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시작하는 오늘이 늘 그러하듯 파릇파릇해서 참 좋다.
출발시각에 헐레벌떡 뛰어서 타는 저이는 또 누구란 말인가?
밀리고 밀려드는 터미널의 혼잡 속에 저이는 도대체 어디로 가길래 혼자서 저리도 바쁜 것일까?
시작은 모두가 알 수 없기에 다소 들뜬 상태로 상큼한 출발을 다투어서 서두르고 있다
왼쪽에서 떠오르는 태양이 반가운 얼굴을 내미는 아침에,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얼굴이 홀연히 사라지는 모습으로 세상을 발칵 뒤집어서 시끄럽다.
그의 두 얼굴이 너무나도 부끄러운데도, 자신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듯이 삿대질만 요란하다.
정말로 철판 깔은 얼굴들이 너무 뻔뻔하게 설치고 다니는 세상이 싫어 잠시 눈을 돌려본다.
믿었던 이에게 발등 찍힌 기분을 아시는가?
설마가 사람을 잡고서는 좀체 놓아주지를 않는다. 정말 이제 어찌 해야 하는 걸까?
뻔뻔함도, 솔직함도, 아닌 채 아예 시치미를 떼고서는 내가 왜? 하는 얼굴들이 참 가관이다.
그를 제발 비난하지는 말자. 그리고 달리 이용하려고 머리를 굴리지도 말자.
그는 바로 우리가 눈이 빠지게 기다리던 유관순이나 잔 다르크가 아니지 않은가?
착각은 우리 스스로가 저지르고 있지 않은가? 기다리고 또 기다리자! 민초라는 이름으로~~~
문화는 자꾸 바뀌어가고 있는데 지구에서 제일(?) 똑똑하다는 사람만이 단지 모르고 있을 뿐이다.
청주의 도심 한복판에 외롭게 자리 잡은 용두사지철당간!
그 흔한 절집에서 큰 행사 때면 높게 매달아 영락없이 나부끼던 깃발!
이제는 당(幢)이라는 깃발도 절간의 흔적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깃발을 매달던 철당간만이 동그마니 남아서 길손을 마지못해(?) 반기고 있다.
지척에 용두사지철당간 버스정류소와 함께~~~
철통에 새겨진 준풍3년(峻豊三年)이란 연호만 아니라면, 도심의 개발과 함께 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그 연호 덕으로 국보 제41호로 호적까지 올리고 위세(?)를 당당히 뽐내고 있다.
<용두사지 철당간>
하긴, 준풍3년이며 서기로는 962년이니 바로 고려 4대임금인 광종 13년이 된다.
開國의 뒤끝은 언제나 시끄럽기 마련이지만, 나라를 연 애비의 뜻은 사라지고,
서로가 잘났다는 공치사로 피비린내가 물씬 풍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역사의 반복인가?
흔히, 조선의 3대임금인 태종 이방원을 고려 태조 왕건의 넷째아들인 광종 왕소와 견주곤 한다.
독살설이 나도는 이복 맏이인 2대 혜종 왕규에 이어 동복형인 3대 정종 왕요에 이르기까지
흘러간 세월이 그렇게 짧을 수가 없고, 이 빈틈을 왕자의 난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설명이 어려워진다.
지방 호족들을 달래려고 잠시 눈이 먼(?) 왕건의 행적은 자그마치 25명이란 왕자들을 생산해 내고,
그 속에서 눈에 띄어야 했으니 왕자들의 속사정도 알고 보면 딱하기 그지없다.
그 호족들의 氣를 꺾고자 귀화인 쌍기를 통해 자유분방한 호족들에게 관복을 입히고,
과거제를 실시하는가 하면, 호족들의 힘을 더 뺏고자 노비안검법(奴婢按檢法)을 실시하여
억울하게 노비가 된 이들을 가려내어 제자리로 돌려놓음으로서 왕권을 강화하고,
중국과 대등하게 年號까지 사용했으니 세종을 만든 태종과 견주어도 마땅하리라.
달천천을 끼고 달리는 자전거길은 남부로를 따라 중간 중간 공사 중이라 헷갈리기 마련이다.
그래도 걸어야 하는 이 길을, 아무리 개구리가 뛰어나온다는 경칩이라고는 하지만,
꽃샘추위가 시샘을 하는 통에 자전거를 탄 이는 고사하고 걸어 다니는 사람조차 보기 힘들다.
아무튼, 이 길을 따라 옥화9경을 둘러보자고 나선 길이다.
누가 달리고 걷고 하는 것이 지금 문제가 아니다. 오로지 이 길을 가야하는 오늘의 하루다.
<달천천 자전거길을 따라>
길이 60m인 청석굴은 옥화9경중 제1경으로 그동안 몇 차례의 탐험(?)을 통해 거들이 난 셈이다.
황금박쥐가 나왔다고 떠들고, 구석기人의 생활터전이라고 아무리 소리 질러도,
찾는 이가 너무 없어 물놀이장을 만들고 수변공원을 만든 어설픈(?) 풍광이 오히려 부자연스럽다.
손이 타도 너무 많이 타서 다시 찾기가 힘든 풍광이다.
그저 혼자서 동그마니 여기서 수렵생활을 했을 구석기인을 떠올리며 자리를 뜬다.
<청석굴>
아무리 아홉(9)을 좋아하고, 실없이 팔자타령(8)에 행운의 숫자 칠(7)에 헷갈려서
어리둥절 살아온 인생이지만, 옥화9경에 홀라당 빠져 갈팡질팡 헤매는 꼴이 너무도 우습다.
그래도 왔으니 그냥 갈 수 없다는 심사로 옥화자연휴양림을 옆으로 스치며
차들마저 뺑소니치는 길을 줄자를 들고 길을 재는 이에게 질퍽한 길을 묻는다.
옥화대를 얼마나 더 가야 하느냐고~~~ 뻔한 질문에 뻔한 대답이 돌아온다.
세상에 믿을 사람이 참 귀하다지만 돌아온 대답은 퉁명스런 불친절(?)이다,
그냥 곧장 가다보면 만나게 될 거라고~~~ 이런~ 이런~ 해보지만 세상은 참 요지경이다.
<천경대>
<천경대에서 바라본 옥화대>
<옥화대에 자리잡은 추월정>
<멀리서 돌아본 용소>
비가 온 뒤라 그런지 거울처럼 맑다는 천경대(天鏡臺)는 자기모습은커녕 산 그림자도 비추지 못하고,
발길은 추월정(秋月亭)이 있다는 지척의 옥화대(玉華臺)로 향한다.
추월정과 세심정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자꾸만 발길을 붙들고 늘어지는데,
용트림을 하다가 이무기가 되었다는 2경인 용소(龍沼)는 좀처럼 눈에 뜨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지나쳐 온 모양이다.
그래도 달천천은 소리 없이 흘러가며 눈여겨보라고 일러준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