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CNrzvdcU9SE?si=B06ZusL_Q9cWXc4c
오늘도 식당에서 일하고 돌아와서 별 생각없이 유튜브나 뒤적이다가 알고리즘이 흥미로운 영상 하나를 물고 왔습니다. 요즘 우연찮게 금쪽이 어쩌구하는 프로를 유튜브로 계속 봐서 그런가 이런 영상이 뜨네요.
아주 담백하게 요약하자면, 비교연구를 해보니 우리나라 대학교육은 '나의 생각'을 용납치 않으며 출제자의 의도만 수용하고 줄줄 외우게만 만드는 반면에 미국의 대학교육은 '나의 생각'에 열려있으며 출제자의 의도에 대해 비판적 사고를 용인한다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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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러한 한국사회의 경향은 학교와 대학바깥에서도 이어집니다.
당장 취직하려고 면접보려면 결국 예상질문과 그에 '적절한' 대답을 달달 외워서 녹음기마냥 재생해야하며, 입사후에도 이른바 '적절한' 처세술에 따라 말과 행동을 해야하며, 심지어 인생에도 '적절한' 궤도가 있어서 XX살까지 YY를 못하면 한심한 놈 취급당하며 입사나 아직은 물론이고 인간관계와 사회활동에까지 지장을 받죠.
물론 어느 사회나 이런 성향은 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비투스(Habitus)라는 개념은 나오지도 않았을테니까요. 다만, 정도의 측면에서 한국사회는 유독 심하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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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러한 한국사회의 경향.
다시 말하자면, 특정한 생각외의 다른 말과 사고를 전부 비정상으로 취급하여 실제 차별까지 실행하는 우리사회의 경향은. 인간 그 자체를 전쟁의 대상이자 영역으로 삼는 인지전(Cognitive Warfare)에 우리 자신들을 더욱 취약한 존재로 전락시킬 것입니다.
저의 이런 생각은 근본적 답을 추구하는 철학의 층위로도 다룰 수도 있고, 계급과 계층을 논하는 정치경제학의 층위로도 다룰 수도 있고, 개인의 트라우마와 각종 증세를 논하는 심리학의 층위로도 다룰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 글에서 제가 논하고자 하는 층위는 국가안보(National Security)입니다. 네. 저는 상술한 우리사회의 경향은 국가안보의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저는 인지전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배워본 적이 없으니까요. 다만, 제가 추정하기에 인지전의 근간이 되는 원리는 '자극-반응모델'입니다.
외부자극 X에 대하여 특정 유기체(개인 혹은 집단)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지도식(schema)에 의해 특정한 반응 Y를 내보인다는게 제가 이해하고 있는 '자극-반응모델'입니다.
그리고 인지전은 실행자에게 이득을 주는 타겟의 반응 Y를 발현시키기 위해, 타겟의 인지도식을 파악하여 Y를 발현시키기에 적합한 외부자극 X를 선정하여 타겟에게 가하는 일련의 작위적인 조작행위(manipulation)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극-반응모델'에는 한가지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바로 유기체는 늘 똑같이 반응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겁니다. 외부자극 X를 가한다고 해도 언제나 Y로만 반응하진 않는다는 겁니다. 엉뚱하게도 Y가 아니라 Z로도 반응할 수 있다는 것이죠.
마치 같은 집에 사는 한가족은 대개 다같이 코로나19에 감염되나, 드물게 누군가는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일이 있듯이 말입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할까요? 대개 '그 누군가는 다른 가족구성원과 달리 코로나19에 대한 면역력을 가지고 있었다'라는 문장으로 설명될 겁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그 가족구성원만 코로나19에 대한 면역력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그 사람만 백신을 맞았다는 류의 통제변인들을 제외한다면, 유기체 고유의 '다양성diversity'이라고 밖에 설명할 방법은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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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인지전의 실행자가 타겟(개인 혹은 집단)에 대하여 자극 X를 가하여도, 타겟의 인지도식이 정형화되어있지 않으며 다양성을 보전하고 있다면, 반응 Y는 충분히 일어나지 않거나 반응 Z와 같이 의도되지 않은 결과가 도출되어 실행자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것입니다.
위의 문단에서 '타겟의 인지도식이 정형화되어있지 않다'를 일상용어로 번역해보자면 '비판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개인의 측면)'라고 바꿔쓸 수 있으며, '다양성을 보전하고 있다'도 역시 일상용어로 번역해보자면 '다원주의가 일상화되어있다(집단의 측면)'로 바꿔쓸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다시 우리 자신과 우리사회를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겁니다.
과연 우리들은 개인의 차원에선 비판적 사고를 가지고 있으며, 집단의 차원에선 다원주의가 일상화되어있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요?
불행하게도 우리가 겪은 교육과 사회에서의 경험들은 비판적 사고와 다원주의와는 거리가 멉니다. 그저 나 자신릐 '적절함'을 나의 생사결정권을 쥔 상사들에게 증명하기 위한 천편일률적인 술수들을 갈고 닦아왔을 뿐이었죠.
그러하니 인지전의 실행자가 우리들의 '적절함'에 대한 인지도식을 활용하는 외부자극을 가해온다면, 우리사회는 그 실행자의 의도대로 반응할 개연성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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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미 우리사회에는 이런 류의 '자극-반응모델'이 있습니다. 대표적인게 바로 '빨갱이'입니다.
우리 현대사에서 오랫동한 집권해 온 독재권력은 자신들의 뜻에 반하는 것들에 대하여 '빨갱이'란 인증마크를 붙이곤 했습니다.
그러하다보니 사해동포주의(Cosmopolitanism)에 속하는 것들조차 공산주의(Communism)로 여겨지게 되어 혐오와 배척이라는 반응을 일으키게 되었죠.
또한 80년대 들어서는 이른바 '지역주의'가 군부정권에 의해 발명되어 타지역에 대한 혐오와 배척의 반응을 조성하고 활용되었으며, 비교적 최근에는 이명박 정부가 국정원을 동원하여 민주화 세력과 민주당에 관련된 것들에 대하여 혐오와 배척의 반응을 일으키는 작업을 인터넷상에서 조직적으로 실행하였고 말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이제 '빨갱이'는 미국과 중국의 대결상황속에서 그 외연을 확장하였습니다. 이른바 '친중'이라는 인증마크로 말입니다. 그 어떤 정권이든 간에 중국과의 '전략적 파트너' 관계를 종결시키지 않는 이상 중국과의 단교는 실현시킬 수 없습니다. 다른말로 하자면 중국과 일정수준의 친교는 늘 있을 수 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과의 친교를 보이는 정권은 무조건적 반사로 '친중' 딱지를 받게 되는 겁니다. 이는 여당과 야당 지지자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자극-반응모델'입니다.
물론, 이 '친중'이라는 자극-반응모델은 당연히 시진핑 정권 그 자신의 행보에 의해 자연적으로 발생되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인지전의 소재로 활용하기에 매우 좋은 자극-반응모델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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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도 깊고해서 이만 글을 줄이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제 군말은 끊고 정말 제가 쓰고자하는 바를 쓰고자 합니다.
'나의 생각'이 없는 천편일률적인 우리사회에 대해 우리 모두가 다 이건 문제라고 동의하고 있습니다.
4차 산업시대의 창의력이니, 국가 경쟁력이니,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철학이니, 아이들의 발달과정이라던지 온갖 문제들의 원인으로 '나의 생각'이 없는 사회를 지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서 저는 국가안보의 차원에서도 '나의 생각'이 없는 사회는 문제라고 지적하고 싶습니다. 바로 인간이라는 영역(Domain)까지 전쟁의 공간-대상-수단으로 끌어온 인지전을 고려하면 말입니다.
'나의 생각'이 있는 비판적 사고, 그리고 '나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다원주의, 그리고 이것을 모두 가능케 하는 조건인 '민주주의'.
이러한 지점에서 민주주의는 이젠 단순히 사상과 세력의 문제가 아니라, 인지전과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사안이 되었음을, 저 자신도 방금 전에야 깨달았음을 고백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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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성적은 제가 더 좋았지만 연구는 제 동기가 더 잘하는게 생각나네요 ㅎㅎ
바뀌거나 구한말 시즌2 찍거나인데 아무리봐도 제때 바뀔거 같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