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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언어] Satanas와 Diabolus(라틴어) : 사탄과 악마
‘사탄’을 뜻하는 라틴어 ‘사타나스’는 히브리어(Satan, 사탄)을 발음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대적하는 자’, ‘방해하는 자’를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가라!(Vade post me, sátana! 바데 포스트 메, 사타나)”(마태 16,23)고 하십니다. ‘예수님에 맞서 그 앞을 가로막는 자’가 사탄이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말로 ‘악마’를 뜻하는 ‘디아볼루스’가 있습니다. 그리스어 ‘디아볼로스’(δɩάβολος)에서 유래하는데, ‘사이를 가로질러’(dia, 디아) ‘던지다’(ballo, 발로)는 뜻입니다. 곧 ‘사이를 갈라 놓는 자’, ‘이간질하는 자’가 악마입니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일치를 깨뜨려 단절을 낳고, 이웃과의 친교를 분열시킵니다.
사탄이 ‘하느님께 대적하는 악’이라면 악마는 ‘관계를 갈라놓는 악’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순종으로 하느님과 인간을 화해시키시고(필리 2,8 참조), 십자가의 사랑으로 끊어진 관계를 다시 이어 주십니다.(콜로 1,20 참조) 우리가 온전히 그리스도 뒤에 서서 십자가 아래에 머문다면, 사탄과 악마가 들어설 자리는 결코 없을 것입니다.
[교회, 하느님 백성의 친교] (68) 주님 탄생 예고 때의 마리아, 「교회헌장」 제56항
「교회헌장」 제56항은 구약에서 어렴풋이 그려진 여인의 모습이, 때가 차자 주님 탄생의 예고와 함께 마리아에게서 확실히 드러났음을 알려줍니다. 그래서 56항의 첫 문장은 “예정된 어머니의 동의”가 주님 탄생에 앞서 이루어졌음을 언급하며, 하느님께서 “어느 모로 여인이 죽음에 이바지한 것처럼 그렇게 또한 여인이 생명에 이바지하기를 바라셨다.”라고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마리아를 당신 아들의 어머니로 예정했지만, 마리아가 성자의 탄생에 자유롭게 동의하기를 바라셨습니다. 이렇게 창세기 3장에서 하와는 죽음에 기여했지만, 지금 마리아는 생명에 기여합니다. 이것이 성자의 어머니에게 가장 탁월한 의미가 됩니다.
공의회는 이어서 그 어머니께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는 생명 자체를 세상에 낳아주셨고, 이 임무에 적합한 은혜를 하느님에게서 받았다고 말합니다. 하느님 말씀에 대한 마리아의 동의와 수용에는 그것에 맞갖은 하느님의 은혜라는 전제가 있습니다. 실로 동방 교부들이 마리아를 “온전히 거룩하신 분”, “죄의 온갖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신 분”, “성령께서 빚어 만드신 새로운 인간”으로 부를 만큼, 마리아는 더 이상 큰 것을 견줄 수 없을 만큼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제 공의회는 이 항의 주제인 ‘주님 탄생 예고’에 관해서 언급합니다. 먼저 공의회는 나자렛의 동정녀를 “잉태되시는 첫 순간부터 더없이 뛰어난 성덕의 빛을 가득히 받으신” 분으로 표현합니다. 이는 교황 비오 9세가 회칙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1854년)에서 선언한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교의를 가리킵니다.
그 동정녀께서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루카 1,28)라는 인사를 받으십니다. 이에 마리아는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고 대답하십니다. 아담의 딸인 마리아는 하느님의 말씀에 ‘동의’하시어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마리아는 ‘예’라는 동의를 통해 “온전한 마음으로 아무런 죄의 거리낌도 없이 하느님의 구원 의지를 받아들이시고”, “주님의 종으로서 당신 아드님의 인격과 활동에 당신 자신을 온전히 바치신” 것입니다. 이렇게 마리아는 하느님의 은혜로 아드님 아래서 아드님과 함께 “구원의 신비에 봉사”하셨습니다.
끝으로 공의회는 마리아가 피동적으로 하느님께 이용당한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신앙과 순종으로 인류 구원에 협력하셨음을 강조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교부들은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마리아는 “순종하시어 자신과 온 인류에게 구원의 원인”이 되셨고, “하와의 불순종으로 묶인 매듭이 마리아의 순종을 통하여” 풀렸으며, “하와를 통하여 죽음이 왔고, 마리아를 통하
여 생명이” 왔습니다.
[신지현의 ‘성서와함께’ 가꾸는 기도의 정원] (15) 안젤리카
천사가 알려준 치유와 은총의 약초
인간은 오래전부터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자연과 식물을 탐구해왔다. 서양의 경우 이웃 국가들과 전쟁이 잦았던 고대 그리스에서는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약초에 대한 연구가 발달했고, 다른 고대 사회에서도 다양한 식물을 활용한 민간요법이 성행했다. 이후 중세 시대에는 수도원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면서 수사와 수녀들이 고대 약초학의 전통을 이어받았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역병이 돌아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던 17세기 중반 한 수사가 사람들을 살릴 방법을 절실하게 찾고 있었다. 어떤 약도 뚜렷한 효험을 보이지 못하자 수사는 간곡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하느님,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수사의 선한 마음이 하늘에 닿아, 어느 날 하느님의 대천사가 그의 꿈에 나타나 역병을 물리칠 수 있는 식물을 알려주었다.
수사는 천사의 도움을 기억하고자 그 식물을 ‘안젤리카 아르칸젤리카’라고 부르기로 했다. 안젤리카는 ‘천사 같은’, ‘천사와 관련된’이라는 뜻이며, 아르칸젤리카는 ‘대천사’를 의미하는 아크엔젤(archangel)에서 파생된 단어다.
뿌리부터 잎까지 약용으로 사용되는 안젤리카는 소화작용을 돕고, 혈액순환과 호흡기 질환 완화에 효과적이며, 항균·항염증 및 진정 작용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의학적 효능이 뛰어나다 보니 안젤리카라는 이름이 붙기 전에도 사람들은 이 식물을 하느님께서 주신 만병통치약이라 여겨 ‘성령의 뿌리’라고 불렀다. 중세 시대에는 가르멜수도회 수녀들이 만든 약용 음료 ‘가르멜 워터’의 주요 원료로 사용되기도 했다.
꽃의 개화 시기가 성 미카엘 대천사의 발현 축일인 5월 8일 무렵이라 안젤리카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대천사와 관련된 식물로 여겨지면서 사람들은 성 미카엘이 악을 물리치는 위대한 수호자이듯 안젤리카에도 악을 쫓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안젤리카는 약용 외에도 다양한 쓰임새를 가진다. 뿌리와 열매에서 추출한 향유는 향수와 진, 압생트 같은 리큐어에 사용되고, 독특한 향기를 지닌 어린 순은 달콤한 과자를 만드는 데 활용된다. 줄기는 설탕에 졸여 먹으며, 뿌리와 잎은 차로 우려 마신다.
이 약초가 서양의 전유물이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대표적 한방 약재인 당귀가 바로 안젤리카 아르칸젤리카와 사촌 격인 식물로, 당귀와 안젤리카 모두 같은 당귀속(Angelica)에 속한다. 자연에 그저 예쁜 꽃과 달콤한 과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질병과 상처로 고통받는 이들을 보듬는 갖가지 약초가 있는 것을 보면 창조주의 섭리가 정말 오묘하다.
호교적 대화 (20) 마리아 공경에 대하여 (1)
천주교에 대하여 비판적 시각에 젖어 있는 타 종교인들과의 대화를 위하여 가상 대화 형식으로 꾸몄으며, 주로 서한규의 “가톨릭교회!와 개신교?”(서울, 게쎄마니, 2012)를 참고하였다.
비신자 : 천주교는 마리아를 믿는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사실로 천주교는 마리아를 믿나요?
천주교인 : 교회 이름이 천주교인데 천주님을 믿는다는 것이 상식이지, 어떻게 마리아를 믿는 마리아교가 되겠어요.
비신자 : 왜 그런 말이 떠도나요?
천주교인 : 개신교 목회자들의 의도적인 잘못된 가르침이지요. ‘천주교는 마리아를 믿는 교로서, 하나님을 믿는 개신교와 다르다!’라고 주입하는데 그것은 목회자들의 희망 사항일 뿐이지요. 그렇게 말하는 개신교 신자를 만나면 꼭 물어보세요. “당신 혼자의 생각은 아닐 터인데, 누가 그렇게 말하든가요?” 또는 “어디에서 들으셨어요?”
비신자 : 성당에 들어가면 성모상이 있고, 신자들이 절을 하고 기도하던데 좀 오해를 살 만하지 않나요?
천주교인 : 성모상이 많겠지만, 본당의 주보 성인 성녀들의 상일 수도 있어요.
비신자 : 꼭 성모상이 아니군요?
천주교인 : 성모님도 그런 성인 성녀 중의 한 분인데, 그중에서 가장 높은 존경을 받는 분이지요. 성모상이 없는 성당도 있어요.
비신자 : 그렇군요. 그러면 성당에 성상으로 모셔질 수 있는 성인 성녀는 어떤 분들인가요?
천주교인 : 천주교 2,000년 역사 속에서 신앙적으로 대단히 모범적이며 뛰어난 분들이 있지 않겠어요? 특히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교자들은 더할 나위가 없겠지요. 그런 분들은 신앙에 있어서 본받을 모범이 되시지요. 그런 분들 가운데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성인 성녀로 선포되신 분들이 있어요. 신앙적으로 존경을 받는 분들이지요.
비신자 : 그런 의미라면 우리나라 역사에서 애국으로 존경을 받는 분들과 거의 같은 의미가 아닌가 생각되네요.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안중근 의사 등등. 여기저기 동상을 세워서 그분들의 애국심, 충성심을 우리의 모범으로 본받으려 하지요.
천주교인 : 아주 좋은 비교네요. 국가적으로 존경하면서 따를 모범의 위인들이 있듯이, 교회에서도 신앙적으로 존경하고 본받으며 살아갈 모범의 성인 성녀들이 있는 것이지요.
비신자 : 그런 분들의 상이 교회 안에 세워지는 것이군요?
천주교인 : 예, 그분들의 상이지요. 그러니 성모상이 꼭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에서는 존경이라고 하는데, 교회적인 용어로는 공경(恭敬)이라고 표현하지요. [2024년 8월 11일(나해) 연중 제19주일 청주주보 3면]
호교적 대화 (21) 마리아 공경에 대하여 (2)
비신자 : 그러면 성인들과 마리아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천주교인 : 국가의 존경받는 많은 애국자 중에도 더 높은 존경을 받는 분들이 있지요. 마찬가지로 성인 성녀 중에도 더 높은 존경을 받는 분이 있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바로 성모 마리아는 성인 성녀 중에 가장 높은 존경을 받아요. 그래서 성인 성녀들에게는 공경지례(恭敬之禮)를 드리는데, 성모 마리아에게는 상경지례(上敬之禮)를 드린다고 해요. 즉 가장 높은 공경이지요.
비신자 : 그러면 하느님과도 다르겠네요?
천주교인 : 물론이지요. 창조된 이가 어떻게 창조하신 이와 같겠어요? 비교할 수가 없지요. 그러니 믿음의 대상은 오직 하느님 한 분뿐이지요. 만일 성모 마리아를 하느님처럼 흠숭(欽崇)한다면 이는 천주교 교리에 어긋나는 이단입니다. 존경의 대상과 흠숭지례(欽崇之禮) 대상(하느님) 간의 차이는 상상할 수 없이 크지요.
비신자 : 그러면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천주교인 : 개신교 신자들도 무언가 간절히 청할 것이 있을 때 목사님께 기도를 부탁하지요. 아무래도 목사님이 더 효험이 있을 것 같으니까 오셔서 기도해달라고 합니다. 천주교도 기도를 부탁합니다. 신앙 때문에 순교한 성인 성녀들은 틀림없이 하느님 곁에 있을 것이니, 그분들에게 부탁드리면, 부족한 우리의 기도를 더 채워서 하느님께 올려 드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비신자 : 성모 마리아님께 기도를 하는 것도 같은 의미이군요?
천주교인 : 예 그렇습니다. 성모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이시고 누구보다도 우리들의 사정을 더 잘 아시기에 부족한 우리의 기도를 더 풍성히 채워서 하느님께 전달해 드리지 않겠어요?
비신자 : 그러면 기도의 내용에 차이가 있겠군요?
천주교인 : 당연하지요. 하느님께는 ‘우리에게 직접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또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하고 기도드립니다. 그런데 성인 성녀들께 그렇게 기도할 수 있을까요? 못하지요. 성인 성녀들께는 어떻게 기도합니까? ‘부족한 우리의 기도를 하느님께 잘 전달해 주십시오.’ 또는 ‘우리를 위해서 하느님께 빌어 주십시오.’라고 합니다.
비신자 : 성모님께 기도하는 것도 마찬가지이군요!
천주교인 : 예 그렇지요. 성모님께 드리는 기도문을 자세히 보세요. 기도문 끝에는 모두 ‘천주의 성모님 우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라고 맺습니다. ‘부족한 우리를 대신해서 하느님께 빌어 주십시오.’라는 뜻이지요. [2024년 11월 10일(나해) 연중 제32주일(평신도 주일) 청주주보 3면]
호교적 대화 (22) 마리아 공경에 대하여 (3)
비신자 : 한국 개신교에서는 과도하다고 할 정도로 성모 마리아를 배타적으로 멸시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천주교인 : 아마도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는 천주교에 대한 반대 심리가 작용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비신자 : 소위 종교개혁이라면서 개신교가 시작되는 초기부터 성모 마리아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나요?
천주교인 : 소위 종교개혁자들이라고 하는 루터, 츠빙글리, 칼뱅 등은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것과 평생 동정이라는 사실을 고백했어요. 또 루터는 그 당시 교리로 확정되지 않은 때인데도, 마리아가 원죄 없이 잉태되었다는 사실도 고백했어요(참고, 서한규, 491~492쪽). 칼뱅은 성모님을 거룩한 동정녀로 부르며,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고백한 에페소 공의회(431년)와 칼체돈 공의회(451)를 받아들이고 있어요(참고, 서한규, 497쪽).
비신자 : 소위 종교개혁자들의 고백에도 불구하고, 현재 개신교인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마리아의 ‘동정성’,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명칭, 원죄 없이 잉태되심, 몽소승천 등등에 극렬히 반대하는 것은 문제가 아닌가요?
천주교인 : 단순히 개인적으로 인정하거나 불인정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성경과 거룩한 전승, 그리고 역사적으로 있었던 교부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오랜 신앙적인 논의를 통하여 이단적인 요소들을 제거하고 믿을 교리로 정하는 과정이 있게 되지요(참고, 서한규, 500~636쪽). 어느 누가 개인적으로 위와 같은 문제를 함부로 정하거나 부정할 수 있겠어요.
비신자 : 덧붙여서 신앙인의 태도로서도 좀 문제가 있어 보이는데요.
천주교인 : 그렇지요. 구세주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그분의 어머니가 더럽혀졌다고 한다는 것이 논리에 맞지 않지요. 구세주 예수님의 어머니가 죄 중에 잉태되고 또 동정성도 훼손되고, 죄가 있어 승천도 못하고, 하느님이신 예수님의 어머니가 아니라고 한다면 이보다 더 모순적 태도를 가진 신앙인이 있을까 생각되네요.
비신자 : 성모 마리아의 의의를 말씀해 주세요.
천주교인 : 성모님은 구세주를 준비하신 분, 구세주를 낳으시고 기르신 분, 주님의 구원사업에 함께 하신 분, 한 마디로 구원의 주인공이신 구세주의 구원사업에 연관되어서 의미 있게 나타나는 분이지요. 우리의 중계자요, 변호인이요, 보호자이신 천상의 어머니이십니다.
[매주 읽는 단편 교리] 성모 승천
8월 15일은 성모님께서 하늘로 올려지심을 경축하는 성모 승천 대축일입니다. ‘승천’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성모님의 경우는 ‘올림을 받으셨기에’(Assumptio), 예수님의 승천(Ascensio)과는 의미가 다릅니다. 과거엔 ‘몽소승천’(夢召昇天)으로도 불렸습니다.
성모님의 육신과 영혼의 승천에 관한 기록은 신약성경과 초대교회 문헌에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믿음과 전승은 그리스도교 안에 계속 있어 왔고, 6세기에 들어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해, 신학적으로는 대 알베르토(1206~1280),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 보나벤투라(1217~1274), 교황 베네딕토 14세(1740~1758 재위)에 의하여 재확인되었습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이들을 부르셨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로마 8,30)라는 말씀이 실현된 사건입니다. 곧, 성모님은 신앙과 순종 그리고 헌신적 태도로 하느님 안에 온전히 받아들여져 당신의 삶과 함께 완성에 이르신 분입니다.
성모 승천에 관한 믿음은 전(全) 교회에 확고히 자리 잡았고, 마침내 1950년 11월 1일 교황 비오 12세의 회칙 「지극히 관대하신 하느님」 (Munificentissimus Deus)을 통해 ‘교의’(敎義)로 선포되었습니다. 그 핵심 내용은 이렇습니다: “원죄 없으신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며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께서는 지상 생애의 여정이 끝난 다음 그 영혼과 육신이 천상의 영광 안에 받아들여지셨다”(DH 3903).
한국 가톨릭교회의 의무 축일이기도 한 성모 승천 대축일은 유일하게 전야 미사가 거행되는 성모님의 축일입니다. 전야 미사의 본기도에서는 성모님의 겸손, 동정의 몸과 흠 없는 영혼이 누리는 영광을 언급합니다. 이 기도에는 하느님의 아드님을 낳으신 분의 육신이 무덤에 남겨져 부패 될 수 없으며 성모님이 누리는 영광에 우리도 참여하게 되리라는 믿음이 담겨 있습니다. 낮 미사의 감사송도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성모님 승천의 의미를 설명하는데, 여기선 특별히 성모님과 교회의 일치가 강조됩니다:
“오늘 하늘에 오르신 분, 하느님을 낳으신 동정 마리아께서는
완성될 주님 교회의 시작이며 모상으로서
이 세상 나그넷길에 있는 주님의 백성에게 확실한 희망과 위안을 보증해 주셨나이다.
모든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의 아드님께서
동정 마리아의 몸에서 사람이 되시어 이 세상에 태어나셨기에
주님께서는 마리아의 몸이 무덤에서 썩지 않도록 섭리하셨나이다.”
모든 신앙인은 교회의 표상(表象)인 성모님께서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신비로 하느님 안에 받아들여질 거란 희망을 지닙니다. 우리 모두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거라는 믿음으로 성모 승천 대축일을 기쁘게 맞이합시다. “주님, 구원의 성사에 참여하고 비오니, 하늘에 오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전구를 들으시어, 저희도 부활의 영광에 이르게 하소서”(성모 승천 대축일 낮 미사의 영성체 후 기도)
[가톨릭 신학]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이사 53,5ㄱ)
이사야 예언서는 ‘유배’라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데, 시기에 따라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제1이사야(1-39장 / 아시리아 유배), 제2이사야(40-55장 / 바빌론 유배) 그리고 제3이사야(56-66장 / 유배 후 귀환). 이해를 돕기 위해 해당되는 구절 하나씩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나는 아시리아를 내 땅에서 쳐부수고 내 산들 위에서 짓밟으리라,”(14,25) “내가 바빌론으로 사람을 보내어 빗장을 모두 벗기리니.”(43,14) 그리고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 임금들이 떠오르는 너의 광명을 향하여 오리라.”(60,1-3)
이 중에서 제2이사야는 바빌론 유배를 시대 배경으로 하며, 따라서 ‘누가 이스라엘을 바빌론으로부터 구해주는가.’가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을 구하시는 분은 근본적으로는 하느님이지만, ‘누가 대리인으로서 그것을 실행하느냐.’라는 것입니다. 제2이사야의 저자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여 페르시아의 임금 키루스를 그에 대한 답으로 제시합니다. “주님께서 … 키루스에게 말씀하시니 민족들을 그 앞에 굴복시키고.”(45,1) 키루스는 바빌론을 정복한 후 칙령을 내려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려보낸 왕으로 유명하지요. 하지만 우리에게 보다 흥미로운 점은, 제2이사야의 저자가 키루스 외에 또 다른 대리인을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제시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바로 ‘주님의 종’인데, 이 종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방식은 그들의 죄를 대신 짊어져 그들을 죄에서 구하는 것입니다.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 의로운 나의 종은 많은 이들을 의롭게 하고 그들의 죄악을 짊어지리라.”(53,5ㄱ.11ㄴ)
제2이사야의 저자가 바라본 이스라엘의 진정한 구원은 단순히 ‘유배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물리적 차원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필요했던 진정한 구원은 그들이 ‘죄에서 해방’되어 다시금 하느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제3이사야가 묘사하는 예루살렘의 새로운 기쁨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에서 해방되어 얻게 될 참된 행복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움’으로, 그 백성을 ‘기쁨’으로 창조하리라.”(65,18) 이처럼 제2이사야가 말하는 주님의 종은 백성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그들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구원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약의 저자들은 이사야서에 나온 주님의 종에 대한 언급을 예수님을 가리키는 내용으로 이해하고 있지요.(예: 사도 8,32-35; 1베드 2,21-24)
이사야서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이 지은 죄악 때문에 고통을 받아야 했던 ‘주님의 종’의 등장은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참된 구원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합니다. 죄의 사슬에서 해방되어, 참된 자유와 기쁨을 누리는 신앙인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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