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바로 선 사람’이라는 뜻의 호모에렉투스(Homo erectus)는 네안데르탈인이나 데니소바인, 호모사피엔스 같은 인간족(hominin)의 조상으로, 현대인의 직계 조상 중 하나에 속한다.
이리저리 이동하며 살았던 호모에렉투스는 약 200만 년 전 아프리카로부터 아시아와 유럽으로 퍼져 나간 뒤 고대 세계 여러 곳에 흔적을 남겼다.
그러다 약 40만 년 전 거주했던 여러 곳에서 자취를 감췄고, 예외적으로 유적이 비교적 풍부하게 발견된 곳이 인도네시아 자바 섬에 있는 응간동(Ngandong)이라는 곳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지금까지 이 유적지에 호모에렉투스가 살았던 정확한 연대에 대해 합의를 하지 못했었다.
미국 아이오와대가 이끄는 국제연구팀은 과학저널 ‘네이처’(Nature) 18일 자에 발표한 새로운 연구에서 호모에렉투스가 마지막으로 응간동에 살았던 연대는 10만 8000년 전에서 11만 7000년 전 사이라고 발표했다. 이 연구에는 호주 맥쿼리대와 인도네시아 반둥 과학기술연구소도 참여했다.
복원한 호모에렉투스의 모습(프랑스 토타벨 박물관) ⓒ Wikimedia /Gerbil
화석과 주변 토지 환경까지 연대측정
연구팀은 이 호모에렉투스의 정확한 생존 연대를 밝혀내기 위해 먼저 12개의 호모에렉투스 두개골 상부와 다리 경골이 발견된 동일한 지층(bonebed)에서 나온 동물 화석의 연대를 측정했다.
그리고 이어서 응간동 아래위층 단구의 주변 토지 형태에 대한 연대를 측정해 지구상에서 마지막까지 생존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인류의 정확한 기록을 집어낼 수 있었다.
논문 교신저자이자 아이오와대 인류학과 교수인 러셀 시오천(Russell Ciochon) 교수는 “이 유적지는 세계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호모에렉투스가 마지막으로 모습을 보였던 곳”이라며, “이들이 언제 멸종됐는지는 단정할 수 없으나, 마지막으로 살았던 때의 연대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호모에렉투스가 이곳에서보다 더 늦게까지 살았다는 증거는 없다”고 덧붙였다.
중기 플라이스토세(78만 1000년~ 12만 6000년 전) 호모이렉투스가 사용한 아슐리안 석기가 발견된 지역. 인도네시아 자바섬과 함께 우리나라 전곡리 구석기 유적도 여기에 포함된다. ⓒ Wikimedia
“연대 배열, 정확하게 일치”
연구팀은 응간동 증거물에 대한 52개의 새로운 연대 측정치를 제시했다. 여기에는 재발견된 화석층에서 발굴한 동물 화석 조각과 퇴적물 그리고 강의 단구에서 나타나는 화석 지역 위아래 연대도 포함됐다.
자바섬 중부 솔로(Solo) 강 인근에 있는 이 지역의 원래 호모에렉투스 유적은 1930년대 초반 네덜란드 탐사대가 발견했다. 이에 앞서 1891년 네덜란드 출신 해부학자 뒤부아가 솔로강 유역 트리닐에서 유명한 자바 원인(Homo erectus erectus) 화석을 발견한 바 있다.
연구팀은 또한 자바섬 남부 산맥의 동굴에서 나온 석순의 연대를 측정해 응간동 남쪽 산들이 언제 솟아올랐는지를 밝혀냈다.
이를 통해 솔로 강이 언제부터 응간동 지역을 통과해 흐르기 시작해 강의 단구가 형성되었는지를 측정할 수 있었다.
시오천 교수는 “연대 배열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하게 일치한다”고 말하고, “이 때문에 논문이 짜임새 있게 작성됐다”고 밝혔다.
논문 공동 제1저자인 키라 웨스터웨이(Kira Westaway) 호주 맥쿼리대 부교수는 “응간동의 연대 측정과 관련된 문제는 지역이 넓었기 때문에 해결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화석은 복잡한 풍경이 형성되는 과정에서의 부산물”이라며, “우리는 대상을 강의 퇴적물과 단구, 단구열(the sequence of terraces) 그리고 화산 활동 환경 내의 화석들로 제한했기 때문에 이 지역의 연대를 집어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응간동 지역 발굴 당시 현장 모습. ⓒ Office of Strategic Communication, University of Iowa
13만 년 전 기후 변화에 적응 못해 도태돼
시오천 교수팀의 이전 연구에 따르면 호모에렉투스는 인도네시아 제도를 건너 160만 년 전 자바섬에 도착했다.
당시는 시기가 잘 맞았다. 응간동 지역은 대부분 초원이었고, 이들이 유래한 아프리카와 같은 환경이었다. 식물과 동물도 풍부했다. 호모에렉투스는 계속 다른 섬들로 옮겨가는 모험을 계속했으나 일부 종들은 자바섬에 고향처럼 정착하거나 머물다 가는 경유지로 삼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13만 년 전 응간동의 환경이 변했고, 그에 따라 호모에렉투스의 운명도 바뀌었다.
시오천 교수는 “기후 변화가 도래했다”고 지적하고, “개방된 초원에서 열대우림(오늘날 말레이시아에서 남쪽으로 뻗어있는)으로 바뀌자 변화된 식물상과 동물상은 호모에렉투스가 활용하던 것이 아니어서 적응할 수가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제연구팀과 함께 호모에렉투스의 마지막 정착지 연대를 측정한 아이오와대 러셀 시오천 교수. ⓒ Tim Schoon, University of Iowa
자연환경 연대측정이 중요한 역할
시오천 교수는 국제연구팀을 이끌고 2008년과 2010년에 응간동에서 발굴 작업을 했다. 이 작업에는 반둥 과학기술연구소의 선임연구원 두 명이 동참했다.
연구팀은 1930년대 네덜란드 탐사팀의 발굴 메모를 활용해 응간동에서 발견된 원래의 호모에렉투스 화석 발굴지를 찾아낸 뒤 재발굴을 시도해 867개의 동물 화석 조각을 수집하고 연대를 측정했다.
이때 웨스터웨이 교수팀은 독자적으로 강의 테라스와 같은 주변 환경들에 대한 연대를 측정하고 있었다. 우연의 일치였다.
시오천 교수는 “우리가 가진 데이터만으로는 응간동 화석의 연대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었다”고 술회했다. 최소한의 연대만을 알고 있어 실제로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를 얘기할 수 없었다는 것.
그는 “테라스와 산을 비롯한 여러 자연환경 특성에 대해 방대한 연대 자료를 가진 웨스터웨이 교수와 협력해 응간동 지역에 대한 정확한 지역 연대와 지형적 맥락을 제공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