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1일 토요일 흐림. 대구 경북대에 들렸다가 영주로
대동한문학회 춘계발표회가 경북대학교에서 있다고 하여, 서울 친구 2명과 같이 거기에 들려 저녁까지 얻어먹고서 영주의 배점리라는 마을에 와서 잤다.
서울 양재역(말죽거리) 1번 출구에서 동행하기로 한 Y박사( 83세, 화학전공)를 만나고 차를 가지고 나온 P군(58세, 퇴계철학전공)를 만나서, 그 차를 타고서 오전 10시에 출발하였다. 우리 세 사람은 요즘 자주모여 한문 공부를 함께 하고 있는 동호인들 이다. 원주 쪽으로 내려가는 고속도로가 너무 붐비어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평택까지 내려오다가 제천 쪽으로 가서 천둥산 휴게소에서 좀 쉬고, 안동 휴게소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사서 먹은 뒤에 경대 대학원의 발표장까지 도착하니 오후 3시가 좀 넘었다.
이번 발표는 금년이 “개”의 해라고 개가 문학과 그림에 어떻게 나타나는지 하는 문제를 주제로 삼아서 오후 2시부터 4명이 발표를 한다고 하였고, 서울서 동행하는 박군은 그 주제와는 관련 없이 이퇴계와 기고봉의 대화를 주제로 쓴 글을 1편 맨 마지막에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래서 겨우 당자의 발표시간에 닿을 수는 있었지만, 이미 시작된 발표회의 중간에 문을 열고 들어간다는 게 매우 미안하게 생각되었다. 내려오는 도중에 한번만 쉬고 왔더라면 2시 개회시간까지는 올 수 있었을 터인데…
주제를 정하여 놓는 발표는 원래 별로 문제로 삼을 만한 것이 드물어서 그런지 대체로 내용이 부실한 것 같고, P군의 개별 발표도 준비가 좀 모자라는 것 같아서, 별로 만족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2년 만에 와본 경대의 교정에는 봄이 와서 매우 아름다웠다.
이번에 내려오면서, 별도로 아는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더니, 특별히 찾아와서 만난 사람은 없었고, 학회가 끝난 뒤에 서문 곁에 있는 음식점에 가서 회식을 한 뒤에, 우리 일행 3명은 다시 차를 몰고서 영주에 와서 하룻밤을 잤다. 순흥의 배점리라는 마을의 한 펜숀의 황토방 하나를 미리 예약하여 두었기 때문이다.
이 마을에 나와 엄박사의 친구 한 사람이 경대에서 근무하다가 퇴직하고서, 본거지는 서울근처로 옮기면서, 자기의 고향 근처인 이 마을에도 전원 주택을 한 체 마련하여 두고서, 지금 여기 내려와서 봄날을 지내고 있다기에, 그 사람에게 물어서 이 집을 예약하여 놓고 잔 뒤에 내일 아침에 그 사람과 만날 예정이다.
별 설비도 없는 황토 온돌방에 일행 3명이 잤는데, 나와 박군은 별 탈이 없었으나, 나보다 나이가 3살이나 많은 엄박사는 밤에 잘 때 코를 몹시 골기 때문에 같은 방에 자기가 매우 미안하다고 하면서, 배낭에 넣고 온 스리핑 백을 꺼내어 뒤집어쓰고서 자면서, 만약 자기의 코고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귀를 막고 자라고 하면서 딴 사람이 쓸 귀마개까지 준비하고 왔다. 그러나 나는 피곤하게 자느라 그 사람이 코 고는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고 잘 잤는데, 박군은 그 소리를 듣고서 좀 불안하기도 하였다고 하였다.
2월 22일 일요일 흐림. 무섬 마을에 갔다가 차 고장이 나서 상주까지 견인하여 다 놓고서, 거기서 또 하루 밤을 잤다.
일행이 모두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야산 위로 솟아오르는 아침 해를 구경하고, 대장간을 하면서도 이퇴계 선생을 존경하여 그 스승의 철상을 만들고, 선조대왕이 돌아가시자 삼년상을 입었다는 배점이라는 전설적인 인물의 정려각을 찾아보면서 산책을 하고 있는데, 이 마을에 와서 봄을 지내고 있는 그 친구가 찾아와서, 함께 죽계 구곡이라는 전설이 전하는 골짜기까지 차를 몰고 들어가서 몇 10분 동안 산책한 뒤에, 어제 잤던 산장을 돌아가서, 그 친구가 아침을 사서 같이 얻어먹은 뒤에, 그 사람의 산장으로 가서 과실과 차를 대접받고 한담을 좀 한 뒤에, 그 산장 촌 일대를 둘러보고 구경하였다.
나는 이 친구의 이 산장에 몇 해 전에도 한번 와서 자고 간일도 있으나, 그 때는 다만 이 산장이 위치가 소백산에 가까워 다만 산책하기가 참 좋다는 인상뿐이었으나, 지금 다시 와서 보니 꽃 밭 같은 게 훨씬 더 잘 조성이 된 대다가 계절이 한참 봄이 무르익는 판이라 정말 모든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게 보였다.
오전에 무섬이라는 하회 비슷하게 강으로 둘러싸인 마을 구경을 갔다. 관광객과 그들이 타고 온 차들이 너무 빽빽하게 붐비었다. 이 마을의 명물인 나무다리는 우리가 어릴 자주 보던 시골 마을의 엉성하던 다리와는 다르게 너무나 깔끔하게 놓여 있어 좀 조작 티가 나 보였다. 그러나 그 위에도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조금 구경을 하고 되돌아 나오는 데, 박군의 차가 고장이 나서 견인차를 불러서 영주까지 끌어다 놓고서, 시내의 전통시장에 가서 산나물을 좀 사고, 소고기 국밥과 물 회를 사서 점심을 먹은 뒤에, 고장난 차는 박 군이 견인차에 달고서 상주로 나가고, 나와 엄 박사는 버스로 점촌까지 가서, 상주에서 다시 나온 박군과 상주에 산다는 그 사람의 처삼촌이라는 사람이 몰고 나온 차를 타고서, 그 처삼촌이 살고 있는 촌집으로 갔다.
상주 읍에서 차로15분 정도면 닿는 곳이라고는 하나, 아주 깊은 산골짜기 같이 느껴졌다. 이 깊은 산골짜기를 통째로 이 집 주인이 사서 나무도 심고, 논밭 농사도 하면서, 꼭 청학동 비슷하게 어떤 토속전인 종교 단체를 하나 이끌고 있는 것 같기도 하였다. 큰 방 하나에는 제단도 차려 놓고, 또 다른 방에는 여러 사람이 합숙을 할 수 있는 시설까지 갖추어져 있다.
박군의 처삼촌이라는 이 집의 주인은 젊을 때에 서울의 어느 유명한 미술대학의 강사였다고도 하는데, 지금은 여기 이 벽촌에 와서 혼자 살면서 이렇게 수도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자못 신기한 느낌이 들었으나 별로 말이 없이 손수 음식을 해서 대접하고, 또 저녁 제사상을 차려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아침에 상주읍으로 나와서 차를 찾아 가지고, 다시 일행 세 사람이 타고서 서울로 향하여 올라오다가 충주호 근처에 있는 엄박사가 수 10년 전에 사두고 거의 방치하고 있다는 산지를 잠시 찾아 가보았다. 깊은 산 속인가 하였더니, 인가에 가까운 야산인데, 약 2만 평 정도가 된다고 하였다. 관심을 가지고 개발을 하면 여러 가지 용도로 이용할 수 있을 것같이도 보이는데, 이미 노령이고 보니 어떻게 할지 아무런 의욕도 없다고 한다. 가족은 모두 미국에 살고 있으니, 조카들이라도 시켜서 관리를 잘하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이 생각되었다.
하루 종일 비가 내렸는데, 차를 좀 고친다고 하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유리를 닦는 윈도어 와이퍼가 말을 잘 듣지 않으니 좀 불안하였다.
그래도 어떻든 모처럼 2박 3일간 봄날 여행을 하게 된 것을 즐겁게 생각한다. 비록 월요일에 서울서 있는 예약은 모두 다 취소하고 말았으나…5월 달에 다시 한 번 이렇게 나서서 진부령에 갔다고 오자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