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계속되는 무더위로 지쳐있는 국민들에게 갑자기 수면으로 떠오른 불법 도청사건은 국민들을 더욱 짜증나게 한다. 과거 중앙정보부시절에는 말할 것도 없고 전두환정권때에 안전기획부로 명칭이 변경된 국가정보기관이 노태우정권에 이르러까지 불법도청을 일삼았을 것이란 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군사독재를 종식시켰다고 자처하는 문민정부라는 김영삼정권 시절에서도 이와 같은 도청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극도의 배반감을 느끼게 된다.
물론 문민정부를 이은 국민정부 시절에도 국가 정보기관 도청의혹은 여러차례 제기되었지만 그럴 때마다 정부나 정보기관에서는 이를 강력히 부인해 왔다. 그럼에도 가끔 아주 그럴듯한 유언비어들을 접할 때마다 설마라는 생각과 함께 사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동안 국회에서 벌어졌던 무자비한 폭로전의 배후에는 이와 같은 불법적인 도청에 의한 정보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폭로하는 측에서는 도청내용을 가지고 공격을 하지만 불법으로 만들어진 도청테이프의 존재를 밝힐 수 없어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상대방은 가슴은 찔리지만 설마 도청테이프를 증거로 제출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사실무근이며 정치탄압이라고 주장하다가 어느 순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슬그머니 지나가 버린다.
그러나 이번 사건과 같이 도청 테이프의 존재가 확인된 이상 그대로 넘어갈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처음 매스컴에 보도될 당시에는 기업의 부도덕성과 정경유착이 크게 부각되었었다. 진실의 측면에서 본다면 이와 같이 기업을 부도덕하게 만드는 것은 정치인집단이고 권력이다.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치권에 줄을 서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준 것은 과거 우리나라의 역대정권들이며 정치인들이다.
언론사의 경우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도청테이프의 작성목적 및 유출경위 등이 보도되면서 국민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이 문제에 대해서는 국민의 한사람으로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그저 망연자실할 뿐이다. 국민의 알권리를 이유로 도청한 내용을 모두 공개하라는 여론이 만만치 않다. 우선 법적으로 본다면 이와 같이 도청을 지시하거나 도청을 실시한 행위는 물론 위 도청내용을 발표한 것도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것은 자명하다. 다만 위 도청한 내용상에 범죄행위가 있다면 위 도청한 내용을 증거로 해 그 범죄행위를 처벌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형사소송상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는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원칙이 있어 이를 맡아 수사하는 검찰로서도 당혹스러울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도청의 대상이 대통령을 제외한 모든 주요인사들이며 그 내용도 사회전반적인 질서를 붕괴시킬 정도라고 하니 이미 사실상 공개된 테이프내용만을 가지고 그들을 형사처벌한다면 공개되지 않은 다른 이들과의 형평성문제로 구설수에 오를 것은 명백하다. 이 때문에 정부여당에서는 특별법을 제정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불법도청의 재발방지이다. 권력에 순응하는 사람들은 이런 일을 되풀이 하고자 할 것이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필요하다면 이를 유출해 무기로 삼고자 할 것이다. 그와 같은 도청에 국민들의 세금이 사용됐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분통이 터진다.
국가정보기관은 국가의 안전보장을 위해 일을 해야 하며 정권의 안전보장을 위해 일을 해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청테이프 내용의 공개여부와 관계없이 도청과 관련된 사람은 법정 최고형으로 다스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정보기관에서의 불법도청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기간에 특별규정을 두어야 할 것이다. 기술적으로는 휴대전화도 도청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와 같은 도청이 현정권에서도 계속되지 않는다고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따라서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며 당사자에게는 일벌백계로 다스리는 수밖에 없다. 현 정권하의 국정원에서도 이와 같은 일을 자행하고 있거나 혹은 유혹을 느낀다면 이번 기회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정지열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