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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 홀로 집에 1]의 한 장면
집 안의 케빈과 집 밖의 오디세우스의 모험
a보통 모험은 집을 떠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예컨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에서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에 참가하느라 집을 떠났다가 귀향하는 과정에서 모험을 벌인다. L. 프랭크 바움의 소설 [오즈의 마법사]는 주인공 도로시가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머나먼 곳으로 갔다가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 마법사 오즈를 만나러 길을 떠나는 이야기이다. 이 두 작품은 출가의 과정을 간단하게 전제하고 귀향의 과정을 모험으로 담아낸다.
영화 [나 홀로 집에](1990)는 집을 떠나지 않고 모험을 벌인다. 출가를 귀찮아하는 게으른(?) 사람과도 모험의 조합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 홀로 집에] 첫 편이 상영된 지 벌써 20여 년이 지났지만 그 시리즈는 다시 봐도 흥미롭다.
주인공 케빈(맥컬리 컬킨 분)은 가족들로부터 왕따를 당해서 늘 혼자 있고 싶어 했다. 때마침 가족들이 다락방에서 자고 있던 케빈을 챙기지 않고 크리스마스 휴가를 가면서 케빈의 꿈은 현실이 되었다.
처음에 집에 혼자 남겨진 케빈은 행복을 만끽하지만 곧 도둑이 자신의 집을 노린다는 사실을 눈치 채면서 상황이 복잡하게 꼬인다. 이제 집은 안식의 공간이 아니라 모험의 무대가 된다. 케빈은 결코 집 밖의 모험을 동경한 적이 없었지만 도둑이 집 안에 들어오려고 하자 그만 모험의 세계로 발을 들이게 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케빈은 집 밖이 아닌 집 안에서 모험을 벌인다는 점에서 오디세우스나 도로시와는 다른 유형의 모험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발상의 전환이 [나 홀로 집에]가 공전의 히트를 칠 수 있었던 비결이 아닐까?
그렇다면 동양의 모험은 집 안에서 모험을 벌이는 케빈과 출가한 뒤에 귀향 과정에서 온갖 모험을 겪는 오디세우스나 도로시 중 어떤 유형과 닮았을까? 만약 둘이 서로 닮지 않았다면 동양의 모험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
고향을 떠난 사람들
동양에서도 집은 떠날 수 있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돌아와야 하는 귀소 본능의 대상이다. 동양고전에서 집은 인간에게 심리적으로 평화와 행복을 누리는 곳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집이란 떠나지 않고 머무르는 삶의 터전이라 할 수 있다.
떠나 고난을 겪고 영광도 누리지만 끝내 귀향은 하지 못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들의 모험은 오디세우스와 도로시의 경우처럼 영광스러운 ‘귀향’으로 매듭지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김윤보, <무릉도원도>, 제작연도 미상 견본담채 / 92.5×32.5 츠 <출처: 네이버 미술검색> 작품 정보 보러가기
사람은 여러 가지 이유로 아늑한 집을 떠나게 된다. 동양고전에서도 집을 떠난 이들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첫째, 공자는 조국인 노(魯)나라에서 자신의 이상을 펼칠 수 없게 되자 어쩔 수 없이 타향을 15년간 돌아다니게 된다. 세상을 구원하겠다는 종교적 열망이 공자로 하여금 모험을 떠나게 만들었을 것이다.
둘째,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어부는 계곡에서 물고기를 잡으러 가다가 우연히 무릉도원을 발견한다. 그는 별세계를 못 본 척 지나치지 않고 계속해서 동굴 속으로 들어가다 결국 진(秦)나라의 전란을 피해온 사람들을 만난다. 새로운 것을 보면 끝까지 확인하려는 호기심이 어부로 하여금 앞으로 나아가게 했을 것이다.
셋째, 상앙은 조국인 위(衛)나라에서 출세할 길이 막히자 신흥 강국인 진(秦)나라로 떠난다. 그는 진(秦)나라의 조정에 들어가기 위해 당시 사회적으로 천대받던 내시에게 청탁하는 것조차 주저하지 않았다. 출세를 향한 욕망이 상앙으로 하여금 사회적 평판에 신경쓰지 않게 만들었을 것이다.
넷째, 대한제국의 신채호는 한일합방 이후 중국과 러시아로 건너갔다.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 지배를 끝장내려는 독립운동의 의지가 신채호로 하여금 거듭된 실패에도 불구하고 투사의 길을 걷도록 했을 것이다.
위의 네 가지 경우는 서로 같은 점과 다른 점이 있다. 공통점이라면 모두 개인과 사회 사이의 갈등이 있다는 점이다. 다른 점은 공자와 어부는 집을 떠났다가 돌아오지만 별다른 ‘영광’을 누리지 못한다. 상앙과 신채호는 조국을 떠나 고난을 겪고 영광도 누리지만 끝내 귀향은 하지 못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들의 모험은 오디세우스와 도로시의 경우처럼 영광스러운 ‘귀향’으로 매듭지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또 다른 유형이 있다. 전국시대의 종횡가 소진(蘇秦)은 앞서 본 네 사람들처럼 거창하지 않고 순전히 개인적인 사유로 고향을 스스로 떠났다. 소진은 원래 동주(東周) 사람으로 책을 읽고서 유세하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가족들은 하는 일 없이 놀고먹는 소진을 탐탁지 않게 여기며 바가지를 자주 긁었다. “당신은 먹고 살 길을 내버리고 죽자 살자 입이나 혀끝을 놀리려고 하니 집안이 가난한 것은 당연하지 않아요?”
결국 소진은 고향을 떠나 유세의 기술을 갈고 닦은 뒤에 제후들을 설득해서 강한 진(秦)에 대항하는 한(韓), 위(魏), 조(趙), 연(燕), 제(齊), 초(楚) 등 여섯 나라의 세로 동맹, 즉 합종(合縱)을 주관하는 재상이 되는 영광을 누렸다. 여섯 나라의 재상이 소진의 고향을 찾자 지난 날 자신을 나무라던 형수가 무릎걸음을 하면서 시동생을 무서워했다. 가족의 냉대가 소진으로 하여금 고향을 떠나게 만들었지만 그는 가족을 원망하기보다 자기실현을 위한 욕망을 벼리었던 것이다.
맹자, 종횡가에 철퇴를 내리다
소진은 전국시대에 택교(擇交), 오늘날 외교(外交)의 방법으로 국가 간의 갈등을 조정하고 개별 국가의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새로운 장을 일구어낸 인물이다. 그의 말 한 마디에 따라 국제간의 분쟁이 하루아침에 풀리기도 하고 국제간의 평화가 전쟁으로 돌변하기도 했다. 그는 가족과 주위 사람들로부터 냉대를 받았지만 노력을 통해서 자신의 처지를 완전히 고쳤다고 할 수 있다.
소진은 개별 국가의 전력과 요충지를 잘 파악하고 장단점을 꿰고서 유불리(有不利)의 계산을 똑 부러지게 내놓아 어떤 상대라도 자신의 의견을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소진의 화려한 성공 뒤에는 그의 행태를 비웃고 욕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는 이익에 따라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고 반대로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는 상황을 만들어냈던 탓에 진정성과 신의가 없는 사람으로 취급되기도 했다.
제자백가 중에서 맹자는 그가 시대의 영웅이 아니라 시대의 역적이라고 아주 차갑게 평가했다.
“요즘 군주를 섬기자는 사람 중에 ‘나는 군주를 위해서 토지를 개간하고 창고를 가득 채우거나 다른 나라와 맹약을 맺고 전쟁하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라고 큰소리치는데, 그들은 오늘날 좋은 신하(전문가)로 부를지라도 옛날에는 백성을 해치는 자(민적民賊)일 뿐이다.”([고자] 하)
맹자는 병가, 종횡가, 법가 등이 개인적인 야욕을 위해서 쓸데없이 국가 간의 전쟁을 부추긴다고 보았다. 따라서 전쟁의 승리는 국가와 국민에게 영광이 아니라 재앙을 가져올 뿐이라는 생각이다. 맹자는 이런 사고가 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에 당시의 병가, 종횡가, 법가를 극단적으로 혐오하고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전쟁을 잘하는 자는 극형으로, 제후를 합종과 연횡으로 엮으려는 자는 다음의 형벌로, 황무지를 개간하여 세금을 늘리려는 자는 그 다음의 형벌로 처벌해야 한다.”(善戰者服上刑, 連諸侯者次之, 辟草萊任土地者次之. [이루] 상)
맹자의 말대로라면 종횡가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재앙의 씨앗이었던 것이다.
진취와 유목형 모험, 시대를 기획하다
전국시대의 제자백가들은 소진처럼 화려한 각광을 받지 못했다. 그들은 경쟁의식을 드러내며 소진의 성공을 벼락출세로 깎아내리고 소진의 냉정한 객관성을 잔인성과 몰인정으로 몰아붙이기도 했다. 그들은 소진의 도전과 모험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고 소진의 사소한 실수를 치명적인 인격 결함으로 몰아넣는 등 인신공격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자 여섯 나라의 군주들은 소진의 능력과 인격을 의심하기 시작하며 거리를 두려고 했다. 특히 연(燕)나라는 공을 세우고 돌아온 소진에게 숙소조차 제공하지 않는 등 노골적인 거부감을 드러냈다. 소진은 자신의 노력이 물거품으로 될 수 있는 위기 상황을 맞이했다. 그러자 그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냉대에 가슴앓이를 하지 않고 정면으로 대응했다.
소진은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 정직함으로 유명한 미생(尾生), 청렴으로 유명한 백이(伯夷), 효성으로 유명한 증삼(曾參)을 자신과 대비시켰다. 동시대의 사람들 중에 세 사람은 품행이 반듯하여 인격이 고상한 반면에 자신은 품행이 야비하여 인격이 천박하다는 소문이 떠돈다는 것을 소진도 알고 있었다.
소진은 연왕에게 저 세 사람과 같이 일하고 싶은지, 아니면 나와 일하고 싶은지를 정면으로 물었다. 연왕이 세 사람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자 소진은 다시 세 사람과 자신의 차이를 극명하게 대비시켰다. 세 사람은 각자 도덕적 가치를 목숨처럼 아끼지만 연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자신의 터전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소진 자신은 노모가 살아 있지만 고향을 떠나서 연왕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 발 벗고 뛰어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 차이를 자위(自爲)와 자복(自覆) 대 위인(爲人)과 진취(進取)의 도식으로 구분한다.
“세 사람이 보인 도덕적 가치는 모두 자신을 위한 것이지 남을 위한 것이 아니니, 이는 모두 자신의 발아래만을 덮어서 자신만을 지키는 길이지 앞으로 한 걸음을 나아가서 캐내려는 길이 아닙니다.”(夫信行者, 所以自爲也, 非所以爲人也, 皆自覆之術, 非進取之道也. [전국책 「연책」)
가슴 아프지만 고향의 노모를 떠났고, 개인의 도덕적 순결을 내세우는 고답적인 길을 벗어나 적극적으로 경계를 뛰어넘고 새로운 성취를 일구어내는 실용적 길을 걸어가게 되었다는 선언을 하고 있다.(臣有老母於周, 離老母而事足下, 去自覆之術, 而謀進取之道, 臣之趣固不與足下合者, 足下皆自覆之君也, 僕者進取之臣也.)
소진은 오디세우스처럼 영광스러운 귀향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 그는 집을 떠난 후 자신이 쓰일 곳을 찾아 나서며 방랑을 멈추지 않았고, 한 곳에서 성과를 이루더라도 정착하지 않는 유목형 모험을 했다. 자기 앞가림을 위해 귀향하지 않고, 남을 위해 자신의 재주를 쓰면서 진취적으로 눈앞의 경계를 넘는 타향살이를 숙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소진의 모험은 애초에 목적이 귀향이 강하게 설정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낭만과 성장의 이야기보다는 고난과 음모의 이야기로 오해되어 전해온 면이 없지 않아 있다. 동양에는 [나 홀로 집에]의 케빈과 같이 가족을 떠나 겪는 모험(冒險) 이야기가 드물고 모험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는 동거(同居)의 이야기가 많은 편이다. 아이는 부모에 의해 보호받아야 할 존재이지 스스로 세상과 맞서 자신을 드러낼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이 전통적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아이들에게 모험이 권장되지 않았기에 경계를 넘나들며 유목하는 소진의 진취적인 삶이 오늘날 더욱 돋보이는 것이 아닐까?
첫댓글 가족의 냉대와 소진으로 하여금 고향을 떠나게 만들었지만
그는 가족을 원망하기보다 자기실현을 위한 욕망을 벼리었던 것이다.
縱橫家 蘇奏을 잘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