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생명 말씀(2023.8.6) 말씀; 요한복음 20:22, 합 3:17-18 하나님의 관점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7-18) 세상을 살다보면 예기치 못한 문제들이 발생합니다. 갑자기 암이라는 사형선고를 받고, 사랑하는 사람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 유가족들을 슬픔에 빠지게 됩니다. 재중 집사님 여동창도 갑자기 난소암 판결을 받아서 투병 중입니다. 박경숙 집사님 아버님이 또 위암 판정을 받으셔서 수술을 해야 합니다. 현옥 집사님 장모님은 투병중입니다. 이렇게 세상은 끊임없이 죽음 질병의 문제가 일어나고, 사람들은 고통을 겪게 됩니다. 살아가면서 이런 인생 문제 없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문제들이 생깁니까? 그리고 이런 인생 문제의 답이 무엇입니까? 욥은 하루 아침에 집이 무너져 자식들이 다 죽고, 재산은 탈취 당하고, 온 몸은 욕창이 나고, 아내는 저주를 하고, 하인들은 무시를 하고, 친구들은 정죄를 하였습니다. 그 의롭던 욥이 모든 것을 잃고 주저앉아버립니다. 그는 하나님께 이유라도 알고 싶었습니다. 따지고 싶었습니다. "하나님, 왜? 무엇이 잘못 입니까? 이처럼 우리는 문제가 일어나면 문제 자체만 바라봐집니다.
오래 전에 ...이탈리아의 볼로냐에서는 35만 여명의 젊은이들이 환호하는 가운데`록 콘서트'가 열린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젊은이의 우상이 되었던 미국 가수 밥 딜런(Bob Dylan)이 출연하였고, 교황 바오로 2세도 참석하였습니다. 그 때 밥 딜런은 자신의 히트곡들을 부르던 중 그 유명한 `Blowin in the Wind'(바람 속에 실려 있다)를 열창하여 35만명의 젊은이들을 열광케 하였습니다. 그 가사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한 인간이 인간으로 불리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길들을 거쳐야만 하는가? 하이얀 비들기가 모래 가에서 안식을 얻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바다를 거쳐야만 하는가? 평화가 정착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포탄들을 쏘아 대어야만 하는가? 친구여,그 해답은 바람 속에 실려 있다네. 인생의 해답은 바람 속에 실려 있다네 진정으로 하늘을 볼 수 있기까지 인간은 몇 번이나 머리를 치켜들어야만 하는? 울부짖는 사람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기까지 인간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귀를 가져야만하는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살상 당하고 있음을 깨닫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더 죽어야만 하는가? 친구여, 그 해답은 바람 속에 실려 있다네. 인생의 해답은 바람 속에 실려 있다네"
그는 노래 말 속에서 인생의 문제를 깊이 들여다 보면서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한 인간이 인간으로 불리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길들을 거쳐야만 하는가? 하이얀 비들기가 모래 가에서 안식을 얻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바다를 거쳐야만 하는가? .. 평화가 정착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포탄들을 쏘아 대어야만 하는가? 그리고는 그 답은 바람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바람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 때 ...딜런의 노래를 주의 깊게 들은 교황 바오로 2세는 노래가 끝나자 딜런과 악수를 나눈 다음, 35만 명의 관객 앞에서 딜런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이제 방금 한 인간이 인간으로 불리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길 들을 거쳐야만 하는가라고 물었습니다. 인간이 참된 인간이 되기 위하여 인간이 걸어가야 하는 길은 오직 하나이며,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즉 진리와 생명의 길입니다." 그리고 교황은 이번에는 관객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금전 밥 딜런은 인생의 해답은 바람속 에 실려 있다고 노래했습니다. 그것은 진실입니다. 모든 인생의 해답은 언제나 바람 속에 실려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바람은 이리저리 흩어져 망각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바람이 아닙니다. 그 바람은 바로 주님의 숨결이자 음성입니다."
교황의 그 말에 35만 여명의 젊은이들은 열화와같은 환호와 박수로 응답했습니다. 교황의 그 말은 단순히 그 날밤 록·콘서트의 분위기를 고조시켜 주 기위한 말치례가 아니었습니다. 인생의 해답이 바람 속에 실려 있으며 그 바람은 주님의 숨결이란 답을 제시한 탁월한 강론 이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찬 바람이 불고 추운 겨울이 와도 봄의 따스한 바람이 불면 얼어붙은 대지는 녹고, 식물들은 싹을 티우고, 꽃을 피우며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추운 겨울 찬서리에 죽어가는 대지를 보면 온통 절망스런 문제투성이 이지만 봄 바람이 불면 모든 것이 풀리는 것처럼 성령의 바람이 불면 인생의 문제들도 의문의 답들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죽은 심령이 살아나고, 사람다운 사람으로 변화되고, 근심걱정 슬픔은 사라지고, 불가능할 것 같은 문제들이 해결되고, 환희의 기쁨이 일어나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으로 나가서 복음의 사명을 감당할 제자들에게 후하고 바람을 불어넣어주셨습니다.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성령의 바람 그게 세상을 이길 답 이었던 것입니다. 개인의 말 못하는 고민들 얼마나 많습니까? 가정, 자녀들, 경제문제, 얽히고 섥힌 인간관계, 대북관계 등 그 답도 분명 바람에 있습니다. 문제만 바라보면 이 지구상에 슬프고 억을하고 비참한 사람들 정말 많습니다. 무지한 자들이 백성들을 다스린다고 정치 노름을 하는 것을 보면 답담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바람! 태초에 흙으로 빚어진 인간의 코 속에 들어가 생령이 되게 하고(창세기 2:7),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을 일으켜 군대로 만들고(에스겔 37:9-10), 두려워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두려워 떨고 있던 제자들을 위대한 인류의 스승이요 순교자로 만든 성령의 바람이 불면 됩니다. 그 바람의 출처가 어디 입니까? 바로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이 바람입니다(요한 20:22).
욥도 그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인생 문제의 답을 얻었습니다. 사실은 문제를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었고, 그를 시험하신 분도 하나님 이시었고, 그를 여전히 사랑하시는 분도 하나님 이시었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욥을 연단하셨습니다. 정금처럼 그 믿음을 빚으셨습니다. 그는 재를 머리에 무릎쓰고 회개하였고, 겸손히 하나님이 모든 선한 주권을 인정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마침내 그가 잃어버린 모든 것을 회복시켜주셨습니다.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 보다 더하게 하셨습니다. 양 일만사천, 약대 육천과 소 일천, 암나귀 일천을 두었고, 아들 일곱 딸 셋을 낳았습니다. 전국에 욥의 달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하박국 선지자 역시 고민하는 인생 문제가 있었습니다. 열매가 없는 문제였습니다. 영적인 많은 열매가 있어야 했는데 시대를 보나 어디를 보나 힘든 상황뿐 이었습니다. 사람이 제일 고통스러운 일 중에 하나가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농부가 열심히 일했는데 흉년이 들어 곡물을 거두지 못했다고 해보십시오. 얼마나 허탈합니까? 여자가 10년 20년이 지나도 자식이 없어보면 얼마나 상심이 큰지 모릅니다. 우리가 주님의 부름을 받아 목자가 되었는데 양이 없다고 해보십시오. 참으로 힘듭니다. 하박국 역시 수 년내에 부흥케 해달라고 기도했지만 부흥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안 되는 것을 어떻게 합니까? 그는 열매 없는 문제를 어떻게 극복했습니다. 마지막 17-18절을 보면 그 속에 답이 있습니다.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열매 없음을 보지 않고 열매의 근본이신 하나님, 바람의 실체이신 하나님을 바라본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진정한 열매임을 보았을 때 괴롭고 힘든 문제들이 싸악 풀렸습니다. 그는 무화과 나무에 열매가 없고,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어도 할렐루야 찬양하며 기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의 모든 답은 하나님 자신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바라보고 그 바람을 느끼는 사람은 문제에 빠지지 않습니다. 아멘! 20세기 독일을 대표하는 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헬무트 틸리케는 나치 치하에서 히틀러의 나치 정부를 비판하다가 교수직과 설교권을 박탈당했습니다. 세계 2차 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1944년부터 헬무트 틸리케는 슈투트가르트에서 그곳에 있는 교회들에게 '주님의 기도'에 대해서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헬무트 틸리케가 설교를 시작했을 때 슈투트가르트는 전쟁의 피해를 입기 전이었고 그곳 사람들의 삶은 활기를 띄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듬해인 1945년 초 헬무트 틸리케가 주님의 기도에 대한 설교를 끝마쳤을 때에는 슈투트가르트는 연합군의 공습으로 폐허가 된 뒤였습니다. 그 와중에도 헬무트 틸리케의 설교 원고는 스위스로 밀반출 되어서 그곳에서 '세계를 부둥켜 안은 기도'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책이 유럽의 각국 언어로 번역되어서 원치 않는 가운데에 세계 2차 대전에 참전하게된 병사들이나 포로들 그리고 전쟁의 피해자들인 유럽인들의 영혼을 사로잡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책을 통해서 믿음을 되찾았고 하나님에 대한 소망과 위로를 다시 얻을 수 있게 된 것이었습니다. 히틀러 나치 정권의 공포 정치.. 시도 때도 없이 계속되는 연합군의 공습.. 하루 아침에 살던 집과 일터가 잿더미로 변하고 사랑하는 가족들이 눈 앞에서 죽어가는 그 전쟁의 참화 속에서 대체 무엇을 믿을 수 있으며 또 무엇을 설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헬무트 틸리케는 그 전쟁의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변함없는 믿음과 소망.. 감사와 찬송을 설교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주님의 기도 마지막 부분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 헬무트 틸리케는 '주님의 기도' 이 마지막 부분에 관련하여 설교하면서도 하나님을 찬송할 것을 거듭 거듭하여 되풀이 강조했습니다. 찬송은 찬송하라고 한다해서 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찬송은 감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감사할 일이 있으면 찬송은 절로 수반되기 마련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감사할 일이 없으면 찬송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연이은 공습 속에서 삶의 터전이 잿더미로 변하고 사랑하는 가족들이 죽어가는 판에 대체 무엇을 감사할 수 있으며 어떻게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헬무트 틸리케는 그 절망 속에서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하나님을 찬송한다는 것은 만물을 그것이 도달할 궁극의 목표로 부터 내다보는 것을 의미한다.' 만물이 도달할 궁극적인 목표는 두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헬무트 틸리케의 그 말의 의미는 만물이 도달할 궁극적인 목표이신 하나님 다시 말해 모든 일의 결과 되시는 하나님.. 모든 인생의 종착점 되시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인간의 삶을 내려다보면 모든 것은 감사의 조건이 되고 하나님을 찬송하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깨달음을 안겨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동안 살아오면서 크게 기뻐하고 감사했던 일이 불행과 비극의 첫 걸음이 되었던 적은 얼마나 많았습니까. 반대로 울 기력도 없을 정도로 절망적이었던 상황이 지나놓고 보면 행복의 전주곡이었던 적은 또 얼마나 많았습니까. 이처럼 감사의 조건에 대한 우리의 판단이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것은 감사의 조건에 대한 판단 기준이 전적으로 우리 자신의 관점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우리 자신의 관점으로만 문제들을 바라봅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성공 출세하면 감사를 하고,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면 왜 하나님은 도와주시지 않았느냐고 세상 사람들처럼 원망하고 불신합니다. 믿는 사람이 믿지 않는 사람과 구분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믿지 않는 사람은 사고도 잘 터지고 병도 잘 걸리고, 실패도 하고, 믿는 사람은 사고도 안 나도 병도 안 걸리고, 죽지도 않고 성공만 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사의 모든 일들은 똑같이 겪습니다. 병원에 가보면 50%가 기독교 환지입니다. 무엇이 다릅니까? 어떤 성공에도 자만하지 않고 어떤 문제 앞에서도 원망 불신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모든 삶의 순간순간 성령의 바람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런 믿음이 없으면 연이은 공습 속에서 삶의 터전이 잿더미로 변하고 사랑하는 가족들이 까닭 없이 죽어가는 참화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께 찬송한 헬무트 틸리케와같이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만물이 도달할 궁극적 목표이신 하나님.. 모든 일의 결과 되시는 하나님.. 모든 인생의 종착점이 되시는 하나님의 관점으로 내려다보면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모든 정황이 아무리 힘들어도 그 주권을 인정하며 감사 찬송하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세상의 겉 모습을 보면 끊임없이 병들고 늙고 죽고, 사건 사고가 계속 터지고 있습니다. 인생의 문제 앞에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답을 찾지 못하고 절망해서 스스로 세상을 떠나는 사람도 많고, 남의 구호의 손길을 막연히 기다리며 죽어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답을 찾지만 답은 없습니다. 그 답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아골 골자기에 성령이 바람이 불 때 마른 뼈들처럼 살아나는 것처럼 하나님의 바람만이 희망입니다. 우리 모두 기도해야 겠습니다. 하나님의 바람이 고민하고 슬퍼하고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고, 또 육신은 풍족할지라도 메마른 영혼이 깨어서 살아나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새벽 큐티를 하며 말씀을 묵상 할 때 하나님의 바람을 느끼시기 바랍니다. 새벽을 깨어 기도 할 때 성령의 바람을 느끼십시오. 일터에서 땀흘려 일할때도 어굴을 스치는 바람을 느끼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바람으로 열대 무더위도 날려보내시기를 기도 합니다. 성령의 바람이 암과 여러 질명으로 고통하는 분들에게 불어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 합니다. 돌로미티 독서트래킹도 성령의 바람과 함께 많은 것을 배우고 느기며 다녀올 수 있기를 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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