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배로 떠나신 성도님!
그날, 이른 시간 보낸 문자였다.
‘류 집사님! 완연한 봄이 아침을 부르네요.
보이차 우려내 여유 있게 마시네요.
오늘 집사님 닮은 봄바람이 아침 햇살 데려오겠지요.
나무도 땅속 깊이 가지 닮은 뿌리내리며 봄을 만들어 가겠네요.
나날이 힘든 간병이지요.
신 권사님께서 야간일 마치고 곰탕 끓여 방문한다고 전화하셨네요.
김치도 넉넉히 준비하여.. 고마운 분이세요.
한 끼라도 따뜻한 국물에 밥 한 그릇 드시면 힘이 나겠지요.
아픈 병상에서 아프지 않을 곳으로 가는 길목에 선 사랑하는 남편,
종일 애쓰는 집사님을 응원하며 기도할게요. 힘내세요.’
‘감사합니다.
모든 분들의 기도와 염려해 주신 덕을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네요.’
내게 맡긴 영혼이 기다린 오후 시간,
호박떡과 전할 말씀 품고 병실 문을 두드렸다.
‘목사님! 오셨네요. 남편이 복을 받았네!’ 모자(母子)가 흐느꼈다.
‘울지 않는다’ 호언장담한 집사님이 슬픔에 잠겼다.
‘잘 가세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편하게 떠나세요.
예수 믿고 가서 감사해요. 여보 천국에서 만나요.’
남다른 뼛심에 강건하여 튼실한 남편,
식욕도 괜찮고 주일 오후까지 의사소통에 문제없던 성도,
2년 만에 폐암의 굴곡을 넘지 못하고 쓰러졌다.
닻줄 거두고 빈 배로 떠날 채비였다.
76년 남짓한 세월은 베틀의 북처럼 빠르게 지났다.
100세 시대, 나그네 인생의 무상을 느꼈다.
서로 당황한 표정이었다.
주치의가 열린 귀에 작별 인사하도록 알렸다.
두 간호사가 분주하게 드나들었다.
증류수를 채우고 가래는 흡입기로 뺐다.
삭히는 주사액을 호수에 넣고 ‘특이 사항 체크하세요!’ 던졌다.
도우미가 시트와 기저귀를 갈고 옷을 가위로 잘랐다.
몸을 닦고 편한 잠옷을 입혔다.
숨소리가 거칠었다.
혈압이 떨어지고 맥박이 느렸다.
입에서 나온 침은 화장지로 닦았다.
등은 식은땀으로 젖었다.
갈수록 체온이 내려갔다.
침상 곁에서 거드는 일을 고맙게 여겼다.
순한 임종 위하여 기도하며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길 바랐다.
2년의 짧은 믿음 생활이지만 영적으로 큰 위력을 남겼다.
생사 간 유일한 위로는 몸과 영혼이 신실하신 그리스도께 속한 것이었다.
밤 10시 아들, 손자, 며느리가 들어와 눈물 흘렸다.
손에 힘이 들어갔다.
기다리고 기다렸는지 미동한 입술을 봤다.
장례 일정과 식장을 두고 의견이 오갔다.
지인의 추천을 받았다.
‘목사님, 00 장례식장 대표가 친구예요.
우리 병원 원목으로 소개해서 더없이 섬길 거예요.
변방이나 시설은 좋아요.
후회 안 하실 거네요.
혜택이 많은데 혼자만 아세요.
분양 접객실 50%, 화장 수의 무료, 화장관 무료,
리무진 무료, 직계 상복 무료, 영정 사진 무료..
밥 값 차이도 많이 날 거여요.’
자녀들이 그곳으로 결정을 내렸다.
임종 지키려 7시간 머물다 별세하면 전화하라고 나섰다.
‘집사님, 혹 잠들어 전화 안 받으면 실장님께 연락하세요.’
‘네, 오늘 정말 수고하셨네요.’
1시 15분 운명! 전갈(傳喝)이 왔다.
벌떡 일어나 장례식장에서 모시도록 조치하고 나갔다.
호스피스 병원 비상계단을 올랐다.
새 떠난 둥지요, 낙타 사라진 우물이었다.
홀로 빈 침대 잡고 소리 없이 울었다.
마음 한켠에 남은 아쉬움의 필름이 스쳤다.
초근목피 시절의 경험으로 몸을 으깨듯 일한 가장.
마지막 순간까지 일할 생각에 잠꼬대한 남편,
50년 넘게 운전하며 성실과 인내를 일구어낸 아버지,
천사 같은 아내와 목회자 두 아들의 무거운 짐을 덜어낸 성도,
자신을 완전히 비워 믿음의 본을 남긴 분,
처자식 기도와 헌신, 장모님의 사랑,
옥합을 깬 아내의 희생으로 부족함 없는 생을 거두셨다.
난 따뜻한 밥 한 끼 대접 못한 손,
화순 전대로 항암 30회 이상 다녔는데 아내가 모셔 지켜만 본 눈,
소홀히 여기며 사소한 간식만 전한 발,
다정에 다정을 더하지 못해 기울여진 마음이었다.
아침 문자를 띄웠다.
‘집사님, 좀 쉬셨어요.
상실의 아픔이 크지요.
순전한 장례 절차 위에 하나님의 위로가 임하길 기도했네요.
영정 만들 사진과 제단에 놓을 성경,
사망 진단서 발급해 장례식장으로 오세요.
먼저 가서 대표님 만날게요.’
‘예, 목사님 식구들 밥 챙겨 먹이고 조금 늦겠네요.’
꽃 장식 없는 분향소에 조건 없이 화환을 올렸다.
우리 교회 이름으로 조화를 세웠다.
대표이사가 커피 대접하며 쿠폰까지 내밀었다.
하나님의 은혜요, 류 집사님이 심은 열매였다.
유족과 부고 작성, 음식 주문 후 영정 앞에 앉았다.
고인이 마지막 부르며 눈물 흘린 찬송을 폈다.
주안에서 죽는 자의 복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녀요,
주 보혈로 사죄의 은총 누리며, 하나님의 유업 이을 자였다.
성도의 죽는 것 귀중히 보시는 하나님 위로의 말씀으로 그들을 덮었다.
장례 일정을 조율하여 입관(갈6:6-7), 출관(딤후4:7-8),
하관(요14:6), 자연장(요11:25-27) 설교를 맡았다.
순서지 만들어 기도하며 사랑으로 다가섰다.
앞장선 배 집사님, 시랑 고랑 한 권사님들의 발걸음,
새벽같이 동행하며 기도한 안수 집사님.. 감사할 뿐이었다.
준비된 입관 예배 기도에 감동이 넘쳤다.
함께 한 성도들에게 은혜 위에 은혜가 흘렀다.
‘목사님! 매번 수고 많으시네요.
모두 든든하게 생각하실 겁니다.
대단하신 우리 목사님 존경합니다.’
집사님의 격려에 힘이 들어갔다.
임종과 장례 중에 깨달았다.
모든 길은 하나님께서 여셨다.
지인 전화에 장례식장의 조건 없는 후함에 놀랐다.
두 아들 목사님의 쉴 틈 없는 서울 사역의 결과였다.
한 알의 밀처럼 심는 대로 거둔 ‘한밀 정신!’이 빛났다.
2025. 3. 16. 서당골 생명샘 발행인 광주신광교회 이상래 목사 010 4793 0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