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라일락이 아니다
- 이경교
누군가 라일락에게 수수꽃다리란 이름을 붙였을 때, 꽃에
겐 어떤 변화가 일어난 걸까, 수수꽃다리는 라일락의 보이
지 않는 안쪽이다 수수꽃다리라고 부르는 순간, 컴컴한 실
내가 드넓게 펼쳐진다 꽃의 실내를 채우는 건 언제나 짙은
그늘이다
누군가 나를 수수꽃다리라고 부를 때, 나는 몰래 라일락에
서 빠져나와 어두운 골목을 걸어간다 저만치 보랏빛 입김에
볼이 뜨거워진 향기가 지나간다 라일락에서 수수꽃다리로 돌
아오는 동안, 꽃잎 포기마다 공기의 알맹이가 매달린다 몸이
축축해진 수수꽃다리가 떠날 때쯤, 희미한 어스름만 홀로 돌
아온다 수수꽃다리는 밤과 별을 함께 나누어 가진 이름이다 수
수꽃다리는 은밀하게 부서진다 어쩌면 나는 안개처럼 자욱해
지거나, 문밖으로 쏟아진 이름이 아닐까
잡을 수 없는 향기, 나는 이미 라일락과 한 몸이 아니다
ㅡ사이버문학광장 《문장 웹진》(2023,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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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산의 온갖 숨탄것들은 저마다 고유한 특성과 이름을 지닙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 라일락도 본디는 '수수꽃다리'란 우리말 이름이 있었답니다
6.25 한국전쟁 때 참전국 병사들이 자기 고향에서 본 라일락과 비슷하다고 해서
'미쓰김라일락'이라고 불렀다고 전해집니다
꽃의 생김새나 향기가 다른 것도 아닌데, 외국인이 그렇게 불렀다 하니 그걸 좇아 간 것이지요
어쩌면 지금도 우리는 고유한 우리것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선진 외국을 따라하기 바쁜 게 아닐까요?
일상 대화 중에도 외래어 한두 마디는 섞여야 그럴듯헤 보이고
뜻도 모르는 외래어줄임말을 써야 가방끈이 길다는 평을 듣는 시대가 되었네요
그러나 머리카락 색깔을 물들인다고 해서 온몸에 문신을 한다고 해서 사람이 달라질까요?
영어유치원에 일찍 보내려고 번호표 뽑고 기다린다는 시절이니
정작 변해야 할 우리의 정신과 태도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