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주제는 죄인의 회개입니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그래서 내가 회개해야 할 죄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별로 죄지은 것 같지 않고 뭘 회개해야 하지 하는 생각도 들면서
느닷없이 사는 게 다 죄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내 아니지, 사는 게 다 사랑이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거의 매 순간 사랑이 지배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말이 맞는지 생각해보니 둘 다 맞는 말이었습니다.
지금의 저는 죄인이고 노상 죄를 지으며 살고 있는데
그러면서도 저는 늘 사랑하고 있고 죄보다 사랑이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전에 어른들이 죄 고백하러 들어오셔서는
죄가 생각나지 않는다시며 사는 게 다 죄라고 하신 것도 이해됐습니다.
그런데 제가 죄를 잘 못 느끼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죄보다 은총을 더 많이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입니다.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라는 말씀 말입니다.
저의 죄가 많고 많지만 제게 은총이 충만히 아니, 넘치게 주어지기에
은총을 보면서 저의 죄는 못 보는 것인데 이는 거지가 햇빛을 쐬면서
더러운 자기 몰골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죄만 보는 것보다 은총을 보는 것은 분명 좋은 것입니다.
옛날의 저는 저의 죄만 보고 하느님 은총은 못 봤습니다.
그러니 은총을 보게 된 것은 잘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은총을 보게 된 것이 하느님의 은총 중의 은총입니다.
문제는 은총을 누리기만 하고 죄는 보지 못하니 그것이 문제이고,
앞으로 별로 달라질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저는 죄를 은총의 지렛대 정도로 삼고 살겠습니다.
또는 저의 죄를 은총의 마중물로 삼으며 살고 싶습니다.
이런 저, 너무 뻔뻔한 죄인이 아닌지 반성하는 오늘 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