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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자에게 따르는 표적 (막 16:17-18) 21. 4. 18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아멘. (시 34:9-10) |
[서 론]
할렐루야! 오늘 복된 자리에 잘 오셨습니다. 작은 소리로 옆 사람과 함께 인사를 나눕시다. ‘반갑습니다. 참 잘 오셨습니다.’ ‘여호와의 천사가 오늘도 우리 모두를 둘러 진 치고 보호해 주시는’(시 34:7)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오늘 설교 제목은‘믿는 자에게 따르는 표적’입니다. 따라해 보십시오. ‘믿는 자에게 따르는 표적’17절을 읽어볼까요?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표적’(表迹)이란 다른 말로 ‘기적’(奇跡)으로써 상식을 벗어난 기이하고 놀라운 일을 가리킵니다.
우리 기독교는 어떤 특징을 따라 여러 가지로 표현합니다. ‘십자가 종교’ / ‘부활의 종교’/ 말씀의 종교’/ ‘성령의 종교’등. 그런데 우리 기독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적의 종교’입니다. 곧 초자연적인 표적이 나타나는 종교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수많은 기적들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홍해바다가 갈라짐, 만나가 40년간 내림, 견고한 성벽이 무너짐, 사자굴에서 살아남, 용광로 불속에서 살아남, 쇠사슬이 저절로 풀어짐 등’
그런데 그런 놀라운 기적들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지금도 과거와 동일하게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계 1:8) 그러므로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은 기적들을 체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기적, 곧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면 나의 신앙은 더 견고해지고, 미지근한 신앙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믿는 자에게 따르는 표적, 곧 기적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본 론]
1. 예수님의 약속
오늘 읽은 성경은 죽었다가 살아나신(=부활) 예수님이 승천하기 직전에 하신 말씀입니다. 19절을 읽어볼까요?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을 마치시고 승천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승천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궁금하십니까? 행 1:9-11절을 읽어볼까요?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 1:9-11)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승천하기 직전 제자들에게 하신 약속입니다. 어떤 약속을 하셨을까요?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기적)이 따르리니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고,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여기서 ‘표적(表迹)’ 이란 상식을 벗어난 기이하고 놀라운 일, 곧 기적을 가리킵니다. 어떤 기적을 말하고 있습니까? ‘귀신을 쫓아내고, 새 방언을 말하며, 독으로 해를 받지 아니하고, 병자를 고칠 수 있는 것’ 이런 일은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런 놀라운 표적(기적)들이 누구에게 일어난다고 했습니까? 17절에 “믿는 자들에게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라고 했습니다. 믿는 자들에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믿는 자’ 란 누구를 말합니까? 예수님을 믿는 신자를 가리킵니다. 17절에 보니 “그들이 내 이름으로”라고 했는데, 여기서 ‘내 이름’ 은 바로 예수입니다.
곧 예수님은 자기를 믿는 자는 놀라운 기적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곧 귀신이 쫓아나는 일, 새 방언을 말하는 일, 여러 독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일, 병자를 고치는 일을 체험할 수 있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런 일은 내게 어떤 능력이 있어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이 그런 일을 우리 가운데 행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외에 세상의 어느 누구가 우리에게 그런 놀라운 약속을 합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다른 종교의 창시자나 이단의 교주들이 자기를 믿는 자들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약속합니까? 결코 약속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도 그런 일을 행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약속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놀라운 일이 우리에게 일어날 것이라고 약속하신 예수님께 감사하십시다.
2. 표적 내용과 체험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이 어떤 것들인지를 좀 더 살펴볼까요?
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귀신은 악한 영입니다. 영이란 사람처럼 육체는 없고,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입니다. 귀신은 종종 사람의 몸 안에 들어가 거합니다. 그래서 흔히 ‘귀신들렸다’ 라고 말합니다. 귀신은 사람 몸 안에 들어가 여러 가지 육체의 병이나 정신적인 병을 일으킵니다.
이처럼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귀신이 사람의 몸 안에 들어갔다면 어떻게 그 사람 속에서 귀신을 쫓아낼 수 있겠습니까? 주문을 외우거나, 굿을 한다고 귀신이 나갑니까? 나가는 척 속일 뿐입니다. 얼마 후면 다시 귀신이 그 사람 속에서 역사합니다.
사람의 몸 안에 들어간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 뿐입니다. 예수님은 살아 계실 때 수많은 귀신들을 쫓아내셨습니다. 귀신은 예수님이 누구인 줄을 알기에 예수 이름을 두려워합니다. 귀신은 예수 이름 앞에 굴복합니다. “귀신들린 사람이 예수를 보고 부르짖으며 그 앞에 엎드려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께 구하노니 나를 괴롭게 하지 마옵소서.”(눅 8:28)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를 믿는 자에게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곧 귀신이 두려워하는 유일한 이름, 곧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17절)
70명의 제자들이 나가 귀신들을 쫓아내는 일을 하고 돌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예수)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눅 10:17) 예수 이름 앞에 귀신들이 항복하고 떠나갔다는 것입니다.
[임동선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그가 경기도 여주에서 전도사로 목회할 때 여주경찰서 앞에 한민수라는 거구가 살았는데 귀신이 들렸습니다. 그가 한번 발작을 하면 밭과 산을 달리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여주읍을 소란케 했습니다. 그에게는 통행금지도 없었습니다. 그를 말릴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느날 그 집 식구들이 귀신들인 한민수를 교회로 데리고 와서 맡겼습니다. 교회에서 그의 귀신병을 고쳐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임동선 전도사님은 사택 옆방을 그의 거처로 삼고 매일 성도들과 함께 찬송을 부르며 귀신이 나가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며칠 후 한민수의 몸 안에 있던 귀신이 많이 울더니 그의 입에서 거품을 내며 몸을 오그라뜨리더니 나가갔습니다. 귀신이 나가자 그는 정신이 온전해져서 매우 선량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귀신들린 자가 고침받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지금도 예수님을 믿는 자는 그 이름(예수)으로 귀신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⑵ 새 방언을 말하며
방언이란 언어(말)를 말합니다. 예를 들면 영어, 중국어, 일본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을 방언이라고 합니다. 보통 이런 방언(말)은 배워야 말할 수 있습니다. 배우지 않은 언어는 말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독일어나 영어를 배우지 않으면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냥 방언이라고 말하지 않고 ‘새 방언’ 이라는 말을 하셨습니다. “새 방언을 말하며’ 그렇다면 ‘새 방언’ 이란 어떤 말일까요? 어느 나라의 말일까요? 새 방언은 어느 나라의 말이 아닙니다. 새 방언은 사람이 배운 말(언어)이 아닙니다.
새 방언은 성령이 주시는 언어(말)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고전 12:10-11) 새 방언은 사람이 배우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언어입니다.
새 방언은 대인(對人)방언과 대신(對神)방언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방언은 대인방언이고, 하나님만 알아듣는 방언을 대신방언이라고 합니다. 대인방언은 필요한 상황 때 주시고, 대부분은 대신방언을 주십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고전 14:2)
새 방언은 성령께서 사람의 혀(입)를 주장하여 터져 나오게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흔히 성령이 주시는 새 방언을 받을 때의 현상은 혀가 갑자기 이상해집니다. 그리고 이상한 말이 입에서 나옵니다. 그것이 바로 새 방언입니다. 사람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지만 하나님은 그 말을 알아듣습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주시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세계전도를 하는 중에 에베소 도시에 갔습니다. 그 곳에서 예수님을 믿는 여러 성도들을 만났습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물었더니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행 19:2)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를 하였더니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였습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행 19:6-7) 그들이 언제 방언을 배웠습니까? 방언을 배우지 않았는데도 성령을 받았더니 새 방언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금도 예수님을 믿는 자는 배우지 않는 말, 곧 성령이 주시는 새 방언을 말할 수 있습니다.
⑶ 독을 마셔도 해를 받지 아니하고
사람은 독에 약합니다. 그래서 독약을 사용하여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독약(농약)을 먹고 자살하기도 합니다. 가끔 독사에 물려 죽기도 하고, 벌에 쏘여 죽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독이 몸에 들어가도 아무런 이상이 없고, 몸이 해를 받지 않는다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런 놀라운 일이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나타날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18절) 그렇다고 해서 시험해 보려고 일부러 독을 마시면 안됩니다. 그것은 죄입니다. 오늘 약속은 우리가 독(毒) 인줄 모르고 마셨거나, 우리를 해치려고 독을 강제로 마시게 하였을 때 해를 받지 않도록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윤석전 목사님(연세중앙교회)의 모친은 신앙 때문에 30년 이상 남편으로부터 수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남편으로부터 맞다가 3번이나 기절했습니다. 여러 번 뼈가 부러졌습니다. 부러진 뼈를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여 부러진 상태로 살아오셨습니다. 그래서 윤목사님이 군에 입대할 때 어머니가 뼈가 망가진 곳을 만져보게 하더랍니다.
이처럼 모진 핍박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루는 남편이 쥐약을 한 움쿰 가져와 둘로 나누어 어머니에게 하나를 주면서 ‘쥐약 먹고 너 죽고 나 죽자’고 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몰려왔지만 아무도 말리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남편이 옆구리에 식칼을 차고, 한 손에는 낫을 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툇마루 기둥에 힘없이 기대있던 어머니가 한 알만 입에 들어가도 살이 타 들어갈 정도로 독한 쥐약을 한알 한알 꼭꼭 씹어서 다 먹었습니다. 그것을 지켜본 모든 사람들은‘이젠 죽었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한번 미소를 짓고는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사람들은 ‘이젠 죽으려고 들어가는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죽지 않고 후에 더 건강해졌습니다. 그것을 보고 놀란 남편은 아내가 더 이상 교회 가는 것을 막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후에 남편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일이 놀라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믿는 어머니를 독으로부터 그의 몸을 지켜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금도 예수님을 믿는 자는 혹 독을 마셔도 해를 받지 않는 일이 일어납니다.
⑷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낫고
병든 사람은 어떻게 고침을 받습니까? 약을 먹든지, 수술을 하든지, 침을 맞든지, 재활치료를 하든지 해서 고침을 받거나, 낫게 됩니다. 그러니 우리는 아플 때 약을 먹거나, 수술하는 것은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일은 믿음과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병의 치료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이 쓰여질 때는 지금처럼 좋은 의술이나 약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니 약을 먹을 수도 없고, 찾아갈 의사도 없었습니다. 병고침을 받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런 때에 예수님께서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18절)고 약속하셨습니다. 병자가 고침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으니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그래서 약이나 의술이 없던 그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자의 안수기도를 통해 병고침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것이 병자를 고치는 하나님의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의술이나 약이 매우 발전한 지금도 약이나 의술로 치료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의술이나 약이 소용없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바로 성경이 쓰여질 때처럼 믿는 자의 안수기도를 통해서 병고침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병자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면 병이 낫는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은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사람이 고치는 것이 아니라 손을 얹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고쳐주시는 것입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약 5:14-15)
[유명한 축구선수였던 차범근씨의 간증입니다. 그가 국가대표로 뛸때 무릎을 다쳐서 여러 치료방법을 써 보았지만 낫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는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였습니다. 그런데 차범근 아내의 친구가 이천석 목사님의 며느리였는데, 차범근 선수를 데리고 자기 시아버지에게로 데리고 가서 안수기도를 받게 했습니다.
이천석 목사님이 그의 상한 무릎을 붙잡고 약 15분 정도 안수기도를 하자 상한 무릎이 신기하게도 그 자리에서 깨끗하게 고침을 받았습니다. 의학적으로는 병든 자리에 손을 얹고 기도한다고 상한 무릎이 고침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나았습니다. 재발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축구선수로 뛸 수가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차범근 선수는 기회만 있으면 예수님을 전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독일에 가서 프로선수로 뛸 때 그의 별명이 ‘차붐’이지만, 또 다른 별명은 ‘차전도사’였다고 합니다. 시간이 있으면 사람들에게 ‘예수 믿으라’ 고 전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지금도 예수님을 믿는 자는 병든 자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면 병이 낫습니다.
3. 표적이 나타나려면
그런데 예수님이 약속한 이 놀라운 표적(기적)들이 나타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님은 이러한 기적이 믿는 자들에게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믿는 자들에게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여기서 믿는 자란 예수님을 믿는 자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표적들을 체험하려면 무엇보다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것입니다.
[어느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믿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는 네게 알게 하신 이는 혈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15-17)]
예수님이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을 고백한 베드로를 향해 복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단지 사람으로만 보지 말고 그를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고백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요일 4:15)
예수님을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⑵ 예수님을 우리의 구원자로 믿는 것입니다.
‘구원자’ 란 건져내는 자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 우리를 ‘죄와 사망’(멸망/지옥)에서 구원해 줄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예수’ 이름이 뜻이 ‘구원자’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21)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코자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주어 죽었다가 살아나셨습니다. 이 세상에 인간의 죄를 없애주고자 자신의 생명을 희생한 사람은 예수 밖에 없습니다.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위하심이라.”(요일 2:2) 그 예수님의 희생의 피값으로 우리는 죄용서를 받고 구원을 받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예수님을 향해‘당신은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결 론]
성도 여러분, 우리 주 예수님은 자기를 믿는 자에게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리라고 했습니까?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기적)이 따르리니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고,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17-18절)
귀신을 쫓아 내거나, 새 방언을 말하거나, 독으로부터 해함을 받지 않거나, 병자를 고치는 일이 나타나리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놀라운 일을 믿는 자가 직접 체험해야 신앙이 견고해집니다. 또한 신앙의 불도 붙습니다.
이제 이러한 표적(기적)들이 나에게도 일어나도록 예수님을 진실로 믿으십시다. 곧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믿으십시다. 그렇게 고백하십시다. ‘예수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 당신은 우리를 구원할 구원자이십니다.’
이런 고백과 믿음을 가짐으로써 믿는 자에게 따르는 놀라운 표적들이 여러분에게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