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 시인 시집 『동백 졌다 하지 마라』
4‧3 영령들에게 바치는
제주 토박이의 첫 4‧3 시조집
한그루시선 43번째 시집은 제주4‧3 77주년을 맞아 묶은 김영란 시인의 4‧3시조집이다. 제주 토박이가 펴낸 첫 4‧3 시조집으로, 총 5부에 걸쳐 59편의 시를 담았다.
시집 전체가 제주4‧3을 다루고 있는바, 시인은 시집의 첫머리에 “4‧3 때 억울하게 숨져간 모든 4‧3 영령들께 이 시집을 바친다”는 헌사를 전하고 있다. 4‧3의 생생한 증언에서부터 수형인, 행방불명인, 유족과 도민들의 신산한 삶, 그리고 제주와 한국을 넘어 세계 속에서 4‧3의 의미를 되새기는 등 4‧3을 바라보는 시인의 집요하고도 깊은 시심(詩心)이 담겼다.
김동윤 문학평론가는 해설에서 “시조 고유의 맛깔을 잘 살리면서도 일상어를 한껏 담아내고 있음이 돋보인다.”며 “정형률에 갇혀 있다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을 정도의 자연스러움”에 주목했다. 또한 “4‧3운동의 당당한 주체로서 그 역할을 줄기차게 수행하는 가운데 나이 들수록 김영란의 혁명적 색채는 더욱 붉어져” 가고 있음을 밝히며 “이번 시조집을 통독하면서 나는 김영란이야말로 지지 않는, 결코 질 수 없는 열정의 꽃 그 자체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 표사
김영란의 시집은 우리 현대사의 비문이자 제주4.3의 백비이다. 우리 현대사의 가장 큰 치욕은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죽은 자 대신 살아남은 자가 ‘증인’이 되는 세상은 슬픈 세상이다. 시인이 ‘곡비’처럼 대신 울어주는 세상은 더욱 슬프다. 김영란 시인은 제주 4.3과 광주 5.18, 아프가니스탄과 베트남 학살의 슬픔까지 섬세하고 간절한 언어로 대신 울어준다. 할머니가 거품이 게워질 때까지 보말을 삶듯, 그렇게 제주의 깊은 상처를 우려내 마침내 시라는 대바늘로 보말똥을 파내듯 4.3의 진실을 증언한다.
김영란의 이 시집 속에는 4.3영혼의 갈피들이 한 장씩 포개져 있다. ‘슬픔의 정점에선 눈물 나지 않았네’(어떤 이별), ‘제주섬 바람소리엔 뼈 맞추는 소리가 난다’(삽시), ‘살처분 짐승새끼’(어떤 이별) 같은 시에서 보듯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내 뼈들이 무너지고 피가 하늘로 올라간다. ‘고구마’, ‘꽃 피지 않는 봄’ 같은 시들은 이 시집의 백미다. 해마다 4.3은 온다. 꽃 지면 아프다. 꽃 피면 더 아프다.
-이산하(시인)
■ 저자 소개
김영란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당선되면서 문단활동을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에 4·3진상규명과 4·3희생자명예회복을 위한 진상조사연구원으로 제주4·3도민연대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시집으로 『꽃들의 수사修辭』, 『몸 파는 여자』, 『누군가 나를 열고 들여다볼 것 같은』이 있고, 작가가 만난 4·3 사람들 『봄은 가도 봄은 오네』, 『돌아보면 그가 있었네』 등 공동집필서 다수가 있다.
■ 序詩
생각대로 산다는 건
쉽지만은 않았어요
머리와 가슴이
엇갈린 그 길 위로
바람이
기척할 때마다
휘청이는
당신과 나
(서시, ‘나무의 시’ 전문)
■ 책 속에서
탄압이면 항쟁이다
마지막 저항 같은,
동포의 학살을 거부한다
운명의 뿌리 같은,
핏줄이 핏줄에게 보낸
무언의 당부 같은,
- ‘동백 졌다 하지 마라’ 전문
이른 봄
쇠창살로
햇살이 숨어든다
어느 날 빨갱이 기집이라고 느닷없이 잡혀갔을 때 내 등엔 세 살짜리 딸이 업혀 있었고, 새 생명 하나 움트고 있었지. 이유도 물을 새 없이 몽둥이찜질 당했지. 비바람 치던 어느 겨울 밤 난생 처음 배를 타 봤어. 어디로 가는 건지 왜 나를 끌고 가는지, 바들바들 떨고만 있었어. 죽음보다 더한 공포, 물을 수가 없었어. 동물적 본능이었을까 시퍼렇게 참던 아이. 맞은 다리 찢기어 썩어들고 진물 나고 흰 뼈가 다 드러나도록 신음 한 번 안 낸 거야. 어미라는 작자가 제 새끼 아픈 것도 모른 거야. 마지막 의식인 듯 어미젖 부여잡고 싸늘한 입맞춤으로 작별인사 하고 갔어. 전주형무소 공동묘지, 거기가 어디였을까? 묻어두고 안동으로 이감되는 날, 벚꽃 핀 걸 보았어.
딸아이
옹알이처럼
내려앉고
있었어
-‘벚꽃이 피면’ 전문
한 입 베어 물면 가슴께로 오는 통증 내 나이 다섯 살 아버지가 건네신, 마지막 인사하듯이 손에 꼭 쥐어주신,
후다닥 나가시는 길 뒤따르던 총소리, 영문 모른 어머니 내 손 잡고 뛰었지 솔밭 기어 산등성이 올라 토끼처럼 숨었지 별들의 보호 받으며 밤이면 마을로 내려왔어 도둑처럼 제집 털어 해 뜨기 전 산으로 갔어 오르고 내리고 오르고 내리고 산이 집이었지 나를 지킨 집이었지 그게 오름이란 걸 커서야 알았어
산사람이 폭도라면 우리도 폭도였지 폭도가 빨갱이라면 우리도 빨갱이지 어느 날 군인에게 잡혀 학교에 갇혔어 예쁘기로 소문난 고모 어디론가 끌려갔지 돌아오지 않았어 물을 수 없었지
풀려나 집으로 와도 집은 집이 아니었지 아버지 찾아 고모 찾아 집에 가듯 산으로 갔어 토벌대다! 하는 찰나 어머니가 꼬꾸라졌어 십 년 넘게 옆구리에 총알 박고 살아야 했지 명 긴 게 벌이라던 어머니, 팔순 넘게 사셨어
아버지 대신 편지가 왔지 마포형무소 소인을 달고
그것으로 끝이야 어디에도 아버지는 없었어 정뜨르 비행장에서 처형 소문이 돌았지 제 손으로 구덩이 파래서 총 쏘아 죽였다지 작은아버지는 거기서 죽었어
기막히고 기막히고 억울하고 억울해 다섯 살 그 가을을 잊어본 적이 없어
아직도 가슴에 걸려 내려가지 않아
-‘고구마’ 전문
울음마저 잊어버린
깊은 눈의 새 한 마리
무거운 짐 혼자 지고 먼 길 걸어왔지요 판결물도 없는 재판 하염없는 옥살이 말문 닫은 동백꽃 고개 숙인 봄마다 웃음도 울음도 저만치 또 멀어져 백수를 눈앞에 둔 백발의 할머니 70년 만의 재심 법정 휠체어 타고 나와
최후의
진술 한마디
나, 죄 어수다!
- ‘딱 한마디’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