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릉김씨의 시조 명주군왕의 34대손 김시습(金時習)은 호(號)는 매월당(梅月堂)이며, 법명(法名)은 설잠(雪岑)이며 본관(本貫)은 강릉(江陵)이다.
조선조 제일의 천재이고 시인, 유학자, 승려이며 한국소설의 효시인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쓴 조선의 선비 매월당 김시습(梅月堂金時習 1435-1493)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집현전 학사 최치운(崔致雲)이 그의 재주를 보고 경탄(警歎)하여 논어 첫머리에 나오는 공자님 말씀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悅乎)'에서 이름을 시습(時習)이라 지어 주었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율곡은 ‘시습(時習)’이라는 이름 역시 김시습의 타고난 천재성에서 비롯됐다고 적었다.
아홉 번이나 과거시험에서 장원을 차지했다고 해서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고 불렸던 천재 율곡 이이가 천재라는 기록을 남긴 유일한 인물이 김시습.
5세(五歲)의 나이로 세종 임금의 부름을 받은데다 전(全)혀 당황(唐慌/唐惶/당황)하지 않고 자신의 실력을 유감(遺憾)없이 발휘(發揮)한 천재 신동(神童) 김시습을 이후 '김오세(金五歲)'라고 불렀다.
梅月堂 金五歲 詩
少小趨金殿(소소추금전) / 아주 어릴 때 황금 궁궐에 나갔더니
英陵賜錦袍(영릉사금포) / 영릉(세종)께서 비단 도포를 내리셨다
知申呼上膝(지신호상슬) / 지신사(승지)는 날 무릎에 앉히시고
中使勸揮毫(중사권휘호) / 중사(환관)는 붓을 휘두르라고 권하였지
競道眞英物(경도진영물) / 참 영물이라고 다투어 말하고
爭聸出鳳毛(쟁담출봉모) / 봉황이 났다고 다투어 보았건만
焉知家事替(언지가사체) / 어찌 알았으리 집안 일이 결딴이 나서
零落老縫蒿(영락노봉호) / 쑥대머리 처럼 영락할 줄이야!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은
10代에는 학문(學問)에 전념(專念)하였고,
20代에는 산천을 벗하며 천하를 돌아 다녔으며
30代에는 고독한 영혼을 이끌고 정사수도(靜思修道)로 인생의 터전을 닦았고
40代에는 더럽고 가증스러운 현실을 냉철히 비판하고 행동으로 항거한 후
50代에 이르러서는 초연히 낡은 허울을 벗어 버리고 정처(定處)없이 떠돌아다니다가
마지막으로 찾아든 곳이 충청도 홍산(鴻山)의 무량사(無量寺)였다.
무량사는 현재 제 6 교구 마곡사(麻谷寺) 말사(末寺)이다.
사청사우(乍晴乍雨)
乍晴乍雨雨還晴(사청사우우환청) / 잠시 개었다 비 내리고 내리다 다시 개니
天道猶然況世情(천도유연황세정) / 하늘의 이치가 이럴진대 세상 인심이야 어떠랴
譽我便是還毁我(예아편시환훼아) / 나를 높이다 가는 곧 도리어 나를 헐뜯고
逃名却自爲求名(도명각자위구명) / 명리를 피하다가는 돌이켜 스스로 공멸을 구한다
花開花謝春何管(화개화사춘화관) / 꽃피고 지는 것을 봄이 어찌 상관하겠는가
雲去雲來山不爭(운거운래산부쟁) / 구름이 오고 구름이 가도 산은 다투지 않는 법
寄語世人須記認(기어세인수기인) / 세상 사람들에게 말하노니 꼭 새겨 두기를
取歡無處得平生(취한무처득평생) / 기쁨을 취한들 평생 즐거움을 누릴 곳은 없다는 것을
위 시(詩)는 김오세(金五歲)가 날씨처럼 변덕스러운 세상의 인심을 한탄(恨歎/恨嘆)한 작품이다. 매월당 김시습은 세상 사람들에게 명예와 부귀의 헛됨을 경계하도록 하고 자연에 순응(順應)하는 삶을 살아갈 것을 노래하고 있다.
‘매월당(梅月堂)’이라는 호에서 알 수 있듯이 매화와 달을 사랑했던 광사(狂士).
율곡이 말했듯이 김시습은 유가와 불가와 도가에 모두 통달한 사람이었다.
‘매월당(梅月堂)’이라는 호에서 알 수 있듯이 매화와 달을 사랑했던 광사(狂士).
율곡이 말했듯이 김시습은 유가와 불가와 도가에 모두 통달한 사람이었다.
심사정 <매월만정>
‘매화’는 선비의 절개(節槪)를 상징하는 유가(儒家)의 기호(嗜好)이고, ‘달’은 깨달음 혹은 해탈(解脫)을 상징하는 불가(佛家:선가(禪家))의 기호이자 궁극적인 진리에 도달하는 도가(道家)의 대도(大道)를 표상하는 기호이기도 하다.
또한 율곡은 김시습이 “마음은 유교에 있고 행적은 불교를 따라” 세상 사람들이 해괴하게 생각했다고 적고 있다. 그의 나이 21세 때인 1455(세조1)년 삼각산(三角山) 중흥사(重興寺)에서 공부하던 중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簒奪) 소식을 듣고, 3일간 문을 잠근 채 통곡(痛哭/慟哭)을 하고 보던 책(冊)을 모두 모아 불사른 뒤 스스로 머리를 깎고 승려(僧侶)가 되어 전국각지(全國各地)를 유랑(流浪)하였다. 그리고 그가 남긴 역대(歷代) 시선집(詩選集)에 뽑히고 있는 것은 20여(餘) 수(數)에 이른다.
그 가운데 지금 계절에 맞는 시 몇 편을 옮겨 본다.
何處秋深好(하처추심호)
何處秋深好(하처추심호) / 어디에 가을이 깊으면 좋은가
漁村八九家(어촌팔구가) / 예닐곱 인가가 있는 어촌이라네
淸霜明枾葉(청상명시엽) / 맑은 서리에 감나무 잎은 밝은데
綠水양蘆花(녹수양로화) / 푸른 물결에 갈대꽃이 일렁인다네
曲曲竹蘺下(곡곡죽리하) / 구불구불한 대 울타리 아래에
斜斜苔徑사(사사태경사) / 비뚤비뚤한 이끼 낀 길이 멀어라
西風一釣艇(서풍일조정) / 가을 바람에 낚시배 한 척 띄우고
歸去逐煙霞(귀거축연하) / 안개와 노을을 따라 돌아가리라
何處秋深好(하처추심호) / 가을이 깊어 그 어디가 좋은가
秋深隱士家(추심은사가) / 은사의 집에 가을이 깊었구나
新詩題落葉(신시제낙엽) / 새로운 시는 낙옆에다 쓰고
夕膳철籬花(석선철리화) / 저녁 찬에는 울타리 꽃을 줍네
木脫千峰瘦(목탈천봉수) / 나무잎 떨어지니 산봉우리 야위고
苔深一徑사(태심일경사) / 이끼가 깊어 외로운 길이 멀다
道書堆玉案(도서퇴옥안) / 도서를 옥책상 위에 쌓아 두고서
瞑目對朝霞(명목대조하) / 눈감고 아침 노을을 마주하네
何處秋深好(하처추심호) / 그 어떤 곳이 가을이 깊어 좋은가
秋深商旅家(추심상여가) / 가을이 깊은 장사하는 여관이도다
石穚留月色(석교유월색) / 돌다리에는 달빛이 머무는데
楓樹染霜花(풍수염상화) / 단풍나무는 서리꽃에 물들었다
孤館三年夢(고관삼년몽) / 외로이 여관에서 3년을 꿈꾸며
離亭十里사(이정십리사) / 떠나 온 정자는 10리나 멀어졌네
關山何處是(관산하처시) / 고향은 그 어느 곳에 있는가
遙望隔雲霞(요망격운하) / 구름과 노을 넘어서 멀리 바라본다.
도중(途中)
貊國初飛雪(맥국초비설) / 맥국에 첫 눈 날리니
春城木葉疏(춘성목엽소) / 춘성에 나무 잎 등성하구나
秋深村有酒(추심촌유주) / 가을 깊어 마을에 술이 있지만
客久食無魚(객구식무어) / 나그네는 생선 맛본지 오래구나
山遠天垂野(산원천수야) / 산은 멀어 하늘이 들판에 드리웠고
江遙地接虛(강요지접허) / 강은 아득히 흘러 땅이 허공에 닿아있네
孤鴻落日外(고홍낙일외) / 외로운 기러기 지는 해 밖으로 날아가고
征馬政躊躇(정마정주저) / 나그네 태운 말도 갈 길을 머뭇거린다.
눈이 내리는 늦가을의 산촌 정경과 떠도는 나그네의 심경이 잘 어우러져 있는 작품이다.
등루(登樓)
向晩山光好(향만산광호) / 해질녘 산색은 아름답고
登臨古驛樓(등림고역루) / 오래 된 역 누대에 오른다
馬嘶人去遠(마시인거원) / 말은 울고 사람은 멀어지고
波靜棹聲柔(파정도성유) / 물결은 고요하니 노젓는 소리 부드럽다
不淺庾公興(불천유공흥) / 유공의 흥취가 옅지 않아
堪消王粲憂(감소왕찬우) / 왕찬의 근심을 녹일만 하다
明朝度關外(명조도관외) / 내일 아침이면 관 밖을 건너리니
雲際衆峰稠(운제중봉조) / 저 멀리 구름 끝에 산봉우리 빽빽하다.
등 소양정(登 昭陽亭)
鳥外天將盡(조외천장진) / 날고 있는 새 멀리 하늘은 다하고
愁邊恨不休(수변한불휴) / 시름에 겨워서 한을 쉬지 않는다
山多從北轉(산다종북전) / 산은 많이 북쪽에서 다가 오는데
江自向西流(강자항서류) / 강은 저절로 서쪽을 향해 흐른다
雁下沙汀遠(안하사정원) / 기러기 내리노니 모래톱은 멀고
舟回古岸幽(주회고안유) / 배가 돌아오매 옛 언덕 그윽하다
何時抛世網(하지포세망) / 언제라도 세상 그물 던져 버리고
乘興此重遊(승흥차중유) / 흥을 타고 여기 와서 다시 놀거나
독목교(獨木橋)
小橋橫斷碧波頭(소교횡단벽파두) / 푸른 물에 작은 외나무 다리
人渡浮嵐翠靄深(인도부람취애심) / 하늘거리는 아지랭이 푸른 노을 건너
兩岸蘚花經雨潤(양안선화경우윤) / 비 맞아 아름다운 언덕의 이끼 꽃
千峰秋色倚雲侵(천봉추색의운침) / 가을 빛 짙은 뭇 봉오리에 구름이 감도는데
溪聲打出無生活(계성타출무생활) / 시냇물 소리 무생의 설법을
松韻彈成太古擒(송운탄성태고금) / 솔바람 소리 태고의 거문고를 타네
此去精廬知不遠(차거정려지불원) / 그 절 여기서 멀지 않겠거니
猿啼白月是東林(원제백월시동림) / 밝은 달 아래 잔나비 울소리 나는 곳이 동림사
독목교(獨木橋)는 순 우리말로 외나무다리 입니다.
압구정(鴨鷗亭) 한명회(韓明澮)의 시(詩)
靑春扶社稷(청춘부사직) / 젊어서는 사직을 붙잡고
白首臥江湖(백수와강호) / 늙어서는 강호에 묻힌다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의 시(詩)
靑春亡社稷(청춘망사직) / 젊어서는 나라를 망치고
白首汚江湖(백수오강호) / 늙어서는 세상을 더럽힌다
一鉢卽生涯(일발즉생애) / 바랑 하나에 생애를 걸고
隨緣度歲華(수연도세화) / 인연 따라 세상을 살아가요
笠重吳天雪(입중오천설) / 삿갓은 오직 하늘의 눈(雪)으로 무겁고
是山皆有寺(시산개유사) / 이 산 어디에나 절이 있을 터이니
何處不爲家(하처부위가) / 어디인들 내 집이 아니겠느냐
他年訪禪室(타년방선실) / 다른 해에 선실(禪室)을 찾을 때에
寧禪路岐사(영선로기사) / 어찌 길이 멀고 험하다고 탓하겠느냐
김시습은 가슴에 가득 쌓인 비분강개(悲憤慷慨)한 마음을 풀어낼 길을 찾지 못하자 풍월(風月), 운우(雲雨), 산림(山林), 천석(泉石), 궁실(宮室), 의식(衣食), 화과(花果), 조수(鳥獸) 등 세상 만물은 물론이고 인간사의 시비(是非), 득실(得失), 부귀(富貴), 빈천(貧賤), 사병(死病), 희로(喜怒), 애락(哀樂)이며 성명(性命), 이기(理氣), 음양(陰陽), 유현(幽顯)에 이르기까지 유형(有形)이든 무형(無形)이든 가리지 않고 말로 옮길 수 있는 것이면 모두 글로 나타냈다.
율곡은 이 때문에 김시습의 글은 “물이 용솟음치고 바람이 일어나는 것과 같고 산이 감추는 듯 바다가 잠기는 듯하다가 신(神)이 선창하고 귀신이 화답하는 듯해 보는 사람이 그 실마리를 종잡을 수 없게 하였다”고 했다.
매월당(梅月堂)은 배운 바를 실천(實踐)하는 지성인(知性人)이었다. 이이(李珥) 율곡(栗谷) 선생(先生)은 '백세(百世)의 스승'이라고 칭찬(稱讚)하기도 하였다.
불교의 윤회로 보면 신라의 최치원이 조선의 매월당이 되고, 매월당이 율곡이 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매월당은 최치원을 유달리 좋아했고, 율곡은 자신이 매월당의 후신이라는 것을 피력한 적도 있다.
笑浮生兼慶岑寂 (소부생겸경잠적) 덧없는 삶 웃어넘기고 한적한 삶이 다행하다
自笑營生薄(자소영생박) 나의 삶이 박복함을 스스로 비웃으니
而無長者風(이무장자풍) 장자의 풍도가 없어서라.
客至從無語(객지종무어) 손님이 와도 그와 말도 없고
貧來任固窮(빈래임고궁) 가난이 와도 궁한 대로 맡겨두노라.
題詩聊遣寂(제시료견적) 시를 지으며 그런대로 적막하게 살며
擲筆欲摩空(척필욕마공) 붓을 던져 허공을 만져보련다
老去壯心在(노거장심재) 늙어가도 젊은 마음은 여전해
欣聆松院風(흔령송원풍) 흔연히 솔 가득한 집에 부는 바람 듣는다.
김시습의 사리
지난 6월 30일 일제강점기 부여박물관으로 이전된 김시습의 사리를 원래의 봉안처인 무량사로 이전되어 봉안되는 것이 타당하다”고 혜문스님은 지적했다. (위 내용은 인터넷과 문서에서 발췌)
강원도 강릉시 운정동 288-1번지 경포호수(鏡浦湖水) 옆에 가면 김시습 기념관이 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_()()()_
_()()()_
유익한 정보 고맙습니다. 일주화님
고맙게 잘배웠습니다_()()()_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