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사랑에게,
강남역 7번 출구, 그 두 번째 이야기
이젠 밤공기도 차갑지 않네요.
또 한 계절이 가고, 한 계절이 오고 있습니다.
세월이.. 시간이 언제 이렇게 가 버린 걸까요,
그리고 난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그동안 로봇처럼 산 것 같아요.
마음도, 정신도 없는 로봇처럼..기계처럼...
최근에 개봉한 영화 한 편 본 게 없고,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 제목 하나 제대로 모르고,
여행이라는 걸 가 본지는 언제였는지..기억조차 가물거리고...
오늘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 나갔는데, 다들 날 보고 놀라더군요.
늘어난 허리사이즈를 보고 놀라고, 무뎌진 내 감성에 놀라고,
삶에 찌든 내 말투에 놀라고...
"완전 너 아저씨 됐다!! 예전엔 안 그랬잖아"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습니다.
내 나이 마흔이 돼도,
극장에 가서 영화도 보고, 서점에 들러 책도 고르고,
문화적으로, 문학적으로.. 그렇게 살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렇게 살게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삶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진 않더군요.
영화감독을 꿈꾸던 나의 영화사랑,
전국 백일장을 휩쓸던 나의 글 솜씨,
여름방학 때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돌아다니던 나의 낭만과 용기...
세상을 알고 싶고, 느끼고 싶었던 나의 욕심..
그런 욕심이 어디로 다 사라져버린 건지..모르겠습니다.
아내와 이제 막 두 살 된 딸,
그녀들이 내 삶을 이렇게 로봇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그렇다고.. 핑계를 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오늘 깨달았습니다.
날 기계처럼 살게 하는 건, 변해버린 내 욕심 때문이라는 걸요..
영화와 책과 여행이 아닌,
안정된 미래를 위해 통장으로 내 삶을 채우고 싶어진.. 내 욕심 때문이라는 걸..
강남역 7번 출구 앞입니다.
지하철을 타러 계단을 내려가려다가 다시 올라왔어요.
저기, 영화관이 보이는 것 같아서요.
오늘 밤..어디선가 자꾸 필름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사랑이...사랑에게 말합니다.
잠시 쉬었다 가도 괜찮다고,
매일이 전쟁같지 않아도 괜찮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