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크고 작은 수많은 우듬지들. 그대 몸이 흔들려도 그대 뜻이 흔들리지 않는 것은 그대 뿌리가 장강長江의 도도한 물길을 적신 땅에 박혀 있기 때문이다. 그대 발 디딘 곳이 산마루든 벌판이든, 그대 밑동의 굵기가 한 아름이든 한 줌이든, 그대는 새로운 길을 여는 강물이다.
강의 원천源泉이 화려하지 않듯, 나무의 우듬지도 꽃을 피우지 않는다. 가장 높은 곳에서는 가장 맑은 정신으로 곧추서야만 세상이 온전해지는 것을 그대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무성한 치장과 아름다운 꽃과 성취의 결실은 곁가지의 몫일 뿐, 오로지 하늘을 향하는 거룩한 뜻으로 선 그대는 청정한 혈혈단신이다. 발돋움으로 우뚝 서되 꽃을 탐하지 않는 그대야말로 그대 허리 아래에서 그대와 같은 하늘을 향하는 모든 곁가지들을 진정으로 섬기는 하심下心이다.
그대는 깃발이다. 뜻으로 일어서서 빛을 향해 길을 여는 불면不眠의 푸른 깃발. 이 세상 온갖 바람을 가장 먼저 맞으면서 가장 많이 흔들리는 그대는 한 번도 뜻을 굽힌 적이 없다. 하늘을 향해 꼿꼿한 자세로 선 그대, 흔들리지 않은 때가 몇 날이던가. 흔들리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존재. 그대에게서 흔들린다는 것은 내재內在한 의지의 역동적 발현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뜻을 헤살짓는 세상의 바람일수록 그대 의지는 더욱 굳건해진다. 세상의 바람은 오히려 곧은 뿌리를 더 깊게, 곁뿌리를 더 넓게 만드는 자양분이다. 위풍당당한 그대를 똑바로 보기 위해서 우리도 발돋움을 하고 고개를 한껏 치켜들어야 하지만, 이내 고개를 숙이고 그대 앞에서 경건해질 수밖에 없다. 그대는 어떤 풍상도 헤쳐나가는 세상살이의 초요기招搖旗다.
그대는 예언자다.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맑은 정신으로 세상을 사색하는 그대는 어디가 하늘인지를 아는 최첨단의 선구자다. 하늘은 세상의 진리를 설계하는 곳. 둥근 땅에 뿌리 든든히 박은 그대의 세상에 하늘의 진리가 함께 자리잡기를 그대는 소망한다. 그대는 단 한순간도 그대가 발 디딘 현실을 외면한 적이 없이 곧은 푯대로 세상을 조망한다. 불멸의 형형한 눈빛을 지닌 그대는 세상을 가장 먼저, 가장 멀리 본다. 그대가 보고 느끼면 낮도 밤이 되고 밤도 낮이 된다. 깜깜한 밤하늘에서도 한 가닥 여명黎明을 먼저 느끼고, 멀건 대낮에도 태양이 지는 자리를 먼저 보는 그대는 세상의 잠망경이다.
그대는 지휘자다. 그대는 함께하는 어떤 곁가지도 홀대하지 않는다. 그대의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무수한 곁가지들. 그대는 이들이 제각각의 나무초리로 비스듬히 서서 하늘을 향하는 발돋움을 함께 할 수 있게 따뜻하게 아우른다. 그대가 크게 몸을 흔들면 가지들은 모두 함께 호응한다. 그대는 개성 발랄한 곁가지들의 보법에 강약과 완급을 조절하는 자상한 몸짓으로 세상의 화합을 연주한다. 그대의 흔들림은 사상도 되고 리듬도 되어 세상을 아름답게 조율하는 오케스트라의 화음이다.
그대는 기둥이다. 우듬지는 스스로의 세대교체를 거듭한다. 나무의 세상에서 어제의 우듬지는 오늘의 우듬지가 아니고 오늘의 우듬지는 내일의 우듬지가 아님을 그대는 안다. 우듬지는 신산辛酸한 삶의 제 역할이 끝나면 짙은 속가지 사이로 스며들어 나무를 지탱해 주는 기둥으로 굵어진다. 이때 그대가 세상을 이끌어 온 여정의 흔적들은 굴피나 솔보굿처럼 두꺼운 껍질로 미어지고, 더러는 아픈 역사의 옹이로 불거진다. 이것은 한때를 우듬지와 함께한 곁가지들이 새겨놓은 기억의 상형문자다.
우듬지는 오로지 하늘을 향하는 고독한 의지로 흔들릴 뿐 결코 꽃을 탐하지 않는다. 제 가슴팍의 수많은 실가지에서 떨어져 나와 흩날리는 꽃보라는 바라보기만 하여도 행복한 마음이다. 보리수 아래에서, 혹은 천하를 주유하며, 또는 산상에 홀로 서서, 외롭게 흔들린 석가나 공자나 예수는 세속의 왕관을 버림으로써 세상의 왕이 되었다. 세속의 어리석은 우듬지들은 무성한 잎 사이에 화려한 꽃과 풍성한 열매까지 탐을 내기도 한다. 짧지 않은 인류 역사에 제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허망하게 부러진 허상의 우듬지들. 얼마나 많은 우듬지들이 아름다운 꽃과 풍성한 열매의 탐욕으로 무너지고 꺾이었던가.
청류 탁류 뒤엉긴 세상을 가로지르며 도도한 역사의 물길로 굽이지는 강. 장강의 깃발은 원천으로 샘솟을 뿐, 그의 꽃과 열매는 옆구리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강마을이다. 그 강물을 온몸으로 빨아들이며 하늘길을 여는 우듬지. 허리춤의 무수한 곁가지를 아우르며 가장 맑은 정신으로 곧추선 그대는 그 모습 그대로 세상의 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