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얼마전 까지만 하더라도 제가 이런 글을 파평윤문 카페에 올릴 것이라고
전혀 상상치 못했는데 저로서도 참으로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몇년만에 다시 카페를 찾은 것은 윤석열 전 총장님을
카페에 알리고 싶은 마음에 자발적으로 시작한 것이었는데 실로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어서 실로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평소 글쓰기가 생활화되어 있으며,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스타일이기에
오늘 어떻게 명재공 관련 책까지 주문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파령윤문과 인연이 깊다는 것은 분명하나 그렇다고 해서 후손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스스로 자문을 해봤는데
이는 명재공과 돈계공을 중심으로 한 선대의 그 인연의 영향이라고 확신합니다.
오래전, 돈계공의 행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명재공이 돈계공과 함께 시남공의
문하에서 동문수학하였으며, 명재공이 돈계공에게 보낸 8편의 서찰을 발견하였으며,
더불어 명재공이 돈계공의 만사를 지으신 사실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또한 돈계공의 사위가 명재공의 당숙이 되시는 용서공의 아드님이시라는 사실과
더불어 돈계공의 아드님이신 취와공의 묘갈명을 명재공의 종손이 되시는 경암공이
지으신 사실을 알게 되면서 2대에 걸친 그 깊은 인연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덧붙이면 자유게시판 첫글에 간략히 소개한 바 있지만 저의 종조모님께서도
평와공의 후손이 되신다는 것이니 이런 것을 통하여 볼 때 제가 파평윤문과 얼마나
깊은 인연이 있는지를 종현 여러분께서도 공감하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의 부족함으로 인하여 그러한 선대의 인연을 좀더 체계적으로 연구하지
못한 채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다시 신축년을 맞이하였으며, 지난 3월 7일 카페의 자유게시판에 첫 글을
올리면서 파평윤문과 저의 인연이 다시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그 첫글의 핵심 포인트는 윤석열 전 총장님의 가문의 역사를 소개한 기사를 올린
것이었습니다.
이와 관련해 총장님의 10대조부님이신 석호공의 조카가 바로 명재공이었기에
자연히 명재공에 대하여 다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작년에 총장님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던 상황에서 총장님의 가문이
명재공과 관련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순간부터 저의 뇌리에 다시 명재공이
선명히 각인되었던 것입니다.
제가 오늘 새벽에 명재공이 석호공의 묘표를 지으신 글과 또한 명재공이 지으신
돈계공의 만사를 원문과 번역문으로 올릴 수 있었던 것은 한국고전번역원에 수록된
그 많은 문집중에서 명재공의 문집이 번역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저의 파일 리스트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제가
오래전에 돈계공과 관련된 자료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파일이 있는 것을 확인하였으며,
거기에 원문과 번역문이 함께 수록되어 있는 것도 확인하였습니다.
저로서는 무엇보다도 석호공에 대한 관심이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어 명재공에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결국 문집이 번역되어 있는 놀라운 사실을 확인한 것을 대단한
성과로 평가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번역된 명재공의 문집을 자세히 분석하면서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자료는
자유게시판에 원문과 함께 올리겠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금전 네이버에 "명재 윤증"으로 검색하여 2006년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에서 출간한 "명재 윤증의 학문연원과 가학" 제하의 책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목차를 살펴 보니 거기에 명재공 가문의 뛰어난 학자들의 생애를 소개한 내용이 있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책을 읽고 싶어서 동네서점에 주문하였는데, 사실 그동안 이런 귀한 책이 있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는데, 앞으로 이 책을 구입하여 열심히 읽겠습니다.
2021년 3월 16일(화) 문암 박관우 올림.
첫댓글 기대가 됩니다.
윤서한 종현님께서 격려의 댓글을 주셔서 참으로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