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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결정이 필요하다(약 1장 5-7)
성경본문:야고보서 1: 5-7
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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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주 동안 우리는 삶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상처와 아픔에서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을 묵상했습니다. 누가 우리 가운데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언제까지 늘 우리의 삶을 회복시키는데 신경을 쓰며 살아야 합니까?
이제는 가능하면 후회하지 않을 지혜로운 결정을 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종종 경험하는 인생이 있습니다.
“왜 내가 여기에 있지? 어떻게 하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지?”
우리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자녀가, 가정이, 사업이, 우리의 꿈이 엉망이 되어 버린 것이죠.
아마도 우리가 인생을 후회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우리의 합리적인 선택” 때문일 것입니다. 아니 이 세상이 우리를 그렇게 속여 왔습니다. “우리 마음을 따라 사는 것이 행복하다!”라고 말입니다.
사실 많은 사람이 인생을 살며 행복을 쫓아오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착각하지 않았습니까?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충족시켜주면 만족이 오리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좌절은 “채워지지 않는 욕망” 그리고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가 아닐까요? 그 이유를 성경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레미야 17장 9절을 보세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 마는”
부패한 우리의 마음과 거짓된 우리의 마음이 원하는 것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겠습니까?
오늘 마지막 시간에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어떻게 하면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더 나은 결정을 하면서 살 수 있는가? 하는 것이죠.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이지만, 우리가 실수를 할 때라도 하나님은 그 자리에 우리와 함께 계셨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삶을 교정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해 왔습니다.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삶의 교정”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인도하심”을 경험하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우리의 삶에서 과거에 내렸던 결정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결정을 미래에 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분명히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의 삶을 결정하기로 할 때 하나님께서는 틀림없이 우리의 인생에서 아름다운 결정을 가능하게 하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 구하라!”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특권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재미를 아시나요? 계속해서 말씀을 보고 있으면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혹은 그냥 스쳐 갔던 말씀이 다가와 말씀합니다.
저에게는 오늘 5절 말씀이 그런 경우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누구든지” 그리고 “모든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사람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자신의 지혜가 부족하다고 아는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특권이지만,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성경공부를 가르치는 첫 시간에 꼭 이런 말을 합니다.
“공부를 하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질문하세요! 종종 이런 질문을 하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혹은 나의 무식함이 드러나는 것은 아닌가?라고 생각하는데, 여러분이 모르는 것은 다른 사람도 모릅니다. 가장 불행한 사람은 묻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 사람입니다. 주어진 기회를 놓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제가 덧붙이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 어떤 질문을 해도 좋습니다. 그리고 제가 대답하는 것은 제가 아는 데까지입니다. 결국, 우리가 모르는 것이 많은 것도 인정하고, 제가 대답할 수 없는 것도 인정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성경공부를 하면서도 지식을 놓치는 일이 아까운 일인데, 여러분의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의 순간에 하나님께 묻지 않고, 지혜를 구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겠습니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제가 아는 것까지입니다.
제가 안다고 하는 것은 제가 경험하고 공부한 것이 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의 삶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가장 적절한 답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에 가장 적절한 답을 해주실 것을 믿으시나요? 이 믿음이 없으면 우리가 성경을 보아야 하는 이유도, 예배를 드려야 하는 이유도, 기도를 해야 하는 이유도 없습니다.
이런 것을 “맹목적이다!”라고 말하죠. 맹목적으로 믿는 것을 우리는 “미신이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인격적이다!”라고 하는 이유는 맹목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계획과 답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씀을 준비하면서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결국, 설교를 써 내려가다 보면 같은 말씀을 인용하게 될 때가 많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죠. “새로운 것을 이야기하고, 새로운 것을 인용해야겠다는 부담감으로 참신한 것을 이야기해 보자!”
그런데 결국, 우리 인생의 문제라는 것이 그리 특별하지 않다는 것과 가장 평범한 것에 진리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기본은 기본입니다!”
욥기 23장 10절에 유명한 말씀이 있지요.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나를 지으신 그분이 아십니다. 이것이 지혜이고 신앙의 기본입니다.
“나를 지으신 주님, 내 안에 계셔. 처음부터 내 삶은 그의 손에 있었죠.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우리 자신도 알지 못하는 우리의 생각을 아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게다가 오늘 말씀에 보니까 하나님께서 지혜를 구하는 모든 이에게 ‘후히’ 주신다고 했습니다. 영어 성경에는 ‘gladly’라고 되어 있습니다. ‘기꺼이’
야고보서 기자는 그것으로 안심이 안 돼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여러분이 어떤 질문을 해도 하나님께서는 꾸짖기보다는 기꺼이 대답해 줄 준비가 되어 있으신 분이십니다.
제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교수법이었습니다. 수업시간에 어떤 질문을 하든 그 질문을 받은 교수가 꼭 대답하기 전에 하는 말이 있습니다.
“good question!”
저도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학생들을 가르칠 때 꼭 그렇게 말을 하곤 했습니다.
“좋은 질문입니다!” 사실 질문 가운데 질문 같지 않은 질문들도 있지요.
중요한 것은 그 어떤 질문이든 대답하는 사람이 현명한 대답을 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지혜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인생에 지혜로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지혜는 없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신 것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송창의 씨가 쓴 [격을 파하라]라는 책을 보았습니다.
MBC PD로 예능프로그램을 성공하게 한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무엇보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 “남자 셋 여자 셋”이라는 시트콤을 처음으로 만들고, 근래에는 케이블 tvN을 통해 “롤러코스터”같은 프로그램을 만든 유명한 감독이죠.
그가 처음부터 성공한 감독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고정관념을 벗어나면서 성공하게 된 것이죠. 그의 책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많은 부분은 고정관념이라는 벽으로 가로막혀 있다. 생각과 관행의 틀에서 벗어날 때 그 벽 너머를 볼 수 있다. 창의적으로 생각한다는 것, 창의적으로 접근한다는 것은 세상에 없는 것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버젓이 있었으나 아무도 보지 못한 것을 발견해내는 작업이다.”
예를 들어서 그가 던진 창의적 질문은 왜 웃기기 위해서 꼭 “콩트”를 해야 하는가? 에서 시작했다고 하죠. 그 질문을 던지고 나니 많은 것이 보이기 시작했답니다.
“몰래 카메라”를 통해서 “배워봅시다”라는 리얼 다큐프로그램이 처음으로 시도된 것이죠.
이 모든 것이 없던 것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고 적용한 것이죠.
저는 신앙의 세계와 우리 삶의 지혜가 여기에 적용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감추어진 지혜와 보화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 계획해 놓으신 놀라운 일을 우리의 고정적인 생각의 틀 때문에 보지 못하는 것이죠.
지혜로운 결정은 내 틀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일상을 벗어나면 최상이 보인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목회를 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은 바쁜 나의 일상을 벗어날 때입니다. 내가 분주하면 하나님이 일하실 수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일상을 벗어나라!”
몇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나의 사고의 틀을 벗어나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지혜가 필요한 순간에 나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특권을 누리는 티켓!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두 번째 단서가 6절에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저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준비하고 계신 데, 그것을 얻기 위해서 입장권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참 재미있는 표현이지요? 의심을 품고 구하는 자는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다!”
무슨 뜻일까요? 믿음이 없이 하나님께 묻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어떤 답을 주셔도 방황합니다.
종종 우리는 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서 묻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답을 얻을 때까지 묻습니다.
참 재미있죠? 묻기는 하는데 지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구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절대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소위 “귀얉사”라고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제 아내가 이 클럽에 아주 깊숙이 개입되어 있는데요.
지난여름 미국에 갔을 때입니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아들에게 이제 차를 사줘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기숙사를 나와서 혼자 살아야 하는데, 만나 교회 담임목사의 아들로, 그리고 유학을 하는 대학교 3학년 학생에게 가장 적절한 차가 무엇인가를 생각했죠.
우리 가정의 합의 사항은 애국심을 고려하고 가격을 고려해서 한국의 모 기업의 작은 차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처음 만난 한 분이 이야기를 합니다.
“사모님. 같은 가격이면 중고로 큰 차를 사주세요. 미국에는 고속도로를 달릴 일이 많은데 튼튼한 차가 중요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더니 아내가 같은 가격의 중고차를 열심히 물어봅니다.
처음에 새 차를 사줘야 하는 이유가 중고차를 잘못 사면 차를 고치다 힘들어질 수 있다는 이유였는데, 새로운 이유 때문에 고민을 하게 된 거죠.
며칠 지나서 선배 목사님을 만났는데, 그분의 아들도 차 때문에 고민을 하다가 사 주었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한 등급 위의 차였습니다.
그분의 경험에 의하면 우리나라 차가 아주 좋은데 조금 큰 차가 훨씬 튼튼하고 편안하다는 겁니다.
아내의 마음이 그쪽으로 조금 옮겨 갔습니다.
며칠 후에 다른 분을 만나서 우리가 이런 생각을 한다고 이야기를 하니까, 그분의 이야기는 그 차에다 조금 만 더 보태면 ‘소나타’를 살 수 있는데 왜 그 차를 사느냐고 이야기를 합니다. 아내의 마음이 또 움직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보니 처음에 사주려고 했던 차 가격의 “두 배” 가까이 되었습니다.
제 이야기를 들으며 무슨 차를 사 주었는지 궁금하시죠?
믿음으로 구하지 않으면, 모든 사람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옵니다.
묻기는 하나님께 묻지만, 믿음이 없는 물음은 마치 바다 물결에 요동하는 배와 같습니다.
믿음이 없는 물음에는 늘 합리성이라는 요소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처음에 이야기를 했지요. 부패한 인간의 마음에 합리성이라는 것 자체가 얼마나 위험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NASV]영어 성경에 아주 재미있게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But let him ask in faith without any doubting, for the one who doubts is like
the surf of the sea driven and tossed by the wind.
왜 야고보서 기자가 “믿음”을 강조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는 믿음을 방해하는 요소로 “바람”을 이야기합니다. 다른 표현을 쓴다면 “저항”입니다. 믿음으로 행동하려 해도 그것을 방해하는 저항이 틀림없이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우리의 인생을 결정한다는 것이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런 말이 여러분의 삶의 정답이 아니겠습니까?
“가장 쉬운 길은 옳지 않은 길일 때가 많다!”
쉬운 길은 종종 고통스러운 결과를 가져옵니다.
예전에 유행하던 것 중의 하나죠.
교실마다 급훈이 있는데, 어떤 여고 교실에 붙어 있던 글귀입니다.
“놀고 미싱 할래, 열심히 공부해서 미팅할래?”
어윈 루처의 [회복의 하나님을 붙들라]에 나오는 글귀를 소개합니다.
“‘쉬운’이라는 단어와 ‘옳은’이라는 단어가 함께 어울릴 경우는 거의 없다.
물살을 거슬러 갈 마음이 없어 물 흐르는 대로 몸을 맡기다 보면 조만간 결정할 때는 쉬웠지만, 삶으로 감당하기는 쉽지 않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된다. 어려움이 없는 쉬운 길을 따르면 구불구불 구부러진 강과 후회하는 그리스도인이 나오는 것이다.”
믿음이 무엇인가요?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인도하실 하나님의 손길을 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나는 동안 힘들었던 것은 광야 너머에 있는 가나안 땅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결정에 믿음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히브리서 11장 1절에서 믿음에 대하여 이렇게 정의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서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이 있는 자들은 일시적인 것, 오늘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을 보고 결정하는 자들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우리의 삶을 바라보는 사람들입니다.
믿음과 반대되는 단어 중의 하나가 “성급함”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바라며 기다리게 하지만, 믿음이 없는 자들은 내가 정한 시간 안에서 안달합니다.
조급함이 때로 사단의 유혹이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으셨나요?
제가 어린 시절 아버지의 고민이 생생합니다.
군목을 마치고 왕십리 감리교회에 청빙을 받았습니다. 그곳에는 은퇴할 목사님이 계셨고, 곧 담임이 되리라고 생각을 했지만, 목사님이 은퇴시기를 번복하셨습니다.
아버님도 힘들고 교회도 힘들고 참 어려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때 저희 아버님은 은혜 체험을 하고 부흥회를 다니실 때, 찾는 사람도 많고 오라는 곳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아버님은 은퇴하실 목사님을 잘 섬기기로 작정하고 참으셨습니다.
참 많이 힘들어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그 시간을 지나면서 당시 왕십리 교회가 만들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 호주에서 참 좋은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그 교회에서 이미 담임으로 결정이 되었지만, 담임목사님이 후임 목사님에게 권한을 이양하지 않은 상황에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심장마비로 죽음의 고비를 넘긴 목사님의 상황이 그렇게 좋지 않았습니다.
시드니에서 가장 큰 교회 중의 하나였던 그 교회가 점점 어려운 상황에 처하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지쳐서 교회를 떠나야겠다고 생각할 때였답니다.
그 젊은 목사님이 저에게 이런 말을 하더군요.
“하나님이 다 내려놓게 하시더군요. 이런 질문을 하시면서. 2천 명이 넘는 교인이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 그렇게 안달하는데, 200명 교인이어도 그렇게 안절부절 하지 못하겠냐고.”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무언가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인 것 같은데, 신앙적으로 보면 기다리며 인내해야 할 순간인 것 같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는 것과 육신의 생각으로 보는 것이 참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죠.
그러면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무언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에 ‘믿음’은 우리의 ‘동기’가 무엇인지를 보게 합니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이런 결정을 내리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의 교만과 혹은 불순한 의도로 결정을 내리는 것인지를 말입니다.
“어떡해야 내가 행복할까의 질문이 아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필수적이죠.
그러므로 믿음이란 성공이 아닌 의미의 문제입니다.
여기에서 아주 힘든 질문을 제기하고 대답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성공하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원하십니까?”
저는 목사이니까,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겠죠?
성공적인 교회는 무엇이고, 의미 있는 교회는 무엇인가?
하나님은 교회가 성공하기를 원하시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기를 원하시는가?
밥 소르기의 「내 영이 마르지 않는 연습」이라는 책에 나오는 글입니다.
어느 날, 주님이 나를 갑작스럽게 부르시더니 우선순위의 균형이 깨져 있음을 부드럽게 알려 주셨다.
“밥, 너는 주유소를 찾듯이 내게 오는구나.”
나는 주유소를 ‘필요악’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주유를 좋아하진 않지만, 운전은 좋아하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운전을 하려면, 반드시 주유해야 한다. 주님의 말씀을 나는 이렇게 받았다.
“밥, 너는 네 필요를 채우려고 기도의 자리에 나오는구나. 내가 네 마음의 첫사랑이기 때문에 오는 게 아니구나. 재충전해서 그 힘으로 네 인생의 첫사랑을 좇으려고 내게 나오는구나.”
내 첫사랑은 사역이었다. 영혼이 구원받는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도시 전체를 취해 주님께 드리고 싶었으며,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그리스도를 위해 무엇을 하느냐가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보다 더 중요했던 것이다.
나는 “나의 모든 근원이 네게 있다”(시 87:7)라는 말씀처럼 내 모든 근원이 주님께 있다고 주장했지만, 사실 나를 지탱하는 주된 힘은 사역의 성취에서 오는 ‘짜릿함’이었다. 나는 주님이 알려 주신 후에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다른 어떤 일보다 먼저 주 예수님과 뜨거운 사랑의 관계를 맺는 사람, 그리고 이 관계에서 힘을 얻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얻는다.
우리에게 진정한 믿음이 생긴다는 것은, 성공적인 삶을 산다는 것이 의미 있는 삶을 산다는 것과의 괴리가 사라지고 간격이 좁혀져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언가 의도가 하나님 중심적일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시간이 필요함을 압니다. 충동적일 때,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릴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죠.
결국, 우리의 삶에서 지혜로운 결정을 하게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되는 것은 “하나님과의 친밀함”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처럼 생각하는 마음 배우기!
하나님을 믿는 믿음 갖기!
가장 튼튼한 신앙의 기본기가 우리의 삶의 지혜로운 결정을 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요?
지금까지 우리는 잘못된 우리의 삶을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을 붙들었지만, 이제는 더욱 지혜롭게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실 하나님을 붙들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회복시키시는 간증도 귀하지만,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귀하지 않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