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아버지 제사 때에 막내 동생이 시골에서 오면서
막거리를 제주하려고 받아왔다.
그리고는 셌재형 보고는 자기가 시간이 없으니까 그릇 파는데 가서
양은 주전자를 좀 사오라고 부탁했었다.
그 전에 제사 때 쓰는 제주는 반되짜리 정종을 썼는데
제사를 지내고 나면 음복외는 아무도 마시는 사람이 없어
한동안 모아 두었다가 이웃에 나눠주곤 했다.
그 후 정종보다는 경주법주가 마시기에 좋아서 제주를 법주로 바꿨다.
그런데 지난번 아버지 제사때는 막내가 아버지 생각이 난다면서 막걸리를 한 잔 올리고 싶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아버지는 쉰넷에 돌아가셨으니 요즘 같으면 한창 때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막내는 초등학교 3학년때였을것이다.
장지를 향해서 상여가 올라가는 데도 시골 논둑에 메뚜기 잡는다고 뛰어다녔던 철부지였다.
그랬던 그가 아버지 제사를 앞두고 꿈에 나타나셨던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술울 좋아하셨다. 시골에서 농사지어면서 아버지가 논을 멜때면 중참으로 어머니가 농주를 막걸러서
한 되짜리 양은 주전자에 담아 주면 심부름을 했다. 집에서 논까지 걸어가면서 주전자 주둥이를 입에 대고 빨아마시기도 하였다.
마산에 이사를 내려와서도 주전자를 들고 술도가에 가서 아버지 심부름으로 막걸리를 사 오곤했다.
술도가에 가면 큰 통에 막거리를 담아 놓고 팔았는데 그곳에서 퍼마시는 것은 공짜였다. 그 바람에 나도 주전자에 술을 가득 채우기전에 맛봬기로 한 두번 퍼 마실 수가 있었다. 배가 고팠던 시절이므로 막걸리 한 두잔으로도 배가 일어났었다.
내가 부산으로 학교다닌다고 집을 떠난 이후로 아마 어린 막내가 아버지 술 심부름을 했던 모양이다.
예전에는 그릇이 부잣집에서는 놋그릇을 썻지만 일반 서민들은 사기그릇을 주로 사용했다.
사기그릇은 잘 깨어지는 성질이 있고 서로 부딪치면 이빨이 빠지기도 했는데
서양에서는 이빨 빠진 그릇도 아무렇지도 않게 쓰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빨빠진 그릇은 재수없다고 쓰지 않는다.
물동이도 양철(함석)물동이가 나오기 전에는 사기로된 사동이(도기)를 물을 여다날래야 했다.
그러다가 양은그릇이 나오고 스텐그릇도 나왔다. 또 박바가지 대신에 플라스틱 바가지가 부엌을 차지하게 되었다.
시골에서 양은 주전자는 술 심부름 할 때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다용도였던 것이다.
여름에 비가 온 뒤 날이 개면 냇도랑으로 소쿠리를 들고 물고기를 잡을 갈 때면 으례 찌그러진 양은 주전자를 들고 갔다.
주전자 속에 미리 물을 반쯤 부어 물고기가 잡히면 주전자에 넣어 살려 두기 위한 것으로 수족관 역할을 했다.
때로는 죽을 담아 나르기도 하고, 유리됫병 대신에 간장을 담아 나르기도 하였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양은 주전자를 제사때 다시 보게되니 옛날 생각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