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낮은 자세로 권력과 권위를 벗어던지다
Leadership, 프란치스코 교황의 리더십 | 2016년 03월호 전체기사
21세기는 위험사회다. 독일의 사회학자인 울리히 벡 교수는 1997년작 <위험사회>에서 산업화와 근대화 과정이 가공스러운
‘위험사회’를 낳는다고 주장했다. 실제 온갖 테러와 살상이 난무하는 지구촌뿐 아니라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등에서 보듯 한국사회도 안전과
행복을 보장받을 수 없는 위험사회를 향해 폭주하고 있다.
위험사회에 맞서 평화와 포용, 소통과 겸허함, 안식과 정의로 세상을 울리는 지도자를 꼽는다면 단연 프란치스코 교황이 돋보인다. 그는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아메리카 대륙 출신이자 남반구 국가 출신 교황이면서, 최초의 예수회 출신이다. 시리아 출신이었던 교황 그레고리오 3세 이후
1282년 만에 즉위한 비(非)유럽권 출신으로서, 교황 즉위 이후 겸허한 헌신과 함께 무수한 개혁과 탈권위적인 소통으로 세계인의 존경을 받고
있다.
스스로 낮추며 포용하는 사랑, 전세계인의 존경과 경외심 들게해
1937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태생인 그는 신학교를 거쳐 1969년 사제 서품을 받았고, 1973년부터 1979년까지 예수회의 아르헨티나 관구장을 지냈다. 1998년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을 맡았고, 2001년에는 추기경에 서임됐다. 2013년 2월 28일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스스로 교황직을 사임한 후에
소집된 콘클라베에서 교황으로 선출됐다. 그는 자신의 교황 이름을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따라서 평이하게 프란치스코라고 명명했다.
그는
공사를 가리지 않고 검소하고 겸손한 태도로 권위를 벗어던지고, 신자들의 고통과 함께 하는 목회자의 모범을 보이고 있다. 사회적 소수자들,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관용을 촉구하며, 여러 가지 다양한 배경과 신념, 신앙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소통이 오갈 수 있도록 대화를
강조한다. 그는 소박하고 격식에 덜 얽매인 형식에 따르는 생활을 하고 있다. 과거 전임자들은 사도 궁전에 거주했지만, 그는 성녀 마르타 호텔에서
검소한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
교황직에 선출될 당시에는 교황 선출자가 전통적으로 착용하는 붉은색 교황용 모제타를 입지 않았고, 전례 집전
시에도 화려한 장식이 없는 검소하고 소박한 제의를 입고 있다. 순금으로 주조해왔던 어부의 반지를 도금한 은반지로 교체했고, 목에 거는 가슴
십자가는 추기경 시절부터 착용하던 철제 십자가를 그대로 쓰고 있다.
그는 낙태, 피임, 동성애 등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을 고수해 왔다. 동성애를 죄로 규정하는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동성애자들을 사회적으로 소외시키거나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 교회의 가르침에 관해서 ‘교회의 아들’로 자처한 그는 낙태에 대해 ‘소름이 끼치는 행동’이라고 반대했고, 교회 내에서 여성의
역할 확대를 강조하면서도 여성의 사제 서품 문제에 대해서는 ‘교회가 이미 안 된다고 밝혔다’며 교회의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는 등 기존 교회의
권위를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미혼모 자녀의 세례를 거부하는 사제들에게는 “사람들과 구원의 길 사이를 갈라놓는 위선자들”이라고 질책하는 등 변화를
수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예수님을 믿지만, 교회에는 가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라며 더불어 공감하는 종교적인 삶을
강조하고 있다.
라틴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독일어, 포르투갈어, 영어, 우크라이나어를 구사하는 그는 세계 전역을 찾아
사랑과 나눔의 정신을 설파하고 있다. 이처럼 세계인들과 소통하며 가톨릭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데 앞장선 그에 대해 세계인들은 존경과 경외감을
드러낸다.
세계적인 경제주간지인 <포춘>은 2014년 3월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리더’ 50인 중 1위로
프란치스코 교황을 올리며 존경심을 표했다. 그는 2013년 3월 교황으로 취임한 이후 불과 3년도 채 되지않는 기간 동안 쇠퇴한 가톨릭 교회에
활기를 되찾게 했고, 가톨릭 교회와 종교인들이 지녀야 할 핵심 비전과 가치를 세웠으며, 세계 가톨릭 지도자인 교황과 바티칸에 새로운 임무와
책임을 부여했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시민 소통과 탈권위주의, <포춘>이 꼽은 세계 최고의 리더
프란치스코 교황에게서 볼 수 있는
리더십의 핵심 특징은 시민 소통과 탈권위주의다. 그는 2013년 10월 이탈리아 남부 람페두사 섬에서 발생한 선박 전복 사고로 아프리카 출신의
유럽행 밀항난민 360명이 사망하자, 직접 섬을 방문해 추모 미사를 집전했다. 별다른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했던 이 사건은 교황의 미사로
시민들의 관심을 끌었고, 유럽연합이 ‘해상 난민 안전경보 시스템’을 제정토록 했다.
아르헨티나 추기경 시절인 2004년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화재 현장에 달려가 소방차가 오기도 전에 구조 활동을 펼친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사건발생 4년 후 법원이 사건 관계자 중
14명에게 유죄판결을 내리는 형식적 재판으로 사건을 마무리하려 하자, 정부와 검찰을 강력히 비판했다. 그의 날선 비판에 힘입어 상급심으로
올라가면서 엄정하고 무거운 처벌이 이뤄졌고, 이는 화재에 대한 범사회적 대비 태세가 이뤄진 계기가 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저녁이면
교황청을 빠져나가 노숙자들을 돌본다는 바티칸 시내의 소문은 사실로 밝혀졌다. 길을 지나면서 만나는 시민들에게 “보나세라!(이탈리아어로
안녕하세요라는 뜻이고 저녁에 하는 인사)”, “본 조르노!(안녕하세요)” 등 인사말을 주고받고 키스를 건네는 모습도 시민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종교 본연의 모습을 일깨우고 있다.
신속하고 엄정한 의사결정과 단호한 일처리도 그의 핵심적인 리더십 요소다. 그는 권위로 똘똘 뭉쳐있던
교황청의 관행과 무사안일을 질타하며, 스스로 모범을 보이는 실천을 통해 일반 신자와 함께 하는 소통의 장으로 개혁해냈다. 또 중요한 원칙과
의사를 결정해야 할 때는 물러서지 않고 목표를 관철하곤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대표적인 보수파로 꼽히는 미국 출신 레이먼드 버크
추기경을 가톨릭 교회의 최고법원 수장인 교황청 대심원장에서 경질하는가 하면, 바티칸 은행에서 부정이 발견되자 추기경 5명 가운데 4명을
갈아치우는 전격적인 조치를 취했다. 또 새 교황이 취임하면 막대한 돈을 하사하는 보너스 전통을 없애버렸고, 교황궁이 아닌 기숙사에 거주하면서
리무진을 거절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검소함을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세월호 참사 문제의 해결에 관심을 갖고 유족들을 품어주는 따뜻한 인간미로
한국뿐 아니라 세계 곳곳의 시민들을 감동하게 만들었다.
그는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바티칸의 교황 중 가장 낮은 자세로 권력과 권위를
벗어던졌다. 이 과정에서 바티칸에 대한 세계인들의 존경과 경외감을 높아지고 있고, 급감하던 세계의 가톨릭 인구는 날로 늘어나는 역설적인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는 세계인들이 가장 닮고 싶고 함께 만나고 싶어 하는 동시에 존경과 사랑을 보내는 유례없는 종교지도자라는 점에서 21세기
새로운 소통형 리더십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과거처럼 카리스마와 권위에 의존하던 지도자가 아니라 시민과의 소통과 헌신을 통해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팔로우십을 획득하는 모습에서 21세기에 걸맞는 새로운 지도자상의 전범으로 꼽을만하다.
리더와 리더십을 연구하는 정치학자로서 오랜만에 찾은
흠 잡을 곳 없이 존경할만한 지도자의 모범을 보는 것이 즐거운 세상이다.
김홍국
르롱드 디플로마티크 수석편집위원·국제정치학 박사
문화일보 기자와 tbs 보도국장을 지낸
필자는 한국협상학회 부회장이며 대학에서 정치와 언론을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2011년 세계정치학회에서 만델라 등 정치지도자들의 리더십과
조정력, 협상력을 주제로 한 논문을 발표하는 등 꾸준히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미국 해외특파원협회(FPA IN New York) 회원이며,
2009년 아시아차세대지도자포럼의 한국 대표로 활동했다. 저서로는 <오바마2.0>, <미국의 거장들>, <한국 건축가
100인, 세계 건축가 100인> 등이 있다.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