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풀들
- 황주현
겨울옷에서 보풀을 떼어낸다
동글동글 말려 있는 보풀들
그것들은 묻지도 않은 질문을 들고
궁금하다는 듯한 모양들이다
스쳐 간 흔적이거나 스쳐 온 흔적처럼
의문들은 부피를 키우는 것일까
더 이상 자라고 싶지 않은 계절이 있었을까
서로들 깍지를 낀 모습들이다
겨울에만 자라는 구설수들처럼
밤새 눈이 내렸다
어쩌면 눈은 추위의 보풀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느 시간대를 골라
펄펄 내려서 보풀보풀 쌓였을 것이다
아마도 간밤의 추위는
몇 년의 겨울을 쉬지도 못하고
줄곧 지구의 혹한을 옮겨 다녔을 것이다
첫눈 치고는 꽤 많이 내린 눈
폭신한 날씨를 골랐을 것이다
추위는 말끔해진 날씨로 온다
코끝을 쨍하고 지나,
한동안은 보풀이 없는 추위가 이어질 것이다
숨 막히게 들뜨는 보풀들
그건 또 낡음의 가려움쯤 될 것이고
손이 닿지 않는 부위에선
간신히 참고 있는 가려움이 있다
낮은 포복으로
한 올과 한 올 사이를 오가며
한 계절의 무고를 건너고 있다
결심처럼 뭉쳐지고
떨어져 나갈 일들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한다
ㅡ 웹진 《시산맥》 2023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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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인기 있는 의류가 대개 화학섬유여서 보풀이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만
천연섬유나 털실로 짠 의류는 보풀이 일어 착용하기에 께름직할 수도 있습니다
보풀 하나 하나의 크기는 다르지만 모양은 주로 동글동글 하게 맺힙니다
올이 터진 것과 구별되기 때문에 세탁소에서 낱낱이 떼어주기도 합니다
조심성 없이 일어지는 하루치 삶에서도 보풀이 일 수 있잖아요?
흔적은 의문을 지니고, 무심결에 손끝에 걸리적거립니다
피부가 가려우면 긁어야 하고, 뭔가가 걸리적거리면 떼어내야지요
오늘 결심한 스스로의 언행에 보풀이 남지 않기만 바라며
뭉쳐진 결심 떨어져 나갈 아쉬움들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