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 방황의 시간들
병원에서 예약한 검사들은 검사를 받고자 하는 환자들이 많아서 11월 하순까지 스케줄을 잡아야 했다. 그래도 검사가 예약된 날은 아내와 같이 병원에 갔다 오면 하루가 지나갔는데 그렇지 않은 날은 그냥 집에서 하루를 보낸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평생을 새벽 7시20분까지 등교하여 7시 30분부터 첫 시간 수업으로 하루를 시작하던 나는 집에서 8시쯤 아침을 먹고 아내와 서로 쳐다보며 오늘은 어떻게 하루를 보낼까를 생각하는 것 자체가 새로운 스트레스로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래서 발길 닿는 대로 이곳저곳을 다녀보기로 하였다.
[1-6-1 문경 새재]
맨 처음 내가 찾은 곳은 문경 새재였다.
전에 학교 선생님들과 같이 온 적도 있고, 가족들을 데리고 온 적도 있었는데 그 때에는 수안보쪽으로 가서 온천을 하고 제3관문에서 출발하여 거꾸로 제2관문 근처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되돌아가는 코스였다. 제3관문 근처 음식점에서 백숙을 시키면 앞마당에서 뛰어다니는 닭을 잡아서 음식을 해주는데 우리가 제2관문까지 갔다 와서 먹는 그 백숙 맛은 정말 기가 막히게 좋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문경 쪽으로 가기로 하고 영동고속도로로 바꿔 탄 다음 원주에서 다시 중앙고속도로로 길을 잡아 영주 근처에서 문경 새재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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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세재 제2관문> |
새재로 가는 길목 길목에는 영주와 문경 지방에서 나는 사과를 팔고 있었는데 너무도 빛깔이 곱고 하이얀 분이 묻어 나와 있어서 한 상자를 실었다. 문경 읍내에 들어가니 입구에 제법 큰 주차장이 있었는데 우리보다 먼저 사람들의 자가용이며 대형 버스들이 북적대며 손님들을 내려놓고 있었다.
우리도 적당히 주차를 한 다음 음식점에 들러 약간의 요기를 하고는 새재 입구에 다다르니 커다란 은행나무들이 쏟아놓은 노오란 낙엽에 발이 푹푹 빠졌다. 조금 가니까 드라마 왕건 촬영지가 왼쪽으로 나타났고, 파아란 하늘 아래에 우뚝 우뚝 솟은 산봉우리들 사이로 계곡을 따라 굽이굽이 완만하게 올라가는 새재 길은 내게는 안성맟춤인 트레킹 코스였다. 11월 중순이 조금 지났는데 아직도 가지에 매달려 있는 단풍들이 많았고, 특히 단풍나무 이파리는 붉다 못하여 검은 빛을 토해내며
‘좀 있다가 찬바람이 휙 불면 언 땅에 떨어질 내 운명이 흡사 당신 운명과 같다.’
고 내 귀에 속삭이는 것 같았다.
‘하느님, 내년 봄 저 계곡에나 하늘하늘 버들강아지 피어날 때,
제가 여기에 다시 오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겠지요?’
라고 생각을 하니 갑자기 한꺼번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는 아내와 같이 가다가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싶다고 하고는 달아나다 싶이 아내 손을 뿌리치고 숲 속으로 들어가서 한참을 울고 나왔다.
“왠 소변을 그렇게 오래 봐, 그냥 서서 기다리니까 춥잖아.”
“응, 요새 기계가 좀 고물이 되어서 가끔 시간이 많이 걸맇 때도 있어.
우리 어부인 이해를 하슈.”
라고 되도 안한 느스레를 떨었지만 세상에 귀신을 속이지 우리 마누라를 속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내를 쳐다보니 실은 아내도 기다리면서 훌쩍거린 흔적이 보였다.
우리는 한 5미터쯤 떨어진 채로 다시 걷기 시작하였다. 한참을 올라가니 왼쪽에 경치가 제법 좋은 계곡이 나타나고 오른쪽에는 폭포가 흐르고 있었지만, 나는 카메라를 꺼내지 않았다. 제2관문까지 가기로 하고 출발한 우리는 조금 더 올라가다가 드라마 왕건에서 궁예가 최후를 마치는 장면을 촬영한 멋있는 바위까지 갔다가 되돌아왔다. 집에 있으니 속이 답답해서 나오긴 나왔는데 정말이지 재미가 없어서 더 걷기가 싫었다.
돌아오는 길은 길이 멀기도 하지만 차가 많아서 생긴 교통체증 때문에 고생고생하여 밤이 늦어서야 집에 도착하였다.
[1-6-2 팬션을 찾아]
이것저것 두어 가지 검사를 한 후 나는 다음 검사 날까지 할 일도 없이 집에 우두커니 있는 것 또한 무료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아내를 쳐다보니 별로 가고 싶지 않은 눈치여서 내 혼자 아무데나 갔다 온다고 하고 나올려는데, 안되겠는지 아내도 따라 나왔다. 요전번에 문경 새재까지는 길이 제법 멀어 고생을 하였으므로 이번에는 좀 가까이 장평의 생태마을을 가기로 하였다.
영동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원주에서 남쪽으로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조금 가면 처음 만나는 나들목이 신림이고, 여기서 국도로 길을 잡아 치악산을 남쪽으로 빙 돌아가면 주천을 거쳐 장평에 가는데 생태마을은 주천과 장평 사이에 있었다. 이 생태마을은 황창연 신부님이 부근 주민들과 함께 유기농 농사를 짓고, 흙집을 여러 채 지어 도시 학생들이나 교우들의 수련회, 피정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으로 높은 언덕 한가운데에 빌립보 성당이 있었다.
이 성당은 산 아래를 휘돌아나가는 평창강을 바라보는 풍광이 아주 일품이고, 자연 사랑을 주장하며 전국 각처에서 주문받은 무공해 식품을 공급하여 동네 농민들의 소득 증대에 힘쓴 결과 주변 주민들이 비교적 잘 살게 되었는데 좀 남는 돈이 있으면 농민과 교회를 위한 복지 사업에 사용한다고 이미 성당에는 꽤 알려진 곳이었다.
전에 교우들과 함께 이 길로 들어서 신림까지 온 다음에 배론 성지로 성지 순례를 여러 번 다녔던 곳이므로 신림까지는 꽤 익숙한 길이었는데, 주천으로 가는 길은 낯설었지만 역시 강원도라 늦가을 산촌의 경치가 너무도 아름다웠다.
우리가 좀 쉬기도 할 겸 주천 장터로 접어들었는데, 마침 횡성 한우를 선전하는 섶다리축제의 날이어서 곳곳에 횡성 한우의 우수성과 오늘은 특별히 싸게 판다는 현수막이 나부끼고, 시장통에는 소나무로 만든 섶다리도 있었다. 우리는 한우를 조금 사서 음식점으로 들어가니 사간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도록 숯불과 상추, 된장, 참기름 등을 제공하는 장사가 여기 저기 성행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가 고기를 몇 점 구워 먹고 좀 쉰 다음 다시 생태마을로 차를 몰았는데 늦가을 하순의 산속의 해는 짧아서 벌써 서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길을 몰라서 성당 입구를 그냥 지나쳤다가 다시 지나가던 사람을 잡고 길을 물어 성당에 도착한 것은 땅거미가 이미 내려와 어둑어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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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성 필립보 생태마을> |
높은 언덕 위에 있는 성당에 올라가서 성당 문을 여니 성당은 2층에 있고, 1층에는 희미한 전깃불 아래 서너명의 일꾼들이 소금에 절인 배추를 물을 빼서 상자에 담느라고 우리가 자기들 옆에까지 온 것도 모르고 있었다. 너무도 비지땀을 흘리며 일에 열중한 사람들에게 말을 걸기가 오히려 미안하여 좀 기다리고 있으려니까, 그 중 좀 체구가 큰 사람이 나를 발견하고는
“어떻게 오셨습니까? 설마 지금 피정 오신것은 아니시겠죠.”
하면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아, 지나가던 서울 교우인데요. 황신부님을 찾습니다만.”
“네 제가 황신부입니다. 왜그러시죠?”
전깃불이 어두워 잘 보이지 않기도 하였지만, 내가 본 그분은 땀이 비오듯 뒤범벅이 된 농삿군이지 신부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 옆에 있는 사무실에서는 전화 벨이 시끄럽게 울렸고, 신부님은 전화를 받아
“네, 네, 내일 갑니다. 틀림없이 갑니다. 걱정 마십시오. 지금 거의 다 담았습니다.”
라고 큰 소리로 말하였다. 서울, 부산, 대구, 인천 등 도시 사람들이 주문한 유기농 김장배추가 너무 많아서 올해에는 반 밖에 보낼 수 없다고 하였고, 그 반을 날짜에 맟추어 택배로보내느라고 요즈음은 연일 이렇게 일을 하신다는 것이었다.
나는 흙으로 지은 피정의 집에서 별을 보며 조용히 기도나 하고 하룻밤 마음를 달래려던 생각을 바꾸어 다른 곳에서 자기로 마음을 먹고 성당을 빠져나왔다.
우리는 그러느라고 꽤 배가 고팠는데, 여관이나 호텔이 있을 리 없는 이곳 도로 가에 팬션 광고가 눈에 들어와서 두어 집에 전화를 해보니 주중에는 손님이 없어서 운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잘 방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장평 시내로는 가기가 싫어서 이리 저리 헤멘 끝에 우리가 묶을 팬션 하나를 찾아서 들어 갔다.
우리를 맞은 주인 아주머니는
“좀 있으면 따뜻해 질거예요.
저녁은 어떻게 하셨나. 원하면 쌀과 김치를 좀 드릴 수가 있고요.
뒤곁으로 돌아가면 고구마도 넉넉하게 있으니까 알아서들 하세요.
그럼 내일 아침에 봐요.”
하고는 자기들이 거쳐하는 윗 건물로 들어가버렸다.
그 방은 전기로 난방을 하는 곳이었는데 오랜 동안 난방을 하지 않았는지 한 30분이 지나서야 훈기가 돌았다. 그래도 배가 고팠으므로 아내는 아까 굽다가 남긴 소고기를 조금 굽고, 노오란 냄비에 새밥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저녁을 먹고 고구마도 구워먹고 따뜻한 커피를 끓여 커피향을 맡으며 창밖을 내다보니 하늘에는 내가 어리적에 상주 시골에서 본 이후로 한 번도 제대로 본적이 없는 은하수가 파아란 하늘에 뿌옇게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밖으로 나와 하늘을 쳐다보며 똥바가지(북두칠성을 그렇게 불렀다.)를 찾고, 북두칠성의 꼬리 부분에서 두 별의 다섯 배를 가서 북극성을 찾았으며 영어 알파뱃의 더불류 같이 생긴 카시오페아와 견우, 직녀 등을 찾아 쳐다보며 이렇게 아름다운 하늘을 그동안 잊고 살아온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기온이 쌀쌀한 밖에 나간지 한참이 되어도 들어오지 않는 나를 걱정하여 아내가 나를 불러들였다. 팬션은 지은 지 얼마 안 된 새 건물이어서 벽에 두른 널빤지에서 솔솔 새어나오는 나무 냄새가 싫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오랜만에 참으로 오랜만에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잠에 빠져들었다.
이튿날 아침 유리창에 해가 비치도록 잠을 잔 후, 밖에 나와보니 우리가 잔 집은 성당 언덕을 안고 돌아나가는 강가에 있었는데, 강을 끼고 퍼져 있는 갈대밭과 억새풀이 어우러져 가족이 와서 며칠 보내기에는 너무도 훌륭한 경치 좋은 곳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내가 다시 이곳을 찾을 수는 없을거야.
그것은 욕심일거야.’
우리는 아침을 얼른 먹고 다시 신림으로 길을 잡아, 황사영의 백서와 한국 최초의 신학교로 유명한 배론 성지에 잠간 들러 기도를 한 다음에 서울로 왔다.
<계 속>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