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보의 부인...화가 우향 박래현(雨鄕 朴崍賢) 화가 우향 雨鄕 박래현 朴崍賢 1920 - 1976 나라의 대표적인 부부화가 김기창과 박래현.. 우향 박래현은 운보 김기창의 그늘에 가려 그 예술성이 크게 알려지지 못했다.그러나 박래현(雨鄕·朴崍賢·1920~1976)은 일제시기 말부터 1970년대까지근대와 현대의 전환기와 거대한 문화변동기에독창적 예술세계를 창출한 탁월한 작가다.도쿄 여자 미술전문학교에 유학한 우향은가난하고 학벌도 없는데다 청각장애까지 있는 운보와 ‘예술의 길을 함께 걸을 수 있다’는 단 하나의 조건 때문에 결혼해남편의 예술적 성장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우향은 아내, 어머니, 예술가라는 삼중의 삶에 충실하며 그러면서도 여성에 대한 전통관습에 얽매이지 않고작가로서 홀로서기와 자아실현을 성공적으로 이룬 화가다 . 구상적이고 사실적인 1940년대를 거쳐 50년대는전통 수묵채색화를 현대적 조형으로 전환하고 형태와 색채를 과감하게 요약 단순화한 반추상화 시기,60년대 이후는 추상적 표현시기를 거치며 지칠줄 모르는 창작열을 불태운다.우향이 중견작가로 위상이 굳어갈 즈음인 1969년,홀로 뉴욕으로 유학을 떠나 지금까지의 평면 작업을 모두 버리고판화와 에칭, 타피스트리 작업에 몰두한다.그러면서 70년대 이후에는세계 여러 민족문화를 화폭에 담고 수묵으로부터 판화와 섬유예술,다양한 오브제를 수용한 작업에 이르기까지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창조했다. 전환기의 시대정신을 화폭에 아로새기는 과정에서우향의 탐구와 개척정신은 회화와 판화, 타피스트리 등 전 영역에서일관되게 분출한다. 그러나, 우향은 1976년 57세에 간암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한 사람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독특한작품에 대한 열정이 운명적인 죽음으로 중단돼애석한 생애를 마친 박래현은 전통 동양화 소재나 화법에 예속됨 없이자신 특유의 제작방법과 표현양식을 꾸준히 모색했다.우향은 한국 근대화단에 몇 되지 않는 화가로 격변기의 시대속에서<장> <이른아침> <노점> <작품>등 수 많은 작품을 남겼다. 박래현, 노점, 화선지에 먹과 채색, 1956
작품 20 1967 - '노점' - '이른 아침' (공중전화 카드)
<추상 사리즈>
난도 1960초기 노점A(1956), 박래현
[전시]雲甫는 잊어라…김기창화백 부인 박래현 박래현 작 `나녀`(종이에 채색. 202×99.5㎝, 1960년). 작가의 초기 구상작품으로 대담한 직선이 강조된 기하학적 형태 분석과 단순한 색채 속에서도 섬세함과 여성스러움이 묻어난다. 우향은 남편의 예술적 성장과 성공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 후원자인 동시에 자극원이면서 네 아이의 교육과 성장을 전담한 어머니였다. 그러면서도 여성의 자아실현이라는 끈을 한 순간도 놓은 적이 없었던 선구적 여성 화가이기도 했다. 그는 전통적으로 여성에게 부여되어온 편견과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인간으로서, 또 작가로서 직립하고자 했다.
우향의 작품세계는 한 마디로 끊임없는 변신과 포용이었다. 그는 단순히 선구적 여류화가가 아니라 “동 서양의 개념을 넘어 전통 채색화부터 서구의 모더니즘 회화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조형적 자유를 만끽했던 근대화가 였다.” (김미경·미술평론가)
우향의 작품세계는 크게 세 시기로 구별된다. 각 시대별 작품들은 한 사람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독특하고 달라 우향이 집요하리만치 ‘창조 욕구’로 가득한 생을 보냈음을 짐작케 한다.
우선 전시장 입구에서 만나게 되는 ‘아이들’(1956년), ‘풍요’(1960년), ‘나녀(裸女)’ (1960년) 등 초기구상 작업은 피카소나 브라크의 입체파 그림을 연상시킨다. 대담한 직선이 강조된 기하학적 형태분석과 단순한 색채 속에서도 섬세함과 여성스러움이 묻어난다.
이어 작가는 1960년대 중 후반 추상작업으로 돌변하는데 이 때 그린 ‘정물’ ‘작품’ 등은 한지가 가진 ‘번짐의 효과’를 극대화한 작품들이다. 동양화와 서양화가 절묘하게 결합된 온화하면서도 당당한 추상화면들이다. 특히 60년대 후반에 집중되었던 길다란 띠 작업들은 작가가 ‘엽전 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대표작들이다. 현미경으로 본 세포를 연상시키는 이 이미지들은 작가가 추상을 통해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단계로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중견작가로 위상이 굳어갈 즈음인 69년 우향은 세속적인 편안함에 안주하지 않고 돌연 미국 뉴욕으로 유학을 떠난다. 그곳에서 그는 지금까지의 평면 작업을 모두 버리고 판화와 에칭, 타피스트리 작업에 몰두한다.
특히 털실이나 장식용 직물에 엽전이나 둥근 커튼 고리 같은 물체를 박은 타피스트리, 섬세하고 화려한 판화작품 등은 한국적 모더니스트의 화려한 탄생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향은 57세에 간암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다. 요절은 아니었지만 그의 죽음은 우향이 바야흐로 작가로서 단단하게 큰 몫 하리라 기대했던 사람들에게, 그의 따뜻한 인간애와 내면의 깊이를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당시 시인 모윤숙은 “우향의 죽음은 아내, 어머니, 예술가라는 삼중의 삶이 부른 과로 탓이었다”고 회상했다.
허문명기자
김기창 성당과 수녀와 비둘기 1957 박래현 조선여인상B 1959
난도 1960초기 우향(雨鄕) 박래현은 한국화의 새로운 이념을 표현한 걸출한 여류화가로서 남편 김기창 화백과 함께 미래의 새로운 한국화의 지평을 연 화가이다. 그의 때이른 사망으로 그의 시도는 완성되지 않았지만 수많은 후학들과 예술인들에게 깊은 감동과 영감을 주었으며 이국적이면서도 한국적인 새로운 감각을 작품화하여 한국화의 새로운 개념을 우리에게 보여준 화가이다. 위의 작품은 드로잉 모음집인데 총 91점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고 마야문명과 고대문양이 드로잉 되어 있다.우향 박래현의 작품을 보면 이국적인 정취와 한국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데 그의 아름다운 작품 이면에는 투철한 작가의식과 작품에 대한 구상이 뒷받침 되었던 것이다. 이 드로잉 집의 내용중 9점은 삼성문화재단의 한국의 미술가시리즈 박래현 편에 수록되어 있으며 출판년도는 1997년도이다. 미술평론가:김호
1969년 10월 뉴욕에서 만난 한국 문인들과 화가들. 뒷줄 왼쪽부터 두번째 <故>김환기 화백, 세번째 <故>박래현 화백, 한 사람 건너 수필가 전숙희, 문학평론가 <故>백철. 앞줄 왼쪽부터 |
첫댓글 애 쓰셨습니다.
잠시 허전은 할것같습니다.
좋은 휴식 되십시요
공유 하겠습니다
민조님 ~~~역시 봉사를 하시는님 답게
뮤지컬 관람 하던날 만나뵈오니...천사같은 얼굴이더군요..
인상도 참 편안하신 모습이셔서 집에 오도록 생각을 했습니다..
봉사를 못하고 사는제가 뵙기에도 죄송했습니다..
그날 저는 옆지기와 함깨 관람을 하게되어 길게 인사도 못드려 죄송했습니다..
더위에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람니다..
늘 고맙습니다..
@윤숙. 과찬의 말씀을 듣습니다.
고맙습니다.
공연후 인사 드릴까 했는데,
관객이 조금 빠진후 나와 못 뵈었습니다.
다음 기회에 또 뵙겠습니다.
좋은 시간 되십시요
운보(김기창)의부인 우향박래현의
그림을보여주시는군요.
운보의그림은 많이유명한데....
부인우향의그림은 처음보는것같아요.
새로운 한국화의지평을연 화가이군요.
갈길바쁜나그네가 작품을남겨놓고가는듯하여,
가슴이찡합니다.
작품올린시간을보니
오늘은 교회도 못간듯합니다.
부디3주동안 건강하게 임무를마치고 돌아오시길기도하겠슴니다.
잘다녀오십시요.
윌리스님~~~~반갑습니다..그리고 너무 고맙습니다..
교회는 [2부 9시 40분] 다녀 왔담니다..
오늘은 목사님 말씀이 더욱 좋와서 가슴이 와닿았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겸손하게살아라 ..
작은 마음부터 어떤 봉사든 봉사하는 마음으로 살아라..
저는 봉사를 하지않고 이 나이를 먹었으니
마음이 숙연해지고 돌아오며 반성을 많이 했담니다..
교회가는날은 늘 밖에서 점심식사를 하는데 ...
오늘은 반성하는 마음으로 점심도 굶었습니다.....ㅎ
집으로 바로와서 겔러리방을 찿았담니다..
윌리스님 ~~더위에 몸건강하시고
늘 봉사하시며 주일을 보내시는 윌리스님께
하느님에 은총이 함께하시기를 기도 드림니다..
감사합니다..늘 고마웠습니다.