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페인, 논알코올, 제로슈거
우리가 호텔 로비에서 주문한 것들
모자란 것이 필요하다
그런 건강을 알고 싶지 않았지만
빈방을 나섰다가 빈방으로 되돌아오는 일이
너무 오래 걸린 것이다
내려갈수록 파다해지는 수챗구멍 속에서
서로의 얼굴을 보게 되는 현기증
복사기와 공유기와 캐비닛 넘어
삶은 그런 줄거리로 파쇄될 것이고
산산조각 난 어제를 겨우 나눠 가지면서
서로의 깨진 자국을 맞대어보는 다정함으로
낫는 것을 잊어버린 일
우는 얼굴이 원본이었으니까
우리는 젖은 이름을 깨우는 노크에도 금새
빗장을 열 수밖에 없고
호텔에서 좋은 방은 비어 있는 방
좋은 손님은 커튼을 한 번도 젖히지 않는 사람
잠만 자는 사람
디카페인, 논알코올, 제로슈거
텅 빈 눈동자로 들여다본 우리의 객실은
마치 누가 올 것처럼 희고 깨끗하다
[나쁘게 눈부시기],문학과지성사, 2025.
카페 게시글
시사랑
체크인 / 서윤후
플로우
추천 0
조회 79
25.04.28 11:02
댓글 1
다음검색
첫댓글 전철에서 몇 번이고 읽고 또 읽고 ...
집 나간 회원, 다시 돌아와도 그 자리에서 고향처럼 어머니처럼 여전히 기다리고 계신 분, 플로우님!
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