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25일 온고을교회 주일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 만사형통에 대하여 》
시 1:1~6
〈 믿는 자의 자기 검열 〉
“나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 거 맞아?”
저에게 평생 따라다니는 질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이런 질문 하면서 사세요, 아니면, 전혀 안 하고 사십니까?
솔직히 다른 분들은 잘 모르겠어요, 근데 이 질문이 저에게서 떨어지지를 않습니다.
이 질문은 좋은 질문일까요, 그저 그런 질문일까요?
지나치면 좌불안석,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늘 댕댕거리면서 살게 될 우려가 없지않습니다.
어찌보면, 배짱이 없는 거지요!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때로는 ‘배째라~’하는 배짱도 필요합니다.
제가 생각해도 저는 배짱이 조금, 아마 2%쯤(?) 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하는 예배도 “하나님! 저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 거 맞지요?”
하는 태도일 것입니다. “저 지금 잘 하고 있으니 복 주옵소서!”입니다.
시편 1편은 “복 있는 사람은~”으로 시작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를 선포합니다.
시편 1편을 읽을 때는 자연히 “나는 복 있는 사람인가?”라고 질문하게 됩니다.
어때요, 여러분은 복 있는 사람인가요? 복 있는 사람, 손 한번 들어볼까요?
잘 들으셨습니다. 할렐루야, 예배하는 우리, 복 있는 사람이고말고요~ 할렐루야~
“나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수시로 확인하는 것 꼭 필요합니다.
복 있는 사람으로 스스로 확인하면서 복을 누리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주변에서 볼 때, “저 사람은 복 있는 인간이야, 맞아!” 이렇게 됩니다.
또 하나님께서 보실 때도 그렇습니다. “너는 복 있는 자로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이 음성을 듣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섯 번 해 봅시다! “나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하려면, 또 “나는 복 있는 사람인가?”를 질문하게 됩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 “나는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 이 질문하게 됩니다.
☞ “믿는 자의 자기 검열”입니다.
〈 리트머스 시험지 〉
시편 1편을 읽으면서 우리는 자기 검열을 하게 됩니다.
복 있는 사람이라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여러 가지 항목이 시편 1편에 나옵니다.
① 내가 지금 악인들의 꾀를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니지?
② 지금 서 있는 이 길이 죄인들의 길은 아니지?
③ 내가 앉은 이 자리는 오만한 자들의 자리가 아니지?
④ 나는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성도가 맞지?
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있는 거 맞지?
이상의 다섯 가지가 시편 1편 1절로 2절에 나옵니다.
성경은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습니다.
성경을 펼치면, 성경 말씀이 나 자신을 진단해 줍니다.
1절과 2절에 나오는 다섯 가지 항목은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습니다.
“악인들의 꾀” “죄인들의 길” “오만한 자들의 자리” 혹시 이 자리에 있지는 않느냐?
자기 점검을 통해 확인하고, 혹여 잘못되어 있다면 얼른 돌이키게 됩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 합니다.” “말씀을 주야로 묵상합니다.”
이것이 시편의 은혜입니다. 할렐루야~
3절에 가면, 약간 상황이 심각해집니다.
(3절)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3절을 통한 “자기 검열” 항목은 앞의 5가지에 비하여 강도가 셉니다.
3절에 제시하는 “자기 검열” 항목은 무엇입니까?
“나는 지금 모든 일에 형통한 사람인가?”
이 점검표는 1~2절의 5가지 항목과 차원이 다릅니다.
1~2절의 5가지 항목은 ‘아니다’싶으면 얼른 돌아서면 됩니다.
“악인들의 꾀” “죄인들의 길”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서 얼른 돌아설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즐거워하지 않고 있다면 돌아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지금 모든 일에 형통한가?” 이 항목과 맞닥뜨리면, 어떻습니까?
이건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 나는 모든 일에 형통한 사람인가? 이 질문 앞에 성도는 멈칫하게 됩니다.
〈 형통하지 못한 인생 〉
설교 모두에 “나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 거 맞아?”라는 질문을 늘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질문을 하면서, 제가 예수 믿고,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었는데, “나, 형통해?”
이 질문과 맞닥뜨리면 늘 자신이 없습니다.
목사씩이나 되었는데, “나는 지금 형통합니다!”라고 자신있게 말하지 못합니다.
분명히 문제이지요?
1절, 2절의 5가지 항목에 “예~”라고 할 수 있다면,
“나는 지금 형통합니다!”라는 대답이 뒤따라야 합니다.
지금 설교를 들으시는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 오늘은 그래서 형통, 만사형통에 대해서 알아보고 은혜를 누리고자 합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네 글자 말 중에서 “만사형통”은 다섯손가락 안에 들 겁니다.
새해 인사로서 “새 해에는 만사형통하세요!”가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이 인사의 뜻이 무엇입니까?
새 해에는 당신의 뜻대로 잘 되어 가기를 바랍니다.
새 해에는 당신이 마음먹은대로 다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형통 [亨通] 1. 뜻대로 잘되어 가다 2. 모든 일이 뜻대로 잘되어 감
그런데, 돌아보면,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는 중에 제가 마음먹은 대로 된 것이 거의 없습니다.
저는 공부를 잘 해서 일류대학을 가고 싶었습니다.
성공하고 출세하여 주위로부터 우러름을 받고 싶었습니다.
남들이 모두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결혼하여 아내와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싶었습니다.
자녀들은 아버지가 못 다한 꿈을 이루는 효자효녀이기를 바랬습니다.
세계 제일의 기업가가 되어 억만장자가 되고싶다든지, 유명인이 되고싶지는 않았습니다.
어찌 보면, 누구나 품게 되는 소박한 꿈입니다.
그런데 저의 이러한 희망 중에서 실제로 이루어진 것은 거의 없습니다.
한 마디로 저의 삶은 “형통한 인생”이 아니었습니다. 어찌보면, 루저, 실패자입니다.
그런 중에 기독교인이 되었고, 우여곡절을 거쳐 목사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 믿고 복 받은 자, “그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로다”입니다.
☞ 이것이 어찌 된 일일까요?
〈 세상의 형통 vs 성경의 형통 〉
형통을 주제로 설교 준비를 하는 중에, 우리 교회 박*수 목사님의 설교가 떠올랐습니다.
그때 박*수 목사님이 창세기 39장을 본문으로 설교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창 39:2~3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형들에게 미움받아 노예로 팔렸습니다.
노예로 살아가는 요셉을 보고,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이 주인 이름이 “보디발”입니다. 보디발의 안목이 매우 독특합니다.
자기 집에 노예로 들어와 살고 있는 요셉을 보며,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다!”
보디발이 생각하는 “형통”과 우리가 생각하는 “형통”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우리가 보기에 요셉은 천하에 딱하기 그지없습니다.
노예로 인신매매되어 천리 먼길 타국에서 종으로 삽니다.
요셉에게 형통할 것이 무에 있습니까마는, 주인 보디발은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요셉을 형통하게 하셨다.” 그후 요셉은 어떻게 됩니까?
창 39:2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보디발의 아내가 성폭행했다고 거짓 발고를 하여 요셉은 감옥에 갇힙니다.
감옥에서 갇혔는데,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요셉에 비하면 그래도 훨씬 나은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요셉처럼 인신매매 당하지도 않았습니다.
억울하게 성폭행 누명을 쓰지도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감옥에 갇히지도 않았습니다.
감옥에 있는 요셉도 범사에 형통한데, 왜 나는 형통하지 않은지, 묵상합니다.
박*수 목사님이 창세기 39장 말씀으로 설교하실 때, 제가 “형통”을 알았어야 합니다.
☞ 지금 생각하니 그 귀한 설교를 한 쪽 귀로 듣고, 한 쪽 귀로 흘렸습니다.
〈 성경의 만사 형통 〉
다시 한번 상기합니다. 형통의 뜻이 무엇이라 했지요?
형통 [亨通] 1. 뜻대로 잘되어 가다 2. 모든 일이 뜻대로 잘되어 감
우리 국어사전 참 재미있어요!
형통의 뜻풀이를 하면서, 주어를 생략했어요!
“뜻대로 잘 되어가는 것”을 형통이라고 풀이하면서 누구의 뜻인지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때, 박*수 목사님이 설교하실 때,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형통이란 내 뜻대로 잘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잘 되는 것이다!”
그 귀한 설교를 듣고도 제가 돌아서서, “내 뜻대로 되어야 형통이다!” 이러고 있습니다.
목사가 이러니, 성도 여러분은 어떠하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받아야 할 은혜는 자명해졌습니다.
“형통이란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것입니다!”
잘, 깊이, 뼈에 사무치도록, 새겨서 은혜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런데 돌아서면 이런 생각이 꼬리를 뭅니다.
“요셉은 나중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잖습니까? 그러니까 형통이지요! 나는 이게 뭐야?”
아, 이래서 설교는 듣고 일어서면 안개걷히듯 사라지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셉은 인신매매되어 노예가 되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성폭행범으로 고소당했습니다.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끝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나라를 구하고 세상을 구원했습니다.
그러니, 이전 고생이 모두 “만사형통의 전조가 아닙니까? 그런데 나는 아니잖아요!”
요셉은 인신매매, 노예, 감옥살이를 거쳐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국무총리로 성공하고 출세한 것으로 그 이전의 간난신고를 “만사형통”에 포함시킵니다.
저도, 여러분도 인생의 끝에 가서 요셉처럼 대박을 터뜨린다면, 동의가 될 겁니다.
☞ 우리 인생의 끝에도 요셉처럼 “만사형통” “운수대통” “대박”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 인생의 반전 〉
여기서 성경적 만사형통의 의미를 다시 한번 정리해 봅니다.
성경적 만사형통은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것”입니다.
성경적 만사형통은 “하나님과 나와의 통신이 두절되지 않는 것”입니다.
형통에서 ‘통’자는 통할 ‘통’입니다. 통한다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제가 늘 강조합니다. “소통천국, 불통지옥”입니다.
함께 있는 사람과의 소통, 막히면 지옥입니다. 뚫리면 천국입니다.
“뚫리면 천국” 이것이 “만사형통”입니다.
아무리 가난하고, 모든 것이 꼬이고, 되는 일 없어도, 부부간에 소통만 되면 천국입니다.
아무리 부유하고, 모든 것이 잘 풀리더라도, 부부간에 소통 안 되면 지옥입니다!
“형통이란 하나님과 나 사이, 막혔던 소통이 뚫린 상태입니다!”
☞ 요셉의 인생 말년, 애굽의 총리가 되는 반전, 이야기를 하고 설교를 마칠까 합니다.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요셉의 출세가 없었다면 형통을 받아들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요셉을 통하여 한 나라를 구합니다.
하나님은 요셉의 성공과 출세가 있어야 사람들이 만사형통을 알게 될 줄 아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그러면 저와 여러분의 인생에도 “막판 대박 사건”을 예비하지 않았을까요?
☞ 예수님이 2천년 전, 이 땅에 오셨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고 선포하십니다.
구약 시대에는 ‘천국’ 개념이 없었습니다. 구약시대 사람들은 천국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비로소 천국을 선포하셨습니다. 믿고 구원받은 이들 모두 천국에 들어갑니다.
우리가 천국에 입성하는 사건, 요셉이 애굽총리가 되는 것은 감히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천국 사건” 우리 인생의 최대 반전, 대박 사건입니다.
천국의 소망을 그리면서 오늘 우리의 삶이 고단하고 고난이 있어도 “만사형통”입니다.
“내 인생의 대단원은 천국 사건이다!”
이 진리를 망각하지 않고, 자기 검열을 해야 할 줄 믿습니다.
설교 시작하면서 “믿는 자의 자기 검열”을 말씀드렸습니다. “나 지금 잘 하고 있는 거지?”
이렇게 자기 검열하면서, “내 인생의 대단원은 천국 사건이다!”를 아울러 확인해야 합니다.
“자기 검열” 지표가 시편 1장입니다. 1~2절에 나오는 5가지로 자기검열을 합니다.
“자기 검열”과 함께 “자기 확인”을 해야 합니다.
“나 지금 잘하고 있는 거지?”
“내 인생 대단원은 천국 사건이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