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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기인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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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자료모음방 스크랩 박재가 되어버린 천재 이상/날개外
심메마니 추천 0 조회 60 06.04.04 20:16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이상(본명 김해경)



■ 프로필



1910년 서울 통인동에서 이발사의 아들로 출생

1912년 부모를 떠나 백부 김연필의 장손으로 성장

1917년 신명학교(新明學校, 당시 누상동 소재) 입학. 이 때부터 그림에 소질 보임

1926년 보성고보 5학년 졸업,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 입학

1929년 경성고등공업학교 졸업.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수로 취직

<조선과 건축> 회지 표지도안 현상모집에 1등과 3등으로 각각 당선

1931년 처녀시 '이상한 가역반응'과 '오감도' 발표, 서양화 '초상화'를

'선전(鮮展)'에 출품, 입선

1933년 심한 각혈로 총독부 기수직 사임

1934년 '구인회' 가입, 본격적인 문학활동 시작.

1936년 '지주회시' '날개' 발표, 변동림과 결혼 후 도일

1937년 사상 불온혐의로 일본 경찰에 유치, 4월 17일 동경제대 부속병원에서 객사,

5월 유고작 '종생기' 발표

 

 

 

■ 작가 이야기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이상은 한국 근대문학사가 낳은 불세출의 시인이자 작가이다.

그는 스스로를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라 불렀거니와,

'폭풍이 눈앞에 온 경우에도 얼굴빛이 변해지지 않는 그런 얼굴'을

지닌 사람만이 사는 세계의 주민이 되고자 문을 두드린 최초의 한국인이었다.

문학을 통해서 인간 고통의 근원을 끊임없이 발견하려 했던 이상한 천재 작가,

그가 바로 이상이었다.


1910년 9월 23일, 서울에서 태어난 이상(본명 : 김해경)은

1931년 '이상한 가역반응'이라는 시로 문단에 데뷔했다.

1933년부터 폐가 악화되기 시작했고, 1934년에는 김기림, 정지용, 박태원 등과

교유하면서, <조선중앙일보>에 그 유명한 시 '오감도'를 연재하다가,

빗발치는 독자들의 항의로 중단하기도 했다.

건강 악화와 사업 실패, 사상 혐의로 피검되는 등 결코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았고,

게다가 26년 7개월이라는 짧은 생애로 요절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감도' 등의 시와 '날개', '지주회시', '봉별기' 등의 소설을 통해

거의 파격적으로 한국문학의 수준을 올려 놓았다.


이상이 주로 문학 활동을 하던 1930년대는, 식민지의 병리 현상이 완연한 시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상은, 미국의 T. S. 엘리엇이 그랬듯이, '황무지' 의식을 가장 예각적이고

실험적으로 드러낸 작가에 속한다.

그의 문학이 기본적으로 그로테스크한 왜곡의 상태와 불안 의식, 세계 파국의 공포,

의식 체계와 형태의 파괴, 숫자의 뒤틀림과 유희, 그리고 자기 분열과 자의식의 과잉 등의

비합리적 세계로 일관되고 있는 것은 그런 까닭인 지도 모른다.

그것은 기존 문학 형태를 파괴하고 해체시킨 뒤에 전혀 새로운 의식과 언어, 스타일로

구축된, 그야말로 '이상한 가역반응'의 세계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상 문학은 한국 문학에서 새로운 세계 인식과 해석을 확인시켜 줌과 동시에

새로운 문학의 가능성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우찬제/문학평론가, 서강대 교수)

 

 

 

* 이상의 4편의 편지 내용



K형


어떻소? 거기도 더웁소? 공부가 잘 되오?

[기상도 (氣象圖)] 되었으니 보오. 교정은 내가 그럭 저럭 잘 보았답시고 본 모양인데

틀린데는 고쳐보내오.

구(具)군 (구본웅)은 한 천 부 박아서 팔자고 그럽디다. 당신은 50원만 내고 잠자코

있구려. 어떻소? 그 대답도 적어 보내기 바라오.

참 체재(體裁)도 고치고 싶은 대로 고치시오.

그리고 검열본은 안보내니 그리 아오. 꼭 소용이 된다면 편지하오. 보내드리리다.

이것은 교정쇄이니까 삐뚤삐뚤한 것은 간조에 넣지 마오. 그것은 인쇄할 적에 바로

잡아 할 것이니까 염려 없오. 그러니까 두 장이 한 장 세음이오. 알았오?

그리고 <놈부루 (number 번호)>는 아주 빼어버리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의견이 어떻소?

좀 <메자와리 (눈에 거슬리는 것)>같지 않소?

구인회는 인간 최대의 태만에서 부침 (浮沈)중이오. 팔양 (八陽)이 탈퇴했오----

잡지 2호는 흐지부지요. 게을러서 다 틀려 먹을 것 같소.

내일 밤에는 명월관에서 영랑시집의 밤이 있오. 서울은 그저 답보 중이오.

자조 편지나 하오.나는 아마 좀 더 여기 있어야 되나 보오.

참 내가 요새 소설을 썼소. 우습소? 자-- 그만 둡시다.


李箱

<1936.6>



--------



K형

 

기어코 동경 왔소. 와보니 실망이오. 실로 동경이라는 데는 치사스런 데로구려!

동경 오지 않겠소? 다만 李箱을 만나겠다는 이유만으로라도.

삼사문학 (三四文學) 동인들이 이곳에 여럿이 있오. 그러나 그들은 어디까지든지

학생들이오. 그들과 어우러지지 못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이제 그만하고 늙었나 보이다.

삼사문학에 원고 좀 주어주오. 그리고 씩씩하게 성장하는 새 세기의 영웅들을 위하여

귀하의 존중한 명성을 잠간 낮추어 삼사문학의 동인이 되어줄 의사는 없는지

이곳 청년들의 소망입니다. 어떻소?

편지 주기 바라오. 이곳에서 나는 빈곤하고 고독하오.

주소를 잊어서 주소를 알아가지고 편지하느라고 이렇게 늦었소.

동경서 만났으면 작히 좋겠소.

형에게는 건강도 부귀도 넘쳐 있으니

편지 끝에 상투로 빌을 만한 말을 얼른 생각해내기가 어렵소 그려.


<1936.11.14>





--------



H형


형의 글 반가이 읽었습니다.

저의 못난 여편네를 위하여 귀중한 하룻밤을 부인으로 하여금 허비하시게 하였다니

어떻게 감사해야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부인께도 이 말씀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형의 [명상 (瞑想)]을 잘 읽었습니다. 타기 (唾棄)할 생활을 하고 있는 현재의 저로서

계발받은 바 많았습니다. 이것은 찬사가 아니라 감사입니다.

저에게 주신 형의 충고의 가지가지가 저의 골수에 맺혀 고마왔읍니다.

돌아와서 인간으로서, 아니, 사람으로서의 옳은 도리를 가지고 선처하라 하신 말씀은

참 등에서 땀이 날 만치 제 가슴을 찔렀습니다.

저는 지금 사람 노릇을 못하고 있습니다. 계집은 가두 (街頭)에다 방매하고

부모로 하여금 기갈 (飢渴)케 하고 있으니 어찌 족히 사람이라 일컬으리까.

그러나 저는 지식의 걸인 (乞人)은 아닙니다. 5개 국어 운운도 원래가 허풍이었습니다.

살아야겠어서, 다시 살아야겠어서 저는 여기를 왔습니다.

당분간은 모든 죄와 악을 의식적으로 묵살하는 도리 외에는 길이 없습니다.

친구, 가정, 소주, 그리고 치사스러운 의리 때문에 서울로 돌아가지 못하겠습니다.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를 전연 모르겠습니다.

저는 당분간 어떤 고난과라도 싸우면서 생각하는 생활을 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한 편의 작품을 못 쓰는 한이 있더라도, 아니, 말라비틀어져서 아사하는 한이 있더라도

저는 지금의 자세를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도저히 <커피> 한 잔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조광 2월호의 [동해]는 작년 6, 7월경에 쓴 냉한삼곡 (冷寒三斛)의 열작입니다.

그 작품을 가지고 지금의 李箱을 <촌도>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과거를 돌아보니 회한 뿐입니다. 저는 제 자신을 속여왔나 봅니다.

정직하게 살아왔거니 하던 제 생활이 지금 와보니 비겁한 회피의 생활이었나 봅니다.

정직하게 살겠습니다. 고독과 싸우면서 오직 그것만을 생각하며 있습니다.

오늘은 음력으로 제야입니다.

빈자떡, 수정과, 약주, 너비아니, 이 모든 기갈의 향수가 저를 못 살게 굽니다.

생리적입니다. 이길 수가 없습니다.

가끔 글을 주시기 바랍니다. 고독합니다. 이곳에는 친구 삼을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서울의 흙을 밟아볼는지 아직은 망연합니다.

저는 건강치 못합니다. 건강하신 형이 부럽습니다.

그러면 과세 안녕히 하십시오. 부인께도 인사 여쭈어주시기 바랍니다.



우제 (愚弟) 李箱



<1937.1>



--------



어제 동림이 편지로 비로소 네가 취직되었다는 소식 듣고 어찌 반가왔는지 모르겠다.

이곳에 와서 나는 하루도 마음이 편한 날이 없이 집안 걱정을 하여왔다.

울화가 치미는 때는 너에게 불쾌한 편지도 썼다. 그러나 이제는 마음을 놓겠다.

불민한 형이다. 인자 (人者)의 도리를 못밟는 이 형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가정보다도 하여야 할 일이 있다.

아무쪼록 늙으신 어머님 아버님을 너의 정성으로 위로하여드려라.

내 자세한 글, 너에게만은 부디 들려주고 싶은 자세한 말은 2, 3일 내로 다시 쓰겠다.



<1937.2.8. 최후의 서신>





* 금홍과 문학에서 권순희와 술로



한동안 금홍은 마담으로 '제비' 카운터에서 일하고, 이상은 골방에 처박혀 있다가

밤에나 밖으로 기어 나오는 생활이 지속되었다. 이러한 그의 제비 다방 시대는

1933년 7월 14일 개업으로부터 1935년 9일, 파산하기까지 2년간 지속되었다.


가장 격렬한 사랑마저 이렇게 금방 끝나고 만 것은 폐병 때문에 성기능도,

보석을 사줄 만한 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 한 여자에게 얽매이는 것을 두려워 했던 그는

1933년 여름부터 1934년 여름까지 이상 이외의 남자를 만난 적이 없을 정도로

자신에게 몰입했던 금홍에게조차 불성실하게 행동했다.

같이 산 지 1년이 지나자 금홍은 이상에 대해 '쓸만한 물건이 하나도 없는 병신이야.

게다가 돈도 벌어올 줄 모르고'라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닐 정도로

그에게 쌀쌀맞게 굴었다.


금홍에게 천대를 받던 1934년 그는 <조선 중앙일보>에 발표한 '오감도'로 일약

스타가 되었다.

미친수작, 정신병자의 잡문이라는 혹평을 받아 결국 연재가 중단되었지만

열화와 같은 찬반양론을 일으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 1933년과1934년은 화려한 문단 등단뿐 아니라 파산,

금홍과의 파경으로 가득찬 해였다.

당시 그가 느꼈던 좌절은 다음의 글에 잘 드러나있다.

"하루는 나는 이유없이 금홍에게 몹시 얻어맞았다.

나는 아파서 울고 나가서 사흘을 들어오지 못했다. 금홍이가 너무 무서웠다.

나흘 만에 와보니까 금홍이는 때묻은 버선을 윗목에다 벗어놓고 나가버린 뒤였다."


금홍과 서먹해질 즈음 그는 동인들과의 만남에 더 큰 관심을 기울였다.

금홍이 나간 직후 그는 잠시 카페 '쓰루'에 있었던 여급 권순희에게서 위안을 얻었다,

그러나 여복 없는 그에게 이도 오래갈 리 없었다.

그녀를 짝사랑하다 자살소동까지 일으킨 친구 정인택을 위해

자신의 사랑을 포기한 채 둘의 결혼을 성사시키고 결혼식의 사회까지 맡아주었던 것.


그후 그는 박태원, 김유정과 어울려 다니며 여러 카페를 전전하며

심신을 소모하는 생활을 계속했다.

당시 그가 했던 한마디는 그의 생활을 잘 드러내준다.

"어느 시대에도 그 현대인은 절망한다. 절망이 기교를 낳고, 기교 때문에 절망한다."







* 아내를 맞아들인 방탕아, 이상



'제비'다방과 금홍을 잃은 후 그는 아버지의 집을 저당잡혀 인사동에

카페 '쓰루'와 광교 근처에 다방 '69'를 개업했다가 곧 망해버리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명동의 '무기'를 설계해 개업하려했으나 중도금이 없어 도중 하차하고 말았다.

빈민촌으로 가족을 이사 시킨 이상은 묵묵히 따르는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과

자신의 무능력 사이에서 방황했다.

금홍에 이어 권순희와도 실연하고만 그는 패배감에 젖어 잠시 시골로 잠적했다.

그곳에서 그는 갑자기 생각이라도 난 듯 수많은 작품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1933년부터 1937년까지, 그는 금홍과 권순희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가며

'봉별기', '날개', '지주회시', 그리고 '종생기'등과 전문시 음화시, 문명 비평류의

수필 등을 산더미처럼 쏟아내었다.

이 수많은 작품들이 술에 절어있던 한밤 중에 쓰여졌다는 사실은

'천재 이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1936년, 이상은 이화여전 출신인 여류문인 변동림(이상이 죽은 뒤 순화 김환기의

부인이 된 김향안 씨)과 결혼해 새로운 인생을 맞는 듯했다.

그녀는 단편과 수필을 몇편 발표했던 신인이자,

이상의 지기인 구본웅의 배다른 동생이기도 했다.

그녀는 이상이 가까이 했었던 여성 중 유일하게 정상적인 여성인 셈이었지만,

이것도 이상의 운명이었을까?

간단한 결혼식을 거친 후 곧 동거에 들어간 그녀는

이상의 가족과 전혀 교류가 없었던 금홍과는 달리 빈민굴에서 고생하는

그의 가족과 깊은 친분을 맺었다.

하지만 그녀의 힘만으로는 역부족,

결국 그녀는 카페의 여급으로 일하며 입에 풀칠을 하게 되었다.

이는 이상의 여자는 모두 여급이었다는 전설을 다시 확인 시켜주는 셈이었다.


건강 악화와 어려운 경제적 여건 등, 국내에서의 비참한 현실과 마주친 이상은

도피하기 좋아하는 그의 성격대로 가족과 변동림을 남겨둔 채

1936년에 동경행을 선택했다. 하지만 동경에 대한 환상이 깨지면서

가난을 절절히 겪던 그는 '종생기', '환상기', '실락원', '실화', '동경'등의

수많은 작품을 엮어냈다.


이듬해 2월, 극도로 악화된 건강을 간신히 부여잡고 있던 이상은

운나쁘게도 일본 경찰에게 검거되어 옥살이를 치뤘다.

건강이 악화되어 거의 시체나 다름없게 된 그는 보석을 허가받아

평소 너무나도 동경하던 동경제대의 부속병원에 입원했다.


항상 여자와 문학에 빠져 살던 이상은 결국 날지 못한 채

변동림이 구해온 레몬의 향기를 맡으며 짧은 생을 마감했다.

태어나자마자 20대였던 조숙한 천재 시인 이상은

스믈여덟 살의 젊은 나이에 '종생기'를 끝으로 자신의 생을 마쳤다




* 대표작



「 권태 」 세상속으로

「 오감도 」 미래사

「 날개 」 맑은소리







■ 날개



※ 요점정리



갈래 : 단편소설, 심리주의 소설

배경 : 일제 강점기의 서울 거리.

18가구가 살고 있는 33번지 유곽(遊廓)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성격 : 고백적, 상징적

주제 : 전도된 삶과 자아 분열의 의식 속에서 본래적 자아를 지향하는

인간의 내면 의지



인물 : 나 - 남편임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사회적, 성적(性的)으로 아내보다

열등한 상태에 놓여 있는 거세당한 남성. 날개의 소생(蘇生)을

꿈꾸며 사회로의 복귀를 시도한다.

아내 - 남편보다 우월한 존재로, 종속 상태에 놓여 있는 남편 위에

군림하는 가학적(加虐的)인 여성.



구성 : 도입부(prologue) - '나'의 독백. 기지(奇智)와 풍자가 넘치는 짧은

경구(epigram)들. 지적(知的)인 역설(逆說)로 분열된 자아 제시.

발단 - 33번지 유곽(遊廓). 해가 들지 않는 '나'의 방.

전개 - 내객(來客)이 있는 아내. 일찍 귀가한 '나'와 아내의 조우(遭遇)

위기 - 감기약 대신 수면제를 먹인 아내의 의도 파악에 부심(腐心)하는 '나'.

절정·결말 - 정상적인 삶에 대한 욕구.









※이해와 감상



1936년 <조광(朝光)>에 발표된 단편소설. 내용의 난해함과 형식의 파격성으로

1930년대 모더니즘 소설의 으뜸으로 꼽힌다. 등장 인물인 '나'와 아내는

여러 관점에서 해석되고 있지만, 대체로 분열된 자아의 두 모습으로 이해한다.

그리하여 마지막 대목의 '날개의 비상(飛翔)'은 분열된 자아를 결합하고

자기 구제를 꾀하는 실존의 의지로 볼 수 있다.



이 소설의 부부 관계는 '숙명적으로 발이 맞지 않는 절름발이'이다.

아내에 대한 예속자 혹은 기생적(寄生的) 존재로서 스스로의 인격적인 소유권과

시민성(市民性)이 없는 '나'에 비해 아내는 나를 지배하고 '사육하는' 위치에 있다.

'외출', '내객', '돈'이란 단어들이 알려 주듯이 아내의 직업은 창녀이다.

쉽게 말해서, '나'는 '꽃'에 매달려 사는 기둥서방인 것이다.

그래서 '나'와 아내의 관계는 '닭이나 강아지처럼'이란 동물적 비유가 의미하듯

종속적인 관계이다.



이런 종속 관계는 시간과 공간의 소유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아내의 매음(賣淫) 현장이 '나'에게는 금단(禁斷)의 공간이며, 외출을 통해

아내의 가학적 감금에서 일단 풀려 나온 '나'는 다시 아내가 쳐 놓은 시간에 감금된다.

자정(子正) 전에는 절대로 집에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의 외출 시간은 아내의 매음과 자신의 자유 방임이 묵계된 시간이다.



이러한 자정(子正)의 시간과 반대쪽인 정오(正午)의 사이렌은 강요된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는 전기(轉機)가 된다. 즉, 대낮의 정점으로서의 정오(正午)는 '나'의 유폐성(幽閉性)

극복과 도착(倒錯)된 아내와의 관계를 역전시키는 전환점으로서 '눈에 보이지 않는

끈적끈적한 줄'로부터 해방되는 시간이다.

그러므로 마지막의 날개와 비상(飛翔)에의 소망은 박제(剝製)와 무력(無力)과 유폐된

시간으로부터 '네 활개를 펴고 닭처럼 푸드덕거릴 수 있는 탈출의 욕망이며,

아내라는 구속성과 거짓됨에 맞설 수 있게 하는 진정한 자아의 확인이자

건전성(健全性)에 대한 향수이다.




※줄거리



지식 청년인 '나'는 놀거나 밤낮없이 잠을 자면서 아내에게 사육(飼育)된다.

'나'는 몸이 건강하지 못하고 자의식이 강하며 현실 감각이 없다.

오직 한번 아내를 차지해 본 이외에는 단 한번도 아내의 남편이었던 적이 없다.



아내가 외출하고 난 뒤에 아내의 방에 가서 화장품 냄새를 맡거나

돋보기로 화장지를 태우면서 아내에 대한 욕구를 대신한다.

아내는 자신의 매음(賣淫) 행위에 거추장스러운 '나'를 볕 안 드는 방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수면제를 먹인다.

그 약이 감기약 아스피린인 줄 알고 지내던 '나'는

어느 날 그것이 수면제 '아달린'이라는 것을 알고

산으로 올라가 아내를 연구한다.



'나'를 죽음으로 몰고 갔을지도 모를 수면제 ― 그것을 한꺼번에

여섯 알이나 먹고 일주야를자고 깨어나서,

아내에 대한 의혹을 미안해 한다. '나'는 아내에게 사죄하러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는 그만 아내의 매음(賣淫) 현장을 목격하고 만다.



도망쳐 나온 '나'는 거리를 쏘다니던 끝에 미시꼬시 백화점 옥상에 올라가

스물여섯 해의 과거를 회상한다. 이때 정오(正午)의 사이렌이 울고,

'나'는 "날개야 다시 돋아라. …… 한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라고 외치고 싶어진다.




■ 오감도(烏瞰圖)


詩 第1號



13인의 兒孩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 막다른 골목이적당하오)

제 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4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5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6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7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8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9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0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1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 그렇게뿐이모였소.

(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오감도는 1934년 7월 24일부터 8월 8일까지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된 작품이다.

원래는 30회를 목표로 연재를 시작했으나 연재가 시작되자마자 공무국에서는

오감도(烏瞰圖)라는 것은 조감도(鳥瞰圖)의 오자가 아니냐고 물으러 오기도 하고

"미친놈의 잠꼬대냐?", "그게 무슨 시란 말인가", "당장 집어치워라",

"그 이상이란 자를 죽여야 해!", "무슨 개수작이냐", "그게 대체 어쩌자는 시냐" 등의

독자들의 항의가 빗발쳐 더 이상 연재를 할 수 없어 15회에 중단되고 말았다.

 

이 때 조선중앙 학예부장으로 있으면서 오감도의 연재를 기획했던 이태준은

독자들의 항의 때문에 사표를 써서 안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15회까지

연재를 밀고 나갔지만 더 이상 계속하지 못하고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는 일화가 있다.

 

오감도 연재를 마치면서 이상은 "이천점(자신이 쓴 시: 필자 주)에서 30점을 고르는데

땀을 흘렸다. 31년 32년 일에서 용대가리를 떡 꺼내놓고 하도들 야단에 배암꼬랑지커녕

쥐꼬랑지도 못달고 그만 두니 서운하다. 깜박 신문이라는 답답한 조건을 잊어버린 것도

실수지만 이태준, 박태원 두형이 끔찍이도 편을 들어준 데는 절한다. 철―이것은

내 새 길의 암시요 앞으로 제 아무에게도 굴하지 않겠지만 호령하여도 에코―가 없는

무인지경은 딱하다. 다시는 이런―물론 다시는 무슨 방도가 있을 것이고 위선 그만둔다.

한동안 조용하게 공부나 하고 따는 정신병이나 고치겠다"라는

"오감도 작자의 말"을 남겼다. 그러나 그것은 발표되지못했다.


이상 시는 기존 문법을 무시하고 씌어지는 난해한 시로 잘 알려져 있다.

띄어쓰기, 단락구분, 역설, 아이러니, 숫자나 기호의 도입 등 일상적인

언어규범을 무시한 이러한 행위는 당시 봉건적인 질서와 모든 정상적인

가치가 무너진 식민지 사회에 대한 저항으로 볼 수 있다.

이상은 개인의 자유와 개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 질서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언어 질서인 문법을 파괴하고 새로운 질서, 즉 자신의 삶과 의미를 담아내고

세계의 부조리를 고발할 수 있는 새로운 문법을 창조하려 했던 것이다.

이러한 이상의 행동은 봉건적 질서와 식민지 가치의 의미를 상실한 세계에 살고 있는

시인이 자신의 정체성 상실을 막기 위해 택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상에게 일상적인 언어 질서로는 자신을 표현할 수 없었고 그것은 기성의 제도와

질서를 대변하는 것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 상 자신의 삶을 구속하고 분열시키는 봉건적 질서나

식민지 가치와 다름이 없었다. 봉건적 질서와 식민지적 가치에 순응하면서

자아의 실현을 기도할 수 없었던 것처럼 일상적 가치를 표현하는 그런 언어로는

자신을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상의 시가 일상적인 국어 문법을 무시했다고 해서 단어나 문자, 기호들을

연결하는 규칙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상 시는 일상언어의 문법을 파괴한 대신

그러한 결합규칙을 나름대로 창조하여 자신의 의미를 구현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그는 흔히 비유되는 정신병자와 구분된다.

일반적으로 이상을 정신병자와 동일시하고 이상의 시를

정신분열증의 소산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시인과 정신병자를 혼동한데서 오는 잘못들이다. 일반적으로

시인이 쓴 시와 정신병자가 같은 것처럼 취급되는 경우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 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통일성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다.

시인이 쓴 시는 정신병자가 쓴 시처럼 단어와 문장들 사이에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고도의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정신병자의 그것에는 아무런 통일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분열된 정신 상태를 보여줄 뿐이다.

 

이상 시는 일상언어의 질서를 파괴함으로써 겉으로 보기에는 단어와 문장들이

아무런 연관 없이 뿔뿔이 분열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분열된 것이 아니라 일상언어와는 다른 질서를 통해 유기적으로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분열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우리가 이 시를

일상언어처럼 읽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시는 근본적으로 일상언어와는

다른 질서를 가진 언어이다. 그것은 일상언어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그 위에 2차적인 질서를 덧붙여 일상언어를 낯설게 함으로써

질서 자체에 주의를 기울이게 하는 언어이다.

 

 

 



거울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握手)를받을줄모르는―악수(握手)를모르는왼손잡이오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거울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나는지금(至今)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事業)에골몰할께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反對)요마는

또꽤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診察)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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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6.04.04 21:37

    첫댓글 에궁~~어려워서리...*^^*

  • 06.04.05 02:49

    ㅎㅎㅎㅎㅎㅎ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ㅎㅎㅎㅎㅎ깔깔 웃던 이야기(개인적인 에피소드)...오랜만에 보니 웃음이 절로 나오네요. 이 귀절을 다시 보리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카페지기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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