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馬)을 빌리다. 「차마설(借馬說)」 소유에 구애받지 않는 삶을 제시하다>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이번 주제 이곡(李穀 1298~1351)의 고전수필 「차마설(借馬說)」은 말(馬)을 빌려 탄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서, 힘과 권세 등 소유에 대한 보편적인 깨달음을 제시하고 올바른 삶의 태도를 촉구하는 교훈적인 글이다. 외물에 따른 인간 심리 변화와 그릇된 소유 관념에 대해 비판을 가하여 ‘소유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경계’하였다. 어차피 우리 인간은 지구의 외물을 잠시 빌려 쓰다가 돌려주고 빈손으로 떠나는 중생일 뿐.
○ 저자가 말하길, 노둔하고 여윈 말을 빌려 타면, 아무리 급해도 채찍질을 하지 않고 조심해서 다니니 후회하는 일이 없다. 그러나 잘 달리는 준마를 타면, 의기양양하여 유쾌하게 질주한다. 그래서 간혹 말에서 떨어지는 재앙을 불러온다. 사람의 감정(人情)이라는 것이 이렇게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깨달음을 통해, '소유'라는 개념에 대한 인식의 확장을 꾀한다. 세상의 모든 재물이나 지위 등은 모두 다른 사람이 내게 ‘빌려 준 것’이라는 인식이 나온다. 이런 인식을 확장하면, 누구나 겸손한 마음으로 남과 함께 나누어 쓰고, 나누어 주며 사는 데까지 나아갈 것이다.
○ 고로 「차마설(借馬說)」의 주제는 ‘소유에 따른 인간 심리의 변화에 대한 경계와 비판’, 나아가 ‘무소유에 대한 깨달음’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글은 현재 자신이 소유한 것들은 근본적으로 자신의 소유가 아니므로 '인간에게 진정한 자기 소유란 없다'라는 무소유(無所有)를 이야기한다. 따라서 작가는 욕심을 내려놓고 안분지족(安分知足) 하는 삶을 살아야 됨을 주장한다고 볼 수 있다.
○ 게다가 이 글은 ‘소유’라는 개념 자체가 영원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해준다. 아무리 왕의 지위나 귀한 지위를 가지고 있더라도 백성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하나의 외로운 필부에 불과하다며, 군주에 대한 경각심을 말한다. 즉 ‘천명(天命)이란 실덕(失德)하면 실민(失民)하고 실민(失民)하면 실천명(失天命)’이라는 것이다. 이에 《맹자》 가로되, “오래도록 차용하고서 반환하지 않았으니, 자기의 소유가 아니라는 것을 그들이 어떻게 알겠소?(久假而不歸 烏知其非有也)” 했다.
○ 한편 저자 이곡(李穀)은 고려말 성리학자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그는 이 글을 통해 세상의 권세와 부귀도 본래부터 소유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빌린 것임을 예를 들어 제시하였다. 또한 소유하는 외물의 차이에 따라 항상심(恒常心)을 갖지 못하는 것에 개탄하였고, 또 무소유(無所有)의 참뜻을 모르는 것에 탄식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이를 망각하고 마치 자신의 소유인양 착각하면서 깨닫지 못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결국 이 글의 주제는 ‘모든 소유는 빌린 것에 불과하니 사람은 겸허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로써, 소유에 대한 성찰과 깨달음을 드러냈다.
○ [한문 고전 수필] 수필의 성격을 지니는 한문 양식으로는 설(說), 기(記), 잠(箴) 등이 있다. 본래 설(說)은 사실에 대한 논의의 성격이 강한데, 대개 비유나 우의를 통해 독자를 설득하고자 하는 내용이 많은 편이다. 설(說)은 사물 또는 사건(사실, 개별적 체험)의 뜻과 이치를 해석하고 자신의 의견(깨우침, 교훈)을 서술하는 것이므로 다분히 우의적이고 비유적이며 교훈적인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이 글에서도 “말을 빌려 타는 일(借馬說)”이란 평범한 일상사를 통해 우의적으로 삶의 이치를 제시하고 있다. 먼저 저자는 노마와 준마를 빌려 탄 각각의 경우에 대한 감회가 다름을 인식하고, 자기 물건이라도 같은 느낌일 것이라고 말하였다. 나아가 사람의 소유물이 모두 남에게서 빌린 것인데도, 사람들이 모두 자기 소유물인 양 행동하면서 반성하지 않음을 비판하고 있다. 또한 <차마설(借馬說)>은 유추의 방식을 사용해 글쓴이의 경험을 보편적 깨달음으로 일반화하여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이 좋다고 썼다. 이에 ‘소유에 구애받지 않는 삶의 자세’를 제시한 것이다.
● 다음 한문 고전수필 ‘말(馬)을 빌리다.’ 「차마설(借馬說)」은 고려후기 학자 가정(稼亭) 이곡(李穀 1298~1351)의 작품으로, 『가정집(稼亭集)』 권7(卷之七)에 수록되어 있다. 이 글은 작가가 말을 빌려 탄 경험을 통해 소유에 대한 일반적인 깨달음을 제시하며 올바른 삶의 태도를 가지라는 교훈을 남기는 수필이다. 작가는 소유에 대해 무조건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소유란 결국 자신의 것이 아닌 잠시 빌린 거라는 인식을 통해 잘못된 소유 관념을 비판하는 것이다. 또한 작가는 '말(馬)'이라는 구체적 사물을, 혹은 '말(馬)을 빌려 탄 경험'을, '소유' 혹은 '소유에 대한 욕망'이라는 추상적 대상으로 확장시키는 유추의 방법을 사용하였다.
이 작품은 크게 전반부(서두)와 후반부(평결, 논찬) 2단락으로 나눌 수가 있다. 즉 서두에 필자의 경험을 제시되고 그 이하에서 경험에서 비롯된 필자의 견해나 생각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먼저 첫 단락에선, 자신의 경험에 의한 감정을 도입했다. 나는 가끔씩 말을 빌려 탄다. 노둔하고 여윈 말은 아무리 급해도 채찍질을 하지 않고 조심해서 다니니 후회하는 일이 없다. 그러나 잘 달리는 준마는 의기양양하여 유쾌하게 질주한다. 그래서 간혹 말에서 떨어지는 재앙을 불러온다.
둘째 단락에선, 평론과 논찬을 덧붙였다. 사람의 소유에는 남에게 빌리지 않은 것이 없다. 임금은 백성에게 힘을 빌리고, 신하는 임금에게, 자식은 어버이에게, 지어미는 지아비에게, 노비는 주인에게 각각 의지하며 빌려서 살고 있다. 그러다 돌려주는 일도 있다. 천자도 포악무도하게 굴면 백성들의 따돌림을 받는 외로운 신세가 될 수 있고, 백대의 수레(百乘)를 가졌던 집도 외로운 신하가 된다. 맹자가 일컫기를 "남의 것을 오랫동안 빌려 쓰고 있으면서 돌려주지 아니하면, 어찌 그것이 자기의 소유가 아닌 줄 알겠는가?" 하였다.
*<말(馬)을 빌리다. 「차마설(借馬說)」>* 이곡(李穀 1298~1351)
나는 집이 가난해서 말(馬)이 없기 때문에 간혹 남의 말을 빌려서 타곤 한다. 그런데 노둔하고 야윈(駑瘦) 말(馬)을 얻었을 경우에는 일이 아무리 급해도 감히 채찍을 대지 못한 채 금방이라도 쓰러지고 넘어질 것(蹶躓)처럼 전전긍긍(兢兢)하기 일쑤요, 개천이나 도랑이라도 만나면 또 말에서 내리곤 한다. 그래서 후회하는 일이 거의 없다. 반면에 발굽이 높고 귀가 쫑긋하며 잘 달리는 준마(駿駃)를 얻었을 경우에는 의기양양(陽陽)하여 방자하게 채찍을 갈기기도 하고 고삐를 놓기도 하면서 언덕과 골짜기를 모두 평지로 간주한 채 매우 유쾌하게 질주하곤 한다. 그러나 간혹 위험하게 말에서 떨어지는 환란을 면하지 못한다. 아(噫), 사람의 감정(人情)이라는 것이 어쩌면 이렇게까지 달라지고 뒤바뀔 수가 있단 말인가. 남의 물건을 빌려서 잠깐동안 쓸 때에도 오히려 이와 같은데, 하물며 진짜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경우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또한) 그렇긴 하지만(然)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 가운데 남에게 빌리지 않은 것이 또 뭐가 있다고 하겠는가. 임금은 백성으로부터 힘을 빌려서 존귀하고 부유하게(尊富) 되는 것이요, 신하는 임금으로부터 권세를 빌려서 총애를 받고 귀한 신분(寵貴)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식은 어버이에게서, 지어미는 지아비에게서, 비복(婢僕, 계집종과 사내종)은 주인에게서 각각 빌리는 것이 또한 심하고도 많은데, 대부분 자기가 본래 가지고 있는 것처럼 여기기만 할 뿐, 끝내 돌이켜(반성) 보려고 하지 않는다(終莫之省). 이 어찌 미혹(迷惑)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다가(苟) 혹 잠깐 사이에 그동안 빌렸던 것을 돌려주는 일이 생기게 되면, ‘만방(萬邦)의 임금도 독부(獨夫)가 되고 백승(百乘)의 대부(大夫)도 고신(孤臣)이 되는 법’인데, 더군다나(况) 미천한 자의 경우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맹자(孟子)가 말하기를 “오래도록 차용하고서 반환하지 않았으니, 그들이 자기의 소유가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겠는가(烏知).”라고 하였다. 내가 이 말을 접하고서 느껴지는 바가 있기에, 차마설(借馬說)을 지어서 그 뜻을 부연해 보았다.
[余家貧無馬 或借而乘之 得駑且瘦者 事雖急不敢加策 兢兢然若將蹶躓 値溝塹則下 故鮮有悔 得蹄高耳銳駿且駃者 陽陽然肆志着鞭縱靶 平視陵谷 甚可快也 然或未免危墜之患 噫人情之移易 一至此邪 借物以備一朝之用 尙猶如此 况其眞有者乎 然人之所有 孰爲不借者 君借力於民以尊富 臣借勢於君以寵貴 子之於父 婦之於夫 婢僕之於主 其所借亦深且多 率以爲己有而終莫之省 豈非惑也 苟或須臾之頃 還其所借 則萬邦之君爲獨夫 百乘之家爲孤臣 况微者邪 孟子曰 久假而不歸 烏知其非有也 余於此有感焉 作借馬說 以廣其意云]
[주1] 전전긍긍(戰戰兢兢) : 몹시 두려워서 벌벌 떨며 조심함. ≪시경(詩經)≫의 <소민편(小旻篇)>에서 유래한다.
[주2] 의기양양(意氣揚揚) : 의기(義氣)가 드높아 매우 자랑스럽게 행동하는 모양. 자랑스러워 뽐내는 모양.
[주3] 만방(萬邦)의 임금도 독부(獨夫)가 되고 : 만승(萬乘, 만 대(臺)의 병거)의 천자도 포악무도하게 굴면 백성들의 따돌림을 받는 외로운 신세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독부(獨夫)는 하늘도 버리고 백성도 버려 외롭게 된 통치자라는 뜻인데, 《서경(書經)》 태서 하(泰誓下)에 폭군 주(紂)를 독부로 명명하고 그의 죄악상을 나열한 내용이 나온다.
[주4] 오래도록 차용하고서 … 알았겠는가 :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요순은 인의(仁義)의 성품을 타고났고, 탕왕과 무왕은 몸에 익혔고, 춘추 오패는 차용하였다. 오래도록 차용하고서 반환하지 않았으니, 자기의 소유가 아니라는 것을 그들이 어떻게 알았겠는가.(堯舜性之也 湯武身之也 五覇假之也 久假而不歸 烏知其非有也)”라는 맹자의 말이 나온다.
[주5] 오지(烏知) : 어찌 알았겠는가? 차차어 오지(烏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