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모필 사행첩(洪敬謨筆使行帖) 중 연광정練光亭圖(문재文齋, 19세기 활동)(그림)(우), 부벽루 시浮碧樓 詩(홍경모洪敬謨, 1774-1851)(좌), 조선 1834년 이후, 종이에 엷은 색(그림), 종이에 먹(시), 한국, 27.8×41.2cm, 구 10463,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 중국으로 가는 사신들은 직접 본 경관에 대해서 시를 짓거나 화가에게 그림을 그리게 하였다. 1830년과 1834년 중국에 간 홍경모(洪敬謨, 1774-1851)가 지은 여러 시와 '문재(文齋)'라는 호를 지닌 인물이 그린 그림들을 모은 화첩이 전한다. 오른쪽 그림은 평양 대동문 오른쪽에 있는 '연광정(練光亭)'을 그린 것이다. 연광정 아래 대동강에 많은 사람을 태운 배가 여러 척 있는데, 아마도 대동강을 따라 동북쪽으로 올라가 '부벽루(浮碧樓)'를 다녀왔을 것이다. 부벽루에 대해 읊은 시가 왼쪽 면에 있다.
前船影倒後船浮(전선영도후선부)
앞 배의 뒤집힌 물 그림자 위에 뒷배가 떠
錦横運牽溯碧流(금횡운견소벽류)
비단 줄에 서서히 끌려 푸른 물을 거슬러 오르고
鷗雨机過芳草岸(구우궤과방초안)
방초 우거진 언덕에 갈매기와 비가 지나가자
漁歌晩落綠楊洲(어가만락록양주)
버드나무 모래톱에 어부들 노래 저물녘에 들려오네.
奇巖向憶會垂釣(기암향억회수조)
전에 낚시를 했던 기이한 바위 기억에 생생하고
老柳猫餘舊繁舟(노류묘여구번주)
예전 배를 맨 늙은 버드나무 그대로 서 있어
白髮重來如化鶴(백발중래여화학)
백발에 학이 된 것처럼 다시 오니
前遊災已四十秋(전유재이사십추)
전에 놀던 때가 어느새 사십 년이 되었구나.
―부벽루(浮碧樓)·홍경모(洪敬謨, 1774-1851)
* [십+자는 옛날 평성(平聲)으로 썼다.] [十古以平聲使]
* 홍경모(洪敬謨, 1774-1851) : 호는 관암(冠巖). 19세기 사의당(四宜堂) 컬렉션의 주인. 1830년, 1834년 두 차례나 연행을 다녀온 홍경모(洪敬模, 1774~1851)는 동팔참 3백리를 지켜주는 석문령(石門嶺)을 거란에게 빼앗기고 압록강을 국경으로 삼은 것을 예로 들어 고려의 용병(用兵)이 고구려만 못함을 꾸짖었다. 그런 옛 땅은 다 잊고 압록강만을 천참(天塹 : 천혜의 요충지)으로 삼는 조선의 옹졸함은 말해 무엇하랴? 홍경모는 우리는 “고려를 닮은 것인가, 아니면 고구려를 닮은 것인가?”라며 준열하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