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웠던 그날...♧
우리에게 꼬다시 그날...
그런 날이 올까요...
추억은 모두 행복하고
좋은 것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기억 할수록 .
마음이 아픈 추억도 있다는것을...
하지만 잊을 수 없는
기억이기에
이 아픈 추억을
평생 가지고
가야 한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
삶이란
우리 인생앞에 어떤일이 생기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하는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입니다
흔히들 운명론을 말하지만 그 운명도 내 자신이 만드는 것입니다
인생길 가노라면 누구나 힘이들고 지칠 때가 있습니다..
우리 그길을 함께 할 수 있으면 크나큰 행복이요..
좋은 인연 아닐런지요......
마지막 죽음의 다리 건널 때..
당신과 함께 했던 길 당신이 있어 행복했다는 말한마디..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흐르는 곡 ...
01. 당신만 있어 준다면 (As long as you are with me) - 양희은
02. 동백아가씨 - Electric violinist Jo A Ram
03. 들국화 - 색소폰연주
04. 남몰래 흐르는 눈물 / Una Furtiva Lagrima / Piano Live ( 2021)
당신만 있어 준다면 - 양희은
세상 부귀영화도
세상 돈과 명예도
당신 당신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죠
세상 다 준다 해도
세상 영원타해도
당신 당신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죠
아무도 모르는 둘만의 세월
이젠 알아요 그 추억 소중하단 걸
가진 건 없어도 정말 행복했었죠
우리 아프지 말아요 먼저 가지 말아요
이대로도 좋아요 아무 바램 없어요
당신만 있어 준다면
당신 당신 나의 사랑
당신만 있어 준다면
아무도 모르는 둘만의 세월
이젠 알아요 그 추억 소중하단 걸
가진 건 없어도 정말 행복했었죠
우리 아프지 말아요 먼저 가지 말아요
이대로도 좋아요 아무 바램 없어요
당신만 있어 준다면
당신 당신 나의 사랑
당신만 있어 준다면
당신 당신 나의 사랑
당신만 있어 준다면
1952년 8월 13일,
무더운 여름날에 양희은은
육군 대령 집안의 맏딸로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미국 유학까지 다녀왔을 정도로 엘리트였던 아버지는
어린 시절부터 양희은에게 클래식을 비롯해 많은 음악을 들려주었고
종로에서 노래 잘 부르기로 유명했던 어머니는
양희은을 데리고 항상 맑고 청아한 동요를 불렀다.
그러나 육군 대령집안의 이 평화로운 부유함은 채
10년도 가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1961년, 그녀의 나이 10살 때 부모는 이혼을 했고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의 집을 걸어 나와야했다.
아버지와 떨어지는 그 순간부터
가혹한 생존경쟁에 휩싸여야 했던 양희은은
동생 양희경과 함께 어머니의 일을 도우며 끼니를 연명해야 했고
어렵사리 마련한 가게에 화재가 나는 등 우여곡절을 몸소 겪어야했다.
어두웠던 그녀의 인생에 한줄기 빛이 들어온 때는
바로 19살 되던 1970년이었다.
단순히 "돈" 을 벌고 싶었던 그녀는 당시 "금수강산" 에 출연하고 있던
동창 송창식을 찾아갔고
처음으로 '노래' 라는 것을 부르게 된다.
가수 양희은... 한 시대를 풍미한 '포크가수' 양희은의 탄생이었다.
송창식을 만난 1970년 그 때,
양희은은 그녀의 음악 세계와 인생에
가장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 한 명의 작곡가를 만나게 된다.
한국 대중문화 역사의 '살아있는' 천재, 김민기가 바로 그였다.
김민기가 누구인가.
한국 대중문화 역사상 가장 투철했던 '시대정신' 을 가지고 있던 작곡가,
현실에 참여하고 독재에 저항했던 진정한 예술인.
그가 바로 김민기 아닌가.
유신독재가 시작되고 시대상황이 암울해지던 그 때,
김민기와 양희은의 만남은 어쩌면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어느 날 밤, 우연찮게 김민기를 찾아간 양희은은 김민기가 부르던 노래에
심장이 멎는 것 같은 울렁거림을 느꼈다.
무엇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김민기는 부르던 노래의 악보를 갈갈이 찢어
바닥에 버렸지만 양희은은 테이프를 들고 그 악보를 일일이 다시 붙였다.
그 노래가 한국 가요계에 길이길이 남을 명곡 중의 명곡이 될 줄이야!
이 곡이 바로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 로 유명한 노래,
<아침이슬> 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1971년,
양희은은 김민기의 곡 <아침이슬> 을 발표하며
전 세대를 아우르는 반향을 일으킨다.
통기타와 청바지, 또랑또랑하지만 맑고 청아한 목소리,
비굴한 시대의 빛나는 저항정신을 노래한 그녀의 <아침이슬> 은
유신정권의 억압과 강요된 굴종을 넘어서는 시대정신의 심벌이 됐고
그녀는 남자들이 장악한 포크계에서
유일하게 자신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여성가수로 급성장했다.
스무 살, 막 터질듯한 꽃봉오리 같은 그녀가
시대를 울리고, 사람을 울리고, 결국 역사를 울렸던 것은
결국 김민기가 있었기 때문이었겠지만
김민기의 <아침이슬><세노야 세노야>가
70년대 가장 사랑받는 포크송으로 기록될 수 있었던 것
역시 가수 양희은이 있었기 때문 아니었을지.
세간에서 말하는 것 처럼 그들의 만남은 '역사적 동체' 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