식물들은 강심효과
가 있어 죽어 가는 사람을 소생시킨다고 하여 이런 이름이 지어졌다고 하니, 이 식물은 동 ․
서양을 막론하고 중요한 약재였다.(이유미, 『한국의 야생화』에서)
21. 참당귀(-當歸, Angelica gigas)
▶ 갈전곡봉(葛田谷峰, 1,196.3m)
낙석에 다칠라, 길게 갈지자 그리며 오른다. 흙 파헤쳐 돌부리나 나무뿌리 찾아내서 움켜쥐
고 오른다. 이런 때 가로 누운 거목을 넘기란 된 고역이다. 능이 라면 곁들인 부른 배가 꺼지
고, 반주 얼근한 주기가 달아났다. 백두대간 1차 관문은 944.5m봉이다. 이 봉우리를 넘으니
가파름은 한결 수그러들었지만 잡목의 저항이 여간 심하지 않다.
인적은 있는 듯 없는 듯하다. 어쩌면 수적이리라. 주로 발로 풀숲 더듬어 길 찾는다. 그러니
정강이가 나뭇가지나 돌 모서리에 부딪치면 저절로 악! 소리 나게 아프다. 1,025.1m봉. 백두
대간 주릉은 1시간 남았다. 잔 봉우리 오르고 내린다. 초원을 누비기도 한다. 산으로는 악산
이다. 더덕이랬자 겨우 중국산 이쑤시개만한 것 다섯 수.
백두대간 주릉 1,095m봉. 벤치 놓인 쉼터다. 쉬어준다. 우리가 오른 길로 잘못 갈지 몰라 경
계하라는 뜻일까? 백두대간 종주꾼들의 산행표지기가 45개나 달렸다. 갈전곡봉이 건너편이
다. 지친 눈에는 더욱 준봉이다. 그럴 것이, 우선 겁나게 떨어진다. 갈전곡봉을 잔뜩 높인다.
구룡령~조침령 구간에서 이보다 더 굴곡이 심한 데가 있을까 싶다.
스퍼트 낸다. 아직 흘릴 땀이 남았나 보다. 눈 못 뜨게 땀이 흘러든다. 계단이 도리어 장애물
이다. 더러 뽑히고 망가졌다. 가드레일 밧줄 잡고 오른다. 그러다가 곳곳에 조망처가 있어 일
망무제로 펼쳐지는 가경에 그만 숨 가쁨을 잊곤 한다. 설악산 서북주릉 대청봉은 구름에 가
렸다. 오른쪽 가칠봉(柯七峰, 1,241.1m), 매봉, 구룡덕봉은 성긴 수렴(樹簾)에 가렸다.
갈전곡봉. 사방 울창한 나무숲에 가려 아무 조망할 수 없다. 예전에도 이랬다. 혹시 좀 더 가
면 가칠봉(柯七峰, 1,241.1m)을 온전히 볼 수 있을까 하고 배낭을 벗어놓고 달려가 보았으
나 수렴은 끝이 없을 것 같아 뒤돌아오고 말았다. 하산! 두루박 마을이 가장 가깝다. 지나온
길 200m 뒤돌아 내리고 오른쪽 지능선을 잡아야 한다. 등로가 분명하지 않다. 미역줄나무
덩굴 숲을 뚫고 한 피치 내려 왼쪽 가파른 사면을 트래버스 하면 두둑한 능선이 나타난다.
다섯 피치로 내린다. 급격히 쏟아지다가 잠시 잠잠하기를 다섯 차례다. 억센 잡목 숲의 저항
의 여전하다. 걷기 보다는 잡목 숲을 헤치는 데 기력이 더 소모된다. 암릉이 나온다. 오른쪽
비탈진 사면으로 길게 돌아 넘는다. 세 번을 이랬다. 산그늘 진 울창한 숲속이라 어둑하다.
골 건너 지능선, 백두대간 산등성이 모색으로 찬란하다.
마지막 피치. 길다. 인적은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덤불숲 뚫어 묵은 임도로 내리고 곧 왕승
골 두루박 도로와 만난다. 널브러지고 두메 님 부른다. 어쨌거나 으레 무사산행을 자축하는
하이파이브 나누기조차 힘들다.
22. 남설악 가리봉, 그 앞은 가칠봉(加漆峰, 1165.0m)
23. 멀리 맨 왼쪽은 점봉산, 설악산은 구름에 가렸다, 오른쪽 바람개비 있는 데가 조침령(?)
24. 갈전곡봉 가기 전 백두대간 주릉 1,095m봉에서
25. 정족산
26. 남설악 가리봉
27. 앞은 백두대간, 멀리 가운데는 남설악 가리봉
28. 멀리 가운데는 남설악 가리봉
29. 백두대간 동쪽 지능선
30. 오른쪽 멀리는 우리가 아침에 오른 백두대간 △968.3m봉
31. 두루박 마을로 내리는 마지막 피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