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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20: 7
7.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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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 강해 세 번째 시간입니다. ]
제일 계명은 신앙과 경배 대상으로, 오직 하나님 한 분만 섬기라는 것이고,
제이 계명은 하나님께 대한 경배의 방법으로, 어떠한 형상도 만들지 말고, 오직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것을 가르쳐 줍니다.
이제 제삼 계명은 하나님께 대한 경배의 정신, 예배의 정신을 가르쳐 줍니다.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이 셋째 계명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사상은 하나님의 이름에 관한 것입니다. 성경에 제일 많이 나오는 이름은 ‘여호와’라고 하는 이름으로서 5,193회가 기록되었고, ‘하나님’이라는 호칭은 3,584회가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이름과 ‘하나님’이라는 호칭이 합치면 자그마치 8,777번이나 나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 이름의 책이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그만큼 중요합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 가운데 맨 첫 번째 부분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구절입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도 중요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님은 먼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기도할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이 중요하고, ‘죄사함 받는 일’이 중요하고, ‘시험과 유혹’에 들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단 먼저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신 28:58에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하는 영화롭고 두려운 이름을 경외하라.”고 하였습니다.
칼빈은 말하기를 “제 삼계명의 목적은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의 주권이 감히 침범 당함을 막기 위하여, 우리들로 하여금 그 이름을 거룩하게 받들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이름이 왜 그렇게도 중요합니까?
그것은 사람의 이름이 그 사람의 인격과 신분을 대표하듯이,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모든 속성을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의 이름을 부를 때, 그 사람의 인간 됨됨이, 취미, 성격, 기질을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하나님의 모든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통해서, 그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과 거룩하심과 선하심을 생각하고, 또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자비로우심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떠한 이름을 갖고 계십니까? 현대 사상가들은 하나님을 불가지적 존재, 혹은 절대자, 혹은 제 1원인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의 이름을 여러 가지로 알려 주고 있습니다.
여호와-영원 자존하고 불변하시는 자. 하나님의 대표적인 기념 칭호.
엘로힘-주권자, 두려워할 자.
엘-강하고 능력 있는 자.
엘욘-지극히 높고 존귀하신 자.
아도나이-주, 주인, 혹은 통치자.
엘샤다이-전능자.
이렇게 하나님께 대한 여러 호칭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 곧 ‘야훼’라는 이름입니다. 출 3:13-14을 보면,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을 물었을 때 ‘나는 스스로 있는 자’(I AM THAT I AM)라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이 야훼라는 이름에는 하나님의 영광스럽고 엄위하신 속성과 사역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는 영원자존자로서 전에도 계시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시요, 알파와 오메가이시며, 계시자로서 스스로 나타내 보여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언약하신 바를 반드시 성취하시는 신실한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 그 이름으로 대표되는 하나님, 그분은 너무도 거룩하시고, 엄위하신 분이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경을 읽다가, 그분의 이름이 나오면 발성치 아니하고, 묵음으로 그대로 지나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야훼라는 이름 대신 ‘아도나이’ 곧 주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이렇게도 존귀한 이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같이, 하나님의 모든 성호도 거룩하십니다.
사람들은 자기 이름의 철자가 틀리거나, 혹은 잘못 불리어질 때, 누구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티끌 같은 우리 인생들도 이름 석자를 그토록 존중히 여긴다면, 하나님께 있어서는 그 이름이 얼마나 귀중한 의미를 갖고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성호를 높이지 않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높이지 않는 것이 됩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여기서 망령 되이란 ‘공허하다’란 뜻으로, 우리말 성경에는 ‘허탄하다’ ‘허망하다’ ‘무익하다’ ‘헛되다’ ‘허사’ 등의 단어로 표현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것은, 공허하고 무익 된 일에, 의미 없이, 불성실하게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1.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예
1)위선된 생활
눅 6:46에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주여! 주여! 하면서도, 죄악 된 생활을 계속한다면,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 됩니다. 우리의 기도가 생활에 의해서 부인되고, 우리의 찬송이 생활에 의해서 부인될 때, 곧 우리의 입술로는 신앙 고백을 잘 했으나 생활로 부인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 되고 맙니다.
어떤 전도사는 가정이 있는 몸인데도 불구하고, 처녀 신도를 꾀어 불륜을 저지르고, 교회의 건축 헌금까지 도적질하여 도망을 쳤습니다. 그는 위선된 전도자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참여합니다. 목사도 되고, 장로, 집사, 교사, 성가 대원도 됩니다. 그리고 큰소리로 주님을 부르기도 하고 열심히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위선 된 생활은 끊어 버리지 못합니다. 그렇게 위선을 범하면서 제삼 계명을 범하는 것입니다. 많은 신자들이 찬송가는 잘 부르나, 입술로 찬양한 바를 실제 생활에 옮기지 않습니다.
♪내 주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 곧 그에게 죄를 다 고하리라.
큰 은혜를 주신 내 예수시니, 이전보다 더욱 사랑합니다.
♪ 그러나 실제로는 주님을 조금도 사랑하지 않습니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치네♪
라고 찬송을 하지만, 실제로는 십일조도 드리지 않습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라고 찬송을 하지만, 실제로는 제 맘대로 삽니다. ♪날 대속하신 구주께 내 생명 모두 드리니♪
하면서도, 실제로는 주님을 위하여 아무 것도 바치지 않습니다.
이렇게 입술로는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실제적으로는 찬송의 내용과 거리가 먼 생활을 한다면 이러한 행위를 위선이라 하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2)거짓 맹세
중한 병에 걸려 고통 중에 있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 그에게는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남은 여생을 주를 위해 살겠다고 맹세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고통과 질병이 물러갔을 때 그는 곧 하나님을 잊고 자기 마음대로 삽니다. 이때 그 사람은 셋째 계명을 범한 것입니다.
경남 김해군에 성림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동리에 다리 아픈 사람이 있었는데, 가난하여 수술도 받지 못할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전도사님이 주선하여 복음 병원에 입원시키고, 그 결과 아픈 다리가 완치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2년 동안 착실하게 신앙생활을 잘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몇 주일 결석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전도사님이 심방을 하여 영문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자꾸 귀찮게 그러지 마시오. 앞으로 우리 집에 심방도 오지 마시오. 나는 더 이상 교회에 나가지 않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하하 내 다리가 아팠을 때 전도사님 신세 좀 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 다 갚은 셈 아닙니까? 교회에 2년 동안 나가 주었으면 되었지, 무엇을 또 바라십니까? 그리고 헌금도 그만큼 했고....” 그 후로 그 사람은 영영 교회에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병들었을 때 “하나님! 하나님께서 건강 주시면 이렇게 저렇게 살겠습니다.”라고 서원하고서, 정작 건강을 주시면 주님을 위해 충성을 하지 않습니다. 어렵고 가난했을 때 하나님께서 물질의 축복을 주시면 이렇게 저렇게 살겠습니다! 서원 하고서 직장을 주시고, 사업을 하게 해주시고, 물질에 축복을 해주시면, 십일조도 드리지 않습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이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맹세한 것을 보아 왔습니다. 그러나 그 맹세한 바의 십일조를 드릴 날이 오면, 그들은 다른 것에 돈을 쓰고 하나님께 맹세한 것을 파기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경고합니다. 신 23:21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 하거든 갚기를 더디 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고 했고, 전 5:4-6에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말라. 하나님은 우매자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 하지 아니하는 것이 나으니, 네 입으로 네 육체를 범죄케 말라. 사자 앞에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 말하지 말라. 어찌 하나님으로 네 말소리를 진노하사 네 손으로 한 것을 멸하시게 하랴”고 경고했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신자라고는 하지만, 위선 된 생활 또는 주님께 거짓 맹세를 함으로써,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게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바른 사용
1)신앙 고백을 할 때-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그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라고 신앙 고백을 하였을 때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고 하시면서 칭찬하여 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개인적으로나 교회의 공중 예배에 참여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그분을 우리 주요, 구세주로 고백할 때 하나님의 이름을 바르게 일컫는 것이 됩니다.
2)기도할 때-
우리가 하나님 앞에 경외심을 갖고 겸손하게 나와 간절히 기도하면서 그의 이름을 부를 때, 하나님의 이름을 올바로 일컫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아름답게 기도한 사람들을 보십시다.
아브라함-
창 18:27 “아브라함이 말씀하여 가로되 티끌과 같은 나라도 감히 주께 고하나이다.”
야곱-
창 32:10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리를 조금이라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모세-
출 15:11 “여호와여 신중에 주와 같은 자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에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 누구니이까?”
히스기야-
왕하 19:15 “그룹들 위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조성하셨나이다.”
다니엘-
단 9:4 “크시고 두려워 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자시여” 이 모두 얼마나 하나님의 이름을 합당하고 아름답게 일컫는 기도들입니까?
3)찬양할 때-
우리들의 찬송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놀라운 영광을 수반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찬송 중에 거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생각하며 그의 선하심을 간증할 때, 또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올바로 일컫는 것이 됩니다.
3. 셋째 계명을 범했을 때의 형벌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기독교를 몹시도 박해하던 로마의 황제가 있었습니다. 어떤 날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들먹이며, 도대체 너의 주 나사렛 예수는 어디서 무엇을 하느냐고 조롱을 했습니다. 이때 한 기독 신자가 “폐하, 나사렛 예수는 그의 하늘에서 지금 폐하의 관을 만들고 계십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던 황제는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제럴드 우인로드’는 유명한 독신자, 곧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한 자였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만일 하나님이 있다면 내 무덤은 뱀들로 들끓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말한 대로 그의 무덤을 파는 날, 무덤 자리에서 네 마리의 구렁이를 죽였고, ‘체스터 베델’ 이란 사람은 자신이 생전에 만든 동상의 오른손에 ‘인류의 정신 해방’이라고 쓴 두루마리를 들고, 왼발로는 성경을 상징하는 ‘미신’이라는 두루마리를 밟고 있으면서,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내 몸을 뱀으로 들끓게 해보라’고 했는데, 그의 무덤은 벌집처럼 뱀굴로 유명하고, 하루에 20 마리의 뱀을 죽인 일도 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독신자들처럼, 비록 우리가 입술로 주님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망령되이 일컫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의 행위로서 하나님의 영광과 이름의 명예를 얼마든지 더럽힐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지음 받은 모든 피조물에게, 하나님은 엄숙하게 경고합니다. “너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고후 7:1에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고 했고, 빌 2:12에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 가운데 과연 이 같은 두렵고 떨림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신앙 행위 속에, 예배 행위에, 봉헌 생활에, 기도 생활에, 하나님을 경외함이 참으로 나타나고 있습니까? 하루의 삶을 설계하면서, 미래의 계획을 세우면서, 참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며 살기를 원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시던 때 천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여러분은 이 이름을 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 이 이름으로 여러분이 구원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는 놀라운 사실 앞에, 감사의 눈물을 흘려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 존귀하신 주님의 이름을 사랑하십시오. 주님의 이름을 전하십시오.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십시오. 주님의 이름에 감사하십시오. 주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십시오. 여러분의 입술과 행위와 삶을 통해서, 이렇게 주님의 이름을 높이면서, 주님의 이름으로 구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부를 때, “오냐 내가 여기 있다.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고 하실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기라성 같은 신앙 위인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16절을 보면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하나님께서는 부끄러워 아니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에도, 하나님께서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위해 예비해 놓으신 한 성,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토록 그 성호를 찬양하며 예배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