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3:16-19 하나님의 생각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독생자 사람)로, 구원자 그리스도로, 세상에 보내셨는데, 무엇 때문에 보내셨는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요3:16절 본문은 기독교 교인뿐만 아니라 말씀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잘 알려진 성경 요절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만큼 잘못 이해하고 있는 말씀도 흔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세상 사랑’을 ‘사람의 죄 해결’로, 즉 예수의 십자가 죽음만으로 이해되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하나님의 세상 사랑으로 이 독생자를 주셨다는 것을 자신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십자가에 달려 죽어주신 분으로만 이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만 더 살펴보면, 죄의 문제 이상에 복을 주시려는 것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그 복은 3:16절의 결론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영생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신 예수님을 생각할 때 그 오심에 의한 결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영생]이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영생을 시간적 개념으로 오랫동안「영원히 사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이가 어느 정도 들은 사람에게 묻는다면 과연 참으로 오래, 오래 죽지 않고 사는 것이 그리도 좋은 것인지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물론 경제적 여유가 있는 분 가운데는 오래 사는 것에 대하여 긍정적일 수 있겠으나, 모두 다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삶의 만족이란 단순하게 돈이 많고 적음의 환경적인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란 것쯤은 경험이나 선진국들의 예를 통해 익히 알고 있는 바입니다.
만족한 삶이란 양이나 조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질’이라는 말입니다.
청상과부가 되어 독자 아들을 금지옥엽 키우는 보람으로 온갖 고생을 격으면서도 고생을 모르는 재미있는 삶을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외형적으로는 더 바랄 것이 없는 환경 조건에서도 불행하기 짝이 없는 지옥같은 생활을 하는 사람들 또한 적지 않은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천국은 환경적인 천국이 결코 아니며, 역시 성경이 말하는 영생도 영원히 긴~~ 시간 사는 그런 영생도 아닌 것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이 땅에서 천국 삶을 사셨고, 영생의 삶을 사신 분입니다. 그렇지 않다고 말할 자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예수의 삶이 환경 적으로 호조건이었을까요?
또 그분이 오래, 오래 죽지 않고 살 수 있었는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면 예수는 영생에 실패한 것일까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우리가 ‘저를 믿는 자는…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의 이 말씀을 십자가에 죽은 독생자를 믿으면 앞으로 영생을 얻는다. 라고 이해합니다.
그러나 원문은 ‘저를 믿는’의「믿는」을 현재 분사로, ‘영생을 얻게’의「얻게」를 현재 동사로, 직역하면, “지금 저를 믿으면 현재 영생을 얻는다.”입니다.
그러니까 믿으면, 영원히(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영생(하나님의 생명)을 지금 소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생을 얻게”라고 했을 때 그 영생은 무엇입니까?
「저를 믿는」의「저」로,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믿으면 그를 소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영생을 얻기 전에 그리스도부터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요일2:25)『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요일 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요일 5:12-13)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분명한 것은 [그]가 곧 [그리스도]며, 그가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주신 예수님이 바로 우리가 믿어야 할 그리스도이십니다.
다음으로 알아야 할 것은“멸망치 않고”와 “영생을 얻게”의 시제의 차이점에 대하여 입니다.
“멸망치 않고”와 “영생을 얻게”는 동사입니다.
원문에는 ‘멸망치 않고’는 과거형으로, ‘영생을 얻고’는 현재로 되어있습니다. 이것을 바르게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생각하기를 멸망과 영생을 최후 심판 때 결정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멸망을 지옥으로, 영생은 천국으로 갈라지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문장은 ‘저를 믿는 자는’이 현재분사라면, ‘멸망치 않고’와 ‘영생을 얻게’는 미래시제로 써야 합니다.
그런데도 왜 원문 성경은 과거와 현재로 구분되어 있느냐는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생을 얻지 못했던 인간들은 아담 타락 이후로 멸망의 상태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어머니 뱃속에 있어도 그것은 멸망이요, 세상에 태어났어도 멸망이라는 것입니다.
멸망이란 영생을 소유하지 못한 상태가 곧 멸망 적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 증거로 17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6절의 멸망과 영생이 17절에서는 ‘심판과 구원’으로 단어의 의미가 바뀌어졌습니다. 멸망 상태는 곧 심판받은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굳이 독생자까지 보내어서 심판한다?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있나요?
그러므로 독생자를 주신 것은, 멸망 상태의 심판을 받은 세상이 영생을 얻어 구원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이처럼 사랑하사」인 것입니다.
18절을 보세요.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왜죠? 영생이신 (그분)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16절)
그런데 믿지 아니하는 자는?
믿지 아니하므로(완료)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완료) 입니다.
지금 믿음으로(현재분사) 지금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현재 동사),
지금 믿지 아니하므로(현재분사) 과거에 믿지 아니한 상태가 지금까지 계속된 것이므로 (완료 동사) 벌써 받은 심판이 현재까지 그 시효가 계속되는 것입니다. (완료) 이 부분이 정리되어 있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살펴볼 말씀은 “정죄와 심판과 멸망에 대하여”입니다.
정죄의 반대말은 사죄요, 심판의 반대말은 구원이요, 멸망의 반대말은 영생입니다.
그래서 16절은 멸망과 영생을, 17절, 18절은 심판과 구원을, 19절은 정죄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죄, 심판, 멸망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계속되어 온 것이요. 그러기 때문에 언제라도「지금」저를 믿기 시작하는 때부터 바로 영생을 얻고, 구원을 받으며, 사죄함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저를 믿는」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해서 세상에 독생자를 주셨다는데, 그것이 곧 십자가 사건에 한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십자가의 달려 죽는 저」를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것만을 말하고 있지 않음으로, 그러므로 그런 저를 믿기 때문에 영생, 구원, 사죄를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참으로 열심히 믿고서도 영생을 못 얻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이 무슨 소린가요?
19절을 보십시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그다음 말씀이 ‘십자가에 죽으신 저를 믿지 아니하므로’인가요? 아닙니다.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입니다.
사람들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신 예수는 믿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는 믿으며, 심판하러 다시 오실 예수는 열심히 믿으면서도, 현재 어둠 안에 빛으로 오신 예수는 거의,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빛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그 빛을 믿을 수가 있으며, 믿지 아니하는데 어떻게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근본부터가 잘못되어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은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영원한 생명은 ‘빛’입니다.
고로「그」는 생명 빛이요, 세상의 빛이십니다. (요8:12)
그런데 이 빛 되신 그를 모른다. 고로 믿을 래야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롬10:14절에서 사도 바울은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마태복음 24:27절에서는 ‘인자의 임함이 번개가 번쩍임 같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에 독생자를 주신 것에 대하여 바르게 깨달아 알고 믿어야 합니다.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은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단순히 십자가에 죄만 해결해 주시려고 희생양으로서만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주님을 십자가에 달려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도 하시지만, 3년 반 동안 세상에 머물러서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게 하시므로, 우리가 어둠이 있음을 깨달아 알게 하여, 그 어둠에 빛을 비추어 그 빛을 통해서 구원하시는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비춰주신 빛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야 하고, 그 빛을 가짐으로 빛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빛을 만난다는 것은 말씀을 통해서 빛 되신 주님을 발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빛을 가진다는 것은 말씀을 통해 알게 된 주님을 인격적으로 믿어 마음에 영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와 믿는 자가 하나 됨 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둠에서 빛으로 옮겨가게 되는데 그것이 구원입니다.
주님의 비추시는 그 빛을 통해서 구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작정이었으며,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고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신 것은 그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이고 작정이셨습니다.
그 계획과 작정 안에는 십자가의 죽음의 방법도, 빛의 비취임의 방법도 함께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 됨의 구원받는 우리 모두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뜻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에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 기쁜 마음, 감사함으로 오신 아기 예수를 구원자 되는 그리스도로, 참 빛으로 마음 안에 영접해서 그분과 한 몸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