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녀를 믿지 마세요.2
60.희철집. 마당. 밤.
시골의 이른 밤.
마당의 야외 테이블에 희철 부와 영주 단 둘이 앉아있다.
한숨 섞인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는 희철 부.
희철 부: 염치없는 부탁이었는데 니가 며칠이라도 있어주겠다니까 고맙구나. 그동안 우리
그놈 마음 좀 돌려보자.
영주: (돌겠다.) ……. 네.
희철 부: 늦바람이 무섭다고는 하지만, 거짓말 한번 안하고 큰 아이다. 아까도 분명히 말했지만 차라리 그놈을 버리지 내 너 안 버린다!
그러다가는 영주의 시선이 자기 의자에 꽂혀있는 것을 보고는-)
희철 부: 왜?
영주: 아니요. 그건 암만 봐도 팔걸이가 있었던 의자 같은데.
희철 부: (의외) 그래? 니가 어째 그런걸 아니?
영주: 그게. 예전에 목공을 좀 배운 적이 있어서.
희철 부: 그랬구나. 사실은 이게 고친다 고친다 하면서도…….
영주: 의자도 꽤 낡은걸요. 차라리 버리세요.
희철 부: 이게 실은 죽은 희철 에미가 앉던 의자란다. 이젠 너도 오고했으니 이참에 아예 새것으로 바꾸자꾸나.
그러면서도 의자를 아쉬운 듯 보는 희철 부의 표정을 읽는 영주.
61. 희철방.
(아무도 없다. 창문 밖으로 달빛에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리더니.
창이 살며시 열리며 몰래 기어 들어오는 희철.)
희철: (짜증) 내 방을 내가 왜 이렇게 들어오는 거야?
(어둠속에 영주의 쇼핑백을 뒤지기 시작한다.
옷이 나오고.
영주의 어린 시절 사진이 나오고.
지갑이 나온다.
드디어 고대하던 주민등록을 빼는 순간.)
소리: (영주) 야!
(놀라 돌아보면, 영주가 서 있다.
영주, 희철에게 달려들어 주민증을 뺏으려 드는데
뺏기지 않으려는 희철과 함께 넘어지고. 엎칠락 뒷치락, 그러나 달빛을 받아서인지 몸싸움이 마치 애무의 실루엣처럼 보인다.
어쩌다보니 영주를 깔고 앉은 희철.
영주의 팔을 무릎으로 누르고 주민등록증을 확보하려는 순간, 와삭!!
영주와 희철 동시에 돌아보면, 문 앞, 할머니가 쭈그리고 앉아 새우깡을 먹으면서 둘을 빤히 쳐다보고 있고.
무안한 희철.
그 순간 영주가 잽싸게 주민등록증을 뺏어 자신의 가슴 속에 넣는다.
희철, 다시 뺏으려 손이 영주의 가슴을 향하면-)
영주: 누가 보면 오해하지 않을까?
(주춤하는 희철, 그제야 둘의 자세를 확인하고는 후다닥 떨어진다.)
희철: 당신 정말 왜이래? 그냥 간달 땐 언제고.
영주: 나도 어쩔 수 없었어. 때가 되면 가지 말래도 갈 거니까 걱정말고. 빨리 내 가방이나 찾아내라니까. 이딴 허튼짓 자꾸 하면 아예 여기 살아버리는 수가 있어.
희철: 허걱!
(이때 아래층에서 할머니를 부르는-)
희철 부: 어머니, 어머니 어디계세요?
(놀라는 희철 당황하여 왔다 갔다 하더니만 무슨 생각에선지
영주가 마신 듯한 책상위 물 잔을 가지고 창문 밖으로 뛰어버린다.
한참 있다가 바닥에 닿는 소리 나고.)
62. 용강약국 앞. 아침.
(잔을 손으로 잡으려는 영득의 손을 희철이 찰싹 때린다.
경찰 오토바이를 탄 영득, 증거 보관용 비닐을 꺼내 잔을 담는다.)
희철: 좀 더 빨리 안 돼?
영득: 일주일도 아는 사람 통해서 그런 거야.
희철: 우리 고모부한테는 비밀이다.
영득: 왜?
희철: 사방에 적이야.
영득: 나 같으면 데리고 산다.
희철: 시끄러. 가뜩이나 열 받는데.
영득: 열 받지 마라. 괜히 피부 상한다.
희철: (영득의 반응이 맘에 안든) 어이구~ 피부는 무슨. 어이. 고추 총각! 대회때 니들도 비키니 입냐?
영득: 간다.
희철: 잘 가라, 고추 총각.
마침 동네 할머니 두 사람이 지나간다.
오토바이를 멈추고 인사를 하는 영득.)
영득: 안녕하세요.
할머니: 응, 출근 허남?
영득: 예.
할머니: 잘하고 있지?
영득: 예, 걱정 마세요.
할머니2: 암튼 지간에 이버인 꼭 우리 마을서 1등이 나와야 혀, 알것지?
영득: 그럼요. 일보세요.
(영득, 인사하고 지나가면,
만면 가득 웃음을 머금고 쳐다보는 할머니들.
이때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는-)
희철: 어디들 가세요?
(대꾸 없이 못마땅한 할머니들.
쯧쯧 혀를 차며 그냥 지나가 버린다.
뻘쭘한 희철.)
63. 동네 가게.
(희철, 힘없이 들어와 라면을 집는데,
파리채로 희철 손을 내리치는 가게 할아버지.)
희철: 앗 따거. 아니 왜러세요. 할아버지
가게: 자기씨 밴 기집을 성에 안찬다고 버리는 놈한텐 절대 물건 못팔어. 나가!
희철: 아니 그럼. 저더러 라면 하나 사러 읍내까지 나가란 말씀이세요.
가게: 읍내에도 이미 소문 다났어~ 이 시러배 아들놈아!
64. 약국 안. (낮)
빵을 얌얌 먹으며 서있는 꼬마.
배고픈 희철, 그런 꼬마를 쳐다보며 입맛을 다신다.)
꼬마: (천진한 얼굴로) 천벌을 받을꺼래요.
희철: (허걱!) …….
꼬마: (등 뒤에 엄마를 보면서) 엄마가 그랬지? 여자 눈에서 눈물 나게 하면 천벌 받을
거라고?
(엄마, 애매하게 웃으며 약을 받아 아이를 데리고 나가고.
희철, 한숨을 푹 내리쉬며 허기진 배를 박카스로 채운다.
옆에는 이미 박카스 빈병이 잔뜩이고.
65. 동네 길.
(수미와 걷는 영주. )
영주: 아. 공기 참 맑다.
수미: 몸은 좀 괜찮으세요?
영주: 그럼요. 이 정도 가지고 뭘요. 빵에선 원래 빨간약 하나면 뭐든 다 나술수 있어 요.
수미: 네? 빵이요?
영주: (당황) 아. 그게. 그러니까. 빵이 아니고 빠리요. 프랑스 빠리.
거기에 그런 전설이 있데요. 빨간약의 전설.
수미: 그런 거 보면 언니는 참 아는 것도 많아요. 그래서 저도 언니 보면서 얼마나 반성했는지 몰라요.
영주: 반성이라뇨?
수미: 사실 처음엔 언니가 오빠 후밴줄 알고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이쁘고, 좀 주눅들었었
거든요. 근데 비슷한 처지인걸. 아니 오히려 나보다 더 어려운 처지인데도. 이렇게 꿋꿋하고 똑똑한걸 보고는. 언니가 얼마나 존경스러웠다고요.
영주: 그랬어요. 나도. 수미씨가 참 귀엽고 좋아요.
수미: 정말요? 우와. (영주의 팔짱을 끼며) 우린 정말이지 친자매 같은 시누이 사이가 될 것 같아요. 그쵸?
영주: (왠지 켕긴다. ) 그. 그래요.
수미: 근데. 언니는 뭐하세요?
영주: 아. 그게. 지금은 쉬어요.
수미: 하긴. 몸도 그렇고. 그럼 그 전에는요?
영주: (적당한 말이 떠오르질 않아) 그냥. 국가 기관 같은데 있었어요.
수미: 국가 기관요? 뭐하는 국가 기관요?
영주: 그냥 뭐랄까. 다양한 전문가들이 한데 모여서 따로 교육도 받고 하는.
수미: 아 그랬구나. 어쩐지…….
(이때 수미의 종아리를 개가 무는 것처럼 갑자기 꼬집더니 개 짖듯 ‘왈’하고 소리치는 남자!)
수미: 엄마야!
(수미, 비명을 지르고 돌아보면 양아치 세 명이 놀라는 수밀보고 낄낄대며 지나간다!)
양아치1: 수미, 많이 컸네? 잘 커야 한다! 낄낄낄!
영주: 누구예요?
수미: (화가 나는) 에이 씨 정말 기분 나뻐…….오빠 초등학교 동창인데, 껄렁껄렁 노상 저러면 서 다녀요. 아무한테나.
(영주, 노려보는 눈빛이 날카로워지고…….)
66. 도서관 마당.
건물 내부엔 온통 곰팡이가 피었고.
마당에서 친구인 점자가 이미 쓸모없어진 책들을 가득 모아 태우고 있다.
수미: 여기가 제가 일하던 우리 마을 도서관이었는데요. 워낙 낡은데다 얼마 전에 비가 올 때 천장이 새서 온통 물바다가 되버렸어요, 그래서 그나마 있던 책들도 몽땅 젓어
못쓰게 돼 버리고.
영주: 저런. 그래서 어떠해요.
수미: (한숨) 아버지가 어떻게 마을사람들을 설득해보시는데. 쉽지가 않데요.
아예 이참에 문을 닫아 버리자고 들.
(순간 수미의 아쉬운 얼굴을 읽는 영주. )
수미: 다시 보수하고 책도 사려면, 한 사백만원 정도 있어야 하거든요.
점자: 그래서 내가 용득이 오빠한테도 부탁해놨어. 오빠가 돼기만 하면 좀 도와준데.
수미: 정말? 용득이 오빠가 꼭 고추 총각 됐으면 좋겠다.
영주: 고추 총각이요?
수미: 처음 들어보시죠? 우리 용강에선 몇 해 전부터 고추 아가씨가 아니라 고추 총각을 뽑거든요.
영주: (웃으며) 그래요? 그거 되게 웃긴다. 고추 총각.
점자: (약간 기분이 나빠) 그래도, 우리 마을에선 얼마나 유명하다고요. 작년에 뽑힌 옆동네 오빠는 ‘6시 내고향’에도 나갔었어요.
영주: (웃음을 참으며) 그래요……. 미안해요. 웃어서.
수미: 괜찮아요. 사실 우리 마을에도 아직 웃기다는 사람이 있는데요. 뭐.
영주: 그래요. 누가요?
수미: 우리 오빠요.
67. 희철 약국.
수미 대사 오버랩 되면서 좀 거칠어진 모습으로 전화를 받고 있는 희철-)
희철: (쩔쩔매는) 내가 전화를 하며 그때 오면 안 될까? 그럼, 내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하긴 했는데. (오버) 아니, 일이 있는 건 아니고, 그래 재은아, 내가 전화할께. 그래.
(전화를 끊는 희철, 속이 곧 터질 것 같지만 어렵게 참고 끓는 물에 어렵게 구한 라면을 집어넣으면-
이내 꺼지는 가스 불.
희철, 가스를 빼어 흔들어 보고는-)
희철: (울상) 이런 젠장.
68. 희철집, 마당 평상. 밤.
(모기불이 피워져 있고.
고모네 식구들 까지 모여 왁자지껄 수박이며 과일 등을 맛있게 먹고 있다.)
희철 부: (농담하듯) 이거 이렇게 자주 모여 먹다가 우리 집 세간 다 없어지는 거 아닌가?
파출소장: (놀리듯) 그게 지금 농담이십니까? 참, 형님 농담도 재미없게 허십니다!
(웃음이 터지는 가족들.
영주, 이런 화기애애한 가족들의 분위기를 웃으며 바라보다가는 문득 자기를 돌아본 듯 얼굴에 그늘이 스치고.)
셋째고모: (영주에게) 그나저나 부모님, 어디 멀리 가셨나? 빨리 연락이 돼야 날도 잡고 그럴텐데.
영주: …….
둘째고모: 맞아, 얘 결혼시킬때두 그때 바로 날 안 잡았으면 강서방 또 도망갔을지도 몰라!
셋째고모: 언니도 애기 앞에서 참. 이게 농담이여. 듣지 마!
(다시 터지는 웃음
영주, 따라는 웃지만 이런 가족들 앞에서 왠지 죄의식이 느껴지는지-)
영주: (머뭇거리다가는) 저기, 사실 부모님이 안계세요.
일동: …….?
영주: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구요, 저두 수미씨처럼 엄마 얼굴을 모르고 컸습니다.
집이 어려워서 언니가 고생을 많이 했는데, 언니랑 저, 그렇게 둘이에요.
일찍 말씀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갑작스런 영주의 고백에 식구들, 누구하나 입을 열지 못하고.
희철 부도 당황한 듯 얼굴이 굳어진 상태.
이때 할머니께 사과를 수저로 갈아들이면서 말문을 여는-)
큰고모: 둘이면 어떻고 열이면 어때. 어떻게 컸느냐가 중요하지. 잘 컸구나, 힘들었을 텐데!
(따뜻한 음악이 흐르고…….
큰고모의 반응에 놀라는 식구들과 영주.
큰고모는 여전히 별일 아니라는 듯 할머니에게 과일을 먹여드리고 있고.
그런 큰고모의 신뢰 때문일까.
그제야 서서히 영주에게 위로의 말을 하기 시작하는 가족들.)
파출소장: 그래, 그런 게 뭐 중요해? 사람이 중요하지.
셋째고모: 그럼요, 아유, 진작 얘기하지. 고민 많이 했겠네.
(처음으로 진실을 얘기한 영주, 심성 고운 가족들의 반응에 감동을 느끼고.
같은 아픔이 있었음을 알게 된 수미, 영주에게 미소를 보인다.
눈가에 물기가 맺힌 영주, 역시 미소를 보내고…….
69. 동네 어귀 공중전화.
(전화를 하고 있는 영주.
수미는 저쪽에서 영주를 기다리며 돌팔매질을 하고 있다.
신호음이 울리면 영주, 망설이는 표정을 짓다가는-)
영주: 여보세요? 네 영주라고 하는. 어머. 제 이름 기억하시네요? 언니 있나요?
(잠시 후 언니가 받자, 감정 안 좋은 척)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언니 말대로 여행 중이야, 정말이야. 여기 충청도 용강이야, 용강! 아냐. 내일은 늦더라도 꼭 갈 꺼야. 에이 씨. 언제는 내 말 믿었어?
오지 말라고 한 사람이 누구였는데. 뭐라고?. 끊어!
(화가나 수화기를 내려버리는 영주,
그리곤 이내 이게 아닌데 하는 표정.
그 모습 멀리 보이며, 음악 준다…….)
70. 헬스장. (아침)
(전형적인 시골 헬스장.
영근이가 아령을 들면서 거울 속의 자신의 근육을 체크한다.
역기를 들려고 하는데.
옆에 있는 잘생긴 남자(나중에 우리는 이 남자가 유력한 고추 총각임을 알게 된다.) 한명이
중량을 높인다.
경쟁의식이 생긴 용근.
따라서 올린다. 한개. 두개. 세 개까지.
누운 자세로 무리하게 들어 올리다가.
우두둑 소리!)
71. 희철집, 마당 평상.
이장인 희철 부를 비롯한 마을 어른 몇 명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다.
영득모: 아무래도 우리 영득이는 어려울 거 같아요.
희철 부: 허. 거참. 대회 다 임박해서 이런 일이. 이번엔 우리 용강리가 주최라.
후보를 안내보낼수 없고.
청년회장: 그래도 안 나갔던 총각은 이제 희철이 하나밖에 없어요.
영득모: 어떻게 이장님이 설득을 좀 해보시죠?
희철 부: 그런데 다들 아시다 시피 그놈 요즈음 형편이. 거기다 우리 희철 이는 워낙에 부끄럼도 많아놔서 나간다 해도 망신만 당할게 뻔해요.
청년회장: 그럼. 할 수 없네요. 아쉽지만 포기할 수밖에.
그때, 영주와 차를 내오던 수미, 말을 듣다 안타까움에 도저히 못참겠다는듯.
수미: (불쑥) 안돼요~ 아버지! 저기. 우리 오빠가 그렇긴 하지만, 여기 새언니가 옆에서 도와주면 될지도 몰라요. 언니가 그전에 국가기관에서 오빠 같은 사람들을 다르게 변화시키는 교육도 직접 했었데요. 그쵸? 언니. (그말에 놀라 수미 얼굴을 쳐다보는 영주. 하지만 제발 좀 도와 달라는 수미의 표정에 차 마 부정을 못하고는. )
영주: 네. (기어들어가는) 그렇긴 했죠.
영득모: 그럼 뭐. 더 얘기할 것도 없네. 우리 이장님. 며느리 덕분에 또 한 번 큰덕 보시네 요. 좌우간 복뎅이라니까.
청년회장: 우와. 국가기관이면 대단했을 텐데. 그럼 잘하면. 희철이가 진짜 고추 총각에 뽑지도 모르것네요.
그 말에 희철 부 괜히 목에 힘이 들어가고.
주변 사람의 그런 기대감들에 일단은 자신있다 는 미소로 답하는 영주.
하지만, 속으론 한숨이 절로 난다.)
72. 희철집. 식탁
걸신들린 사람처럼 허겁지겁 머슴밥을 먹고있는 불쌍한 희철.
그 앞에 영주와 수미가 앉아 보고 있다.
그 둘이 얄미운-)
희철: (독만 남은) 날 부르신걸 보면 이제 아버지도 당신이 슬슬 의심이 가기 시작하신 거야!
영주: 많이 먹어요. 우리 고추 총각 대회 나가야 되니까.
희철: (밥이 목에 걸리고는, 짐짓 가소롭다는 듯) 으하하, 내가 그렇게 우습게 보여? 고모들 한테 이를 거야, 당신!
(이때 셋째고모 나타나자 희철 너무 반색하며 자기도 모르게 어리광-)
희철: (울먹이며) 막내 고모~!
셋째고모: (무시하고, 영주에게) 얘기했니?
영주: 믿질 않아요.
셋째고모: 고생 덜한 모양이다. (그리곤 가버리고.)
희철: (황당) …….
(그리곤 뒤이어 나타나는 희철 부.
희철, 놀라 무릎을 꿇으며 머리를 조아리고.)
희철: 잘 지내셨어.
희철 부: (말을 끊으며) 고추 총각 나가라.
희철: (허걱) 네?
희철 부: 마을 사람들을 위해서고, 무엇보다 우리 수미의 도서관을 위해서다.
희철: (난감한) 아시잖아요. 저 원래 그런 거.
희철 부: 그러니까. 넌 무조건 여기 며늘아기가 시키는데로만 해! 잔말 말고.
73. 희철집, 뒷마당. (밤)
(조용한 뒤뜰에 희철이 영주를 기다리고 있다.
영주 나타나자, 희철 망설이다가는-)
희철: (사정하는) 영주씨, 저 정말 너무 힘들어요. 왜 끝까지 이러는 거예요.
영주: (희철, 완전히 저자세라) 몰라서 물어요?
희철: 그래요, 그 가방, 알아요. 그때 깜박해서 분실물 센터에 못 맡기고 그냥 가지고 다 니다 어디다 그만 흘렸어요. 안그래도 여기저기 물어 놨는데. 아직 연락들도 없고요.
영주: (희철의 말, 진짜일까?) …….
희철: 나, 다른 건 몰라도 고추 총각인가 뭔가, 이거는 진짜 못해. 부탁합니다.
영주: 남자가 왜 그래요? 수미씨네 도서관이 어떻게 됐는지 희철씨도 봤잖아요.
희철: 그거 안타까운 사정이야 잘 알지만. 그렇다고. 어차피 못 뽑힐걸.
영주: (버럭) 내가 만들어 주면 되잖아! 그깐 고추 총각 내가 만들어 줄게. 당신은 알잖아. 내가 어떤 여잔지.
희철: 그건 능력이 아니라 사기죠.
영주: 좋아 그렇담 당장 조용히 사라져 주지. 대신에.
희철: (화색이 돌며) …….
영주: 아버님께 영원히 나와 아이를 찾지 말아달라는 편지를 남길 꺼야. 그럼 평생 식구들이 희철씨를 어떻게 생각할까?
희철: (뜨끔)!!
영주: 그러니까 그게 싫으면 무조건 당신 1등 해야 돼! 그럼 그때 조용히 갈 꺼야.
(협박과 함께 여유 있게 돌아서 가는 영주.
완전히 용코로 걸린 희철, 너무 괴로워 소리도 못 지르고 바닥에 뒹굴러 버린다!
음악, 터져 나오며-)
74. 희철집 마당, 평상
수박을 먹으며 모집 요강을 들척이는 희철.
희철: (불만 섞인 소리) 우선 특별한 심사 기준은 없는 거 같네요. 그 지역에 출신의 신체 건강한 미혼 남성. 심사위원 마음대로라는 얘기지.
영주: (소리, 치켜주는) 역시 똑똑 하구만, 예리해.
희철: (소리) 매대회 때마다 고추에 대한 질문은 있었으니까 당연히 나올 것 같고,
영주: (소리) 아버님, 공납금 안 아까우시겠다.
희철: (소리) 검토 결과 개인 특기에 비중이 많은 것 같아. 이게 키포인트요.
영주: (소리) 아니, 그런 비결까지? 1등이네 우리!
희철: 근데 왜 끝까지 반말이요?
영주: 꼬우면 댁도 해라?
희철: (참는) …….
영주: 잠깐만, 신체 건강? 하고는 희철을 보면서 또 재밌는 표정을 지으면-)
희철: (불안) …….
75. 둑방길.
저 아래서 낑낑 거리며 러닝 중인 희철.
영주와 수미는 둑 위에서 그런 희철을 바라보고 있다.
수미: (문득) 언니. 우리 오빠랑 어떻게 만났어요?
영주: 네?
수미: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이 만난 얘기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아니 그것보다 첫 키스는 언제 했어요~? 얘기 해줘요. 네? 네?
77. 영주의 상상씬.
-
78. 둑방길.
겨우 뛰어온 희철.
그런데 헥헥 거리는 희철을 너무 낭만스럽게 쳐다보는 수미.
수미: (감동이 올라와) 오빠. 너무 멋져!
희철, 뭔 소린지 당체 영문을 모르겠다.
79. 희철방. (밤)
(카메라를 보고 나름대로 웃고 있는 희철.)
영주: (불만) 아, 거참 되게 이상하게 웃네, 거.
희철: (화가 나는) 나 원래 이렇게 웃어.
(김 재원, 원빈, 고수, 소위 살인 미소라는 연예인 사진을 희철 앞에 던지는-)
영주: 앞으로 100번씩 연습.
희철: (자존심 상한) 아니, 외모가 그렇게 중요한 거요?
영주: 남자들은 여자 외모 안 봐?
희철: 봐.
영주: (눈을 한번 흘기고는) 그리고 심사 위원들은 각 마을 부녀 회장이라니까 당근 미소는 기본! 무대에서 심사 위원이랑 눈 마주치는 거 있지마. 여자들은 시선 이리저 리 돌리는거 싫어해. 자 해봐. 내가 심사위원이다, 생각하구, 5초씩 눈길 쏘는 거.
시작!
(영주, 희철의 코앞에서 눈을 본다.
처음엔 잘하던 희철, 영주의 얼굴이 너무 가까이 있자 당황해 얼굴을 돌리려 하는데…….
희철의 얼굴을 잡고 고정시키더니-)
영주: 똑바로 보래니까. 미소! 미소!
그러나 막상 가까이 마주하고 눈을 맞추자 뭔가 쑥스러워 지는 두 사람.
80. 동, 앞
(우연히 이 모습을 문틈으로 바라보고 있는 희철 부와 큰고모.
영주와 희철의 모습을 훔쳐보고 있다.
이때 수미, 과일을 가지고 이층으로 올라오면-
손을 잡고 끌고 내려가는 희철 부.
수미는 엉겁결에 끌려 내려가고.)
큰고모: (감탄하는) 애기, 무섭네.
희철 부: 국가 기관인데, 그럼.
큰고모: (한숨) 저러다 정이나 다시 붙으면 좋으련만.
81. 동네 가게 앞.
희철이 뛰다 헐떡이며 멈추는데. 얼른 나와 시원한 음료수를 건네주는 가게 할아버지.
희철이 보자, 쑥스러운 웃음을 짓는다.
82. 용강 약국. (낮)
꼬마: 엄마가 그러는데요, 선생님이 꼭 일등할거래요.
희철: (미소) 고맙다.
꼬마: 선생님은요, 얼굴은 좀 떨어져도요, 약사라서 점수를 먹구 들어간데요. 그렇지 엄마?
(엄마, 애매하게 웃으면서 꼬마의 팔을 잡아끌고 나간다.)
83. 희철집 입구.
(해질 무렵. 운동을 마치고 들어오는 영주와 희철.)
희철: 그땐 정말 고마웠어.
영주: 뭐가?
희철: 우리 할머니 구해준거말야. 난 뭤도 모르고 막 뭐라 그랬었잖아.
영주: (웃으며) 되려 내가 미안하지 뭐. 그쪽은 나 때문에 머리에 큰 혹도 났었잖아.
희철: 아직도 영주씨가 왜 이러는지 잘은 모르지만. 날 열심히 해볼게!
그 말에 피~ 하며, 희철을 돌아보는 영주.
하지만 희철의 진실 된 표정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지긋이 미소가 생긴다.
그때, 그들 앞에 불쑥 나서는.
할머니: 어떻게 오셨읍니까?
영주: 저기. 최 희철씨 장례식에 왔어요. 할머니.
할머니: 희철이. 그놈 장례식은 이미 지났습니다. 오늘은 우리 손주 며느리 장례식입니다.
그 말에 웃으며 할머니를 다정스레 모시고 들어가는 두 사람.
84. 미용실
빈 거울 안에 프레임 인되는 희철의 바뀐 모습.
짧게 깎아 이마를 드러낸 모습이 꽤 괜찮은 희철, 거기에 무간도에서 유덕화가 입었던 스타일의 양복까지.
영주, 조금은 놀란 듯 희철을 보면, 쑥스러워 무시하는 그.
영주, 그런 그가 귀여워 웃어주고.
마냥 기뻐하는 수미의 천진한 모습!
85. 희철방
(음악, 빠른 비트로 바뀌고-
전혀 비슷하지도 않은 춤을 추는 몸치, 희철.
영주와 수미, 동시에 한숨을 쉬고.)
영주: (한심한) 1등 비결, 알면 뭐하나, 특기가 없는데.
수미: 괜히 내가 미안한 생각이 드네요.
영주: 춤은 포기하고, 남자 다운거. 태권도는?
희철: 초단.
영주: 성대모사.
희철: (전 유성처럼) 안녕하세요, 전유성입니다.
(전혀 안 똑같다.
수미, 몸을 떨면서 들어가고.)
수미: 난 포기.
영주: (화난) 도대체 그 청춘은 할 줄 아는게 뭐요?
86. 희철방. (오후)
(푸근한 오후 햇살이 부드럽게 들어오는 방.
기타를 치면서 노래하는 희철, ‘You are so beautiful to me'…….
분위기와 어울려 멋지다.
등 뒤에선 영주의 시선, 부드럽게 풀린다.)
희철: (노래를 마치고 반만 돌아보며) 어때.
영주: (표정 갈고) 느끼해.
희철: 그럼 뭐해? 딴거 해?
영주: 그냥 해.
(의외인 듯 희철, 영주를 정면으로 돌아보고-)
희철: 진짜?
영주: 없잖아, 다른 거.
(조금 전 분위기 때문인지 희철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듯 나가는 영주.
희철, 의아하다.)
87. 저수지가 보이는 둑. (저녁 무렵)
(부드러운 음악이 흐르면서…….
운동복 차림의 희철이 자전거 체인을 끼우고 있고 트레이너 영주가 둑에 앉아 마을을 바라보고 있다.
노을이 지고 있고. 집집마다 밥하는 연기가 솟고 있는 마을 풍경……. 체인을 끼우고 영주를 부르려다가는 마을을 바라보며 감상에 잠겨있는 그녀를 보고는 옆에 앉으며-)
희철: 멋지죠? 우리 동네에서 최고로 멋진 자리야. 저 밑에 길로 가면 훨씬 빠른데도 난 늘 이 길로 다녔어. 여기서 태어 났고, 여기서 자랐고, 여기서 살다가 여기서 죽을 생각이야.
영주: (픽 웃으며) 소박하네.
희철: 한 소박하지. 난 그게 행복해. 재은이도 행복할꺼구.
영주: 누구? 여자 친구?
희철: 뭐 흔쾌히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도시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여기 와 보면.
영주: 얘기해 봤어? 그러자고?
희철: 아직. 프로포즈하면서 하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열 받아 영주를 노려본다.)
영주: (무시하고) 별로 안 좋아 할 거야 그 얘기. 여기는 꿈이고, 현실은 틀려. 해달라는데로 해주는 척하고, 결혼하구 내려와. 소박, 검소. 절대 여자들한테 안 먹혀.
희철: 거짓말이 쉽긴 하겠지.
영주: 거짓말이 쉬워? 거짓말은 고도의 두뇌 게임이야. 앞 얘기 뒷얘기가 받쳐줘야 하고
기억력 좋아야지, 순발력 있어야지. 게다가 창작의 고통까지!!
희철: (비아냥거림) 논문인데, 거의!
영주: 거짓말 무시하네?
희철: 적어도 이제 그쪽 거짓말은 안통해. 보통사람은 거짓말 할 때 표가나는데 그쪽은 진짜 를 말할 때 표가나. 얼굴이 빨개지거든.
영주: 해볼래?
희철: 해봐.
영주: 얼마빵.
희철: 만원빵.
영주: 소박하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이 거짓말인지 아닌지 맞춰봐.
(희철, 영주의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영주, 무슨 거짓말을 할까 하다가 눈앞에서 빤히 쳐다보는 희철을 보고는 얼굴이 빨개진다.)
희철: 어. 증상 나왔다. 빨랑해.
(희철, 의기양양해진다.)
영주: (고개를 숙이며 진지하게) 어쩌지. 나 네가 좋아졌어.
희철: (뜻밖의 말에 당황하다가) 이상하다, 얼굴이 빨개졌는데.
영주: 난 거짓말 9단이야. 넌 영원히 날 못 따라 와.
(영주, 엉덩일 털며 일어나 가면-
(그런 영주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희철…….
음악, 줄고…….)
88. 희철집, 마당 (저녁)
(마당 앞에 서 있는 못 보던 차.
집에 도착한 희철과 영주. ‘누가 왔나?’)
89. 거실
(안으로 들어서는 희철과 영주.)
영주: 다녀왔습니다.
(안방에서 나오는 희철 부와 수미.)
희철 부: 왔냐?
수미: (영주에게) 언니 오셨어요.
영주: 네.
수미: 아니요, 언니 언니분이랑 친구 분이랑 오셨다구요.
(이때 방에서 나오는 사람, 교도소 때의 화숙과 명자다!)
명자: (오버 반색) 영주야!!
(너무 놀란 영주, 표정관리가 안되는데-
명자, 끌어안으며-)
명자: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된거야? 니네 언니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영주: (당황) !!
명자: 너 죽었다는 얘기 듣구 나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영주: 누가 그래?
명자: 저 할머니가.
(보면, 주방에서 나오는 큰고모와 할머니.)
화숙: 사돈어른께 말씀 들었어. 많이 힘들었지?
(영주, 희철 부와 눈이 마주치는 위치다.
어쩔 수 없이 웃는다.)
화숙: (영주를 안으며) 이런데 있는 줄도 모르고 한참 찾았잖아.
(묘한 뉘앙스를 풍기는 화숙의 말…….)
90. 수미방.
(영주가 심각한 표정으로 화숙과 명자를 쳐다본다.
명자는 여기저기 책상서랍을 열고 뒤진다.)
영주: (서랍을 닫으며) 뭐해?
명자: 그냥 보는 거야. 야, 나 연기 많이 늘었지?
화숙: 얼굴 좀 펴라, 오랜만에 보는 언니들인데.
영주: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화숙: 대구 사는 언니한테 물어봤지?
영주: 왜?
화숙: 왜겠니, 니가 가만있을 애니? 먼저 기반 잡고 있을 테니까 밥 숟가락 좀 걸치자는 거지.
명자: 내 숟가락도. 주영주가 이런데 왜 있겠어, 이런 데가 오히려 구찌가 크거든!
영주: 이집 고모부 경찰이야.
화숙: 싫은가 보네? 꼰질를려구? 우리가 감방 동기라는것두 말해야 할걸?
(영주, 화숙과 명자를 노려본다.
이때 노크소리와 함께 큰 고모 들어오면-
세 명 모두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한 웃음을 짓는다.)
큰고모: 방이 좁아서.
명자: 좁긴요, 빵에 비하면.
(명자, 말실수를 하곤 헤헤 웃고.)
큰고모: (못 알아 듣고) 근데 자매가 안 닮았네?
화숙: (영주의 어깨에 손을 얹고) 얜 엄마 닮고, 전 아빠 닮았거든요, 그치 영주야?
91. 커피숍. (안/ 낮)
(통유리를 통해 본 바깥거리.
고추 축제 준비로 한창이다.
담배를 피워 무는 화숙과 명자.)
영주: 이대로 떠나자고 하면 어쩔래?
화숙: 너다운 대사를 해. 저기 보이는 돈을 그냥 두고 간다고?
명자: 우리 많이 욕심 안내. 너 절반 같고 나머지 절반 우리 둘이 갖고. 그럼 되잖아.
영주: (결심한다.) 좋아, 같이 해.
명자: 그래야지.
영주: 설계는 끝났으니까, 당분간 내가 하라는 대로 할수 있어?
화숙: 누구 말씀인데.
영주: 디데이는 고추 축제야.(다급하게) 담배 꺼!
(화숙, 명자 놀라 담배를 끄면-
영주,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창밖을 본다.
마을 아줌마들이 영주를 보며 아는 체를 하고 지나가고.)
명자: (감탄) 존경스러워, 정말. 다 알고 보는데도 니 사기에는 어떤 진실같은게 느껴지거 든!
(잠시 후 창밖으로 수미와 점자가 지나가는 것이 보이고.
이때 수미의 종아리를 꼬집으며 희롱했던 전씬의 양아치들이 우연히 마주친 수미에게 똑같은 방법으로 희롱을 하고는 차를 타고 간다.
이것을 보고는 눈에 불이 들어오는-)
영주: 일하곤 상관없는 건데 부탁하나만 하자.
92. 거 리.
(축제랍시고 촌티 나는 양복 쫘악 빼입고 머리에 잔뜩 힘준 양아치들.
때마침 그들 앞에 나타난 화숙과 명자.
양아치1: 어이! 귀여운데……. 오빠들이 축제 구경시켜 줄까?
명자: (순진한척) 어머! 정말요? 고마워요. 오빠들.
의외로 순순한 분위기에 양아치들. 화색이 돌고.
화숙, 명자가 으쓱한 골목으로 들어가자 좋아라. 쫓아들온다.
- 골목안.
화숙: 오빠들. 우리가 재밌는 거 하나 보여줄까?
가슴에서 꺼낸 잭나이프를 펴서는 흡사 매트릭스 여주인공 마냥 현란하게 돌려대는 화숙과 명자……. 벙쪄서 보고 있던 베컴머리 양아치의 앞머리를 순간적으로 날려 버리고…….
양아치들: 허걱-!
이때 골목안으로 쓱 들어오는 영주. 양아치들 이건 또 뭐야 하는 표정인데…….
영주: 니들 또 한 번만 동네여자들한테 껄떡대면 아가리 찢어서 뒤통수로 넘겨버린다.
(사이)
양아치들: 엄마야-!
갈래갈래 찟겨 걸레가 된 양복에 앞머리들이 날아간 양아치들. 혼비백산 달아난다.
화숙, 명자와 하이 파이프를 하는 영주…….
93. 희철집, 2층 거실. (저녁)
(희철이 기타를 치면서 ‘You are so beautiful to me'를 부르고 있다.
2층 난간에 기대서 영주가 희철 가족을 바라다본다.
교장과 파출소장은 아래층 거실에서 바둑을 두고 큰고모는 화장실 문을 열어 놓고 할머니 얼굴을 닦아주고 있다.
문이 열리고 들어오는 수미의 손에 케이크 상자가 들려있자 ‘왠케잌이니?’ ‘읍내 노래방에 있는 애들 있잖아요, 왜 껄렁 대구 다닌다구 고모가 욕했었던. 걔네들이 왠일로 도서관으로 와서 이걸 놓고 가더라고요.’
주방에서는 셋째 고모가 음식 간을 셋째 고모부에게 보이고…….
따뜻한 가족의 모습을 보며 어두워지는 영주의 얼굴…….
자기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는데.
하이라이트 부분을 노래하던 희철, 목이 갈라져 삑사리가 나면-
풋-하고 웃는 영주의 미소마저도 무거워 보이고…….
F. O)
94. 문예 회관. (밖/아침)
(‘고추 축제’가 열리는 날.
플랜카드를 붙이고.
고추 판이 벌어지고.
고추가 들어간 각종 상품이며 먹을거리들이 실린 트럭들 도착하고.
한복을 입은 아줌마들이 왔다 갔다 한다.
희철 부와 마을 사람들의 분주한 모습도 보인다.
영주와 수미도 한쪽에서 거들고 있고.
화숙과 명자도 입은 튀어나왔지만 어쩔 수 없이 거들고 있고.
열심히 일을 돕는 영주.
화숙, 그런 영주가 조금은 의아하고.
각 마을 단위로 부스를 설치해 물건을 팔고 있다.
조금이라도 더 부스를 차지하기 위해 줄을 밀어대는 모습도 보이고.
외지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물건을 사기 시작하고.
물건 판돈들이 차곡차곡 금고에 들어가고.
화숙과 명자, 금고를 노려보고 있다.)
명 자: 제법 되겠는데?
화숙: 게다가 전부 현금이야.
(영주가 저쪽에서 부른다.)
영주: 뭐해?
명 자: (큰소리로) 알았어!
(화숙과 명자, 툴툴거리며 영주 쪽으로 간다.)
95. 강당 안.
(한복을 입고 워킹을 하는 고추 총각들.
희철의 모습도 보인다.
희철, 너무 긴장해서 오른 손과 오른 발이 같이 나간다.
웃는 사람들.
긴장하는 희철네 식구들.
마을 사람들, 혀를 차고.
한복을 입고 나란히 선 각 마을의 고추 총각 후보 20명.
그중 희철의 모습도 보인다.
영주, 손가락을 갖다 대며 웃으라는 싸인.
예의 그 이상한 미소인 희철.
힘빠지는 영주.)
96. 대기실 (안/낮)
(부산한 대기실.
장기 자랑인 듯 춤 연습을 하고.
아아! 목을 풀기도 하고.
양복을 입고 거울을 보며 타이를 매는 희철을 불만스럽게 쳐다보는 영주.)
희철: (거울속의 영주에게) 뭐가 또 불만이야?
영주: 진동 모든가? 최, 최, 최희철입니다.
희철: 댁도 저기 서봐.
영주: 용강면 3년째 숙원은 물 건너 갔다.
희철: 최선을 다한다는데 의미가 있는 거지.
영주: 왜, 참가에 의의를 두지?
(영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티슈를 뽑아 희철의 땀을 닦아준다.
그때 무대 쪽에서 ‘Let it be'를 부르는 소리.
영주, 얼른 무대를 본다.
용이면 고추총각 후보가 팝송을 열창하고 있다.
꽤 잘 부른다.
희철, ‘You are so…….' 가사를 다시 한 번 검사하고 있는데
영주, 그 악보를 잡아채며-)
영주: 이거 안 되겠다.
희철: …….
97. 강당. (안/낮)
사회자: 다음 후보의 장기 자랑은 기타 연주와 노랩니다. 여러분 박수 부탁드립니다.
용강면의 최 희철씨!
(스폿 라이트를 받으며 기타를 들고 긴장된 얼굴로 나타나는 희철. 객석을 향해 예의 그 미소.
긴장한 희철네 식구들. 용강면 사람들.
숨호흡을 하고는 희철 자세를 잡으면-
경쾌한 기타 스트록과 함께 시작되는-)
희철: (노래) 아픔을 달래는 여자.
(그 순간 하이 톤의 코러스가 ‘여자.’
희철 부 식구들 의아한 표정…….
스포트라이트 또 다른 쪽을 비추면, 가죽 옷을 입은 화숙과 명자, 그리고 영주.
몸을 살짝 살짝 흔들며 코러스를 넣고 있다.)
희철: 이 세상에 착한 것이 여자 여자 여자.
(영주, 무대 옆에 준비되어 있던 악단들의 악단장과 눈이 마주치면-
미리 얘기되어 있었던 듯 반주, 가세하고!
폭발적인 객석 반응.
심사 위원인 부녀 회장들, 발로 장단을 맞추고.
노래가 끝나자, 폭발적인 환호성!
전씬의 유력한 우승 후보 진영,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하고!
희철네 식구들 얼싸 안고 좋아하는데-
그때 무대에 뛰어 오르는 용이면 우승 후보 관계자-)
용이면 이장: 잠깐, 이건 무효여, 무효!(웅성대는 사람들) 본인이 혼자 해야지, 합창단 데리고 오는 건 반칙이지, 반칙!
(용이면 마을 사람들, 환호를 보내고.)
영주: 규칙에는 그러면 안 된다는 말은 없어요!
용이면 이장: 어디서 말대꾸여? 이게 누구 때문에 이런 건데? 하던데로 해야지, 어디서 얼굴도 모르는 것들이 나서서 난리여?
(객석에 있다가 벌떡 일어나 소리치는-)
큰고모: (버럭) 우리 며늘아이한테 어따대고 소리질이여, 소리 질이? 규칙엔 그런 말이 없다잖어, 우리 며느리가!
(용강면 사람들, 환호하고!
용이면 이장과 큰고모, 마을 사람들이 설전을 벌이기 시작하자-
사회자, 다급히 수습하며-)
사회자: 자자, 왜들 이러십니까. 좋은 날에.
큰고모: 저 인간 저번 때도 술쳐먹고 뛰어 올라와서 지가 노래 부르고 분위기 다 깨드만.
용강면이장: 뭐여? 당신이 술 받아줬어? 내 돈 내고 내가 먹었는데 왠 난리여?. 딸꾹!
영주: 저기요, 우선 어르신께 말대꾸 한 것 죄송하고요. 저때문이라시니까 제가 제안하나 할께요. 사실 고추 총각이라면 고추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가가 더욱 중요한 게 아니겠어요?
일동: …….
영주: 그래서 말씀드리는 건데요, 진정한 고추 사랑, 고추 먹기 시합을 하는 게 어떨까요?
희철: (허걱!)!!
사회자: 용강 고추는 원래 맵기로 소문난 고춘데. 괜찮을까요?
영주: 그래야 진정한 고추 총각이죠!(객석에) 여러분, 우리 오이 총각 뽑는 거 아니죠-?
(일동, 수긍하는 분위기…….
‘맞는 소리네!’ ‘그려, 그래야 공정하지!’ ‘재밌겠구먼, 여기 고추 좀 메워?’)
누군가: 누구집 며느리여? 똑똑 하구만!
(이 말을 필두로 쏟아지는 박수.
희철, 얼굴이 허얘지고.
영주, 다가와-)
영주: 우리 1등이야. 외모나 특기 다 필요 없게 됐으니까.
희철: 차라리 죽이지 그러니.
(점프-
각자의 바구니에 고추가 그득 담겨 있고.
테이블 앞에 긴장된 얼굴로 서있는 용이면 총각과 희철.)
사회자: 자, 장기 자랑 점수가 가장 높은 두 분이 마지막 관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일명 ‘고추 먹고 맴맴 경기!’ 1분동안 누가누가 고추를 많이 먹나로 승패가 가려질 텐데요,
자, 긴장들 푸시고. 준비하시고. 시…….작!
(이미 결심이 섰는지 눈을 딱 감고 마구 고추를 먹기 시작하는 희철!
옆의 총각 머뭇대다가는 희철의 투지에 놀라고!)
사회자: 아, 대단합니다. 상당히 메울 텐데요.
(얼굴이 벌게지기 시작하는 희철, 드디어 눈물이 흐르더니 콧물이 나오고 침이 나오고 기침에 신음소리까지…….
옆에서 보고 있는 용이면 충각, 두려움에 인상이 찡그려지고.
한참을 먹던 희철, 문득 그 험한 얼굴로 옆의 총각을 쳐다보면-
용이면 총각, 쿨한 얼굴로 사회자에게-)
용이면 총각: 기권이요.
희철: @#$@#!!
(환호성이 터지고!
너무나 기뻐하는 희철네 식구들.
영주와 수미도 얼싸안고 기뻐서 어쩔 줄 모른다.
화숙과 명자도 자기도 모르게 기뻐하고!
영주, 무대 위로 뛰어 올라 여전히 상태 안 좋은 희철을 부둥켜 안으며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화숙…….
펑하고 터지는 플레쉬 소리-
점프-
트로피를 들고 있는 희철.
아직도 얼얼함이 가시지 않은 듯 멍한 표정으로 입도 못 다물고 있다.
카메라, 점점 뒤로 빠지면-
희철과 마주 들고 있는 영주.
그리고 희철네 가족들.
좀 더 빠지면 화숙과 명자, 용강면 사람들까지.
카메라, 너무 뒤로 가서 넘어가듯, 화면 빈 하늘을 비추면-)
97. 희철집, 마당. (늦은 오후)
(마을잔치가 벌어졌다.
그동안 나왔던 아줌마들, 할아버지들, 할머니들이 모두 나와 즐긴다.
트로피가 이사람 저사람 손으로 왔다 갔다 한다.
그 와중에도 금고 통을 가지고 안으로 들어가는 희철 부와 아저씨 몇을 발견하는 화숙.
슬쩍 영주 쪽으로 암시의 눈길을 보내고.
식구들 틈에 끼어 마치 부부처럼 희철과 같이 앉아있던 영주의 얼굴에 순간 심란함 스쳐간다. 그저 생각 없는 명자는 아예 마을 아저씨들과 어울려서는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하며 흥겨 겨워있고.
이를 보고는 황당해하는-)
화숙: (슬쩍 찌르며) 너 오늘 안가니?
명자: 아깝다, 한참 재밌는데. 우리 아예 내일 가면 안 되나?
영주와 함께, 여기저기 술잔을 권하던 희철.
희철: (작은 소리로 슬쩍) 설마. 이따 바로 떠날건 아니죠?
영주: (사람들 앞에 웃는척하며) 아버님께 드릴 편지, 희철씨 책상 서랍에 넣어 뒀어요. 그거 보시면 오해 다 풀리실꺼에요.
희철: (혼잣말하듯) 진짜 갈려나 보네. 굳이 오늘 안가도 되는데.
영주: 희철씨 그동안 저 때문에 너무 고생했어요. 정말 미안해요.
(희철, 괜히 뚱해지는 얼굴.
영주, 그런 희철을 보며 말없이 미소 지어주고.
그때, 마을 아줌마들. 영주에게 노래하나 하라며 노래방 기계앞으로 끌고 나간다.
영주, 노래를 시작하려면, 사람들 박수를 쳐주는데.
역시 신나게 박수를 치던 희철. 순간 어딘가를 보고는 얼굴이 굳어진다.
바로 마당으로 생각도 못했던 재은이 영주의 가방을 들고는 들어서는 것이 아닌가!
얼른 뛰어가는 희철.
재은: (밝은) 오빠!
희철: (당황) 재은아!
(마을 사람들은 눈치를 못 채고 있지만 희철내 식구들은 벌써 분위기를 간파, 어정쩡히 두사람을 힐끗거리고.
희철 부, 얼굴이 벌게져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이를 본 화숙과-)
명자: (소곤대는) 쟨 또 누구래?
화숙: (계산이 서는) 야, 갈 준비 하자.
노래하며 이미 상황을 눈치챈 영주, 점차 마을 사람들도 술렁이는 듯하자,
잽싸게 “남행열차”로 노래를 바꾼다.
흥겨운 영주의 오버에 마을사람들 모두 나가 춤들을 추며 다시 분위기에 젖어 들고.
그것이 영주의 배려란 것을 알아챈 희철. 그런 영주와 눈을 마주치고는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두 사람)
재은을 서둘러 데리고 나간다.
103. 용강 파출소.
(깁스를 한 채 갖다 준 시루떡을 먹으며 열심히 근무 중인 영득.
뒤편에선 팩스가 작동중인데, 보면-
영주에 관한 인적 사항이 나오고 있고.)
104. 저수지 둑. (노을)
(언젠가 영주와 앉았던 그 곳.
재은과 희철이 함께 앉아 있다.)
재은: (풍경을 바라보며, 감탄) 너무 좋다, 여기!
희철: (조금 힘빠진) 좋지? 여기.
재은: 이러니까 자꾸 오빠가 오라고 그랬구나. (미소 짓는 희철.
하지만 그의 미소가 왠지 밝지만은 않고.)
재은: 놀랐어?
희철: 으, 응. 조금.
재은: (다시 풍경을 보며) 사실 좀 더 일찍 오려고 했는데, 역시 생각대로야.
희철: …….
재은: 여긴 꿈같애. 꿈같은 곳이야. 현실은 저쪽 뒤편에 있을 꺼야, 분명히. 오빠, 난 꿈속에서 살 자신이 없어.
희철: !!
재은: 일찍 말 못해서 미안해. 그래도 와서 좀 더 선명해 지고 싶었거든. (둘러보며) 여기
이곳, 오빠네 가족들, 다 좋아, 좋은 것 같아. 하지만 분명한건 내일도 내가 지금같은 감정이진 않을 꺼야. 솔직히 얘기할께. 난 오빠를 사랑해. 오빠만 사랑하면 되는 거잖아. 난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해.
희철: 재은아, 너무 성급한 판단.
영주: (미소로 말을 끊으며) 이젠 오빠 차례야. 오빠가 어떤 선택을 하건 난 괜찮아. 나 때문에 망설이는 오빠가 항상 안타까웠거든. 대신 오래 기다리진 않을 꺼야.
(희철, 조금은 충격을 받은 듯 말을 찾지 못하고.
이때 울리는 핸드폰-)
희철: (받으며) 여보세요?
105. 동구 밖 (저녁)
(멀리 희철네 집이 보이는 길.
주차되어 있는 차 안에 화숙과 명자가 영주를 기다리고 있다.
백미러로 가방과 금고 통을 들고 오는 영주의 모습 보이자 시동을 거는 화숙.)
106. 용강 파출소 밖.
(후다닥 안에서 튀어 나와 차를 타는 용득의 모습 멀리 보이고.)
107. 희철집. 마당.
(아직 여흥이 남아있고.
희철 부, 표는 안내려하지만 조금은 무거운 얼굴로 누군가를 찾는 듯 다니면-
한 아저씨가 다가와-)
아저씨: 이장님. 정산 좀 맞출게 있는데 금고 키 좀 주세요.
희철 부: 그래? 돈 나한테 없는데.
아저씨: 네?
희철 부: 우리 며느리가 사람들 많은데 돈두면 안 좋이다고 해서 아까 농협에 직원이 아직 있길 래 입금했지.
아저씨: 네.
희철 부: 근데. 우리 며느리 혹시 못 봤나?
108. 차안.
(뒷자리, 영주 옆에 금고가 있다.)
명자: (돌아보며) 야, 그것 좀 줘봐.
영주: 열쇠 없어서 못 열어.
명자: 그냥 만져나 좀 보자.
(명자, 손을 뻗으면 막으려다가는 발견하는,
명자의 손에 끼워진 희철의 다이아 반지!
영주, 명자의 손을 틀어쥐며-)
영주: (당황) 이게 여기 왜 와있어?
명자: 아파, 왜긴 집어왔지. 아프다니까!
영주: (버럭) 차 세워!
(급정거 하며 서는 차.
반지 쟁탈전이 벌어진 영주와 명자.
화숙은 별 관심 없는 듯 담배를 피워 문다.
영주, 결국 실패하자-)
명자: 이것도 팔아서 분빠이 하면 되잖아, 왜 난리야!
영주: (씩씩대다간)……. 좋아, 금고 안에 있는 내 돈 포기 할 테니까 줘.
명자: 왜이래, 또 무슨 수를 쓸려고 저러셔?
화숙: (명자에게) 빨리 줘, 이것아!
명자: (기가 죽고, 영주에게) 너 딴말 없기야!
영주: 금고 여기 놓고 간다니까!
(명자, 의심은 가지만 여유인 화숙을 보고는 반지를 뺏어서 준다.
영주, 받고는 급히 내리려는데-)
화숙: 넌 참 알 수 없는 애야. 다시 보지 말자.
(그리곤 영주에게 씩 웃어준다!
왠지 그 미소가 따뜻하게 느껴져 영주, 당황스럽지만 급한 마음에 뛰기 시작하고.)
109. 기차역.
(플랫 홈으로 들어오는 기차.
벤치에 앉아 있던 재은, 희철을 기다렸는지 기차 역사를 돌아보며 실망하는 표정이 역력하고…….)
110. 희철방.
(벌컥 열리는 서랍.
희철, 영주의 편지를 찾아 읽기 시작한다.
실망의 느낌이 짙어지는 그의 표정.)
111. 거실.
(주위를 살피며 안방에서 나오는 영주.
현관으로 가려는데-)
소리: (할머니의) 가냐?
(보면, 영주를 보며 웃고 있는 할머니.
영주 그냥 가려다가는 못내 아쉬운 듯 할머니 곁에 와 앉으며-)
영주: 오래 못 있어 드려서 죄송해요. 건강하셔야 돼요, 할머니. 지금처럼 다들 죽었다고 그러시면서 오래 오래 사세요.
(영주, 자기도 모르게 울컥하고.
마냥 웃고만 있는 할머니. 영주, 어렵게 일어나 가려고 하면- 현관에 들어와 있는 희철 부와 큰고모, 수미! 라는 영주. 수미, 영주가 가버린 줄 알았던지 너무 반가워 울먹이며-)
수미: 언니, 얼마나 찾았는데요. 간줄 알았잖아요!
(희철 부, 영주의 차림새를 보곤 오해한-)
희철 부: (버럭) 네가 왜 가니? 나갈 놈은 희철이 놈이야, 희철이! 내 이 노무 자식을 그냥.
영주: (당황) 아, 아니예요, 아버님.
희철 부: 넌 가만있어. 수미는 나가서 희철이 빨리 찾아와! 내 오늘 사생결단을 낼꺼야! 이노무 자식이 감히 여기가 어디라구 다른 여자를 끌어들여.
(이때 현관으로 들이 닥치는-)
영득: (부르는) 이장님-! (영주를 발견하곤, 날카로운) 마침 있었네. 주영주씨 본인 맞으십니 까?
영주: (당혹)!!
영득: 이장님, 뭐가 없어졌다거나 이 여자 때문에 피해보신 것 없으세요?
(식구들, 갑작스러운 영득의 출현에 당황해하고. 희철, 이층에서 굳은 얼굴로 내려오며-)
희철: (제지하는) 영득아! (하고는 영주에게) 그냥 가요, 빨리.
희철 부: (버럭) 가긴 어딜 가 이노무 자식아-!
희철을 패기 시작하는 희철 부.
희철, 죽을 동 살동 막아보지만 역부족이고.)
희철: 아악. 아버지. 잠깐만요. 나중에 말씀드릴.
영득: 참으세요, 아버님. 그게 아니라요, 저 여자는 말이죠.
영주: (결심한) 잠깐만요!
(소리가 컸는지, 모두들 동작을 멈추고.)
영주: 제가 말씀드릴게요. 진작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망설이다가는) 저, 사실. 희철씨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여잡니다.
식구들: …….
영주: 희철씨 말대로 기차에서 처음 만났고, 희철씨 반지를 누가 소매치기 하는 것을 봤고
그걸 제가 다시 훔치게 됐습니다. 왜냐면 제가 지금. (머뭇거리다가는) 가석방 상태기 때문에 범인이 저라고 오해할까봐.
희철 부: (놀란) 가석방이라니. 교도소에 있었단 말이니?
영주: 네, 아버님.(목소리가 떨리는) 죄송합니다.
(큰고모와 수미도 큰 충격을 받고.)
희철: (안타까운) 그만하고 그냥 가요.
영주: 가방을 기차에 놓고 내려서 희철씨 연락처라도 알면 다시 찾을 수 있지 않을까해서 오게 됐습니다. 그런데 둘째 고모부님을 만나게 됐고, 오해라도 받게 되면 언니 결혼식에도 못갈 것 같아서 그만……. (눈물이 떨어지는) 정말 죄송합니다.
(수미도 눈물을 흘리고.
희철 부도 다리에 힘이 빠지는지 멍한 얼굴로 의자에 앉는다. )
영주: 절 그렇게 좋아해 주시는데, 실망하시는 모습을 보기가 두려웠습니다. 너무 감사하다 는 말씀도 염치가 없어서 못 드리겠습니다. 그래두. 너무나 잘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 다.
영득: 잠깐 저랑 같이.
희철: (말을 끊으며) 우리가 피해 본게 없으면 되는 거 아니야?
영득: …….
(영주, 망연자실해 있는 가족들을 보기가 힘이 드는지 괴로운 표정을 숨기며 머리를 숙여 인사하고는 돌아서면-)
수미: 언니.
(영주, 수미에게 힘겹게 웃어보이고는 손을 한번 꼭 쥐어주고는 나간다…….
잡을 수 없어 너무나 안타까워 우는 수미.
영주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희철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오르고.)
111. 기차역. (밤)
(플레 홈으로 들어오는 영주.
울음 뒤의 그녀 모습이 많이 쓸쓸해 보인다.)
112. 용강 거리. (밤)
(기차역을 향해 빠르게 자전거를 달리는 희철.)
113. 기차 역.
(멀리서 기차가 다가오고.
벤치에 앉아 있던 영주,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면-
저쪽 역사 입구에서 급히 들어와 영주를 찾으며 두리번거리는 희철! 영주, 그를 보고는 순간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 망설이는데- 이때 저쪽에서 희철을 부르는-)
소리: (재은) 오빠!
(희철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저쪽 벤치에 앉아 있던 재은, 그가 자신을 찾아 온줄 알고 반색하며 희철에게 뛰어간다! 달려와 안기는 재은을 보곤 당황하는 희철, 하지만 시선은 여전히 영주를 찾는 듯 두리번거리는데- 영주, ‘내가 뭘 기대했던 걸까?’ 멀리서 그 모습을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짓고는 열차에 오르며……. F.O…….)
114. 교회 안.
(쭈빗거리며 복도로 들어서는 영주, 신부대기실을 찾는데-)
여자1: (지나가며) 웬 고집이니 쟤?
여자2: 몰라, 저래가지고 오늘 중으로 결혼 하겠니.
영주: …….
115. 신부 대기실.
(영주의 시선으로 대기실로 들어가면-
영주의 언니 영옥이 훌쩍거리고 있고 그 앞에서 친구가 달래고 있다.)
친구: 시간 다됐어, 이제 그만 입자, 응?
영옥: 잠깐만. 아직 조금 남았잖아.
(영주, 보면-
웬일인지 웨딩드레스 세벌이 영옥의 앞에 걸려있다…….
영주, 곧 언니의 마음을 알고는 순간 눈물이 돌고.)
영옥: (훌쩍이며) 계집애 이거 나타나면 가만히 안 둬 진짜.
소리: (영주) 바보니, 아무거나 입지!
(영옥, 보면 영주가 와있다.
영옥, 영주를 보자 반가워 울컥하지만 눈은 노려보고 있고.
영주도 내심 화난 듯 한 표정이지만 눈물이 나기 시작하는 두 사람.)
영주: 돈도 많네, 그걸 다 어떻게 빌렸데?
영옥: 내가 오죽했으면 이랬겠니. 이 기집애야! 동생이라고는 하나밖에 없는 게
성깔이나 좋아야지.
(그 말에 서로 풋하고는 웃지만 여전히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그리곤 아무 말 없이 언니에게 다가가 안는 영주.
영옥도 영주를 안으며 눈물을 터뜨리고…….
원 없이 우는 자매…….)
116. 교회 앞
(신혼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는 영옥과 남편.
영주, 가방에서 목각 기러기를 꺼내 언니에게 주며-)
영주: 원래 이거 부모님이 해줘야 잘산다고 해서 내가 언니 엄마니까 주는 거야. 영광인줄 알아. 이거 내가 직접 만든거야.
영옥: 이거 어디 민속촌 같은데서 본거 같은데?
영주: 끝까지 안 믿네. (남편에게, 으름장) 형부, 저 만만치 않아요!
남편: (넉넉한 미소) 응, 얘기 들었어.
영주: 언니 잘 부탁해요.
남편: 처제도 이제 꼼짝 마야. 다시는 나라에서 주는 밥, 먹을 생각하지 마.
(영옥과 남편, 웃으며 떠나면-)
영주: 에이 씨, 말하지 말라니까…….
117. 희철방. (낮)
(고추 총각 트로피가 보이고.
CA, 천천히 방안을 훑으면-
책상 앞에 앉아 전화를 받고 있는-)
희철: 뭘 어떻게 돼, 괜찮아 인마, 나. 들었어, 재은이 입사한 거. 그래, 걔가 나보다 강하잖아. 그래, 나, 마음 정리 다 했고, 밥도 발먹고, 잘 지내니까 걱정하들 말고, 끊는다!
(전화를 끊는 희철, 그의 표정엔 못 지운 회한이 느껴진다. 손에 들려진, 서랍에서 발견한, 언젠가 영주가 써놓고 간 메모를 바라보면…….)
영주: (소리) 바빠서 먼저 가요. 오해는 어떻게든 풀어드릴께요. 1등, 꼭 먹어야 돼요!
(생각이 많은 표정의 희철.
이내 떨치려는 듯 메모지를 구겨서 휴지통에 넣고는 일어난다.)
118. T. G. I 패밀리 레스토랑 (저녁)
(열심히 일하고 있는 유니폼 차림의 영주의 밝은 모습.
순서를 기다리는 손님에게 자리를 일러주는 등 한참 바쁘다.)
영주: (게스트 보드에 체크를 하며) 다음 손님 들어오세요, 몇 분이?
(시선을 게스트 보드에 두었던 영주, 고개를 들면-
영주를 보며 웃고 있는 수미!
놀라는 영주, 하지만 이내 반가운 표정!
아무 말 없이 따뜻하게 마주보는 영주와 수미의 눈가에 반가움의 눈물이 글렁이고.
점프-
신이나 수다를 떨고 있는 영주와 수미.)
수미: 내 핸드폰에 언니네 집 전화번호가 찍혔잖아요, 그래서 언니네 언니한테 물어봤지.
전화번호 찍히는 것도 몰랐구나?
영주: 아 맞다, 그렇더라, 요즘. 가족들은 다들 안녕하시죠? 할머님은?
수미: 여전하시죠 뭐. 얼마 전엔 아버지 찾아온 손님한테 아버지 돌아가셨다 그래 가지고 집에 화환이 다왔었잖아요, ‘근.조’. 이래가지구.
(웃음을 터뜨리는 두 사람.)
수미: (망설이다가는) 오빠는. 궁금 안 해요?
영주: (별 감정 없는 척) 아 참, 희철씨는, 잘 지내요?
수미: 별로 안 궁금했구나. 잘 지내요, 언니 덕에 유명 인사 됐어요. 얼마전에 지역 광고
하나 들어왔잖아요. 용강 깐 고추 광고.
(웃는 영주, 하지만 옛 생각이 나는지 웃음 끝이 흐리고…….
그런 영주의 마음을 읽는 수미, 일부러 밝게 분위기를 돌리며-)
수미: (분위기를 돌리며) 참, 나 코디 학원 등록했어요. 근데 강사가 좀. (창밖으로 보이는, 즐겁게 수다를 떠는 두사람의 모습!)
119. 거실.
(거실을 지나가던 희철, 문득 희철 부의 서재에 문이 열려 있어 보면-
탁자에서 책을 읽고 있는 아버지 건너편에 예전 엄마 의자가 놓여 있다.)
희철: 엄마 의자, 고치셨네요.
희철 부: (희철을 한번 힐끗 보곤) ……. 며칠 됐다.
(아버지, 반응이 좀 차갑자 희철, 그냥 가려하면-)
희철 부: 광에 뭐 좀 가지러 갔더니만 고쳐져 있더라.
희철: ?
희철 부: 식구들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목공을 좀 했다더니 솜씨가 제법이다. 영주가 고쳐놓고 갔다.
(희철, 조금은 놀란 듯한 표정이다.
이때 수미가 불만스러운 얼굴로 거실로 들어오면-
거실에서 할머니 머리를 빗겨주던-)
큰고모: 넌 오늘 왜 이렇게 들랑날랑 거려?
수미: 아니, 옷이랑 가방이랑 매치가 잘 안되잖아.
큰고모: 저거 무슨 복장학원인가 뭔가 다닌다더만 헛바람드는거 아녀?
수미: 아니예요. 가방이 포인튼데 색깔도 이상하구. 속상해 증말.
할머니: (뜸금없이 얘기하는) 가방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여, 이것아.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가 중요하지.
(언젠가 영주와 했던 말.
순간, 할머니의 그 말이 평범치 않게 들리는 희철!
할머니는 그저 편하게 웃고 계신데.
그 모습을 보는 희철, 뭔가 선명해지는 느낌이다!)
120. T. G. I 패밀리 레스토랑 앞거리(밤)
(직원들과 인사를 하며 헤어지는 영주.
버스를 타려고 가는데 들리는-)
소리: (할머니) 별 떨어진다, 소원 빌어라.
(영주, 용강의 할머니가 생각난 듯 문득 놀라 돌아보면-
낯선 할머니 한분이 건물 모퉁이에 쭈그리고 앉아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다.
잠시 착각한 감정을 추수리고는 보면, 정상이 아닌 듯 한 할머니.
영주, 걱정스러워 다가가-)
영주: 할머니, 여기 왜 혼자 계세요?
할머니: …….
영주: 할머니, 집이 어디세요? 여기 근처 사세요. ?
(이때 저쪽에서 헐레벌떡 뛰어오는 가족들.)
남자: 아이고 어머니, 여기 계시면 어떡해요, 얼마나 찾았는데. 잠깐 앉아 계시라니까 그
사이를 못 참으시나 그래…….
(영주에게 눈인사를 하곤 할머니를 모셔가는 가족들의 다정한 모습…….
영주, 용강 식구들이 생각이 나는지 따뜻한 미소로 그들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는 씁쓸히 밤하늘을 바라보곤 뒤돌아 가려하면……. 이때 들리는-)
소리: 오해 안 풀어 줄 겁니까?
(영주 돌아보면- 짐짓 화난 표정으로 서있는. 희철! 부드러운 음악이 흐르기 시작하고……. 영주, 당황스럽지만 역시 마음을 숨기려 짐짓 딱딱하게-)
영주: 아직도 남은 오해가 있나요?
희철: 덕분에 가족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요?
영주: …….
희철: 댁이랑 나랑 예전에 애인 사이였는데 댁은 양심수로 교도소엘 간 거고, 난 그동안 댁을 버리고 다른 여자를 만난 파렴치한으로 알아요.
영주: (풋-웃으며) 배웠나, 거짓말?
희철: 거짓말 아니예요.
영주: (가소로운) 희철씨, 나 주영주야. 난 희철씨 거짓말이 보여요.
희철: 내기할래요?
영주: 만원빵?
희철: 소박하기는. 좋아. (영주를 잡아 세우곤) 날 잘 봐요, 이게 거짓말인지 아닌지.
영주: …….
희철: (진지한) 어쩌지, 영주씨? 나, 영주씨를 좋아해요!
(음악, 고조되기 시작하고……. 진지한 희철의 고백에 당황하는 영주.)
희철: 이말 할 수 있기까지, 나 갈등도 많이 하고 포기하려고도 했었는데, 그건 날 속이는 거더라고요. 내가 본 영주씨의 모습, 그리고 내 자신에게 진실해지고 싶어서 하는 말입니다. 우리 이제 그럴 때도 됐잖아요. 진심이예요. 나 영주씨 좋아해요.
(희철의 진심이 느껴지는 고백에 영주,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맺히고.)
영주: (버텨보는) 만원 줘요!
희철: (따뜻한 미소) 아직도 모르겠어요? 영주씨가 진거예요! (희철의 진심이 느껴질수록 눈물은 차오르지만-)
영주: 그걸 어떻게 알아요, 빨리 만원 줘요!
영주의 마음이 느껴지는 희철, 그녀를 바라보는 눈길에는 사랑의 느낌이 담겨있고…….)
희철: 좋아요, 그럼 대신에. 용강에 한번 내려와 주지 않을래요? 영주씨가 너무 좋아할만한 아주 좋은 곳과 영주씨를 너무 보고 싶어하는 아주 좋은 분들이 계시거든요!
(기대할 순 없었지만 어쩌면 기다렸을지도 모를 그 말에 결국 고개를 숙이며 벅찬 눈물을 흘리고 마는 영주……. 울음을 참아보려하지만 그녀의 눈물에서 그 마음을 그대로 느낄 수 있고, 그런 그녀를 희철, 따뜻한 미소와 함께 조용히 안아준다…….
그의 품에서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영주와 그녀를 다독이는 희철의 모습이 거리의 조명들과 함께 아름답게 보이고-
그 모습 카메라 부감으로 떠오르면서- 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