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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6일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1-8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배에 오르시어 호수를 건너 당신께서 사시는 고을로 가셨다.
2 그런데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평상에 뉘어 그분께 데려왔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3 그러자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속으로 ‘이자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고 생각하였다.
4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에 악한 생각을 품느냐?
5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6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런 다음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7 그러자 그는 일어나 집으로 갔다.
8 이 일을 보고 군중은 두려워하며,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욕심이 가득해 질 때
성경에는 중풍병자가 자주 등장합니다. 물론 지금도 많은 중풍병자가 있지만 예수님 당시에는 지금 보다 상대적으로는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오늘날 의학이 발달하고 많은 치료로 중풍병자를 치료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고치기 어려운 것이 중풍 병이고, 완치가 불가능한 병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나병환자와 중풍병자는 불치의 병으로 여겼고 고치지 못하는 병으로 인식되었던 시기였으니 성경에 많이 등장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요즘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 19 때문에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정말 무서운 감염병입니다. 그러나 우리 현대인에게 제일 무서운 공포로 다가오는 병은 암, 중풍과 치매, 심장병, 당뇨병, 조류독감, 광우병, 에이즈(AIDS) 등 등 수 없이 많이 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는 지금도 뇌성마비 중풍이 가장 무서운 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본인 의지와는 다르게 행동하는 것이 중풍이고 이 병에 걸리면 조심해도 언제 재발할지 모르고, 자신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병이어서 무섭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이렇게 많은 중병은 모두 자신이 스스로 손가락하나 까닥할 수 없는 마비 증세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어느 뇌성마비 환자는 발가락으로 주님의 기도를 쓰는데 일주일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분의 소원은 손가락 하나라도 까닥거리고 싶은 것이고 그래서 그 손으로 주님의 기도를 쓰는 것이랍니다. 나는 그 분의 발가락으로 쓴 카드를 받아본 다음부터 카드를 쓰지 않습니다. 암을 치료하면서 아주 심한 손 떨림으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한 글자도 쓰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분의 그 정성과 사랑을 새삼스럽게 느꼈습니다.
평상에 누워서 눈만 멀뚱하게 뜨고 예수님의 처분을 기다리는 중풍병자를 보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뜨겁게 느껴집니다. 죽으려고 하여도 자신의 몸을 추스르지도 못해서 죽을 수도 없으니 주님은 가슴 아프게 바라보십니다. 이 사람은 지금 자신과 부모의 죄 때문에 오랜 동안 중풍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밥만 축내고, 소대변 신세까지 지고 있으니 괴로운 인생을 빨리 끊어 주시든지 고쳐 주시기를 주님께 간절히 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중구활'(死中求活 : 죽을 고비에서 살길을 찾는다는 뜻)인 셈입니다. 아무리 절망적이라고 생각되는 상황에서도 헤쳐 나갈 길을 모색한 것이 예수님 앞에 마지막 희망으로 온 것입니다. 만약 구해주시지 않으면 죽겠다는 심정으로 세상과 자신을 원망하고, 하느님을 원망하면서 왔을지 모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말씀은 당연히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아무리 어려운 절망에 빠져 있을 지라도 용기를 잃지 말라는 말씀이십니다. 자신의 죄 때문에 가슴을 치며 애통해 하며 죽게 해달라고 애걸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이미 용서하셨으니 이제는 희망의 삶을 살라고 하시지요. 암을 희망의 병이라고 합니다. 마지막 희망을 주님께 두고 완치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자신의 의지와 마음으로 간직한 모든 것을 행동으로 실천하면서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비감한 마음으로 살지 말고 이제는 떳떳하게 사랑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율법학자들은 중풍병자의 긴박한 사정이나 깊은 마음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아직도 모르고 있고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고, 모든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아직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에 대해서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답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일어나 걸어가라’하시는 말씀은 순서에도 맞지 않고 격식에도 맞지 않지만 말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만천하에 공공연하게 선포하십니다. 오늘 예수님은 당신께서 사죄권을 가지신 하느님이심을 밝혀주십니다. 그러니 아무도 이의를 제기해서는 안 되는데 그들은 항상 이의를 제기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믿음이 흔들리고 죄를 용서받는 데 게으릅니다. 자신을 통제할 수 없을 때 하느님의 뜻으로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런 일을 우리는 게을리 합니다. 그래서 항상 후회하고 용서를 청하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할 것입니다.
오늘은 용혜원님의 "욕심이 가득해질 때"를 새겨봅니다.
비워야 채워지는 것을 모르고
넘치는 욕심에 무작정 달려들고
가지면 가질수록 허망함만 가득해지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가득 채우는 미련함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나누어야 부족함 없는 것을 모르고
넘치는 욕심에 기를 쓰고
움켜쥐려고 하지 않게 하소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살아야 더 편한 것을
불편하게 포장하고 과장하며
위선으로만 살려고 하지 않게 하소서
사랑을 나누고 베풀어주는
마음의 가난이 더 풍성한 것을
채우려는 욕심만 커져서
채울 수 없는 부족함으로 느끼지 말게 하시고
자족하는 마음을 갖게 하소서
욕심이 마음을 흔들어놓고
사랑을 변하게 만들어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게 되오니
욕심에서 벗어나
사랑과 나눔의 삶을 살게 하소서
<우리 성조 아브라함의 제사>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22,1-19
그 무렵 1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해 보시려고 “아브라함아!” 하고 부르시자,
그가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거라.
그곳, 내가 너에게 일러 주는 산에서 그를 나에게 번제물로 바쳐라.”
3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얹고 두 하인과 아들 이사악을 데리고서는,
번제물을 사를 장작을 팬 뒤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곳으로 길을 떠났다.
4 사흘째 되는 날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자, 멀리 있는 그곳을 볼 수 있었다.
5 아브라함이 하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에 머물러 있어라.
나와 이 아이는 저리로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 돌아오겠다.”
6 그러고 나서 아브라함은 번제물을 사를 장작을 가져다 아들 이사악에게 지우고, 자기는 손에 불과 칼을 들었다.
그렇게 둘은 함께 걸어갔다.
7 이사악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아버지!” 하고 부르자,
그가 “얘야, 왜 그러느냐?” 하고 대답하였다. 이사악이 “불과 장작은 여기 있는데,
번제물로 바칠 양은 어디 있습니까?” 하고 묻자,
8 아브라함이 “얘야, 번제물로 바칠 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실 거란다.” 하고 대답하였다. 둘은 계속 함께 걸어갔다.
9 그들이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곳에 다다르자,
아브라함은 그곳에 제단을 쌓고 장작을 얹어 놓았다.
그러고 나서 아들 이사악을 묶어 제단 장작 위에 올려놓았다.
10 아브라함이 손을 뻗쳐 칼을 잡고 자기 아들을 죽이려 하였다.
11 그때,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고 그를 불렀다.
그가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12 천사가 말하였다.
“그 아이에게 손대지 마라. 그에게 아무 해도 입히지 마라.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 나를 위하여 아끼지 않았으니, 네가 하느님을 경외하는 줄을 이제 내가 알았다.”
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보니, 덤불에 뿔이 걸린 숫양 한 마리가 있었다.
아브라함은 가서 그 숫양을 끌어와 아들 대신 번제물로 바쳤다.
14 아브라함은 그곳의 이름을 ‘야훼 이레’라 하였다. 그래서 오늘도 사람들은 ‘주님의 산에서 마련된다.’고들 한다.
15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두 번째로 아브라함을 불러 16 말하였다.
“나는 나 자신을 걸고 맹세한다. 주님의 말씀이다.
네가 이 일을 하였으니, 곧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 아끼지 않았으니,
17 나는 너에게 한껏 복을 내리고, 네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한껏 번성하게 해 주겠다.
너의 후손은 원수들의 성문을 차지할 것이다.
18 네가 나에게 순종하였으니,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너의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19 아브라함은 하인들에게 돌아왔다. 그들은 함께 브에르 세바를 향하여 길을 떠났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브에르 세바에서 살았다.
축일7월 6일 성 이사야 (Isaiah)
신분 : 구약인물, 예언자, 순교자
활동 연도 : -8세기BC
같은 이름 : 이사이야
"야(훼님)는 구원"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성 이사야(Isaias)는 기원전 760년경 아모스라는 사라의 아들로 태어났다(이사 1,1). 이밖에 그의 가족이나 출신에 대해서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다만 그가 사용하는 문체나 언어 기법, 도시인들이 즐겨 쓰는 은유, 또 예루살렘에 대한 그의 깊은 애정 때문에 그를 이 도성 출신으로 추론할 수 있다. 임금이 궁궐 밖으로 시찰 나갔을 때 그가 어려움 없이 접근할 수 있었음으로 보아(7,3), 귀족이었다는 추측이 강하게 제기된다. 그렇지만 이 구절은 이사야가 귀족처럼 왕궁을 수시로 드나들 수 없었다는 반증이 될 수도 있다. 또 성전에서 이루어지는 소명 환시를 근거로 이사야가 사제였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6장의 배경은 성전 안팎이 다 될 수 있다. 6장의 환시를 보기 위해서 이사야가 굳이 사제여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격조 높은 문체를 구사하고 강력한 웅변력을 발휘하는 이사야가 평범한 집안 이상의 출신으로 고급 교육까지 받았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렇기에 이사야가 임금이나 조정과 논쟁을 벌이고 그들의 종교, 정치, 사회 정책을 논박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출신은 신학적으로 중요성을 지닌다. 이사야에게는 아모스나 호세아처럼 ‘광야 전통’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그는 이집트 탈출 등 이스라엘의 구원 역사를 알지만 별다르게 언급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사실에서도 그가 시나이 계약과 함께 선택된 민족의 양 기둥을 이루는 다윗 계약(2사무 7장)을 강조하는 예루살렘에서, 그리고 왕실과 가까운 계층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리라고 짐작하는 것이다.
이사야의 사생활은 그의 사명 수행과 관련된 사항만 몇 가지 간략히 제시된다. 그는 ‘여예언자’와 혼인하는데 두 아들에게 모두 상징적 이름을 붙인다(7,3; 8,3). 자식들의 이름까지 동원하여 자기의 메시지를 가시적으로 선포하는 것이다(8,18). 이렇듯 이사야는 혼인과 가정생활까지 통틀어 온몸으로 하느님 말씀 선포의 사명을 수행한다.
이사야 예언자는 “우찌야 왕이 죽던 해”(기원전 740년)에 소명을 받고(6,1) 그 뒤 세 임금의 치하에서 활동한다(1,1). 그에 대한 마지막 말을 듣게 되는 것은 아시리아의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위협하던 기원전 701년이다. 로마 순교록에는 이사야가 므나쎄 왕 시기(기원전 687-642)에 예루살렘에서 순교했다고 한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그를 순교자로 여기며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하지만 이사야 예언자가 순교했다는 전통은 성서에 언급된 것이 아니며 분명히 외경에 속한다(이사야의 승천; 에녹 11,37). 이사야서의 머리글(1,1)에 따르면 이사야가 박해자 므나쎄 왕 시기에는 살지 않았음이 확실하다. 그런데 므나쎄 왕은 온갖 외국 종교 관습을 끌어들였고, 야훼 신앙을 따르는 자들을 심하게 박해하였다. 바로 이 점에 근거하여 이사야가 순교했을 것이라고 여기지만 분명하지는 않다.
축일7월 6일 성녀 마리아 고레티 (Mary Goretti)
신분 : 동정 순교자
활동 연도 : 1890-1902년
같은 이름 : 고레띠, 메리, 미리암
성녀 마리아 고레티(Maria Goretti)는 1890년 10월 16일 이탈리아 안코나(Ancona) 지방의 코리날도(Corinaldo)에서 가난한 농부의 여섯 자녀 중 맏이로 태어났다. 아버지 루이지 고레티(Luigi Goretti)와 어머니 아순타 카를리니(Assunta Carlini)는 비록 가난했지만 서로 사랑하며 자녀들에게 하느님의 사랑과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고 충실한 신앙생활로 인도하고자 했다. 어려서부터 상냥하고 총명하며 예의 바른 마리아는 시골에 사는 가난한 농부의 딸로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다. 1896년 집안 형편이 더 어려워져 그나마 갖고 있던 작은 농장마저 포기하고 정든 고향을 떠나 팔리아노(Paliano) 인근의 콜레 지안투르코(Colle Gianturco)로, 1899년에는 오늘날의 라티나(Latina)와 네투노(Nettuno) 인근 레 페르리에레(Le Ferriere)로 이사가서 다른 사람의 농장에서 소작인으로 일했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자신의 땅을 갖기 위해 매일같이 열심히 일하며 루이지 고레티가 그만 건강을 잃고 자리에 눕게 되었다. 농장 주인은 그가 하던 일을 맡을 다른 사람을 구했는데, 새로 농장에 온 사람은 조반니 세레넬리(Giovanni Serenelli)로 그에게는 17살 된 알레산드로 세레넬리(Alessandro Serenelli)라는 아들이 있었다. 1900년 마리아가 10살 때 병약한 아버지는 말라리아 걸려 고생하다가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가족의 생활은 더욱 어려워졌다. 어린 나이지만 마리아는 어머니를 도와 집안 살림을 하며 동생들을 돌보았다. 그러면서도 어머니에게 배운 대로 동생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고 예수님과 성모님 그리고 요셉 성인에 대해 자신이 들은 이야기들을 전해주었다.
나이에 비해 성숙한 편이었던 마리아는 첫영성체를 할 나이가 되었으나 글을 읽고 쓸 줄도 몰랐다. 그녀는 어머니가 알려주는 바를 암송하고, 어머니 친구의 도움을 받고 교리 공부를 시작했다. 그녀의 순수한 열정을 안 본당 신부도 자주 그녀를 찾아 교리를 가르쳐줬다. 마침내 성녀 마리아 고레티는 1902년 5월 29일 감격스러운 첫영성체를 할 수 있었다. 미사 중에 본당 신부의 강론을 들으면서, 그녀는 주님의 사랑 안에서 순수한 영혼을 지키고 죄를 멀리하며 성모님의 보호하심을 믿고 늘 기도할 것을 다짐했다.
그해 7월 5일 오후, 성녀 마리아 고레티는 평소처럼 집안일을 하며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농장 일을 하며 이웃해 살던 조반니 세레넬리 가족과 그녀의 어머니도 모두 일을 나간 뒤였다. 그때 일하러 가던 중 핑계를 대고 돌아온 18살의 알레산드로는 자신의 셔츠를 기워 달라며 마리아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베란다에 앉아 바느질하던 어린 마리아를 강제로 침실로 끌고 가서 문을 잠그고 미리 준비한 수건으로 입을 틀어막고는 칼로 위협했다. 알레산드로는 욕정에 눈이 멀어 마리아를 강제로 강간하려 했지만, 마리아는 큰소리로 “안 돼! 알레산드로. 이것은 하느님께 대죄를 짓는 거야!”라며 완강히 저항했다. 그녀가 끝까지 버티자 알레산드로는 이성을 잃고 날카로운 칼로 마리아의 가슴을 마구 찔러댔다. 그녀의 몸에는 모두 14군데의 깊은 상처가 생겼고, 뒤늦게 돌아온 가족들이 피범벅이 된 그녀를 급하게 병원으로 옮겼다.
상처가 너무 심해 마취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수술에 들어갔으나 의사들도 더는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겨우 의식을 되찾은 성녀 마리아 고레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통을 생각하며 그토록 극심한 고통을 참아냈다. 그리고 그녀를 위해 병원으로 찾아온 본당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보고 마지막 영성체를 했다. 본당 신부는 성체를 영해 주면서 “십자가 위에서 원수를 용서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신 주님처럼, 너를 이토록 참혹하게 만든 알레산드로를 진심으로 용서해 주겠느냐?”라고 묻자 마리아는 이렇게 대답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저 역시 그를 용서하고 그를 위해 천국에서 기도할 겁니다. 저는 십자가 옆에 있던 강도처럼 그를 천국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마 하느님께서도 그를 용서해 주실 거예요.” 이렇게 정결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바친 성녀 마리아 고레티는 1902년 7월 6일 오후,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에 마지막 성체를 모시고 주님의 품에 안겼다. 그녀의 유해는 로마 남부 네투노에 있는 예수 고난회의 은총의 성모와 성녀 마리아 고레티 성당에 모셔져 있다.
그녀의 영웅적 덕행과 정결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순교자다운 죽음은 그 지역뿐만 아니라 세계 전 지역으로 널리 알려졌고, 그녀의 시성을 위한 움직임이 활발히 일어났다. 한편 알레산드로는 로마의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종신형 대신 30년의 노동형을 받았다. 여러 해 동안 전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지내던 그는, 어느 날 밤 한 어린 소녀가 머리에 화관을 쓰고 하얀 베일을 휘감은 채 손에 백합을 들고 나타난 것을 보았다. 자신이 참혹하게 죽인 소녀가 환한 미소를 띤 얼굴로 다가와 백합꽃을 전해주는 꿈을 꾼 뒤에 비로소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그는 진심으로 뉘우치며 성녀 마리아 고레티와 그녀의 가족에게 용서를 구했다. 남은 형기를 모범적으로 마치고 출옥한 알레산드로는 성녀 마리아 고레티의 어머니에게 가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청했다. 어머니 역시 이미 자신의 딸이 용서했다며 그를 껴안고 기꺼이 용서해 주었다.
성녀 마리아 고레티는 1947년 4월 27일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시복되었는데, 그때 알레산드로는 시복 재판의 중요한 증인이 되었다. 그리고 한때 어린아이를 성인품에 올리는 문제로 논쟁이 일기도 했지만, 교황청 시성성은 목숨을 걸고 그리스도교의 가치를 수호한 그녀의 영웅적 행동을 어른의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1950년 6월 24일 교황 비오 12세는 그녀의 시성식 미사를 봉헌하며 “마리아는 하느님의 너그러운 은총과 그 은총에 대한 굳은 결의의 응답에 의지하여 목숨을 바치고 동정의 영광을 잃지 않았다.”라며 그녀를 일컬어 ‘20세기의 성녀 아녜스(Agnes)’라고 칭송했다. 이 시성식 미사에는 성녀의 어머니와 형제들 그리고 회개한 후 새사람이 된 알레산드로도 참석했다. 알레산드로는 후에 카푸친 작은형제회의 평수사가 되어 죽을 때까지 수도원에서 회개와 봉사의 삶을 살았다. 성녀 마리아 고레티는 모든 청소년의 수호성인으로서, 특별히 서로 용서하지 못하고 성도덕이 문란해지는 현대인에게 훌륭한 모범이 되고 있다.
오늘 축일을 맞은 이사야(Isaiah) 형제들과 마리아 고레티(Mary Goretti) 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과 은총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