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영토의 최남단인 제주도 마라도에서 다시 동남쪽으로 149km 떨어진 동중국해에는 첨단 무인과학기지라고 일컬어지는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가 있다. 본지 기자는 한국해양조사원과 한국해양연구원의 협조를 받아 지난 6월 7일~12일까지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를 방문하여 기지 및 기지에서 700m 가량 떨어져 있는 수중암초 이어도에서 다이빙을 하며 수중촬영을 할 수 있었다.
신화에서 과학으로 현실화된 이어도 “긴긴 세월 동안 섬은 늘 거기 있어 왔다. 그러나 섬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섬을 본 사람은 모두가 섬으로 가버렸기 때문이다. 아무도 다시 섬을 떠나 돌아온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청준의 중편소설 ‘이어도’에 나오는 대목이다.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왔던 제주도 사람들에게 이어도는 죽은 뒤에나 갈 수 있는 ‘피안의 섬’이요, ‘환상의 섬’이다. 고통스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전설로 만들어진 이상향이었던 것이다. 뱃일을 나갔다가 거친 풍랑을 만나 배는 난파되고, 표류하던 뱃사람들이 운명처럼 도착한 섬이 바로 여인들만 살고 있다는 전설의 섬 이어도이다. 이어도에 발을 들인 뱃사람은 아름다운 여인들이 제공하는 술과 음식에 취해 고향을 잊어버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 전설의 줄거리이다. 현실에서 수심 5m 내외의 수중암초인 이어도를 육안으로 관찰하려면 파고가 10m(수심의 2배가 되는 파고)는 넘어야 한다. 당시에는 이런 파도를 견딜 수 있는 어선들이 없었기에 이어도를 본 사람들이 돌아갈 수 없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비극적인 현실이었다. 그러나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복락과 구원의 이상향인 이어도로 갔다고 믿었기에 그들은 또 다시 두려움을 떨치고 바다로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오랜 전설로 인해 이어도는 제주도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고향 같은 존재로 남아 있다. 그런데 지난 2003년 6월 최첨단 무인 종합해양과학기지가 완공되면서 이어도는 신화를 극복하고 현실로 실재하게 되었다. 3,400톤 규모의 철제구조물이 12층 아파트 높이(36m)로 우뚝 솟아 있고, 설치된 첨단 과학 관측 장비를 통해서 태풍과 해일 등 해양 및 기상 관련 정보들이 인공 위성을 통해 실시간으로 제공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어도는 신화에 나오는 전설의 섬을 뛰어 넘어 우리의 생활에 꼭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과학 기지이자, 우리 영토의 관할권이 미치는 상징적인 곳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이어도의 발견과 명칭 이어도는 1900년 영국 상선 소코트라(Socotra) 호가 암초에 부딪치면서 처음 위치가 확인되었고, 1910년 영국 해군 측량선 워터 위치(Water Witch)호가 암초의 수심을 5.4m로 확인하고, 이름을 소코트라 암초(Socotra Rock)라 칭하면서 국제적으로 통칭되고 있다. 일본은 1938년 해저전선 중계시설과 등대 시설을 설치할 목적으로 직경 15m, 수면 위 35m에 이르는 콘크리트 인공구조물을 설치할 계획이었으나 태평양 전쟁의 발발로 무산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51년 국토규명사업을 벌이던 한국산악회와 해군이 공동으로 이어도 탐사에 나서 높은 파도와 싸우다 바다 속의 검은 바위를 눈으로만 확인하고 “대한민국 영토 이어도”라고 새긴 동판을 암초에 가라앉혔다. 그후 1984년 제주대학교와 KBS가 소코트라 암초에 대한 공동탐사를 벌이면서 이를 파랑도(波浪島)라고 불렀다. 주변 수역이 얕고 조류가 강해서 다른 수역보다 파도가 강한 점을 감안해 붙인 이름이다. 당시 제주도 사람들은 전설의 섬 이어도가 물 속에 잠겨있는 암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고 한다. 1987년 8월 해운항만청에서는 이곳에 등부표(선박 항해에 위험한 곳임을 알리는 항로표지 부표)를 처음 설치하고 국제적으로 알렸다. 조업중이거나 항해중인 선박들에게 암초가 있음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강한 파도로 인해 매번 등부표가 유실되면서 이후 매년 5월 경에 등부표 교체작업을 벌여야 했다. 당시 부표의 관리를 맡았던 제주지방 해양수산청은 소코트라 암초를 이어도(離於島)라고 불렀고, 2001년 국립지리원이 명칭을 변경하여 이어도가 공식적인 이름이 되었다.
이어도 해양종합과학기지의 건설 이어도 해양종합과학기지(이하 이어도 기지)의 건설은 지난 1995년부터 시작되었다. 한국해양연구원은 당시부터 4년간 현장 해양조사를 통해서 수심과 조위, 해류 및 조류를 관측했고, 파랑(파도와 너울)에 대한 수리모형 실험들을 통해 적합한 수중구조물들을 설계하고, 과학기지 운영방안을 마련했다. 2000년 기지의 제작 및 설치 업체로 현대중공업이 선정되었고, 2002년 현대중공업 내에 관측/제어/통신 시스템을 설치한 임시 과학기지를 설치하여 운영했으며, 어어도에 하부구조의 설치를 완료했다. 그리고 2003년 6월 상부구조의 설치 및 시운전을 완료하고 준공식을 가졌다. 공사비 178억원을 포함해 총 212억원을 들여 8년만에 이어도의 암초 위에 한국의 해양종합과학기지가 건설된 것이다. 이어도 정봉(頂峰)에서 남쪽으로 700m 거리에 자리잡은 기지는 수심 40m의 해저 암반에 51m 깊이로 8개의 파일을 박고, 그 위로 76m 높이(수중 40m, 수면 36m)로 무게 3,400톤, 연면적 400평 규모의 2중 철골구조의 자켓과 데크를 세운 것이다. 기지의 설계조건은 수명을 50년으로 잡았고, 최대 파고 24.6m, 풍속은 시간평균 초속 50m, 분평균 초속 60m, 해류나 조류는 초속 2.34m를 견딜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지난 백년간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친 태풍 가운데 가장 강력한 태풍의 파고(1998년 셀마의 18.24m)와 풍속(2000년 프라피룬의 초속 58.3m)을 가정해 튼튼하게 지은 것이다. 실제 2003년 10월 초특급 태풍 매미가 내습할 당시 초속 60m의 강풍(순간 최대풍속)을 끄덕없이 견디어 냈다.
이어도 기지의 역할과 관측 장비 이어도 기지에는 최첨단 해양 및 기상 관측장비 46종이 설치되어 각종 해양 및 기상 관련 정보를 측정한다. 이렇게 측정된 자료는 무궁화 위성을 통해 실시간으로 해양연구원과 기상청 등 유관기관으로 전송되며, 이를 통해 태풍과 해일 등의 환경 재해를 신속하게 예보하여 우리나라 국민들의 귀중한 재산과 인명을 보호할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특히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태풍의 약 40%가 이어도를 통과한다는 것은 그만큼 기지의 중요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어도를 지난 태풍은 약 10시간 뒤에 남해안에 도달한다. 이어도에서 미리 측정된 태풍의 세기와 강우량에 대한 정보는 육지에서 태풍에 대비하는데 사용된다. 실제 2003년 태풍 매미가 지나갈 때에 기상뜰개(Drift, 개당 8,800만원)라는 첨단장비 2개가 기지에서 자동으로 투하되었는데, 이 장비는 태풍을 따라 함께 떠다니며 태풍의 구조와 기압, 풍속 등을 무궁화 위성을 통해 제공했고, 이 정보는 안산의 해양연구원과 서울의 기상청에 실시간으로 전송되었다. 이전보다 10시간 먼저 태풍의 정확한 진로를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어도 기지에서는 평상시에도 파고는 물론 해류의 세기와 방향, 수온, 염분 등의 각종 해양 정보와 풍향, 풍속, 기온, 습도, 기압, 일사량, 강우량, 가시거리, 오존 농도 등의 각종 기상 정보들이 실시간, 전자동으로 관측되며 그 자료들을 무궁화 위성을 통해 관련 기관으로 전송한다. 물론 이런 기초 자료들은 어어도해양종합기지의 인터넷 홈페이지(ieodo.nor.go.kr)를 통해서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이어도 기지의 주요 시설로는 연구원들이 거주할 수 있는 침실 2개(4인 1실)와 부엌, 화장실 2개 등이 있는 거주시설과 이들의 생존과 활동을 지원하는 전원 및 식수 공급시설, 통신시설, 운송시설 등이 있다. 그외 항해용 등대시설과 화재진압 및 안전시설, 도난방지시설 등이 있어서 주변을 항해하는 선박들의 안전에 기여하는 것은 물론 기지의 안전을 유지하는데도 도움이 되고 있다. 전원은 평상시에 태양열과 풍력 발전기를 이용해서 얻지만, 기상에 따라 전원이 부족하거나 연구원들이 들어와 전력 수요가 많은 경우에는 디젤 발전기가 가동된다. 기지는 헬기나 선박으로 접근할 수 있는데 옥상의 헬기장과 해수면의 선착장 등이 있다. 전화는 상업용 위성인 글로벌 스타를 이용하는데 이어도에 설치된 무인 카메라로 화상정보를 송출하는 KBS 송신 시스템을 함께 이용하므로 KBS 구내전화로 통화가 가능하다.
이어도 기지의 관리와 활용 계획 지난 해 12월 27일 한국해양연구원은 한국해양조사원과 협약식을 갖고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 및 15개 해양관측소 운영, 관리 이관 협정서”에 서명했다. 이 협약으로 인해 그간 해양수산부의 연구개발사업으로 한국해양연구원이 구축해온 이어도 기지를 비롯한 15개 해양관측망 일체를 2007년 1월 1일부터 국립해양조사원에서 인수하여 운영 관리하게 되었다. 한국해양연구원은 2003년 6월 이어도 기지가 준공된 이후 3년 7개월 동안 기지를 관리하며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했으며, 효율적인 운용을 위해 한국해양조사원으로 운영 주체를 이관하게 된 것이다. 올 해부터 이어도 기지의 운영을 맡은 국립해양조사원은 관련 기관들은 물론 각 대학, 연구소 등과 협력하여 이어도 기지를 연구목적으로 활용하는데 적극적으로 개방하여 운영하기로 했다. 이번 기자의 방문도 장마를 앞두고 부경대학교 글로벌 연구실과 국립기상연구소 등에서 장마예보의 정확도 향상 지원을 위한 고층기상관측을 이어도 기지에서 실시하기로 하면서 함께 허용된 것이었다. 이번 고층기상관측은 이어도 기지에서 관측된 자료를 일본, 중국학자들과 공유하기로 하여 그 의미가 깊으며, 이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장마전선 형성과 발달, 쇠퇴 연구에 크게 기여함은 물론 기상예보의 정확도 향상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어도 기지의 활용과 연관된 정부기관으로는 해양오염관측, 무인등대, 해양관측, 파랑관측, 어로지원, 해면 및 해·조류 관측 등을 위해 활용하고 있는 해양수산부, 대기오염 관측을 활용하는 환경부, 해상기상관측에 활용하는 기상청, 수색·구난을 위한 전진기지로 활용하는 해양경찰청, 해양 및 기상예보 연구, 지구환경 및 해양생물 연구, 원격탐사 검증자료 획득 등을 위해 활용하고 있는 한국해양연구원 등이 있다. 그외 각 대학과 연구소 등에서도 이어도 해양종합과학기지의 활용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어도의 영토문제 지난 2005년 중국이 해양감시용 비행기로 5차례나 이어도 기지를 감시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어도의 영토 문제가 국민적인 관심사가 되었다. 이 사실은 중국 국가해양국의 “2005년 해양행정집법 공보”에 명기되어 대외적으로 공개되었는데 중국이 영토문제와 관련하여 이어도 기지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대양해군 육성과 잠수함 작전 능력 강화 전략을 펼치고 있는 중국은 일본과 러시아를 견제할 수 있는 군사적략적 가치가 매우 높은 곳으로 이어도를 보고 있다. 이어도는 동경 125도 10분 56.81초, 북위 32도 07분 22.63초에 위치하고 있다. 이 위치는 제주도 남쪽의 마라도에서 서남방으로 149km, 일본의 도리시마(鳥島)에서 서쪽으로 276km, 중국의 퉁타오(童島)에서 북동쪽으로 245km 거리에 있다. 따라서 이어도가 3개국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이 중첩되는 수역에 위치하지만 중국, 일본보다 한국에 훨씬 더 가깝기 때문에 명백히 한국의 EEZ에 속한다. 또한 한중 중간선을 기준으로 할 때에도 이어도는 우리측 수역 깊숙이 위치하므로 유엔 해양법협약에 따라 EEZ 경계를 획정할 경우 한국의 EEZ와 대륙붕에 속하게 된다. EEZ 내에서는 연안국이 석유자원 개발이나 이어도 과학기지처럼 인공구조물을 설치하고 과학적 조사활동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우리나라는 이어도에 대한 역사적 연고권을 갖고 있는데 1952년 한반도 주변수역에서 일본 어선 등의 어족 및 해저광물자원 남획을 방지하기 위해 ‘인접해양에 대한 주권선언’을 통해 이어도를 평화선 선포 수역에 포함시켰다. 또 석유매장 가능성도 알려지면서 70년 해저광물자원개발법을 제정하여 이어도 해역을 제4광구로 지정했다. 그러나 이어도 기지의 건설 중 중국은 2000년과 2002년 두 차례에 걸쳐 공사 중단을 요구한 바 있다. 한중일 3개국의 200해리 EEZ이 중첩되는 분쟁 수역이므로 어느 한편이 인공구조물을 설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어도를 수얀자오(蘇岩礁)라고 부르는 중국은 아직 이어도 해역의 EEZ 경계 획정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우리나라의 이어도에 대한 해양관할권 행사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중국은 한편으로는 이어도 북동쪽 4.5km 해역에 있는 수심 24.6m~27.2m의 또 다른 수중암초를 ‘딩엔(丁岩)”으로 중국식 이름을 붙여 관할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는 향후 EEZ 경계 획정 협상과정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 암초에 대해서는 국립해양조사원이 첨단 장비를 이용해서 존재 사실을 재확인했다. 위치는 이어도 북동쪽 4.5km 지점이며, 길이 372m, 폭 169m, 면적 52,800m2 규모이고, 봉우리 수심은 27.2m와 24.6m로 조사되었다. 해양수산부는 올 해 1월 7일 이 수중암초에 ‘파랑초’라는 한글 이름을 붙였다. 이에 따라 암초 명칭을 놓고서도 중국과의 마찰이 예상된다. 현재 이어도 수역은 한·중어업협정에 의해 공해상에 방치되어 있다는 주장이 있다. 지난 2001년 발효된 한·중어업협정에 따르면 이어도 부근 북위 32도 11분 이북은 우리나라의 과도수역이고, 북위 31도 50분 이남은 중국의 과도수역으로 정해졌다. 결과적으로 북위 32도 7분 22.63초에 있는 이어도는 잠정조치수역으로 남겨져 사실상 공해상에 버려졌다는 주장이다. 참고로 과도수역이란 향후 어느 한 쪽의 EEZ에 편입될 것이지만 당장 조업을 못하게 할 경우에 양국 어업에 충격을 미치게 될 것이므로 이를 완화하기 위해 잠정적으로 공동 조업상태를 유지하도록 하는 수역이다. 이런 주장에 대한 해양수산부의 해명은 다음과 같다. 한·중어업협정 제14조의 “이 협정의 어떠한 규정도 해양법상의 제반 사안에 관한 각 체약당사자의 입장을 저해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아니된다”는 규정과 UN해양법 제74조 제3항의 “EEZ 경계획정을 위한 과도적 기간동안 적용되는 잠정협정은 최종적인 경계 획정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는 규정에따라 한·중어업협정이 EEZ 경계 획정이나 영유권 문제와는 무관하며 영토분쟁의 소지를 제공한 것도 아니다. 또한 “우리의 영해로 인식되어온 이어도”같은 표현은 적절하지 않은데 이어도와 같은 수중 암초는 유엔해양법협약 제121조 규정에 의거 영해 또는 EEZ 등을 갖지 못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어도는 우리나라 쪽에 더 가깝게 위치하므로 EEZ 경계 획정 전이라도 그 주변 수역은 우리 EEZ가 확실하며, 이를 근거로 이어도에 과학기지를 건설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해명에도 불구하고 이어도 해역을 한·중어업협정을 통해 확실한 우리의 EEZ으로 남겨 놓지 못했기 때문에 중국이 계속해서 이어도 기지의 관할권 문제로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분쟁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향후 EEZ 경계획정 때에는 이어도 해역을 확실하게 우리측 EEZ에 남겨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때 가서 중국이 새로운 요구를 해온다면 어떻게 할 것이란 말인가?
가슴 설레었던 이어도 방문 전설로만 들어왔던 이어도에 해양종합과학기지가 건설되었다는 사실을 안 후 꼭 한번 방문하고 싶었다. 이어도 바다 속이 어떤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쉽게 갈 수 없는 곳이라 더욱 욕심이 났다. 그러던 차에 해양연구원에 근무하는 김선정 강사로부터 반가운 연락이 왔다. 이어도 기지에서 실시되는 ‘장마예보의 정확도 향상을 위한 고층기상관측 연구’ 기간 중 수중촬영 분야로 4명의 다이버가 합류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이어도를 다녀온 다이버들이 “대형 돌돔들의 군무에 제주도에서도 귀한 붉바리를 볼 수 있다.” “조류가 무척 강해서 조금 때에도 정조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다이빙하기기 힘들다.” “시야가 좋지 않다.” 등등의 이야기를 했지만 제주도보다 더 남쪽에 위치한다는 것만으로 이어도가 뭔가 특이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졌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어도 기지로 들어가는 방법부터 기대와 달랐다. 방송에서는 헬기를 타고 기지를 방문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지만 실제 연구원들은 장비와 부식 등 휴대품들이 많아 배편를 이용해서 들어간다고 했다. 또한 해양조사원이나 해양연구원의 조사선을 타고 들어가겠거니 생각했는데 낚시어선을 빌린다는 것이다. 제주시에서 200km나 되는 원거리를 작은 낚시어선으로 항해하는 것이 걱정된다고 했더니 보통 낚시어선이 아니라 평균 시속 20노트로 달릴 수 있는 쾌속선이라고 한다. 제주시에서 출발해도 6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어서 오히려 조사선들보다 편하고 경제적이어서 그동안 계속 이용해왔다는 것이다. 아무튼 부경대학교 글로벌 연구실의 연구원 4명에 기자, 김선정 강사, 최종문 강사 등 다이버 3명까지 모두 7명은 6월 6일 밤에 제주시 탑동의 ‘78낚시점’에 모였다. 원래 4명의 다이버가 할당되었지만 개인 사정으로 한명이 빠지면서 3명이 되었다. 연구원들과 다이버들은 경비를 각출하여 부식을 준비했다. 이어도 기지는 무인기지라 평소에는 사람이 없고 연구원들이 필요할 때에만 잠깐 씩 들어가기 때문에 체류 기간에 맞춰 식수와 부식 등은 직접 준비해서 들어가야 했다. 6월 7일 새벽 2시 제주시 도두항에서 ‘78낚시어선’이 출항했다. 다행히도 날씨가 좋아 파도는 없었지만 줄기가 끊어진 모자반들이 무더기로 떠다니는 모습이 비행기에서도 관찰될 정도여서 혹시나 야간 항해시에 스크류에 걸리지는 않을까 걱정되었다. 그러나 걱정도 잠시 배가 출발하면서 바로 잠에 빠져버렸다. 파도를 가르며 달리는 쾌속선의 심한 요동에도 불구하고 꽤 깊은 잠을 잤던 것 같다. 아침이 되어 주변이 밝아졌지만 배는 계속해서 20노트의 빠른 속도로 달렸고 오전 8시가 되어서 배는 정확하게 이어도에 도착했다. 아침 안개 속에서 이어도 기지의 거대한 위용이 드러났다. 망망대해 한가운데 솟아있는 쇠붙이로 만든 인공섬이었다. 사람들이 먼저 내려서 기지로 올라가는 사이 선장님과 몇몇이 남아 크레인으로 짐을 올려주었다. 이어도 기지에는 관리주체인 한국해양조사원의 담당주무 안장현 씨가 전날 미리 헬기로 들어와 있다가 사다리를 내려주고, 크레인을 내려서 짐을 받아 주었다. 이어도 기지에서는 사람들이 상주하지 않을 때나 활동이 없는 밤에는 사다리를 들어올려 외부의 침입을 방지하고 있었다. 메인 데크에는 숙소와 관측기계 모니터실, 화장실, 식당, 주방 등이 있었는데 숙소는 2층 침대가 2개씩 있는 방이 2개로 있었다. 8명이 사용하기에 적당하지만, 인원이 많을 때에는 복도와 식당에도 간이 침대를 놓고 생활한다고 한다. 짐을 올리고 식당에 모인 연구원들과 다이버들은 먼저 안장현 씨에게 기지 생활 수칙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들은 다음에 방을 배정하고, 자율적으로 식사와 설겆이 당번을 정했다. 일주일 간의 공동생활이 시작된 것이었다. 주의사항은 식수는 준비한 생수를 이용하고 저장수는 식용하지 말라는 것과 가능하면 물을 아껴쓰자는 것으로 소변은 외부에서 해결하고, 샤워는 삼가해달라고 했다. 기지에는 빗물보관탱크와 정수기가 있지만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했다. 헬기장에서 빗물이 모이지만 새들의 분뇨가 빗물에 씻겨 함께 들어가면서 오염되어 사용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올해 초에 빗물탱크를 새로 청소하고 제주도에서 물 10톤을 실어왔지만 물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했다. 물을 가져오는데 들어가는 기름값이 물값보다 비싼 실정이라 올해 안에 해수를 담수로 만드는 설비를 새로 설치할 계획이다. 그때까지는 물 부족을 견뎌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도의 다이빙 도착한 첫 날은 해양조사원에서 새로 구입한 고무보트와 엔진의 조립, 그리고 공기충전 등으로 시간을 보냈다. 어차피 기지 주변으로 짙은 안개가 깔려 다이빙을 하기도 힘든 실정이었다. 다음 날 아침에도 안개가 잔뜩 끼어 있었다. 이어도까지 와서 다이빙을 못하면 어쩌나 걱정되었다. 다행히 오후에 안개가 걷혀 가시거리가 좋아지면서 다이빙을 시도하기로 했다. 기지에서 북쪽으로 700m 거리에 있는 이어도 암초의 정봉(頂峰)까지는 고무보트를 이용해야 했다. 다이빙 장비를 모두 싣고 보트 채 크레인으로 들어서 수면까지 내려놓고 사람은 선착장으로 내려가서 탑승했다. 다행히 파도가 거의 없었고, 오후 정조 시간에 맞춰 조류도 거의 멈춘 것 같았다. 김선정 강사는 휴대용 GPS로 예전에 입력했던 지점을 찾아갔다. 20kg 웨이트벨트에 하강라인을 연결하여 정봉으로 여겨지는 지점에 투하했다. 첫 다이빙은 김선정 강사와 기자가 함께 입수했다. 조류는 그리 강하지 않아 하강라인을 따라 쉽게 내려갈 수 있었다. 수면 근처는 시야가 5m 이상은 나오는 듯했고, 수심 10m 내외에서 비스듬한 경사면의 바닥이 나타났다. 김선정 강사와 근처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무늬가 선명한 어린 돌돔들이 무리지어 떠다니고 있었고, 그 뒤편으로 제법 큰 돌돔들도 보였다. 수심 15m 이하로는 물이 매우 흐렸는데 바닥에는 침전물들이 많이 있었다. 수중 환경은 제주도보다는 서해안 분위기가 났다. 수심 10m 이내의 정봉 근처에서는 모자반과 해조류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고, 수심 15m를 전후해서는 깃히드라와 보석말미잘(Corynactis viridis)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갈라진 바위 틈 사이로는 꽃이끼산호(Cornularia komaii)와 이끼벌레들의 군락도 발견되었다. 수중 지형은 남북으로 경사진 지층들이 겹겹이 쌓여 북쪽으로는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남쪽으로는 계단식 절벽 형태로 급한 경사를 이루고 있었다. 또한 군데군데 웅덩이 형태로 침식된 곳도 있었고, 바위들이 갈라진 크랙들도 있었다. 어류로는 돌돔과 쏨뱅이들이 무척 많았으며, 불볼락과 혹돔, 붉바리도 가끔 눈에 띠었다. 예전에는 조피볼락도 많았다고 하는데 잘 보이지 않았다. 연체동물로는 소라가 군데군데 있었고, 바위 틈에서는 문어도 가끔 보였다. 혹시 특별한 것을 볼 수 있을까 해서 20m 수심까지 내려갔지만 시야가 1m 이내로 나빠져서 바로 얕은 수심으로 올라와야 했다. 외해인 이어도에서는 조류가 해안선을 따라 들어오고 나가는 연안의 조석현상과는 차이가 있었다. 조류의 방향은 방사상으로 시간에 따라 변하는데 이어도 다이빙 경험이 많은 김선정 강사는 남북으로 흐르는 조류가 가장 강하며, 동서로 흐르는 조류가 좀 약한 편이라고 했다. 또한 조류의 흐름이 끊기는 정조시간이 만조시간이나 간조시간과 일치하는 연안과 달리 이어도에서는 만조나 간조의 약 2시간 정도 후에 정조가 되었다. 이런 현상 때문에 처음에는 정확한 다이빙 시간을 잡기가 힘들었다. 둘쨋 날 다이빙을 위해 오전 간조 시간인 10시에 맞춰 다이빙을 나갔지만 정봉 주변으로 흐르는 조류는 장난이 아니었다. 30분 정도 기다렸다가 다이빙을 시작했는데 하강라인을 내리고 급하게 입수하여 바닥에 붙으니 다행히 견딜만 했다. 조류가 강하니 바닥 근처의 시야는 더욱 흐렸다. 바닥의 침전물들이 조류에 밀려 피어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10m 이하의 얕은 수심쪽은 그래도 시야가 좋은 편이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예전 부산해운항만청에서 이어도에 설치했던 등부표의 고정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짐작되는 대형 닻과 쇠사슬을 발견했다. 그리고 조류를 거슬러 얕은 쪽으로 옮겨가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골짜기 사이에 수백마리의 돌돔과 농어들이 조류를 피해 몰려있었고, 대형 부시리들도 조류를 타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엄청난 광경에 입을 다물기 어려웠다. 정신을 차리고 촬영을 위해 가까이 접근하자 대물들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색깔이 선명한 어린 돌돔 수십마리들만 남아 있었다. 다이빙을 마치고 바닥에 고정시킨 라인을 붙잡고 상승하는데 수심 5m에서 맑은 물과 흐린물의 층이 선명하게 갈라졌다. 두 종류의 물이 층을 이루어 강하게 밀려오는데 마치 검은 먹구름이 이어도의 봉우리를 휘감고 있는 느낌이었다. 보트 위로 올라와서 보니 조류는 입수할 때보다 오히려 더 강해져 있었다. 닻을 내린 배의 뒤편은 물론 이어도 정봉 근처에는 강한 조류로 인해 물살이 와류를 일으키며 흐르고 있었다. 조류가 잦아들 때까지 수면에서 휴식하며 기다리기로 했는데 12시가 되어서야 조류의 흐름이 약해졌다. 간조 시간에서 2시간이 지난 때였다. 약해진 조류를 확인하고 비디오를 든 최종문 강사와 함께 입수했다. 첫 다이빙에서 고기 떼를 만났던 계곡으로 최종문 강사를 안내했지만 정조 때여서 그런지 어린 돌돔 무리만 보였고 대물들은 보이지 않았다. 확실히 조류가 약할 때는 물고기들의 활동도 약해지는 것 같았다. 대신 조류가 없는 틈을 타 절벽을 벗어나 능선을 따라가며 수심을 확인해 보았다. 컴퓨터로 확인한 가장 얕은 수심은 5.9m였다. 정봉이 그곳인지 아닌지 확인할 길은 없었지만 해수면이 가장 낮아졌을 때(최저조수위) 수심 4.5m라는 해양조사원의 측량을 감안하면 거의 제대로 찾은 것 같았다. 오후 다이빙에서는 김선정 강사와 최종문 강사가 함께 다이빙을 했는데 예상보다 일찍 다이빙을 마치고 올라왔다. 시야가 갑자기 흐려졌다는 것이었다. 결국 기자는 이어도 정봉 다이빙을 포기하고 대신 기지 아래에서 다이빙하기로 했다. 기지 밑에도 수심 10m 이내에서는 시야가 나왔지만 그 아래로는 거의 흙탕물 수준이었다. 기지 밑 파일에는 중국 어선들의 폐그물들이 조류에 밀려와 잔뜩 걸려 있었다. 대부분 수심 5m 이내에서 얽히고 설켜 있었지만 그 아래는 비교적 나은 편이었다. 파일에는 따개비와 담치, 이끼벌레, 히드라 등의 오손생물(汚損生物)들이 많이 부착되어 있었다. 어류로는 돌돔들과 쏨뱅이들이 많았고, 조피볼락들도 눈에 띠었으며, 회유성인 부시리들도 몇 마리 무리지어 돌아다녔다. 세쨋 날은 마크로 사진을 촬영했다. 정봉 근처의 모자반과 홍조류, 소라, 쏨뱅이, 불볼락, 돌돔, 이끼벌레, 깃히드라, 보석말미잘, 꽃이끼산호 등 각각의 생물들을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도록 촬영한 것이다. 시야는 전날보다 좋지 않았지만 마크로 촬영이라 부담이 없었다. 그런데 이날 김선정 강사와 최종문 강사는 바다거북을 보았다고 한다. 등에 따개비와 해조류가 많이 붙어 있었다고 하는데 증거 자료가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 또한 김선정 강사는 예전에 발견했던 작은 동굴을 찾았다고 하는데 그 속에서 붉바리와 대형 돌돔들이 우글거리는 것을 확인했다고 했다. 네쨋 날은 거의 마지막 다이빙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오전 물때에 맞춰 다이빙을 실시했다. 김선정 강사와 함께 다이빙을 하면서 동굴을 찾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시야가 너무 좋지 않았다. 조금 때를 지나니 다시 시야가 심하게 나빠지는 것 같았다. 비록 시야가 나쁘긴 했지만 최대한 근접하여 촬영하는데 피사체를 보는 순간 전날 다이빙했던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니 며칠 동안 계속 돌아다녔던 그곳이었다. 현재 위치를 알게 되니 전날 설명들었던 동굴을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시야도 조금 나아진 상태였다. 계곡을 지나 갈라진 크랙을 따라서 동북쪽으로 20m 정도 이동하니 새로운 절벽이 나타났고, 그 절벽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니 정말 동굴이 하나 보였다. 절벽에 널판지 같은 넓은 바위가 기대어져서 만들어진 동굴이었다. 그런데 동굴 위로 엄청난 무리의 대형 돌돔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시야가 나아졌던 것은 조류가 다시 흐르기 시작했기 때문이고, 조류가 강해지면서 돌돔을 비롯해서 부시리 등이 활동을 시작한 것이었다. 절벽에 몸을 기대고 언덕 위로 몰려 다니는 돌돔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그러나 시야가 생각보다 좋지 않아 선명한 사진은 나오지 않았다. 다시 동굴 입구로 접근하면서 보이지 않는 동굴을 향해 스트로브를 터뜨렸다. 돌돔과 붉바리 비슷한 물고기 한마리가 포착된 것 같았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바닥에 가깝게 붙어 있을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다이빙을 마치고 상승하니 정말 조류가 강물처럼 흘렀다. 그 조류 속에 노무라 입깃해파리들이 마치 어뢰처럼 마구 지나가고 있었다. 잘못하다가는 해파리의 촉수에 걸릴 것 같아 정신없이 피하며 5m 수심에서 감압을 시도했다. 그러나 조류가 얼마나 강한지 엥커라인을 쥐고 있는데도 몸 전체가 뒤로 밀리면서 떠 올라 그만 몸이 고무보트 밑 바닥에 붙어 버렸다. 정말 엄청난 조류였다. 겨우 보트 위로 카메라를 건내주었는데 보트 위로 올라오는 것도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힘들었다. 몸이 수직으로 유지되어야 핀 킥을 하면서 고무보트로 올라올 수 있는데 조류에 떠밀려 몸이 사선으로 보트 옆에 붙어 버렸으니 킥을 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결국 보트 위 다이버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우여곡절 끝에 보트 위로 올라왔지만 정말 무시무시한 조류였다. 조금 때를 불과 이틀 넘겼는데 정조시간도 없이 조류가 바뀌었고, 세기도 엄청 강해진 것이다. 결국 예상대로 마지막 다이빙이 되어 버렸다. 이어도 다이빙을 마치면서 느낀 것은 이어도 해역이 쿠로시오 난류보다는 중국의 양쯔강 연안수의 영향을 더 많이 받고 있다는 것이다. 수중환경이 제주도보다 서해안과 비슷하게 느껴지는 것이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또한 외해의 수중 암초로 사철 변화가 없는 균일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기 때문에 종다양성이 많이 떨어지고 특정 저서생물들이 우점하여 군락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어도라는 상징적인 곳에서 다이빙을 한다는 것은 의미가 있지만 수중 경관을 놓고 보면 큰 점수를 줄 수 없었다.
이어도에서의 몇 가지 에피소드 이번 이어도 방문을 위해서 다이빙팀은 개인장비와 나이트록스 다이빙을 위한 산소 2탱크만 준비했고 나머지는 모두 이어도 기지의 것을 이용했다. 기지에는 소형 컴프레서와 5개의 공기통, 웨이트벨트 5조 등이 준비되어 있었으며, 이번에 해양조사원에서 고무보트와 40마력 엔진을 새로 비치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휘발유였다. 이어도 기지에서는 경유 발전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경유는 항상 풍부하지만 컴프레서와 고무보트의 엔진에만 들어가는 휘발유는 다이버들이 아니면 사용할 일이 거의 없어 예비량이 충분하지 못했다. 사전에 확인을 했을 때 휘발유가 있다고 하여 준비를 안했는데 재고량은 위태로울 정도였다. 장비 창고를 몽땅 뒤지니 20ℓ통 1.5개 분량의 휘발유가 나왔다. 이를 공기충전용과 보트엔진용으로 적절히 분배하여 4일간의 다이빙을 실시해야 했다. 그래서 휘발유를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우리는 여러 가지 옹색한 방법을 동원했다. 다이빙을 하는 동안 다이버들이 하강라인을 수중에 확실히 고정시키면 보트를 그 위에 묶어 놓고 시동을 끈 채로 대기하여 보트의 연료를 아꼈고, 탱크 충전시에는 가지고 간 산소를 충분히 사용해 나이트록스로 만들어 콤프레서의 작동시간을 최소화했다. 결국 이런 노력 끝에 연료부족으로 다이빙을 포기하는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마음을 조려야 했다. 혹시 다음에 이어도 기지로 다이빙을 위해 들어가는 다이버들이 있다면 휘발유 재고량을 정확히 점검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어도 기지에서 생활하기 위해서는 부식과 식수를 준비해야 했고, 함께 생활하는 연구원들과 다이버들이 자발적으로 취사와 설겆이 등의 당번을 정해야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부식에서 문제가 생겼다. 처음 며칠 간은 있는 재료를 활용해서 다들 솜씨를 발휘하여 즐거운 식사 시간을 가졌는데 며칠 지나면서 부족한 부식들이 생겨났다. 제일 먼저 떨어진 것이 양파와 마늘과 같은 필수 야채였는데 덕분에 인스턴트 식품을 꺼내 먹거나, 고추장이나 김치를 활용한 국적불명의 요리에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생선을 잡아도 맛을 낼 수가 없었다. 한편 다이버라서 좋았던 것은 물이 부족한 이어도 기지에서도 매번 다이빙을 마칠 때마다 1인당 2ℓ생수 1병을 샤워용으로 배정받았던 것이다. 다른 연구원들은 며칠 간 머리를 감지 못해 하루 날을 정해 바닷물로 머리를 감고 생수로 헹구기도 했다. 아무튼 우리 다이버들은 이래저래 운이 좋았는데 마지막 다이빙을 마친 다음 날인 12일에 기상청의 연구를 위해 헬륨기체를 실은 배가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임무를 완료한 우리 다이버 3명은 그 배를 타고 모슬포로 신속히 탈출(?)할 수 있었다. 나머지 연구원들은 그 배에 부탁하여 겨우 선선한 야채를 공급받을 수 있었지만 예정보다 하루 늦어진 15일에야 다음 연구원들과 교대하여 제주로 귀환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함께 지내는 동안 서로 배려하며 즐겁게 지낼 수 있도록 도움을 준 부경대학교 글로벌 연구실 원구원들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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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풍랑 속에 실종된 남편이 이어도라는 낙원에 살고 있을 것이라는....원망 반 희망 반인 제주도 아낙들의 꿈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안스럽습니다. 과학의 발달로 알 권리들이 충족되는 것도 좋지만 아련한 꿈들이 사라지는 것은 좀 그런 것 같구요.... 과학의 이점을 취하면서도 감성적 꿈들도 지켜줄 수 있는 방법은 ...힘들겠죠?... 두 마리는 토끼는 못 잡는다구요? 에궁..인주님은 잡으실 것도 같은디...ㅎ~.. 평안한 시간되세요.^^
솔방울 님 ,, 이곳에 비상을 걸어보았더니 등산 님은 컴을 딸래미가 들고 나가서 지금 구입을 서두르고있는 중이고요, 골푸 님은 골푸가 바쁘고, 비오 님은 바둑에 빠져있어 틈이 없나봅니다, 그리 아시고 자주 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