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Phnom Penh Post 2012-12-28 (번역) 크메르의 세계
캄보디아 법원 : 노동운동가 암살 누명자들에게 졸속 판결
Guilty verdicts upheld in Chea Vichea slay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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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Vireak Mai / Phnom Penh Post) '항소법원'이 재구속 판결을 내린 직후, 본 섬나앙 피고인이 경찰에 의해 구치소로 끌려가면서 울부짖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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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Sreng Meng Srun) '항소법원'이 재구속 판결을 내린 직후, 속 삼 오은 피고인이 경찰에 의해 구치소로 끌려가면서 울부짖고 있다. |
공동 취재 : Kim Sarom, Buth Reaksmey Kongkea, Abby Seiff
'캄보디아 자유노조'(Free Trade Union: FTU)의 찌어 위찌어(Chea Vichea) 의장이 암살당한 후, 그 범인으로 지목되었던 본 섬나앙(Born Samnang)과 속 삼 오은(Sok Sam Oeun) 피고인이 최초로 체포되었던 날로부터 거의 9년만인 어제(12.27) 경찰의 유치장에 다시금 영치되었다. 이들은 눈물을 흘리며 도움을 요청했다. '항소법원'은 지난 2004년에 이들에게 내려졌던 징역 20년형 판결을 그대로 유지했고, 4년 전에 이뤄졌던 임시 석방 명령도 취소시켰다.
당시 36세였던 찌어 위찌어 의장은 지난 2004년 1월 22일 드물게도 외출에 나섰다가 백주대낮에 총격을 받고 살해당했다. 찌어 위찌어 의장은 당시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던 인사였고, 권력층에 적을 두고 있었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사건 일주일 뒤에 경찰이 범인이라며 공개한 남성 2명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들이다. 이들이 바로 본 섬나앙과 속 삼 오은 피고인이다.
당시 인권단체, 노동자들과 노조들, 그리고 각국 대사관들은 이 남성들이 강압적인 자백을 하여 정치적 사건의 암살범이 됐다고 주장하는 소란이 계속됐지만, 이들에 대한 수사와 기소, 그리고 판결까지 신속하게 이뤄졌었다. 이후 캄보디아 대법원은 지난 2009년 초에 두 사람에 대해 임시 석방명령을 내리고, 신속하게 방면했었다. 그리고 이 민감한 정치적 사건은 '프놈펜 지방법원'과 '항소법원'을 오가며 몇년간 진행되었다.
지난달 최종 공판이 열렸을 때, 변호인단은 두 남성의 알리바이 및 두 사람이 범인이 아니라는 핵심 증인들의 증언 등, 피고인들에게 유리한 증거들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판사들은 그러한 논증에 그다지 무게를 두지 않았다. 재판장인 쭈온 순렝(Chuon Sunleng) 판사는 어제 담담하게 판결문을 낭독하면서, 두 피고인들이 유죄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순렝 판사는 피고인들이 체포 직후에 했던 자백 내용(=나중에 번복했던 내용)을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두 피고인은 법원이 석방을 하기엔 충분한 증거를 갖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그들의 답변이 이전에 행했던 답변들과 엇갈리기 때문이다. 본 법원은 그들의 답변들을 경찰의 수사 보고서와 비교했지만, 일치하지 않았다. 경찰에서 행했던 자백에 근거해보면, 피고인들이 주장하듯이 경찰의 수사과정에서 구타나 폭력이 있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
재판장이 이 사건에 대한 역사적 판결문을 낭독해나가는 동안, 고(故) 찌어 위찌어 의장의 남동생이자 노조운동가인 찌어 모니(Chea Mony) 위원장은 머리를 감싸안은 채 흐느끼기 시작했다. 본 섬나앙과 속 삼 오은 피고인은 수갑을 앞으로 찬 채 계속해서 서 있었다. 재판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따라서 항소법원은 '프놈펜 지방법원'이 지난 2005년에 내렸던 판결을 그대로 유지한다. 본 섬나앙 및 속 삼 오은 피고인에게 내려진 징역 20년형 판결은 그대로 유지되며, 두 사람이 합쳐서 찌어 위찌어 씨의 유족들에게 4천만 리엘(=1만 달러)를 배상할 것과 피고인들의 재수감을 명령한다." |
재판장의 낭독이 끝나자, 조용히 대기하던 경찰관 5명이 피고인들을 데리고 구곳을 위해 검사실로 이동했다. 충격을 받은 속 삼 오은 피고인은 침묵했고, 본 섬나앙 피고인은 경찰들과 실랑이를 벌이다 흐느꼈다. 그는 "왜 이러는건가? 왜?"라고 소리쳤다.
이번 판결에 놀란 이들은 많지 않았다. 아마도 원래의 판결이 뒤집히리라곤 예상되지 않았던 탓인지, 국내 보도진이나 심지어는 인권단체들도 그다지 많이 나타나지 않았다. 또한 '벙꺽지역 철거민 여성 운동가에 대판 선고공판'과 달리 법원 바깥에는 단 한명의 시위대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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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암살당한 캄보디아 노동운동가 찌어 위찌어 위원장. 그는 1997년 삼 랑시 의원이 주도한 '야당집회 수류탄 투척사건' 테러현장에서 부상을 입기도 했다. 이러한 고비를 넘긴 그는 결국 2004년 1월 피살되고 말았다. |
한 인권운동가는 판결 직후 속 삼 오은 피고인의 가족들을 피고인과 만나도록 데려왔다. 속 삼 오은 피고인의 아내인 넹 소켄(Neng Sokhen) 씨는 법원에 도착한 직후 보도진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난 이해가 안 된다. 법원은 하루 전에야 선고공판을 발표했고, 남편도 내게 자신이 풀려날 것이라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는 결백하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
소켄 씨는 아기인 딸을 한 손에 안은 채, 다른 손으로 연신 눈물을 훔쳤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 남편은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다. 그가 없다면 우리는 의지할 데가 없어진다." |
소켄 씨가 말을 하고 있을 때, 피고인 두 사람이 수갑을 찬 채 검사실에서 나왔다. 일군의 경찰들이 소켄 씨와 보도진을 밀치며 길을 튼 사이, 피고인들은 차량에 태워졌다. 피고인들은 훈센(Hun Sen) 총리와 노로돔 시하모니(Norodom Sihamoni) 국왕의 도움을 호소했다. 속 삼 오은 피고인은 다음과 같이 외쳤다.
"나는 살인범이 아니다. 나는 잘못된 재판의 피해자이다." |
변호인단은 이번 판결이 불합리한 것이라면서, 항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망한 찌어 위찌어 의장의 미망인인 찌어 낌니(Chea Kimny) 씨를 위한 원고측 변호인들 역시 피고측 변호인단과 동일한 감정을 표시했다. 찌어 낌니 씨는 남편이 암살당한 직후부터 핀란드에 망명하여 살고 있다.
낌니 씨의 변호인인 까오 띠(Kao Ty) 변호사는 고(故)-노로돔 시하누크(Norodom Sihanouk) 전임 국왕이 지난 2005년에 두 피고인의 부모들에게 보냈던 서한을 언급하면서, "심지어는 작고하신 상왕 전하조차 두 사람이 찌어 위찌어의 암살범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었다"고 말했다. 시하누크 공은 당시 편지에서, 피고인 두 사람이 진범을 감추기 위한 희생양들이라고 말한 바 있다.
판결 직후, 찌어 위찌어 의장의 동생인 찌어 모니 위원장은 흥분하면서, 자신의 형을 살해한 진범을 잡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법원이 명령한 배상금을 "단 한푼"도 받지 않을 것이라면서, 법원이 잘못된 판결을 내렸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판결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사건을 수년 동안 지켜봐온 인권운동가들은 이번 판결에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 HRW) 아시아 지부의 브래드 아담스(Brad Adams) 지부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이제 다 되었나보다 생각하자마자, 집권 '캄보디아 인민당'(CPP)이 통제하는 캄보디아 법원이 새로운 파문을 일으켰다. 이 가난한 남성들은 분명히 무죄이다. 하지만 그들의 목숨은 훈센 총리와 캄보디아의 권력층들이 행하는 좌충우돌의 게임 속에 함몰되고 있다." |
'국제인권연맹'(International Federation for Human Rights: FIDH)의 시웨이 예(Shiwei Ye) 아세안 지역 대표는 대법원 판결로 살아났던 희망을 무효로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본지에 보내온 이-메일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항소법원이 높은 수준의 사법적 규준을 지켜 피고인 두 사람을 방면하는 대신, 캄보디아의 고질적인 면책문화에 새로운 장 하나를 추가했다. 만일 캄보디아 당국이 찌어 위찌어 살인범에 대한 전면적이고도 차별없는 수사에 나설 의향이 없다면, 그리고 본 섬나앙과 속 삼 오은의 기소과정에 대한 독립적이고 공재적인 조사도 하지 않을 것이라면, 국제적인 인권기구나 노동기구가 그것을 조사토록 초청할 필요가 있다. 이미 8년이란 긴 시간이 지나갔다. 그리고 찌어 위찌어 의장 살인범은 아직도 자유의 몸이다." |
이 문제에 전문성을 지닌 이들은 대부분 동일한 견해를 표명한다. 과거 프놈펜 경찰청장을 하다 숙청당[해 현재 징역 103년형을 복역 중인] 헹 뽀우(Heng Pov)는 지난 2006년 도피처에서 프랑스 신문 <르 익스프레>(L’Express)와 회견하면서, 찌어 위찌어 살인사건은 정부가 기획한 음모로서, 피고인 두 사람은 기획된 범인일 뿐이라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지난 10년 동안 좀 더 나앗던 경우에도 수많은 불합리성이 발생했었다. 불충분한 증거 때문에 혐의를 기각시키려던 '프놈펜 지방법원' 판사 한명은 신속하게 보직이 해임됐다. 또한 항소법원의 재판도 취소됐고, 판사 한명이 설사병에 걸렸다고 주장한 뒤로는 재판일정이 단 한번도 잡히지 않았다. 어제 판결이 있을 때까지, 이 사건은 3차례나 지방법원으로 되돌려보내졌고, 항소법원에서도 4차례나 공판이 있었다. 인권단체 '리카도'(Licadho)의 암 삼 앗(Am Sam Ath) 선임조사관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그들의 새로운 수사에서 발견된 새로운 증거는 전혀 없었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그 피고인들은 방면돼야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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