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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도에게 고난이 따르지만 그 길이 천국 가는 길입니다.(마4:1-11)
2024, 12/8 설교문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마4:1-11절 말씀으로“성도에게 고난이 따르지만 그 길이 천국 가는 길입니다.”이런 제목으로 말씀 전할 때 주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이곳에 함께하길 원합니다.
지난주 대통령이 계엄 선포했다가 6시간 만에 철회했고, 국회는 이를 빌미로 탄핵을 시도하고 있는데 이 나라의 미래가 참으로 걱정입니다. 우리나라의 집단지성이 사라졌고, 오직 개인의 영달과 방탄만을 위해 나라의 앞날은 안중에도 없는 이런 작태들이 계속된다면 앞으로 우리 자녀들이 살아가야할 이 땅이 참으로 걱정됩니다. 여러분, 기도해주십시오. 하나님만이 이 나라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는지요? 우리 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반갑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3가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첫째로, 성도들의 삶에는 고난과 시련이 따릅니다.(2절)
둘째로, 믿음은 믿는 만큼 강해지고 의심하는 만큼 약해집니다.(7절)
셋째로, 천국으로 가는 길은 주의 길을 따르는 것입니다.(9-10절)
그러면 본문 말씀을 따라가면서 우리는 고난과 시련이 와도 강한 믿음으로 주의 길을 왜 따라야하는지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 음성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성도들의 삶에는 고난과 시련이 따릅니다.(2절)
본문2절 말씀함께 읽겠습니다."사십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아멘.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시험산으로 올라가 40일 동안 금식하신 후 주리셨는데, 이 대목은 비록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셨지만, 그러나 그분도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기에 우리와 똑같은 감정을 갖고 있고, 우리가 겪는 아픔과 굶주림도 똑같이 겪는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예수님의 인성(人性)이라고 말하는데, 그러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써 신성과 사람으로써의 인성을 그대로 가지고 계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시며 겪었던 고통과 아픔이 어떤 것일까요? 그러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니 그 고통과 아픔도 우리와는 다른 별거 아닌 것이냐, 아니면 우리가 겪는 것과 똑같은 것이냐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것이라 생각되는지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우리와 똑같습니다.
왜냐면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우리와 다르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수님도 우리들처럼 죄인으로 태어났다면 예수님도 죄인 우리도 죄인, 같은 죄인끼리 도찐개찐이라 우리를 구원할 자격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도둑놈에 사기꾼에다 입만 열면 쌍욕과 거짓말쟁이 자동으로 나오는 사람이 여러분을 도와주겠다고 하면 어떨까요?‘너나 잘해!’이러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몸을 입고 오셨기 때문에 우리가 겪는 희노애락과 고통과 아픔을 똑같이 느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40일 금식하실 때도 배고프고 목마르셨고, 피곤하여 쉬기도 하시고, 눈물도 흘리셨습니다. 또 예수님이 마지막 십자가를 져야할 때 그 고통과 아픔이 너무 극심하다는 것을 아시고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눅22:42)
그럼에도 예수님은 우리와 다른 것이 있었습니다.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죄 덩어리이지만 예수님은 죄가 전혀 없으신 무흠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대신해 죽으셔야하는데, 같은 죄인으로 오시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죄가 없는 의인으로 오시기 위해 사람의 씨를 받지 않고 성령님의 역사로 동정녀의 몸에 잉태되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랬다가 때가 되매 세례를 통해 인류의 죄가 주님께 전가되었고, 그래서 우리의 죄를 뒤집어쓰시고 죄인이 되어 십자가에서 속죄의 제물이 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짊어지신 죄인이라서 겟세마네동산에서 그토록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고통을 피하시려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애써 외면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주께서 광야에서 금식하실 때 주리셨다고 하셨는데 "광야"는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고단한 삶을 말하고, "주리셨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결핍의 문제를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광야에서 굶주린 것은 비단 예수님만이 겪는 특별한 일이 아니고, 모든 인류가 겪는 공통적인 일입니다. 그러니까 광야와 같이 척박하고 고달픈 세상에서 주림이라는 결핍의 모습이 바로 저와 여러분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먼 옛날 이스라엘백성들도 그랬습니다. 저들이 출애굽한 후 광야에서 가장 먼저 찾아온 것이 목마름(thirstiness)과 굶주림(starvation)이었습니다.(출16-17장)
그런데 오늘날도 이 굶주림과 목마름은 계속되고 있는데, 기아와 빈곤으로 고통 받는 후진국은 물론이고, 선진국들도 도덕적 타락과 공허함으로 인해 온갖 범죄와 정신병적인 행태들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목마름과 굶주림이 어디서 비롯됐을까요? 바로 죄입니다.
죄가 없던 에덴동산에서는 이런 주림이 전혀 없었습니다.
문제는 이런 주림을 인간은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이 문제는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땅에는 유토피아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정치인들은 이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다고 국민들을 속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 어딘가에 굶주림과 목마름이 없는 곳이 있을거라는 환상을 버려야합니다. 이 땅에서 고통과 아픔이 없는 곳은 오직 무덤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야곱처럼 언약의 축복을 한 몸에 받은 사람도 없을 겁니다. 그런 그가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했으며,(창47:9) 사도바울과 같은 믿음의 사람도 죄의 유혹을 끊임없이 받고 괴로워했습니다.(롬7:24) 그래서 솔로몬은 결론적으로‘헛되고 헛되니 모든 헛되도다.’라는 단발마적인 비명을 질렀던 것입니다.
행14:22절에“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할 것이라”이렇게 말씀합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님도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분이 그랬다면 우리 또한 고난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고난과 시련이 왜 있을까요? 만약 고난이 없다면 누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이 안 될 겁니다. 고난을 만나면 가짜는 세상으로 돌아갈 것이고, 진짜는 끝까지 남아 신앙을 지킬 것인데 이런 옥석구분을 구분하기 위해 고난이 필요합니다. 또 고난 받을 때 세상에 미련을 끊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또한 믿는 자가 고난당한다는 건 이 세상을 악한 자들이 장악했다는 뜻인데, 악한 자들 속에서 내 믿음을 하나님께 보여드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어 결국 이 땅의 복과 내세의 상급을 풍성히 받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광야 같은 세상에서 어떤 주림이 닥쳐도 힘들어하지 마시고 이걸 연단과 성숙의 기회로 삼아 한 단계 성장하는 신앙으로 만들어 가야합니다.
시34:19-20절에“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그의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어 그 중에서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 가운데서도 주님의 능력과 은혜를 체험하면서 날마다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믿음은 믿는 만큼 강해지고 의심하는 만큼 약해집니다.(7절)
본문 7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아멘.
사단은 첫 번째 유혹에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돌로 떡을 만들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인지 아닌지를 보이라며‘그리스도의 정체성’으로 유혹했습니다.
이에 주님은 신8:3절 말씀으로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확고하게 보이자 이번에는‘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고들었는데, 사단이 예수님을 성전꼭대기로 데려가 여기서 뛰어내려도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천사들이 보호해줄 것이라며 시편 91편 말씀을 인용하여 유혹하자 주께서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며 마귀를 신6:16절 말씀으로 물리치십니다. 주님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견고한지를 보여줌으로 사단의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여러분!!! 사단이 이렇게 집요하게 주님을 유혹하는 주된 타이틀은 바로‘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냐 아니냐’의 문제입니다.
결국 이것은‘하나님과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얼마나 견고하냐.’의 문제로 귀착되는데, 그 이유는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관계가 절대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아들되심을 의심하도록 유도함으로 결국 하나님과 신뢰관계를 파괴하려고 그런 유혹을 했던 것입니다.
이런 걸 볼 때 평소에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믿고 신뢰하는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는데, 결국 신앙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관계는 비단 하나님과 우리뿐만이 아니라 사람들과 관계에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부부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 절대적이고, 친구와의 우정도 믿음이며, 기타 모든 사회적관계도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형성되어있습니다.
때문에 이런 믿음과 신뢰가 깨지면 그 관계도 끝나는 것입니다.
물론 정치인들은 믿음과 신뢰가 단 1도 없어도 이익에 따라 이합집산 하는데, 이렇게 이익에 따라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짐승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런 믿음과 신뢰가 깨지면 그에 따른 사회적비용이 엄청나게 들어가고 선한 사람들이 고통 받는데, 믿음과 신뢰를 깨는 결정적인 건 거짓말입니다.
이 거짓말로 인한 범죄가 사기, 무고, 위증, 증거인멸, 허위사실공포 이런 것들인데, 이게 일본에 비해 우리가 열배가 훨씬 넘는답니다. 일본인구가 우리의 2배가 넘으니 실제는 30배쯤 되겠지요. 이러면서 일본을 어떻게 비난합니까?
어쨌든 신앙이란 곧 관계이기에 사단은 오늘도 하나님과 우리들 간의 관계를 깨기 위해 온갖 작업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꼭 잊지 말아야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믿음도, 사람과의 관계도 믿는 만큼 강해지고 의심하는 만큼 약해집니다. 오늘 예수님처럼 극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고 믿으면 그 믿음은 견고해지지만, 의심하기 시작하면 결국 그 믿음은 파산하게 됩니다. 딤전1:19절에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 믿음이 파선할 수 있음을 알고 착한양심, 다시 말해 의심하지 않는 절대적인 관계를 가지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어떤 경우에도 신랑 되신 주님과, 아버지 되신 하나님을 절대 의심하지 말고 견고한 관계를 만들어 가셔야합니다.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다는 요20:29절 말씀처럼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고 믿는 참된 신앙인이 되셔서 이 땅의 복과 내세의 상급을 받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셋째로, 천국으로 가는 길은 주의 길을 따르는 것입니다.(9-10절)
본문 9-10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아멘.
사단은 주님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고 이 세상의 부귀영화와 영광을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하며 예수님을 유혹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사탄아 물러가라" 는 단호한 말씀과 함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선포하십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성경속의 박제된 말씀으로 생각하면 절대 안 됩니다. 왜냐면 과거 2천 년 전에 일어났던 이 일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험을 물리치신 주님이 지금도 우리 안에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듯이, 사단도 여전히 우리에게 똑같은 유혹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를 지금 여러분들도 많이 보고 있지 않습니까? 눈 한번 감으면 수억, 수십억의 돈이 생길 수 있고, 우리 또한 일상에서 신앙양심과 이익사이에서 갈등할 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사단은 눈 한번만 감으면 큰 이익이든 작은 이익이든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며 우리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길을 선택해야할까요?
여러분!!! 오늘날 우리는 5,000년 역사상 최고의 풍요를 누리며, 발달된 과학문명 속에 살고 있습니다. 원하는 것을 핸드폰 하나로 단 몇 초 만에 얻을 수 있고, 전화 한통이면 세계 누구와도 통화가 가능하며 상품구입이 가능해졌습니다.
시장을 안 가도 물건이 문 앞까지 배달되어 문만 열면 됩니다. 또 고도로 발달된 기계와 전자시스템 덕분으로 집안일에서 해방되고, 밖에서도 가전제품을 끄고 켤 수 있으며, 버튼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참으로 편리한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렇게 풍요롭고도 편리한 물질문명 뒤에는 무서운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데, 바로‘편의주의’와‘귀찮니즘’입니다
그러니까 너무도 편리한 세상을 살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이 편의주의의 노예가 되어 매사에 쉽고 편한 길만 찾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편의주의와 귀찮니즘이 신앙인들까지 오염시켜 교회에서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은 물론이고 영적인 일까지 귀찮아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주의 일은 성도의 손길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는데 귀찮고 힘들다며 하려하질 않다보니 교회청소를 용역 주는 곳이 늘어난답니다.
성경공부를 비롯해 각종모임이나 기도회 예배에도 잘 나오지 않아 앞으로 예배참석도 대신해주는 용역이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것들의 영향을 받아 설교도 유머와 예화일색이고, 기도와 예배시간이 점점 짧아지며, 요즘은 신경 쓰고 골치 아프다고 직분도 받지 않으려고 한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런 길은 편하고 홀가분할지 모르지만 그러나 천국 가는 길은 아닙니다. 천국 가는 길은 오직 한 길, 곧 주께서 걸어가신 고단하고 힘들었던 고난의 길, 좁은 길로 가는 것입니다. 눅13:24절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중에 네가 좁은 길을 가고자 구하여도 못갈 자가 많을 것이라는 말씀이 무섭게 들립니다.
여러분!!! 오늘도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권세와 영광을 얻기 위해 사단이 제시하는 쉽고 빠른 길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단이 열어 놓은 길은 쉽고, 편하고, 안락한 것 같지만 사실은 사망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기에게 절하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주겠다는 사단의 유혹을 물리치고, 오직 주님처럼 하나님만 경배하는 길이 좁고 협착한 길을 걸어가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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