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기시대·공현송릉 铁器时代 · 巩县宋陵
출처: 중국 고고학 소스 : 동북아역사문물연구원
▲ 궁현 송릉 북송 황릉구.허난성 궁현의 쑹산과 뤄허 사이의 구릉에 위치하고 있습니다.능구는 즈톈진(쑹융안현치)을 중심으로 남북 약 15km, 동서 약 10km.송 태조 조광윤부터 송 철종 조희까지 7대 황제, 그리고 선조로 추존된 조광윤의 아버지 조홍은의 능이 이곳에 있습니다.8기의 능은 지망에 따라 4구역으로 나눌 수 있는데, 1구역은 선조영안릉, 태조영창릉, 태종영희릉, 2구역은 진종영정릉, 3구역은 인종영소릉, 영후릉, 4구역은 신종영유릉, 철종영태릉 순입니다.송정강(宋靖康)과 건염(建炎)은 금군에 의해 파괴되어 원나라 때 지상 건물이 모두 파괴되었습니다.1918년 일본 고고학자 세키노 사다요시가 공현에 갔다가 나중에 발표한 자료에서 영소릉이나 영후릉을 영희릉으로 잘못 인식하여 송릉의 자료에 혼란을 초래했습니다.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중국 학자들은 송릉을 여러 번 조사했습니다.
▲ 궁현 송릉 분포도는 궁현 송릉의 구조가 완전하고 능전립석이 대체로 완비되어 있어 송나라 능묘제도와 석각예술 연구에 매우 유리한 조건을 제공합니다.1982년 국무원은 국가 중점 문화재 보호 단위로 발표했습니다.송릉의 입지 및 능묘 평면 배치 공현 송릉의 능지 선택과 지형의 활용은 크게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①역대 제릉은 높은 곳에 있거나 산과 강에 기대어 있는 반면 송릉은 반대로 쑹산을 마주하고 낙수를 등지고 있습니다. 능구 내의 여러 제제, 후릉의 축선 방향률은 모두 북서쪽으로 6° 정도이며, 쑹산의 소실주봉을 향하고 있습니다.②다양한 능지형은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으며 능대를 가장 낮은 곳에 배치하는 것은 중국 고대 건축물이 점차 증가하고 가장 높은 위치에 중앙 건물을 배치하는 일반적인 관례에 반합니다.
▲ 공현 송릉 일람표
이것은 아마도 당시의 풍수지리 풍수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송릉의 규모는 당릉보다 훨씬 덜 웅장하고 제도도 당릉과 완전히 동일하지 않습니다.8개의 황릉은 같은 제도로 조성되어 있고, 기본적으로 배치는 동일하며, 각 능에는 조역, 상궁, 하궁이 있습니다.메가필드 또는 묘역이라고도 하며, 주변에 심어진 탱자 등을 표기합니다.조역 안에는 황릉 외에도 祔장된 황후릉, 그리고 종실 자손과 당나라 중신들의 부장묘가 있습니다.
▲ 공현송릉석각상
상궁, 즉 능대 사면에 쌓은 능원 안쪽 부분입니다.능대는 상궁의 중심에 두고 흙을 다져 복두형으로 쌓고, 남쪽에는 석조궁인 1쌍을 배치하였습니다.능은 또한 흙을 다져 전체적으로 사각형으로 만들고 사면에 각각 1개의 문을 설치하고 네 귀퉁이에 각궐을 두었습니다.동·북·서 3문 밖에 석물을 놓고 사자 한 쌍씩 쪼그리고 앉습니다.남문은 정문으로, 문간에는 석조궁인 1쌍, 문간에는 석조무사 1쌍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남위 신도석각.협신도는 작대와 유대를 각각 한 쌍씩 지었습니다.류타이 북쪽은 열석, 남쪽에서 북쪽으로 망주, 코끼리 및 조련사, 서금, 뿔끝, 전투마 및 통제마관, 호랑이, 양, 객사(客使), 무신(武臣), 문신 등 총 60점이 있습니다.하궁은 황릉의 북서쪽에 지어진 일상적인 봉사의 장소이며 지상 건물은 현재 남아 있지 않습니다.영정, 영소, 영후, 영유제후 능북면, 영희제후 능남면에는 면남주사자 1쌍이 있는 유일한 하궁유적이기도 합니다.
능묘 석각은 앞서 언급한 망주, 각종 동물, 각종 인물들을 제후릉 전자에만 나열한 것으로 550여 점이며, 부장된 친왕과 대신의 묘까지 합치면 총 천 점 이상에 달할 수 있습니다.이러한 석각은 다양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며, 선각, 부조 및 원형 조각이 모두 갖추어져 있으며, 북송 석각 예술의 풍광과 대형 능묘 석각의 발전 맥락을 집중적으로 반영하고 있습니다.송릉 석각의 특징은 당릉에 비해 ①의 조형은 중후하나 힘과 기백이 약하여 당릉의 자태가 살아있고 기세가 웅장하지 않다는 점입니다.②표현 기법이 섬세하여 망주의 문양이나 각종 인물의 관복과 장신구를 모두 세심하게 그렸습니다.
석각 중 가장 성공한 작품은 영희, 영정, 영유 3릉의 분사자로 갈기와 꼬리를 휘날리며 당당하고 장엄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인물 사진 중 상등품은 당연히 길들여진 사람과 객사입니다.이 두 가지 조상의 공통점은 용모와 복식의 특징으로 인물의 서로 다른 민족과 신분을 표현한 것입니다.
융딩(永定), 융위(永裕), 융타이(永泰) 3릉의 길들여진 코끼리는 긴 머리를 곱슬곱슬하게 하고, 머리를 묶고, 보주를 이마에 장식하고, 팔에 팔찌를 하고, 큰 귀걸이를 하고, 이국적인 복장으로 코끼리가 왔던 나라를 암시합니다.능객들은 생김새와 복장이 각기 다르며 보병, 산호, 연꽃 접시, 코뿔소 뿔, 옥함 및 기타 재료를 손에 들고 있어 다양한 국가와 지역에서 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 공현송릉석각문신상
망주(望柱)는 다양한 장식 문양이 어우러진 조각품으로, 하부에 방기연화좌(方基蓮花座), 가운데에 육각형 또는 팔각형 기둥, 윗부분에 합판연꽃으로 지붕을 맺고 기둥을 깎아 지평(地平) 钑 또는 음선(陰線)으로 새긴 휘어진 모란과 운룡(雲龍, 후릉은 상봉) 문양으로 선이 유려하고 구성이 치밀하여 보기 드문 조각예술의 보물이기도 합니다.
송릉석각은 각종 석각의 형태와 장식의 변화에 따라 전, 중, 후 3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전기에는 약 10세기 말에서 11세기 초에 걸쳐 영안, 영창, 영희, 영정의 4릉이 포함되었습니다.각종 인물의 조형은 비교적 굵고 튼튼하며, 만당의 유풍을 가지고 있습니다.중기는 약 11세기 전반으로 융소와 융후의 2릉을 포함합니다.
인물상이 굵직함에서 훤칠함, 문신정아함, 무신도 '유장(儒將)'의 풍모로 바뀌고 있습니다.후기는 약 11세기 후반에서 12세기 초로 융위, 융타이 2릉을 포함합니다.루이수 문양은 발랄한 기색을 잃었고, 복부 양쪽에 구름과 물결무늬를 더해 신비로운 색채를 더했습니다.인물들은 모두 호리호리한 몸매를 지녔습니다.
▲ 공현송릉석각무신상
후릉의 현실인 영희릉 3곳의 후릉 중 가장 남쪽 능은 원덕후 이씨릉으로 의심됩니다.일찍이 도난당하여 현재는 능대 앞 도굴에서 현실로 들어갈 수 있는데, 그 현실이 원형에 가까운 다각형으로 벽돌을 쌓고 남향으로 권문(券門), 돔(穹窿), 실내영상으로 각주(角柱), 두栱, 앙(昂), 머리놀림, 방(房), 서까래, 망판(望板), 처마와(檐瓦) 등을 써서 머리를 써서 가릉빈가를 새기고 栱안벽묵선(眼壁墨線)으로 화분을 그렸습니다.
실내 천장은 청회색의 창공으로 칠해져 있고 그 위에는 흰 가루로 은하수와 별이 그려져 있습니다.주벽에는 건물, 구름 등의 채화가 그려져 있으며, 구체적인 건물형태로는 판문, 직살창, 협옥, 사주지붕, 치미 등이 있습니다.
분류:고고 표제어
본문 태그: 공현 송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