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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자손 예수여, 큰소리로 외칩니다.
(누가복음 18 : 35-43)
예수님께서 사랑의 음성과 몸짓으로 온 유대를 다니시던 그때, 여리고 성문가에는 바디메오라고 불리는 한 맹인 거지가 있었습니다. 그는 맹인이었고 그래서 특별한 일자리를 얻지 못했고 이런 이유로 그는 여리고 성문가에게 그곳을 지나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에 의지해서 구차한 목숨을 이어가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눈만 먼것이 아니라 귀까지 멀었으면 ‘어차피 저주받아 태어난 몸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되지’ 하고 모든 것을 체념할 수도 있었을텐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귀가 열려있고 입이 열려 있어서 여간 화가 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이 자기의 앞을 지나면서 자기를 놀리는 소리를 들으면 당장에 가서 그놈들을 혼내주고 싶고, 여자들이 수근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꼭 나를 보고 조롱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쁘고, 어쩌다가 말투가 전혀 다른 이방인들이 유대인인 자기를 보고 눈이라도 흘기는 듯 하면, 화가 치밀어 올라 견딜 수 없는 모욕을 느끼곤 하였습니다.
답답하고 지루한 나날들! 그래도 착한 사람들이 있어 동전 몇 닙을 던져주곤 하기에 목구멍에 풀칠은 할 수 있어 다행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매일 이렇게 앉아서 깡통을 차고 지나가는 사람들, 욕을 하고 가는 사람들, 낮선 이들의 야유와 놀림을 당하고 살기에는 너무나 초라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거지는 괴로와하게 됩니다. 어떻게 이 어두운 터널을 벗어날 수는 없을까?
‘만약 누군가 나에게 눈을 뜰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면’, ‘혹시나 용한 의사가 있어서 눈을 뜰 수만 있다면’ 하고 기대를 해보기도 하지만 이제껏 아무도 눈을 뜬 사람이 없기에 홀로 한숨만 쉬며 절망가운데 살던 어느날 거지는 놀라운 소식을 하나 듣게 됩니다. 유대땅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사람 예수라는 젊은이가 있는데 그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문둥병자나 중풍병자의 친구가 되어주고 세리의 친구가 되어주고 특히 자기와 같은 불치의 병을 가진 사람들을 낫게 해 줌은 물론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것이요 더우기 그는 다윗의 자손이라는 이야기이었습니다.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오래 전에 예언하신 대로 다윗의 자손이 오시면,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바로 그 분이 오시면 소경이 눈을 뜨게 될 것임을!
그러던 어느날 예수님이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고 이사람은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사방이 조용해 지면서 예수님인듯한 어떤 사람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데려오라! 그러자 힘이 세어 보이는 어떤 사람이 자기의 손을 잡고 그분 앞으로 인도함을 느끼게 되었고 자기를 데려오라 명한 그 목소리가 조용하면서도 작은 목소리, 사랑의 음성으로 하나의 질문을 던졌습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거지는 벅차오르는 가슴으로 자신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리고 성문! 그 많은 사람이 다니는 이 한 모퉁이에서 그렇게 오랜 세월 구걸을 하면서 자기를 조롱하는이, 깡통을 멀리 차버리는 이, 동전을 주고 도망하는 이, 욕을 하고 가는 사람들은 만난 적이 있어도 이렇게 가까이 다가와서 네게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묻는 이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 이것이 사랑이라는 것인가 보다. 이런 분이라면 틀림없이 이분은 나를 고쳐주실 수 있을 거다. 그는 갑자기 어떤 강한 마음이 생김을 느꼈고 그래서 자신 있게 부탁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결국 소경은 자기의 소원을 이루게 되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쫒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마가복음에도 기록이 되어있는 유명한 소경 거지 바디메오의 이야기 입니다. 바디메오는 소경이었고 거지이어서 도데체 삶에 희망이 없는것 같아 보였지만 그는 예수를 만났고 그래서 그는 병고침의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당시 예수님의 주위에는 많은 환자들이 모여 있었고, 예수님이 가시는 곳 마다 소경이요, 거지인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았을 것인데 왜 오직 바디메오만이 치료함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오늘 이 땅에는 영적으로 소경인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고, 자신의 부와 명예와 이익만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교회는 다녀도 참신자는 적고, 직분을 가진 자들은 많으나 일꾼은 적은 시대를 우리는 살아갑니다. 형식과 타성에 젖어서 예수를 믿는 사람은 많아도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가슴에 모시고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 시간 바디메오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
바디메오가 예수님을 만나 문제 해결을 받을 수 있었던 여러 가지 원인들을 나누어 보십시오.
기회, 신앙고백, 분명한 소원이 있었습니다.
1. 기회를 놓치지 않은 사람입니다. (37절)
37)예수께서 지나신다 하니 : 지나신다는 겁니다. 오신것이 아니라 지나가시는 것이요, 서서 계신 것이 아니라 움직이시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것이지 결코 그 바디메오를 고쳐주시기 위해서 여리고를 찾아오신 분은 아니셨습니다.
38)다윗의 자손 - 일반적으로 메시야를 의미할 뿐 아니라 세상의 구주로서 인간을 구원할 예수님의 신적사역을 나타내는 성경적 표현이었습니다. 메시야 = 그리스도
기회는 자주 오지 않습니다. 꼭 잡아야 합니다.
. 기회는 말같이 달려와서 새같이 날아간다고 합니다.
. 세르반테스는 햇볕이 있을때 건초를 말려라! 그랬습니다. 기회를 잘 이용하라는 것입니다.
. 항상 우리가 열심을 내어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생의 길에 있어서 그런 때가 있는데, 성경을 읽을 수 있는 때, 찬송할 수 있는때, 기도할 수 있는때, 전도할 수 있는때,
- 삭개오도 기회를 놓치지 않은 사람
- 빌립은 말을 타고 지나가는 이디오피아 내시를 전도한 사람
- 엘리사를 대접한 수넴여인은 기회를 놓치지 않아서 복을 누린 사람이다.
. 기독교는 안일한 바티칸의 궁중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카타콤의 순교자들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정말이지 이제는 예수 못 믿겠다, 기도할 수 없다,
기도해야 소용없다 할 때가 가장 잘 믿어야 할 때이다.
. 기도해야 할 때 기도소리가 없으면 다른 것이 소리칩니다
찬송해야 할 때 찬송소리가 나지 아니하면 다른 것이 소리를 발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 말씀을 듣지 아니하면 엉뚱한 소리가 들립니다
정의를 외칠 때 가만히 있으면 불의가 날뛰게 됩니다.
간절하게 외친 사람이다.
내가 간절하지 않은데 어찌 응답이 있겠습니까?
38)외쳐가로되 : 말하지 않는 소원을 결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가슴속에 품은 생각이 있으면 우리는 이 일을 말해야 합니다.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운명을 극복하려 도전한 사람이다. 믿음은 체념하는 운명주의적 사고를 바꾸는 힘입니다.
소경이면 다 눈을 뜨고 싶겠지 하고 생각하면 오해입니다. 눈 뜨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고, 눈을 뜨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그 간절함이 못 미치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예)38년된 병자 –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의지를 물으십니다. 아직 포기하지 않았느냐?
2. 참된 신앙고백이 있었습니다.(38절)
본문 38절에서 “ 맹인이 외쳐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이기소서 하거늘”고 하였습니다.
그는 나사렛 예수(촌놈 예수)라 부르지 않고 다윗의 자손 예수(메시야라는 의미)로 고백합니다.
다윗의 자손에 대한 믿음의 고백이 중요하다.
다윗의 자손은 구약성경이 예언해 놓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의 다른 별명들은 메시야, 그리스도, 기름부음 받은 자 등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보내시는 사람 그의 이름이 다윗의 자손입니다. 죄인들을 죄의 굴레에서 구원하고, 병자들을 아픔에서 구원하고, 눌린자들에게 자유함을 주고, 애통해 하는 자들에게 위로를 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직접보내시는 사람 다윗의 자손! 성경은 그를 예언했습니다.
오래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예언해 주셨었습니다.
이사야 61장 1절로 7절에 보면 그는 많은 일을 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 가난한 자에게 부유함을 준다고 했습니다.
- 마음이 상한 자를 고쳐준다고 위로해 준다고 했습니다.
- 포로된 자에게 자유함을 준다고 했습니다.
- 갇힌자를 놓아 준다고 했습니다.
-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의 한을 풀어주는 날이 올 것을 선포하고
- 예배당에서 재를 뒤집어 쓰고 심하게 슬퍼하는 이들에게는 꽃 면류관을 대신 주시고
- 근심가운데 있는 이들에게는 찬송을 부르게 해 주고
- 불의를 한탄하는 이들이 의로움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해주 어 하나님께 영광돌리게 하고
-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고,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키고,
- 종살이하던 이들이 다른 사람들을 부리며 살게 해 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함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바디메오는 많은 성경말씀 가운데서도 이 말씀에 큰 은혜를 받은 듯 보입니다.
오직 다윗의 자손만이 나를 해방시킬 수 있습니다.
오직 다윗의 자손 만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보내시는 바로 그분만이 내 어둠을 빛으로 인도할 수 있을 것이다. 굳게 믿은 것이지요
초자연적인 능력을 믿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메시야의 능력을 인간의 이성으로 제한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 대한 정확한 신앙고백을 간직한 사람입니다.
당시에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선지자 내지는 뛰어난 선생으로 이해하였던 사실을 감안할 때 그의 고백은 상당한 수준의 신앙고백입니다.
당시에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다윗의 자손 메시야가 오시면 소경이 눈을 뜨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믿은 사람입니다.
(사 35:5)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사 35:6)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바디메오는 참된 용기의 사람입니다 : 도전하는 용기, 고백하는 용기, 인내하는 용기, 재도전하는 용기입니다. 운명을 향해 믿음으로 도전한 사람이다.
예수님, 이렇게 살다가 죽을수는 없습니다!!!
이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분명한 신앙고백”
예수님을 정확히 고백할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3. 분명한 소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41절)
39)꾸짖어 잠잠하라 :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이 계속해서 잠잠하라고 책망하는 동작을 묘사하는 표현이고 38절 : 보통으로 부르짖는 것이고, 39절은 억제할 수 없는 감정의 본능적인 부르짖음을 말합니다.
소원은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물으시는 것은
출신이 어디냐? 학교는 어디 나왔느냐? 식구는 몇이냐?가 아니라
네게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네가 어떤 믿음을 가지고 나왔느냐는 질문입니다.
예수님의 3가지 질문은
/ 데려오라!
/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코카 콜라의 사장이었던 사람이 세계로 코카 콜라를 판매하며 다닐때 그는 늘 말했답니다.
내 혈관에는 피가 흐르지 않고 코카 콜라가 흐른다. 그토록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제가 서울 노원구 중계교회에서 교육전도사로 있을 때 교사8명과 어린이 30명을 3개월만에 100명을 모이게 한 적이 있습니다. 함께 일한 사람과 철저한 교육과 뜨거운 사랑과 기도로 맛보는 부흥입니다.
지금 우리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교회를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냥 보통가는 사람이 아니라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겠다는 참된 일꾼들이 필요합니다.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뜨겁게 기도하고 뜨겁게 사랑하고 뜨겁게 전도하는 것입니다.
몇 주전에 이천에 갔더니
교회심장소리 전도의 소리라고 써 있었습니다. 눈물이 차매 예배당이 찹니다.
1)매일 1시간 기도하기 2) 매주 예배 승리하기 3) 매년 1명 전도하기입니다.
매일 성경보고 기도하고 전도하는 사람이 되셔야 합니다.
바디메오가 이 소리를 중단할 수 없는 이유는?
-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기 때문에
- 자기의 처지가 너무나 비참한 운명이었기 때문에
체면 따지지 큰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 나의 소원을 들어주실 것이라는 확신 때문에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네게 무엇을 해 주시기를 원하느냐?
주여 보기를 원합니다.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온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주님만이 나의 꿈입니다.
주님만이 나의 꿈입니다.
주님만이 나의 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