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런던에 머물며 어학연수를 했습니다. 경인교대 영어과 학생들과 함께였고 저는 중학입학을 앞둔 아들을 동반하였지요.
주중에는 오전 내내 공부하고, 각자 싸온 도시락(홈스테이 주인이 싸 준 샌드위치)을 먹은 후 오후에는 주로 런던 시내를 돌아다녔습니다.
트라팔가 광장, 런던탑, 타워브릿지, 빅벤, 코벤트 가든, 마담 투소, 해롯 백화점 등등을 구경했지요. 원어민 선생님이 소개를 해 줘 거의 못 알아 들었지만...
아들과 저는 다른 반에 배정되어 공부를 했고, 관광을 할 때도 따로 다녔습니다.
저는 경인교대 여학생들과, 아들은 경인교대 남학생들과 어울려 다녔지요.
펍에 갈 때는 미성년자인 아들 때문에 우리 모두 합심하여 007작전(우르르 몰려들어가면서 아들을 숨기는 방법)을 펼쳐 함께 들어갔고요.
날마다 싸온 점심을 함께 먹으며 홈스테이하는 집 성토도 했지요. 대부분 돈이 필요해 홈스테이를 하는 집이어서 먹을 것도 풍부하지 않았고, 2월임에도 난방을 안 해 춥다는 불평이었어요. 그때는 몰랐는데 이번에 영국 여행하면서 보니, 먹을 게 풍부하지 않았던 게 충분히 이해되었어요. 생산되는 농작물 자체가 사과, 자두, 감자 정도이니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거예요.
아들과 제가 머물렀던 홈스테이 집은(처음엔 따로 배정해달라고 요청했다가 갖고온 용품들을 나누기가 어려워 어쩔 수 없이 함께 있었지요.) 다른 집에 비해 10배 정도 잘 사는 집이었어요. 밤중에 도착해 몰랐다가 아침에 일어나 2층 창문으로 내다보니, 차를 타고 한참 들어왔던 길이 대문 안으로 쫙 펼쳐진 길이었고, 뒷마당을 보니 잔디가 쫙 깔리고 수영장이 있고 놀이터가 있어서 그야말로 깜놀했었지요. 게다가 방이 어찌나 많은지 2층에서 아래층으로 내려오는데 복도에서 우왕좌왕하기도 했지요.
조금 친해진 후에 주인남자(필립이었던가?)에게 물어보니 100년 넘은 집이고 집값은 보통 집값의 10배 정도 된다고 하더라구요.
불편한 점은 오래된 집이라 수도꼭지가 잘 안 열린다든가 마루바닥이 좀 삐걱거린다던가 하는 소소한 문제가 있었죠.
주인여자 왈, 런던에서 가까운 곳에 살지 않는 이유로 런던의 공기를 꼽았어요. 두 아들 때문에 런던에서 먼 이곳에 사는 것이라고.
런던에 있는 아파트에는 주로 가난한 사람이 산다고 했어요.
두 아들(초등생 정도? 7살, 9살 정도?)은 전형적인 영국인 얼굴을 하고 있는데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엄청 쌀쌀맞았어요. 알지도 못하는 나라 코리아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얕잡아 보는 걸 느낄 수 있었지요. 그런 두 아들의 태도가 확 바뀐 사건이 있었는데 그것은 아들의 컴퓨터 실력 때문이었어요. 지들끼리 뭔 얘기를 하는데 아마도 무슨 게임 얘기를 하는 듯했고 잘 안되는 모양이었어요. 그때 자연스럽게 아들이 끼어들게 되었는데 게임하는 법을 가르쳐주었지요. 현란한 아들의 게임 솜씨에 그 날부터 "형님"으로 받들어 모시더라구요. 아들이 컴퓨터 고장난 것도 척척 고쳐주니 그때부터 우리뿐 아니라 우리나라를 대하는 태도가 확 바뀌었지요.
어느 금요일, 오전부터 옥스퍼드 여행을 한 날.
경인교대 여학생들과.
그때는 스마트 폰도 없던 시절이니 누군가의 카메라로 이 사진을 찍었고, 나중에 사진으로 받았어요.ㅋㅋ
- 길을 잃어 헤맸던 일. 그때만 해도 눈썰미도 있고 깡도 있어 기억을 되살려 어학원을 찾아 갔지요. 주인남자와 선생님들이 모여서 나를 잃어버렸다고 새파랗게 질려 있다가 내가 짠! 하고 나타나자 놀라던 일. 보통은 주인여자(이 어학코스의 코디네이터)가 어학원 앞까지 데려다 주는데 그날은 무슨 바쁜 일이 있어서 남편에게 부탁했는데 주인남자가 나를 엉뚱한 곳에 내려준 것이었어요. 모두가 당황하여 어쩔줄 모르고 있을 때, 경인교대 남자아이들이 저에게 와서 주인남자의 차가 무슨무슨 차라고 하더라구요. 그게 뭔데? 물었더니 기억은 안 나지만 엄청 비싼 차라고... 아마도 한국에는 몇 대 없었나 봐요.
- 아들과 다른 반에서 공부했는데 그 반에서 아마 일기 쓰는 공부를 했나 봐요. 아들이 "나는 엄마와 함께 이곳에 공부하러 왔다"고 썼나 봐요. 그때 난리가 났지요. 네 엄마와 같이 왔다고? 무슨 소리야? 엄마가 어딨어? 결국 제가 공부하는 클래스까지 찾아왔길래 제가 "이 아이는 나의 아들입니다."라고 말해 모두가 놀라워했던 일. 그때 제가 30대였으니....ㅋㅋㅋ
그러나 즐거웠던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한 여학생이 홈스테이 주인에게 불만이 있어 가방을 싸갖고 집을 나와 제가 있는 홈스테이 집으로 가겠다고 떼를 썼던 일.
이 여학생 아마도 우유를 엄청 좋아했던 듯. 그 집 식구들이 하루 먹을 우유를 한 번에 다 마셨나 보더라구요.
'우유 하나도 마음대로 못 마시는 집에 더 이상 있을 수 없다'면서 집을 나온 그 여학생을 달래서 다시 들여보냈지요.
그때부터 제가 한 일은 제가 머물렀던 부잣집 부엌에서 날마다 '우유와 사과, 간식(칩스, 초콜릿 등)'을 가방 하나 가득 싸들고
점심 시간에 만날 때마다 골고루 나눠줬지요. 대부분 대학 2학년생들, 한창 먹을 때.
그리고, 32년 지난 2026년 봄.
다시 와 본 옥스포드.
옛추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흐뭇하고 행복하네요.
첫댓글 저는 옥스포드에서 애 보며 밤마다 들려오는 고성방가에 투덜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여기가 신림동이네. 쳇!"
대학가는 한국이나 영국이나 별다를 게 없더라고요.
근데 저도 딱 저기서 애들이랑 사진 찍은 거 있어요. ㅎㅎ
그래도 그런 추억이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부러워요.
소설같은 이야기에요
선생님은 정말 이야기꾼이에요😍
아이고 무슨요.ㅋㅋ
아름다운 시절의 즐거운 추억입니다.
품 넓고 똘똘한 엄마와 아들!!
지나간 시간이 담긴 곳이라
정말 특별하셨겠어요.
그곳에 또 가게 될줄 누가 알았겠어요. 감격스럽더라구요.
정말 오래된 일인데 이리 또렷히 기억나다니.ㅋㅋㅋ
32년 만에 그 장소를 다시 찾은 것도 신기할 듯 요~~멋집니다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는 또 한번 가보고 싶은 곳^^
32년만에 다시 가서 옛 추억을 떠올릴수 있다면 얼마나 가슴 뭉클할까요?
제대로 영국 여행 해보고 싶네요
예, 그토록 가고 싶었던 곳을 다녀왔으니 원 풀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